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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카톨릭-바벨론

[스크랩] 로마 카톨릭의 이단성(1)

by 디클레어 2010. 1. 22.

로마 카톨릭의 이단성(1)

                                               로마 카톨릭에 대한 분석

*작성자 / O.J. 깁슨
*출처/개혁 아카데미(http://cafe.daum.net/ReformedChurch)

 

1. 로마 카톨릭교회란

가톨릭 교회는, 자신의 전통, 즉 수세기에 걸쳐 집성된 지도자들 법령은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지닌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사실은 그의 교회가 오히려 성경을 지배하며 성경을 해석하는 배타적인 권리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견해상의 차이를 피하기 위해서 그것이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한다. 가톨릭 교사들 간에는 거의 모든 영적인 주제들에 관해 다양한 견해차가 존재한다. 또한 성경 해석에 대한 어떤 무오한 안내서도 교회에 의해 출간되지 않으며, 교회의 전통 혹은 교리가 성경과 상충될 때는 전통을 우위에 둔다.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가 성경이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교회가 세상에 성경을 주었다고 가르침 받고 있다. 그들은 확신있게 말하기를, 사실은 교회가 성경에 포함될 수 있는 책들을 선정했으며, 그전까지 사람들은 성경이 아닌 가톨릭 교회로부터 가르침 받았다고 한다. 오늘날 생각이 단순한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들의 의심스런 성격을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


구약성경은 그리스도 시대 4세기 전에 완성되었으며 신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었다.
로마 가톨릭은 1546년 이전까지는 감히 구약성경에 일련의 새 책들을 추가시키고 그것들을 영감받은 권위있는 정경으로 선포할 엄두를 못 내었다. 이 책들은 위경(僞經)으로 불리우는데 위경이란 진정성이 의심되는 책이란 뜻이다. 우리 주님과 신약성경 저자들은 이들 추가된 책들은 일절 참조하지 않는 대신 기의 모든 구약성경들은 폭넓게 인용하였다. 예수께서는 로마 교회가 존재하기 전에 "성경을 상고하라"고 말씀하셨다(요 5:39).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해설들(4복음서)과 사도들 및 그 동역자들의 서신들은 1세기 후반 동안 필사본으로 유포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우리 주님의 사도들임을 알고는 마태, 요한, 베드로 및 바을의 저작들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야고보, 마가, 누가 및 유다의 저작들은, 그들이 사도들과 친분이 있었으므로 권위를 인정받았다. 이렇게 해서 신약성경 전체의 저작권이 인정되게 되었다. 이 저자들과 그들의 영감받은 저작들은 2세기 이전에 인정을 받았다. 로마는 단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이미 받아들여진 책들을 승인했을 뿐이다. 확실히 세상에 성경을 준 것은 로마가 아니었다.

배타적인 성경 해석권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주장 또한 아무 근거가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무한한 지혜 가운데서 인간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지하여 성경을 깨닫도록 섭리하셨다(요 16:13; 요일 2:27). 하나님은 구약 시대 신자들에게는 아무 영감받은 해석자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관원들은 예수님에게서 성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마 22:29; 막 12:24). 예수님은 그들이 그들의 전통을 내세움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화시켰다고 말씀하셨는데(막 7:5∼13) 로마도 이와 똑같은 과오를 범해온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절대로 전통을 인정하지 않으셨으며 오직 성경만 인용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진리를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다만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분의 성령께 우리 자신을 굴복시키고 그분의 도우심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을 주의깊게 연구하고 성경이 어떤 주제에 대해 언급하신 모든 말씀을 상고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 하나님의 속성, 구원의 방법 등과 간은 성경의 주요 교리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공적으로 인정된 인간 해석자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보셨다. 하나님의 권위는 무오한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요 14:6)와, 무오한 말씀인 성경(딤후 3:16)과 영감된 해석자인 성령 안에 있다. 성경은 인간이나 교회가 무오하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2. 또 다른 구원 계획

어떤 종교 조직의 실체를 파악하는 주된 시험 방법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으며 사후의 삶을 준비 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의 구원 교리는 여러 종교 의식(성례)에 참예하고 끊임없이 선행을 행할 것을 요구한다. 카톨릭 신자들이 날마다 얻기를 힘쓰는 그 구원은 날로 커져만 가는 무거운 죄짐으로 인해 그들에게서 점점 멀어진다.

