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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신앙관련

하나님의 법에 대해 불법

by 디클레어 2010. 1. 13.

십일조나 헌금을 교회에 내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대해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목사나 신부나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의 제사장은 될 수 있어도 타인의 제사장은 될 수 없다는 사실만 알아도 십일조나 헌금을 그들에게 주지 않을 것입니다


[히7:12]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예수님이후에는 예수님이 대 제사장이고 영적예배를 드리는 각인이 제사장이 됩니다


[벧전2: 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영적예배란 롬12:1에 나옵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절에서 몸은 자기를 이루는 전체를 말합니다


예수님이전에는 행위의 율법으로 제사장을 따로두고 모세율법에 따라 육체의 예법에 따라 행위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후에는 각인이 제사장이 되어야하며, 자기몸을 드린다는 것은 육체의 몸을 죽여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으로 주신 마음의 율법에 따라 자기의 실상인 마음을 드리는 것으로 마음을 드린다는 것은 곧 그 마음을 따라 실천할 때 마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로만 주여주여 한다고 마음을 받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각 사람이 마음의 생각으로 마음을 정하고 ,마음에 정한대로 실천을 할때 ,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제사(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드리는 예배를 영적예배라합니다


[히10: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10:4 말씀대로 영적예배는 예수님처럼 단 한번 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영적예배를 받으시며 "처음것은 다 내것이라"하시며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마음의 법에 따라 영적예배를 행하게 될 것을 예수님은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전이기에 예고만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4장]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래서 육체로 오셔서 사람보다 먼저 본을 보이신 예수님은 영적예배를 드릴 수 있는 방법으로 마태복음16:24에서"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가르치시며 명령하신 것이며 이 말씀이 곧 천국백성의 조건인 것입니다


온전한 자기부인이 된 사람은 세상에서 벗어난 마음으로 세상을 살게됩니다

이것이 바울처럼 세상에서는 세상의 법을 지키며 살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며 사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사람이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하나님나라의 영적백성은 세상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고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욕심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신 것처럼 나중에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주는 절대적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살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사는 삶 곧 사랑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실천하며 사는 것으로 곧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롬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법에 따라 마음을 규제하며(마음의 할례)자기부인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온전한 자기부인이된 사람의 사랑과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일꾼이 된 사람은 세상의 법도 지키면서(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어라 하시며 예수님께서도 세금을 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정하신 선악의 기준에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늘 마음을 규제하면서 하나님이 하라 하신 일을 하며 살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안식이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쉬신 것처럼 자기 일을 쉬는 것을 뜻합니다


[히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곧 온전히 세상에서 벗어난 마음으로만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스스로 자기부인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하고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하셨고, “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한 베드로의 말에는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세상에 속한 마음을 다 버리는 것이 자기부인이며 마음의 생각에 따라 실천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의 말씀이 곧 예수님이 모세의 행위의 율법을 마음의 법으로 온전하게 하신 하나님의 법으로입니다


마음의 법이 예수님이 완성하신 율법이기에 그리스도의 법이 됩니다

마음의 법이 그리스도의 법으로서 예수님이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도 함께 가르치시는 법이기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 한 것입니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래서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후에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거룩함에 이르는 길을 가야하는 것입니다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서로의 짐을 다는 것은 낮아짐과 비움의 마음으로 먼저 된 자는 나중 된 자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알고 섬겨야하고, 나중 된 자는 먼저 세워진 자를 질서 안에서 섬기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안에서 동등하게 서로 섬기는 사랑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목사나 신부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중보한다며 십일조나 헌금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중보기도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자리를 도둑질해서 앉아있는 자라고 생각하시면 맞습니다

십일조와 헌금은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불법입니다


불법은 죄이며 죄의 삯은 사망 곧 죽음(영의 죽음, 영벌)입니다

피란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희생'을 말합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그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을 사람이 가로채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또한 ‘피를 흘린다’는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을 얻기 위하여 드리는 '헛된 희생'을 말합니다.

그 희생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에 나아가는 것이어서 그 피를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신 것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공의를 관장하는 자들이 그 피를 흘리게 하고 그 피를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제도는 가증한 것이며 불법인 것입니다.


"피채 먹지 말라"는 말씀은 구약에도 있고 신약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피는 자기를 희생하여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행위의 율법아래에서는 그것이 진짜 짐승의 피였고 그리스도 이후에는 마음의 법으로 바뀌었고 또 자기를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므로 마음의 희생이 곧 그 피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오늘날 실제 피를 언급하며 규례를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사이비로 규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행위의 규례를 말하는 유태인과 똑같은 것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피를 흘리게 하고 그 피를 모아 사회에 돌려보내면 그것은 공의 관장 자가 피를 먹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죄가 아니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합리화가 악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세상은 부정한 것입니다.


