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왜곡하고 복음을 변질시킴으로
결국 하나님의 자리에 나를 대신 앉히는 책입니다.
그것도 ‘신앙과 믿음’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동원해서 말입니다.
멸망 길로 인도하는 책
“조엘 오스틴을 비판하는 분들, 정말 황당한 분들 많네여~, ……❍목사님도, ◇목사님도 인정한 조엘 오스틴 목사님을 왜 당신들은 무슨 영적 권위가 있기에 함부로 얘기 합니까? 구입하시려는 분들 <잘되는 나> 읽고 정말 잘 되세요~! 추천합니다. 하나님께서 잘 되는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얼마 전 조엘 오스틴의 최신작 ‘잘 되는 나’ 갓피플 서평 중의 일부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 경고하는 여러 서평들을 향한 간략하지만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서평입니다.
많은 경우 유명한 목사님들의 경우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추천하곤 합니다. 아는 사람이 부탁하면 인간관계에 못 이겨 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따라서 ❍/◇ 목사님도 이 책을 읽지 않고 그냥 추천했을 가능성도 물론 있습니다. 책을 읽지도 않고 추천하는 경우를 두고 정말로 장님이 장님을 인도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특히 이런 경우는 인도하는 장님은 눈이 멀쩡하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장님이 된 것과 다름 아닙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게으른 사람 또는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오스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은 하지만 확실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조엘 오스틴을 거의 숭배하는 수준이라는 점은 잘 압니다.(‘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참조) 그렇기에 그 분은 이 책을 아주 탐독하시고 기쁜 마음에 추천하셨을 것입니다. 조엘 오스틴의 책에 추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을 느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이 사람을 잘 되게 하기는커녕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왜곡하고 복음을 변질시킴으로 결국 하나님의 자리에 나를 대신 앉히는 책입니다.” 그것도 ‘신앙과 믿음’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동원해서 말입니다.
성경은 잘못된 지도자에게 이끌려 간 사람을 희생자로 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런 책을 추천하는 분들에 대해서 저는 감히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분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지도자라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세상에 또 없습니다. 지도자가 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남을 지도하는 경우처럼 불행한 경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둘 다 죽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잘못된 지도자에 이끌려 간 사람을 ‘희생자’로 보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들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몰라서 아무 생각 없이 엉터리 지도자에 끌려간 그런 사람들이 희생자이고 따라서 멸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분별해야 한다’라고 이토록 목소리 높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럴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그토록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저주하셨습니까?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더’ 문제가 있어서인가요?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그토록 저주하셨던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도 함께 멸망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판단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슨 영적 권위가 있어서 판단하느냐고요? 물론 영적 권위 없습니다. 그런 건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가 판단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는 유명한 베레아인이 등장합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들이 감히 무슨 영적 권위를 가지고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판단합니까? 바울이 그렇다 그러면 그런 줄 알 것이지 뭐 건방지게 말이 많습니까? 바울이 믿으라면 믿고 믿지 말라면 안 믿으면 되지 무슨 ‘판단’을 한다고 시건방을 떱니까? 그러나 베뢰아인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구약성경에 비추어 확인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예수가 진짜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인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울은 칭찬했습니다.
철저히 성경을 상고해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정확히 가려줘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늘날 ‘잘 된다’라고 하면 확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성공한다’라고 하면 확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귀에 듣기 좋은 말이라면 독이라도 삼킬 이런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확인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철저히 성경을 상고해서 옳은 것과 틀린 것을 정확히 가려줘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지도자가 아닙니까? 소위 말하는 ‘영적 지도자’가 아닙니까? 얼마 전 한국에서 퀘이커 교도인 리챠드 포스터가 주 강사로 참석한 무슨 레노바레 영성 집회가 열렸습니다. 전국에서 수천 명의 목회자들이 모였다더군요. 그 집회에 강사로 참석한 그 유수의 지도자들은 또 어떻습니까? 이들에게서 배우는 수만 수십만의 영혼들은 무엇을 어떻게 확인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목회자를 한다고 하면서 그들 중에 퀘이커교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들은 매우 무식한 사람이겠지요. 아마도 참석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퀘이커교에 알면서도 포스터에게 배우겠다고 갔을 것입니다. 퀘이커의 교리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에게 배우러 가는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신기한 사람들입니다. 아주 독특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어느 글에서 앞으로 기독교는 말씀과 체험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체험의 동의어들 중에 ‘영성’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말씀과 영성의 싸움....종교와 관련 없이 영성을 추구하는 자라면 존경받는 세상입니다. 달라이 라마가 한국에서 영성 세미나를 한다고 하면 과연 몇 명의 목회자가 참석할까요? 아마 상상하는 것 이상의 숫자가 모일 것입니다. 그 만큼 영성이라는 단어는 큰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동양인으로 야구선수 이치로와 더불어 1,2위를 다툴 것입니다. 그는 며칠 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무슨 큰 훈장도 받았지요…….
지도자는 영광이 주는 흥분이 아닌 책임이 주는 부담에 먼저 떨어야 합니다
지도자로 사는 것……, 참으로 어렵습니다. 누구를 이끈다는 것처럼 세상에 어려운 게 어디 있습니까? 나 하나도 간수하기 힘들고 한두 명 있는 자식도 제대로 가르치기가 힘든데 말입니다. 다들 지도자가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지도자가 되려고 안달입니다. 지도자가 주는 영광이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교회에 또 교회 밖에 리더쉽에 대한 책들과 세미나가 얼마나 넘쳐납니까?
그러나 지도자는 영광이 주는 흥분이 아닌 책임이 주는 부담에 먼저 떨어야 합니다. 조엘 오스틴의 책을 추천하신 두 분의 목사님 때문에 이 책에 대해서 100% 신뢰하게 된 사람들에 책임을 도대체 어떻게 지시려고 합니까? 지도자의 책임이 막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도자는 그 만큼 대접을 받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반드시 치릅니다
지도자는 그 만큼 대접을 받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반드시 치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칙입니다. 지도자가 이 원리에 대해서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아마도 지도자들의 자질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조금은 더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을 더 채찍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원리를 밝히는 야고보서 3장 1절은 다음과 같이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영광에 둘러싸인 지도자가 아니라 책임 앞에 떠는 지도자가 진짜 지도자입니다. 그런 지도자만이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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