그들은 교회가 명하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이 빚을 끊임없이 갚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빚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을 다 갚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구원은 이와같이 연약하고 죄많은 인생이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 일생동안 노력하는 결과이다. 교회는 명령하고 또 명령하고, 죄인은 빚을 갚고 또 같고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란 자격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호의이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와 상반된다(엡 2:8,9). 그러나 가톨릭 조직에서 말하는 은혜는 의식이나 행위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일을 행함으로써 점차 쌓여가는 일종의 선행 창고이다. 그들은 세례를 가리켜, "당신의 영혼을 처음으로 은혜 안에 이끌고 원죄로부터 그것(영흔)을 깨끗게 하는 예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은혜는 주교가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며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하는 의식인 "견진 성사"와, 주의 만찬을 가리키는 미사에 참여함으로써 더욱 자라며, 기도와 선행을 통해 한층 자라난다고 한다.

아울러 죄는 이 쌓여진 은혜를 통해 감해진다고 한다. 죄에는 용서할 수 없는 죄와 용서할 수 있는 죄가 있는데, 용서 할 수 없는 죄를 범할 경우에는 그동안 쌓은 모든 은혜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로마 가톨릭 조직에서 어떻게 용서를 얻는가? 하나님보다는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라. 그러면 사제가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당신을 용서해주고 다시 은혜의 생명으로 회복시켜 준다. 그는 어떤 의식적인 기도(예, 성모 마리아에게 올리는 "아베 마리아" 기도)나 선행을 부과한다. 이것이 "고해"이며, 그 전체 절차를 가리켜 "고해 성사"라고 한다. 그리고 죄에 대안 일시적인 징벌을 면해주는 대신 그 대가로 선행을 행하거나 교회에 헌물을 바치는 것을 가리켜 "면죄"라고 부른다. 교회는 은혜를 증가시키기 위해 병든 자나 죽어가는 자에게 기름을 발라줄 수 있다. 이것을 가리켜 "종부 성사"라고 한다. 죽은 다음에 영흔은 천국대신 "연옥"을 고대할 수 있는데 그곳에서 하나님 존전에 올바로 서기 위해 죄에 대한 추가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미사나 죽은 자를 위해 드려진 기도가 그 기간을 감해줄 수 있다.

행함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는 이 모든 복잡한 교리는 하나님의 인정이나 권위가 결여되어 있다.
성경은 죄의 정도 사이에 어떤 구별도 두지 않는다 하나님의 표준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죄는 심각하다. 견진성사, 고해성사, 종부성사 등 어떤 성례도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거나 성경에 언급되지 않았다. 연옥 교리는 가톨릭에 의해 성경에 추가된 경외서의 하나인 마카비 2서의 한 구절에 근거한다.

로마 카톨릭의 구원관을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한 가르침과 비교해 보라.
성경은, 구원은 복음을 믿음으로써 얻어진다고 말씀한다(롬 1:16; 행 15:7). 이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죄와 사망과 지옥을 이기신 증거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고전 15:1∼4). 우리는 이 메세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메세지대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분을 믿는 순간 성령을 받게 된다(엡 1:13). 우리는 어떤 불확실한 은혜의 제안에 의해서가 아리라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영접함으로써 구원을 받는다(요일 5:12). 선행은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변화된 삶에서 흘러나오는 구원의 열매이다(엡 2:8,10; 딛 3:5,8) 만일 어떤 사람이 인간의 행위나 규율을 구원받는 수단으로 추가함으로써 이 복음 메세지를 변경시키려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것이다(갈 1:8). 행함이 아닌 믿음이 죄인들이 구원을 얻는 수단이다(요 3:16). 그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인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것이다(요 1:12). 그 기초는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다(살전 12:13; 롬 10:7).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으며, 그로써 그분의 모든 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과(고후 5:2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사실과(롬 8:1),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축복(롬 5:1)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로마 가톨릭의 구원관이 범하고 있는 크나 큰 과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그분의 영광스런 부활을, 회개하고 복음 메세지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기에 부족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과오가 미사 교리에 나타나 있다.

