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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신앙관련

[스크랩] 조엘 오스틴 문제점

by 디클레어 2010. 4. 6.

위 글과는 상관 없는 내용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소위 '이단'이라고 불리는 교단들이 있자나요.(성경을 좀 몰라도 교리가 좀 약해도 평신도들은 '이단'이라고 규정된 곳은 경계를 하더라고요.. ) 어느교단이 '이단'이다! 라고 결정을 짓게되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제가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조엘 오스틴 때문입니다. 아무리 봐도 경계해야 할 가르침인데 왜 이사람이 '이단'으로 규정 되지 않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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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드립니다.

 

정통 기독교 역사는 이단과의 논쟁과 변증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단’(영어로는 heresy)이라는 말은 헬라어 <아이레시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사도 시대에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거나 도전하는 교회 안팎의 ‘분파’, ‘당파’, ‘편당’, ‘종파’ 혹은 ‘부조화’, ‘불화’, ‘논쟁’, 그리고 특정 종교와 철학을 신봉하는 ‘집단’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만 구약 성경에 당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할 것을 분부하는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이단자와 이단 사상은 구약 시대에도 매우 일반적인 형태로 나타난 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단자과 이단 사상은 교회와 신앙이 존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역사상 단 한번도 중단된 적이 없는 유구하면서도 치명적인 비성경적 종교 현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기독교 진리를 보존하고 현시해야 할 정통 교회의 입장에서는 이단자와 이단 사상과 싸우는 일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기보다는 당연한 의무 사항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여 시대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와 신앙을 세워가는 것은 오고오는 모든 세대의 참 교회와 참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러나 지나 간 교회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단을 판별하는 일도 그렇거니와 이단과 끝까지 싸워 승리하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단의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들 역시 성경을 인용하고, 구원을 말하고, 믿음과 행위를 중요하게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단의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은 자신을 광명의 천사인 양 행세하고, 이단자들은 자신들을 의의 일꾼인 것처럼 위장하기도 합니다(고후 11:14,15). 물론 기독교 신앙을 빙자하여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일반인마저 이단이라고 지목하지 않을 수 없는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이단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이단들은 윤리적 문제보다 교리적 측면에서 훨씬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단을 식별하는 기준은 그들의 외적인 행위에만 국한시킬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점이 이단을 식별하는 데 가장 커다란 어려움 중의 하나입니다. 님께서는 조엘 오스틴과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볼 때는 이단인데, 왜 한국 교회(교단)에서는 이단으로 규정하지 않는가, (제가 부연해서 해석한다면) 그럼으로써 일반 성도들에게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미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단을 결정하는 방식(과정)은 어떠한지를 궁금해 하셨습니다.

 

사실 지나 온 이단을 설명하는 일보다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는 이단을 살피는 일은 몇 배의 관찰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일입니다. 저또한 조엘 오스틴과 그의 신학 사상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주장에는 기존의 이단과 공유되는 주장들이 있으며, 반드시 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기독교의 역사적 신앙 체계를 심각하게 훼손시킬만한 여러 가지 인자들이 내포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진리를 증거해야 할 목회자의 양심으로 조엘 오스틴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전하는 복음을 경계할 것을 권합니다. 거짓 복음의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의 신앙을 (범교회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단으로 규정하기까지는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절차가 요구됩니다.

 

개인의 판단과 논쟁이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개인의 생각은 개인의 것으로 끝날 확률이 높습니다. 때로는 권위와 객관성 시비 문제로 논쟁의 본질이 왜곡되거나 변질될 우려도 있습니다. 교회의 보편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교회를 대적하는 이단적 사상 역시 진리 편에 서기를 원하는 전 교회 구성원들의 동의와 수납이라는 과정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교회 역사를 보더라도 이단을 식별하고 판정하는데 보다 바람직한 일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단이라고 적시할 수 있는 경우는 개인적인 도전이나 반응의 결과가 아닙니다. 비록 처음에는 개인적인 관심과 의문으로부터 시작된 이단 논쟁이라고해도 공교회가 받아들여야 하는 이단으로 판정되기까지는 반드시 성경 지식에 관하여 공신력을 가진 여러 사람이나 교회 단체에 의한 객관적인 성경 검증과 논의의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아리우스주의나 네스토리우스주의등과 같은 이단들을 정죄한 교회 회의나 17세기에 알미니우스주의를 정죄한 도르트 회의를 연상하시면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오늘날에도 각 교단마다 이단 문제를 취급하는 연구 기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는 해석적 관점과 교리적 이해의 차이가 있는 이상, 이단 시비에 관한 한 모든 교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이단 연구라는 것이 성경 해석과 교리를 근거로 하는 객관적 활동이라고 할 때, 어쩌면 ‘이단이 누구냐’보다 ‘이단을 이단이라 하는 자가 누구냐’가 더 중요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교개혁 시대에는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루터와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이단으로 불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이단들은 자신을 이단으로 간주하는 교회와 성도를 이단으로 합니다. 그래서 이단 연구자들은 먼저 성경에 대해 철저하고 바른 이해와 정통 교리와 교회 역사에 대해 확고하고 객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확보되지 않은 이단 논쟁은 오히려 객관성을 상실한 자기 주장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이왕에 조엘 오스틴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더 덧붙이겠습니다. 조엘 오스틴의 신학 사상을 담은 책들이(사실 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의구심이 들지만) 대형 교회와 대형 목사(?)들의 후원과 비호 아래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하나님 말씀 앞에 정직과 신실을 부르짖는 신학자와 목회자라면 개인적으로든지 아니면 집단적으로든지 이런 기현상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생각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임을 압니다. 조엘 오스틴은 이전의 전형적인 이단들보다 더 교묘한 방식으로 기독교 진리에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교회 웹사이트에 가 보면 자신의 교회를 복음에 충실한 복음주의 교회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성공적인 복음주의, 심지어 보수주의 교회중 하나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기존의 이단보다 더 이단적인 사상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종교를 믿든 구원은 가능하며, 자신은 그중에서 기독교의 구원을 말하는 사람이라는 주장이나 몰몬교와 같은 이단들 역시 정통 교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나 잠재된 자아를 개발하여 성공하는 것을 복음이 실현되는 것으로 말하는 것 등등 그의 메시지에는 진짜 복음을 속이는 가짜 복음의 내용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교회와 목회자로 떠받들여지고 있습니다. 저는 조엘 오스틴 부류의 목사와 그의 교회같은 곳이야말로 오늘날 기독교 진리에 반하는 배교에 선 있는 거짓 선생과 거짓 교회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과 교회는 반드시 성경과 바른 교리로 검증되야 하며, 이 일에 은사가 있는 정직하고 소신있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나서 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공식적인 이단 논쟁의 대상이 될 때까지, 혹은 이단으로 확정되기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습니다. 혹시 우리가 기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리편에서 살아가는 성도라면 그와 같은 불건전한 신학과 교리와 목회자를 분별하며 대항하며 극복해야 하려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을 향한 일관된 교훈이었으며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를 향한 동일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단이나 혹은 이단적인 주장을 극복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답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바른 성경적 안목과 이해를 키우는 설교와 성경 공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종교개혁적 전통의 역사적 신앙고백에 관한 교육이 보다 철저하게 시행되어야 합니다.

셋째, 정통 교회 역사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통해 이단들의 형태와 속성을 파악해야 합니다.

넷째, 미혹당하지 않도록 멀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다섯째,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며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부정의 님 뿐만 아니라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께 분별하는 지혜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와 승리를 위한 인내의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 영적 분별력
글쓴이 :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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