형제든 식구든 누구든 관계없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그것을 사람 앞에 자랑으로 삼는 순간 그것은 피를 헛되이 흘려 부정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 안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선’ 에 속한 것인 양 회자되고 있기에 따로 구분을 하여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곧 사람 앞에 자기의 희생을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께 드림도 되고 사람에게 칭찬도 받겠다는 가증함이 들어 있는, 하나님의 선과 악 중에서 악에 속한 행위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거쳐 간 부정한 것은 하나님께는 드림이 되지 않으며 그것을 행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눅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는 당시 모세율법의 관할 아래 있고 또 모세율법은 공의 실현 전이므로 아직 효력이 발생되는 때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는 모세율법 하의 사람들은 십일조와 헌물을 해야합니다.

그것이 행위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의 법의 의미는 예수님의 공의 실현으로 인하여 행위의 법에서 마음의 법으로 바뀌게 되면 그 또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모의 정의와 살인의 정의와 간음의 정의 등을 바꾸어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합니다.


모세율법 아래서는 모세율법대로 해야하고 또 공의 실현 이후에는 행위의 율법은 폐하였으나 언약은 변질 될 수 없는 것이므로 바울과 같은 사람은 모세율법의 관장자였으니 그 언약대로도 행해야하고 또 마음의 율법대로도 행해야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행위, 즉 육신으로는 죄있게 하는 행위의 법, 즉 죄의 법을 따르고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른다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공의 실현 전에는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듣고 하되 그들의 행위는 따라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모세의 행위의 율법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죄를 만드는 역할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참되지 않은 하나님의 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이 헌금을 걷은 것에 대하여는 "그들이 먼저 자원하여 시작한 것이다." 하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헌금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 돈 있는 자들이 형제들의 궁핍함을 보고 단지 그 시대 상황적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그와 같은 실천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이 족하다." 하신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바울의 그같은 형제를 돕는 일은 다소 물질에 대하여 마음을 쓰게되는 부담이 있지만, 사단에 속한 돈에 마음을 두는 것이 전도자로서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그 시대 상황에서 또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되기에 "족하다" 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자기의 의"의 발현이므로 합당한 것은 아니나 바울에게 있어서 자신의 그 마음이 헛된 것임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도리어 " 악을 선을 위한 도구로" 쓰는 것이 되므로 용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합리화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계시를 직접 받은 자이며 계시를 직접 받은 자는 "모세를 신으로 삼으신 것"과 같이 신처럼 취급해 주시기 때문에 바울이나 베드로와 같은 사람들에 한하여 적용이 되는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더 깊은 설명은 드리지 않습니다.


또한 베드로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공동체 생활과 재산을 가져오는 것에 대한 것도 그들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원에 의하여 그렇게 한 것이고, 그 사회 상황에 따라서 그것이 바르다고 판단 되었으므로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이며, 아나니와와 삽비라가 죽었다는 기록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속임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지 그것이 재산을 다팔아 돈 가져다 내고 오늘날에도 그때와 똑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법의 중요성을 가르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아나니아의 일을 핑계로 헌금을 말한다면 그것은 오늘날 이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경우는 그 때 상황 그대로도 아니고, 아주 안하는 것도 아닌 중간 상태, 마치 앵벌이를 하듯이 세상으로 보내져서 돈 벌어다가 그 관장자들의 명예욕과 배를 채우게 하니 예수님은 "교인 하나를 얻으면 저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 라는 질타를 하신 것이고, 그 질타는 오늘날의 관장 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또, 생활비 전부를 넣은 과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 역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신 말씀이며, 그 때는 행위의 율법이 폐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역시 그 헌금은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것이었으며, 행위의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합당히 행위와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되기에 그렇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성경에는 어디에도 그리스도 이후에 돈을 가지고 교회에 가져다 내야 한다는 규정은 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무리가 모였을 때 돈이 필요하게 되면 회비라는 것을 정하여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지 말고 자기들의 필요를 따라 추렴하여 모아서 쓰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육신을 따라서 갈 때 다음과 같은 현상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관장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믿으니 돈을 벌어서 돈을 가져오게 했고 또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말라기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지만 하나님은 동일한 말라기 안에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라기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그리고 이 말씀 이전에 있는 모든 말씀이 패역한 마음으로 가져오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질타의 말씀들입니다.