3. 로마 카톨릭 왜 이단인가?

1) 로마 카톨릭(천주교) 권위에 대한 주장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을 고백하는 가장 규모가 큰 단체는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 8억 이 넘는 추종자들이 그들의 영혼을 그 가르침에 맡기고 있으며, 그것이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교회가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에 대한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는 이들의 주장은 가히 위협적이다. 그 의식들은 인상적이고 종종 "종교적인 감흥"을 일으킨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모든 면에서 이 조직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한 조직이 그 가르침에 있어 잘못되고 구원의 방법에 대해 사람들을 잘못 인도할 수도 있지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신실한 신자들은 가톨릭교가 매우 잘못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최고의 권위로 인정된다. 대조적으로 가톨릭은 그들의 교회를 최종 권위로 인정한다. 성경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라고 믿는 반면 가톨릭 신자들은 가돌릭 교회에 그들이 일원이라는 사실을 의지한다.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그들의 죄를 씻어 줄 수 있다고 믿는 반면 가톨릭 신자들은 가톨릭 교회의 성례와 사제들의 선언을 의지한다. 확실히, 참 신자들과 가톨릭교도는 그들의 신조에 있어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들 모두 옳을 수는 없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자신들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영적인 권위를 행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들의 전통과 교령이 성경과 권위에 있어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들은 사제와 성례를 통해 죄를 사해주는 절대적인 권세를 주장한다. 이 절대적인 권위를 교회가 가지고 있는 근거로 교회의 머리인 교황이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인 혹은 대표자로서 교회와 세상의 최고 통치자가 된다는 점을 제시한다. 뉴욕 교령 집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교황은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를 대신한다. 그는 무오한 통치자요, 교리의 기초자요, 교회 회의의 주관자와 심판자요, 진리의 우주적인 지배자요, 세상의 중재자요, 하늘과 땅의 최고이 심판관이다".
이러한 주장은 마태복음 16장 13∼19절 말씀의 그릇된 해석에 기초한다. 그들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베드로 위에 세우시고 그를 최초의 교황, 혹은 로마 교황으로 임명하시고 "천국의 열쇠"를 허락함으로써 그에게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셨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그 권위는 베드로의 뒤를 이은 교황의 면연한 계보를 통해 지속돼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이러한 주장들의 실상을 살펴보자.

카톨릭 교회는, 예수께서 "너는 베드로(헬, 페트로스)라 내가 이 반석(헬, 페트라)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라고 말씀하셨을 때 자신이 세워졌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베드로가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반석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말 그리스도께서 베드로가 반석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두 헬라어 단어, 페트로스와 페트라의 차이점을 주목해 보라. 페트로스는 남성명사로 "작은 돌"을 뜻하는 반면 페트라는 여성명사로 "거대한 기초석"을 뜻한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께서 언급하신 반석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기서의 반석은 베드로가 하나님으로 고백한(마 16:16) 그리스도였다. 교회의 기초석은 그리스도이다. 고린도전서 3장 11절과 에베소서 2장 20절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듯이 베드로 자신도 베드로전서 2장 1∼8절에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고 말씀하셨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권위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와 들어갈 수 없는 자를 결정하는 최고의 권위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열쇠"는 권위를 상징하고 있음이 사실이나, 가톨릭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그러한 절대적인 권위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마태복음 18장 17, 18절과 마태복음 16장 19절을 간단히 비교해 보기만 해도 그리스도께서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주신 것임을 알 수 있다. 더더욱, 여기서 제시된 권세는 천국에 들어갈 자를 결정하는 권세가 아니었다. 그러한 권세는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다(계 1:18; 3:7). 그 대신에 그 "열쇠"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이름으로 구원의 선물을 선포하도록 그분의 백성에게 허락한 권리와 능력을 암시한다. 이 열쇠는 복음의 선포를 통해 죄인들에게 천국의 문이 열릴 그 때에 사용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베드로를 교회의 지상적인 머리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다른 신자들과 동일한 선물, 즉 복음 선포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주는 특권을 그에게 주신 것이다.

