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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창조-과학관련

[스크랩] 사랑그리고편지님의 글중에 조금 다른 의견

by 디클레어 2010. 2. 14.

사랑그리고편지님의 글중에 조금 다른 의견을 올립니다.

 

각설하고...여기서 대뜸 질문을 자주 하는 것이 이부분이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과 자녀를 낳았다는 부분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이며

사람의 딸들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개신교 목사들과 신학은 어떻게 대답할까?

네피림이라는 거인족이 해석하는데 여간 방해를 하기도 한다.

말씀에는 이들 네피림은 사람의 딸들과 하나님의 아들들과의

사이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과 골리앗을 잠간 떠올려야 한다.

거인족들은 그렇게 많은 숫자가 아니다. 생각해 보라 거대한 거인들이 수십만 명이 떼로 몰려 다닌다면 보는것만으로도 공포 영화 이상일 것이다. 그렇게 많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눈에 잘 포착이 되고 따라서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하며 그때나 지금이나 당대를 이끌어갈 지도자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앞에 올렸던 많은 글들로 대신하겠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타락한 천사들" 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천사들은 몸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사람처럼 나타나기는 하겠지만) 영혼만 있는 영적인 존제다. 몸을 입은 사람들같은 감각이나 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몸을 입은 사람들같은 감각이나 기관이 없다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육신전 예수님께서 두 천사와 함께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아브라함앞에 나타나신글을 읽어 보지 않으셨군요, 그들은 발을 씻고 아브람함이 차려준 송아지고기를 먹고 우유를 마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들도 시장기를 느낍니다.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들에 대하여 예수는 분명하게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다" 하셨고 부활의 때에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되기에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러지 않는다고 하셨다. 천사가 성이 있을까? 남자 천사나 여자 천사나 아기천사로 구별되는가?하기는 필자로서도 천사를 본 적이 없으니 알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에는 천사에 대한 많은 기사가 있지만 여자와 남자로 분명하게구별한 곳이 없다. 혹시 있거든 알려 주시라. 천사들이 어떻게 육체를 입은 사람의 딸들을 보고 인간적인 욕심이 들까?

 

예수님과 함께한 천사가 여자처럼 생겼다면 소돔의 남자들이 ‘낯선육체‘를 따라 가려 했겠습니까? 즉 동성연예를 하려고 했겠습니까?

유다서 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 도시들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음행에 내어 주며 ‘낯선 육체’를 추구하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되었느니라.”

소돔(sodom)의 소도미(sodomy)는 동성연예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 만큼 그들은 남자처럼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롯이 자신의 딸들을 주겠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동성간의 음행을 더 원했고 즐기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아시다시피 당연하게도 유황불로의 멸망이었지만요. 현재의 동성연예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묵과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는 이렇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지음 받았고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던 귀한 존제였으며 하나님의 형상이며 모양대로 지음 받은 유일한 존제였다. 하늘과 바다와 땅과 그 가운데 모든 만물들이 사실은 아담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다. 생각해 보라. 각종 짐승들을 아담에게 보여주면서 어떻게 이름을 부르는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은 보셨고 아담이 부르는것이 이름이 될 정도로 당시에 모든 피조물들은 아담이 바로 하나님과 같은 존제였다는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이 아들같은 존제였으니 당연히 피조물들이 아담에게 순종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필자가 조금 비약적으로 예를 들어 본다면 집 주인의 아들과 주인을 애완견이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자.

아무리 어린 아들이라해도 개는 아들을 주인 보듯 본다는 것이다. 아들을 아버지인 주인으로 보기에 조그만 아이가 덩치큰 개를 맘것 주무르고 까불고 해도 미치지 않은 이상 개는 순종하며 꼬리를 내린다는 것이다. 좀 이상한가?

 

