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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신앙관련

죄인을 사하시는 주님

by 디클레어 2022. 9. 3.

죄인을 사하시는 주님

 

 

계시록 관점(에녹서 참조)

 

 

 

마태복음 1231

Wherefore I say unto you, All manner of sin and blasphemy shall be forgiven unto men: but the blasphemy against the Holy Ghost shall not be forgiven unto men.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느니라

 

예전부터 가지고 있는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어쩌시려고 사람을 이렇게 다양하게 창조하셨는가? 성품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사상도 다르고, 사색하는 방법조차 다른 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심판하실것인가?

 

그러나 이 의문은 위 본문 한 구절에 의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영을 받았는가? 단호한 내 대답은 아니다,이다. 주님 초림시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받았던 성령의 영은 당시 본보기로써 보여주셨던 것 뿐이고, 현재의 성도들은 결코 아무도 그 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의아한가? 그러나 기뻐해도 좋을만한 일이다. 보라, 주님께서 성령을 범한 자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그렇다면 본문에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바로 천사들을 가리킨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렸으나 그 아버지를 거역하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 성령님께서 시키시지 않은 일들을 행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이라 칭한 것이고, 그들은 성령을 거역했기에 그들의 죄를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을 직접 보거나 체험해보지 못했기에 용서받을 수 있으나, 그들은 그러한 것들을 모두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어겼기에 용서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라는 거다. 이것은 에녹서를 읽고 묵상한 끝에 얻은 결론이다.

 

사실 처음에 에녹서를 봤을 때, 천사들이 눈물과 후회?로 용서를 빌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실까? 라는 의문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 매몰차게 거절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낯설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지나친 개입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사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에 반해 사람들인 우리는 아직 영을 체험해보지 못했기에 그것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뿐더러, 아직 육체안에 갇힌 혼이기에 본인들이 겪은 경험밖에는 알고 있지 않다. 영적인 체험을 아직 해보지 못한 우리들은 어떠한 죄를 지어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체험한 자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라는 뜻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너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어다.

 

영으로 아버지를 높여 드리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경험한 자들이 있는가?

 

요한복음4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KJV] But the hour cometh, and now is, when the true worshippers sha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in truth: for the Father seeketh such to worship him.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KJV] God is a Spirit: and they that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우리가 영이 있다고? 100%는 아니더라도 50%는 받았다고? 아니 15%는 있을거라고?

 

아니 없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하나님께 영을 받은 적이 없다. 바울이 영을 소멸하지 말라고 했던 것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한 말이었다. 기적을 일으키는 제자들과 기도에 힘이 있었던 장로들의 이야기이지 결코 우리들은 영을 받은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 날에 나의 영을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그 날도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고,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혹시라도 영을 받았다면 그런 사람은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가 삼겹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영을 받지 못한 내 자신에 안도한다. 나는 지식으로만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알고 있을 뿐, 아직 그분의 영광을 뵙지 못했다. 내가 그런 천한 처지에 있기에 주님께서는 불쌍하고 어리석은 나를 용서하실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 성령을 받았다고 우기는 것보다 훨씬 안정감을 주고 있다.

 

스스로를 낮추고 높이지 말라, 나는 방언을 받았으니 응답을 받았으니, 혹은 체험을 했으니 성령을 받았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얘기다. 사람은 그저 많은 참새보다 조금 더 귀한 존재일 뿐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실 때 까지, 우리는 낮아져야만 한다. 스스로를 높이는 자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창조주의 인정을 받는 것보다, 대단한 일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보다 세상에서 돈 많이 벌고, 여유로음을 즐기며 사는 것이 더 좋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라면 이쯤에서 자신을 돌아보라.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 삶이 될 것인지 이제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의 돈을 각각 50%씩 챙기고 싶어하고,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일이며, 또 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다고 말이다. 오늘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는 삶이 있고, 곧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세상을 인내해 나가는 것이 우리 성도들이 할 일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ㅎ지 않는다.

 

사실 이 말을 하는 본인도 그러한가 하는 의문에 빠져 있다. 뭐하나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만한 건덕지도 없다. 답답한 노릇이긴 하지만 이론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언젠가는 그러한 날도 오지 않겠는가? 하고 애써 안위하고 있을 뿐이다.

 

주님 주신 기도문에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구절이 있는가? 혹은 다른 이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는가? 또 큰 재산을 달라고 기도하라 하셨는가? 그게 아닌데 많은 사람들은 왜 선을 넘으려고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죄도 감당못할 하찮은 인간임을 알고 내 원수를 용서하고 나서 나의 죄도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이 그저 그런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보다 합당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읊어본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