베드로를 교황으로 여기는 가톨릭의 견해를 성경의 가르침과 비교해 보라. 베드로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관자가 되지 말고 본이 되라고 권면했다(벧전 5:3). 베드로는 한 번도 자기 자신을 "교황"으로 칭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그 자신을 다른 장로들 중 한 장로(성숙한 지도자)라고 칭했다(벧전 5:1). 성경도, 초대 교회도 베드로가 "로마 감독"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사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로마에 간적이 있는지조차도 분명치 않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있었으나(행 11:2) 그가 아닌 야고보가 교회 회의를 주재했다(행 15:1∼29). 베드로가 아닌 바울이 로마에 보내는 서신을 썼다. 로마 옥중에서 많은 서신들을 뜬 사람은 바울이었다. 그는 로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언급한 반면 베드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이방인들(비 유대인)의 사도가 되는 특별한 사역을 수행 한 반면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사도권을 행사했다(갈 2:7). 바울이 베드로의 잘못을 지적해 주었지 베드로가 바울의 잘못을 지적해 주지 않았다(갈 2:11∼13). 성경의 어떤 기록도 베드로가 최고의 사도임을 지지해 주지 않는다.

더 나아가, 베드로 시대 이래로 교회를 다스리는 교황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는 어떤 명백한 증거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교황"이란 칭호가 처음 주어진 것은 A. D. 590∼604년간 로마의 감독이었던 그레고리 대제 때였다. 비록 그 자신은 그러한 칭호를 거절했지만 그의 강력한 통치가 교회에 대한 로마 감독의 권한을 점차 강화시켰기 때문에 그는 최초의 교황으로 간주되었다. 가톨릭은 종종 교황의 공식 계보를 갱신하곤 했다. 이를테면 1947년 카톨릭은 교황 도누스2세(A. D. 973년)를 다른 여섯 명과 함께 존재하지 않은 인물로 계보에서 제외시켰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절대 권위는 실로 경악을 자아낸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 의해 인준된 것을 알면서도 그 속에 들어가거나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을 수 없다"(2차 바티칸 공회 교령집 14편). 이러한 주장 앞에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그들의 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하면 구원의 소망을 빼앗길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시대 이후 4세기 동안 어떤 그리스도인도 로마 가톨릭인으로 불리운 기록이 없다. 성경에 의하면 구원은 로마 교회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4. 불변하는 진리에 대한 주장

카톨릭은 수세기에 걸친 끊임없는 변화와 교리적진 추가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언제나 동일하다고 가르친다.

아래의 자료는 그 추가된 교리 및 그 채택 일자에 대한 기록으로 로레인 보에트너의 -로마 가톨릭교"(Philadelphia, Pennsylvania: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62, pp. 7∼9)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A.D. 300년 -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394년 - 일일 미사 채택
431년 -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로 불리움
593년 - 연옥 교리 확립
600년 - 마리아, 죽은 성도들, 천사들을 통한 기도
607년 - 보니파세 3세에게 교황 칭호가 주어짐
1090년 - 로자리오(Rosary, 기도 염주) 도입
1190년 - 면죄부 판매
1215년 - 화체설(化體說) 선포
1215년 - 고해 성사
1220년 - 성체 숭배
1229년 - 성경 소지 금지
1545년 - 전통이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지녔음을 선포
1546년 - 구약성경에 외경(外經)을 추가시킴
1854년 - 동정녀 마리아의 신성한 잉태(그녀의 출생을 가리킴)를 선포함
1870년 - 신앙과 도덕 문제에 있어서의 교황의 무오함을 선포함
모든 사항들은 성경에 추호의 근거도 없다. 그러나 가톨릭은 말하기를 자신은 하나님께 그것을 금하시는 까닭에 잘못된 것을 가르칠 수 없다고 한다.