그 말씀들은 안중에도 없고 단지 마지막의 한 절만 그들의 마음에 들어간 것입니다.

위 말씀은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바로 헌물이나 십일조란 돈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수단으로 삼으라고 마음이 약하므로 자각할 수 있는 기능으로서의 행위의 율법을 주신 것인데 인생들이 마음은 딴 데 두고 행위만 하니 그것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신 것이며 성전 문을 닫기를 바라신 것이며, 또한 이것은 폐한 행위의 율법입니다. 이제는 마음의 율법을 지켜야 하고 마음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이후의 인생들도 여전히 이 말씀을 가져다가 유물을 거두어 들이는 수단으로 쓰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니 오늘, 성령의 법을 안 우리 역시 이 육신을 살려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영이 사는 수단으로써의 육신의 삶이 아니라 육신이 사는 것이 목표가 된 악을 향한 마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면 결국 육신의 병에서도 자유로워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 안에서 앞의 전제가 이러한데 뒤의 말씀만을 마음에 두고 행하는 것이 바로 육신을 살려둘 가치를 스스로 상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따라서 가는 이들의 결국은 그저 흙으로 돌아가는 것뿐인 것입니다.

내가 이방인으로서 본 포도나무에 접붙은 가지 입장에서 내 가지에서 나를 열매로 맺고 말씀을 따라감으로 연단받아 익게하면 하나님께서 "처음익은 것은 다 내것이라. "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헌금은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지 말라는 말씀에 대하여 "불법" 입니다.

"피채 먹지말라." 한 법은 구약과 신약에 동일하게 언급된 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모든 하나님을 향함으로 인하여 당하는 희생, 즉 아벨의 피부터 시작하여 스데반의 피까지 모두 "희생"입니다.

그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나 먹지 말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안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조차 잘못된 것입니다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되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마음으로 "약간의 유익" 이 있는 육체의 연습 차원에서 금식과 베품을 하되 베품을 받는 상대가 베푸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또한 금식을 해도 타인이 모르게, 나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라서 상대적 사랑이 아닌, 대가는 하나님께 받겠노라는 마음으로 베풀고 금식하는 희생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 희생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처럼 육적인 질서 안에서 "위로" 드리는 것은 그 관장자들의 배를 불리는 것일 뿐이며, "아래"로 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이 "될" 피전도자에게 드리는 것이므로 그것이 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드림으로 하나님께 받는 것은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최종 목적인 하나님의 안식에 들기 위하여 내 마음의 악을 지우게 하시는 "지혜를 깨달음 받는 것" 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는 말씀을 듣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헌금은 단지 금식처럼 약간의 유익이 있는 육체의 연습을 위하여 위가 아닌 아래로, 간접이 아닌 "직접" 하고 " 알게" 가 아니라 "절대로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각 사람이 모두 제사장이며 목사나 신부가 중간에서 제사장 노릇하는 중보의 행위는 성경적으로 불법입니다.

또한 십일조와 헌금역시 누가 관리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십일조를 받는 것도 내는 것도 성경적으로 불법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사는 하나님나라는 자기 안에서 세워지는 것이며 ,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법의 치리(마음의 규제)를 받으며 법대로 온전한 자기부인을 이루면 비로소 하나님의 성전이 마음 안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때 온전한 자기부인을 이룬 사람이 그리스도와 같이 왕으로 삼아지는 것이며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자기의 전부를 하나님께 첫 열매로 드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예배를 드려야 하는 사람 곧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 세대에서는 지금 어떻게 행하고 있습니까?

성경에 대해...하나님의 법에 대해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율법에서 온전한 율법으로 바뀐 하나님의 법도 모르고, 자기가 제사장이 되어야함을 모르고.... 어떻게 자기 안에 하나님의 법이 있는 하나님나라를 세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법의 치리를 받을 것인지.... 하나님의 법이 반드시 있어야하는 하나님의 성전은 또 어떻게 이룰 것인지 참으로 난감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돌이키라는 책망을 마음으로 받으면 하나님의 지혜인 성령을 주어 성경을 바르게 보일 것이라 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이 사람의 악한 것을 따르지 않는 유일한 길이며 바람처럼 전해지는 성령의 속삭임을 듣고 마음으로 받는 사람이 구원에 이를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안내해드리는 에끌레시아에서 이미 드러나 있는 글들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을 아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