좋은 말씀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동물들이 복종했을 수도 있겠지만 벌거벗은 아담의 몸에서 빛이 났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한자에 불 화자를 보면 火 입니다. 일반적인 풀이에서 나무에 불이 붙고 있는것을 형상화했다는 해석이지만 달리 보면 그 모습은 사람 인자에 ‘ ’ 이 두 개 들어감으로 빛이 났음을 표현한것이다라고 한자에 담긴 창세기라는 책에 보면 다른 각도의 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선악과를 먹기 전의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지만 하나님과 같은 모습이었기에 혹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존재였기에 -모세처럼- 그 몸에서 빛이 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지만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났었습니다. 따라서 그 위엄있는 모습에 동물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했을것이다라는것이 다른 각도에서 창세기를 연구하는 분들의 주장이 되겠고 저도 이 해석에 일정부분 동의합니다. 선악과를 먹고 자신의 몸에서 빛이 사라지자 벌거벗었음을 알게 되었고, -어쪄면 상징적인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 불순종의 결과로 하나님과 멀어지는 사태를 초래한 것이죠. 선악을 알게되었다는 의미는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라는것에 다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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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더 짚어야 하나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해산하는 고통은 범죄한 이후에 주어진 형벌이었다. 그 이전에는 해산의 고통이 없었다는 말이다. 죄가 아직 들어오기 전이니까... 뱀의 속임수에 넘어가 동산에서 쫒겨나고 해산하는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할 하와(여자)는 뱀을 어떻게 보겠는가? 생각해보라. 철천지 원수도 그런 원수가 또있을까?

 

해산의 고통은 그 전에도 있었지만 해산의 고통을 크게 더 하신 것입니다. 해산은 여자에게 있어 기쁨입니다. 사람 낳은 기쁨에 그 전에 아픔을 기억 못하는 것처럼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겠지만 어느정도 고통은 있었다는것이 바른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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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가인과 아벨뿐이라고 생각을 하기에 아벨을 죽인 가인이 에덴 동쪽 땅('놋'이리저리 헤맨다는뜻')에서 살 때 거기서 아내를 얻었고 '에녹'을 낳았다는 것에서 헷갈려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을 다 기록하지 않는다.하나님의 구원과 구속사에 대하여만 기록할 뿐이다. 이름이 언급이 없다고 당시에 가인과 아벨외에는 다른 자녀들이 없다고 보기에 헷갈리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동의가 어렵습니다. 가인이 첫아들인 것이 거의 틀림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첫아들은 상당히 중요하며 그 전에 아들을 낳았다면 기록이 되었어야 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합당합니다. 가인 이후에 아벨이 둘째아들이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가인이후에 딸들을 낳았고 이 딸들은 첫 경수를 시작한 후에 아이를 낳을 수 있으므로 이 당시의 인구는 인구계산법에 의해최소 2,000명 이상은 될 것이다라는 것이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아벨을 형에 의하여 잃게된 아담과 하와가 얼마나 충격이 컷었는지... 거기에서 최초로 "죽음" 에 대하여 깊이 인식하였을 것이다. 정녕 죽으리라에 대하여 경험이 없었던 아담과 하와에게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며 공포이며 두려움이며 절망이었다. 어쩌면 하나님의 마음을 그 사건을 통해서 알았을런지도 모른다. 선악과 사건은 하나님이 인간을 골탕먹이려는 것도 아니며 시험하려는 것도 아니며 얼마나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사랑하셨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죽음은 인간이 격는 최고의 두려움이며 고통이며 형벌이다.

 

첫 죽음에 대해서는 많은 주장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실 때 이미 아담은 어떤 동물이 희생되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오직 아담과 하와만이 영생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오직 선악과만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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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차피 쓰러질 수밖에 없는 살덩이에 지나지 않으므로 내 숨결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 영원히 함께 하도록 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길어야 120년밖에 안 될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아니고 그 이후 노아의 홍수까지 120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인의 제사와 제물은 거절당하였고 아벨의 제사와 제물은 받아드려졌다.여기가 핵심 포인트다. 예배하는 자들이 포인트요 하나님의 주된 관심이다. 당시의 문화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원시적이고 문맹적일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격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아벨은 양의 새끼로 제사를 해서 하나님께서 열납하셨고 가인은 속죄의 의미를 모르고 땅의 소산물인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열납하지 않으셨다고 배워왔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 논리에 의하면 가인과 아벨이 제사드릴 당시 하나님께서는 양의피를 좋아하시고 곡식은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결론밖에 도달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행위가 정직했고, 그의 삶이 하나님보시기에 합당해서 그의 제물을 열납하셨을 것이다라는것이 오히려 더 이치에 맞습니다. 반대로 가인은 아벨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그의 마음에 죄가 도사리고 그의 평소행위 또한 죄가 가득한 생활이었을것입니다. 어떻게 동생을 때려 죽일 수가 있습니까? 오히려 이건 그의 성품이 포악했다는것을 증명하는것이 아닐까요?

 

이후 모든 부분에 대해서는 사랑그리고편지님의 글에 동의합니다.

이상 미흡하지만 그동안 묵상해 왔던 부분에 대해 올렸습니다. 반론도 있고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런 일들로 인해 서로 토론이 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양들의 우리
글쓴이 : 디클레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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