5. 죄를 위한 제사

로마 가톨릭 신자들을 로마의 영적인 지배 안에 결속시키는 중심 의식은 "성체 성사"(Holy Eucharist) 혹은 "미사"(Mass)라고 불리운다.
주의 만찬에 대한 카톨릭의 해석은 떡과 잔의 기적적인 변화(化體)의 개념과, 참여자들의 죄를 제거해주는 제사 개념을 포함한다. 가톨릭은 사제가 진설된 떡과 잔을 그의 손으로 들 때 그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사제의 행동을 통해 다시 한번 십자가의 희생, 즉 떡과 잔을 통해서 예표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드리는 제사가 재현된다는 것이다(이것은 매일 20만 회 가량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찬이 사제에 의해 들려질 때 그것은 기념자들에게 숭모되고 경배된다 참예자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실제 몸과 피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이 끊임없는 제사를 가리켜 "무혈 제사"라고 두른다. 이것은 참석한 자들에게 죄의 용서를 가져다준다고 여겨진다. A. D. 1215년 가톨릭은 이것을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 받아들여야 할 공식 진리로 선포했다. 이 가르침을 거부하면 트렌트 공회의 법령에 따라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약 1900년전 예수님에 의해 제정된 단순한 기념 예식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눅 22:19,20).
예수님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지 "너희 죄가 사함받도록 이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떡을 제자들에게 돌리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나는 포도나무이다" 혹은 "나는 문이다"라고 말씀하실 때와 똑같이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은 기적에 의해 새 몸이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자리에는 그분이 친히 거하는 몸과 그분의 손에 들린 몸의 두개의 몸이 있었을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6:54)
가톨릭 사제들은 그들의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이 구절을 공식으로 사용한다. 만일 예수께서 실제 몸과 피를 뜻하셨다면 이 예식에 참예하는 모든 사람은 그 약속대로 영원히 구원얻게 될 것이다. 가톨릭조차도 이렇게는 가르치지 않는다. 사실 이 구절의 문맥은 주의 만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다만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분께로 나아와 그분을 믿을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줄 뿐이다(요 6:35,47).

이른바 "무혈 제사"는 아무에게도 죄의 용서를 가져다 줄 수 없다.
성경은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고 말씀한다(히 9:22).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피를 흘리셨을 때 -영단번" 발생했다. 이 사역은 구원을 얻기 위해 회개하고 예수께 나아오는 자들의 모든 죄를 사 할만큼 하나님을 심히 만족시켰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의미로도 되풀이될 수 없는 것이다(히브리서 10장 10∼14절을 상고해 보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 뿐이다(요일 1:7). 베드로(벧전 1:18,19), 요한(계 1:5; 5:9), 누가(행 20:28), 바울(롬 3:25,5:9) 등 모두가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은 그 추종자들이 전혀 다르게 가르친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 위에 죄를 위한 지속적친 제사(미사)를 비롯한 여러 성례들을 죄 사함을 얻는 수단으로 추가시킨다.

6. 결론

오늘날 우리는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성경을 연구하고 피차 토론하는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어 가는 고무적인 현상을 보게 된다.

이는 2차 바티칸 공회로 불리우는 로마 가톨릭 교회회의(1962∼1965년) 이래로 특별히 두드러졌다. 이 회의는 기본 교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회의 일부 전통을 완화할 것을 표명했다. 아마도 오늘날은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감사한다. 또한 우리는 가톨릭 구제기관들에 의해 행해지는 많은 인도적인 사역들에 대해 마땅히 존경과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는 가톨릭의 (특히 구원에 관한) 근본 교리들은 행위에 의한 구원, 즉 거짓 복음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많은 전도자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간다. 우리는 명목뿐인 그리스도인인 개신교 신자들에게 그렇게 하듯이 이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참된 구원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 

출처 : 영적 분별력
글쓴이 :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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