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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종교관련

[스크랩] 한국교회는 회개없이 죄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젠,무엇이 죄가 되는지 분별도 못한다.

by 디클레어 2010. 6. 13.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는
한국 기독교 역사입니다....!




국가조찬기도회가 처음 생긴 것은 1965년 2월 27일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국가조찬기도회를 본뜬 ‘국회조찬기도회’를 열었다.
이 기도회는 이듬해 ‘대통령조찬기도회’로 이름을 바꿨다.
말 그대로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었다.
기도회의 명칭이 국가조찬기도회로 바뀐 것은 1976년 제8회 모임부터였다.

 

박정희는 기독교 지도자들로부터 만수무강과 축원의 기도를 받았다.
그러나 내노라하는 기독교 목사들의 기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10.26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 대신 그 자리에 전두환, 노태우가 앉았다.

 

한편,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는 20여 명의 교계 대표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열렸다.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까지 됐었다.
명칭은 달랐지만, 내용과 형식, 그리고 참석자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정진경 당시 성결교 증경총회장은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헌정을 유린하고 광주학살을 자행한 반란수괴에게
‘구석구석의 악을 제거’하여 감사드린다는 기도를 한 것이다.

 

1993년 9월 기독교 성결교회 이선교 목사는
당시 전두환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개최한 한경직, 조향록 목사 등
기독교 각 교파 지도자 23명을 반란방조 혐의로 고발해
이 TV 쇼는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목사 등은 고발장에서
“어떠한 희생이 온다 해도 예언자적 사명으로 불의에 항거해야 할 기독교 목사들이
오히려 12ㆍ12, 5ㆍ17 등 쿠데타적 만행을 고무 찬양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기도회를 개최,
전두환 장군이 정권을 찬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질타했다.

 

군사독재가 시작되자 많은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이처럼 독재정권의 전위로 나섰다.
이들 기독교계 주류의 일제시절 신사참배 문제와 이승만 독재정권 찬양 문제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언급하기로 하자.

 

기도회에서의 주요 발언들을 몇개 모아 보았다.
특히 CCC 김준곤 목사의 발언이 특별하다.

 

제1회 기도회 김준곤 목사 - “박 대통령이 이룩하려는 나라가 속히 임하길 빈다”

제2회 기도회 김준곤 목사 - “우리나라의 군사혁명이 성공한 이유는 하나님혁명을 성공시킨 것”

제6회 기도회 김준곤 목사 - “10월 유신은 실로 세계정신사적 새 물결을 만들고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은 것”

 

제7회 기도회 이상근 목사 - “박 대통령이 세계사적으로 훌륭한 지도자들이
모두 신앙인으로 가능했듯이 신앙의 정치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제9회 기도회 정진경 목사 - “우리의 속 깊은 곳, 역사의 깊은 이면을 보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보이는 권세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자”

 

제10회 강신명 목사 - “그리스도인은 민족의 양심이요 정신적 기둥이며
우리 모두는 민족의 파수꾼으로서 모든 불의와 부정을 몰아내고
일체의 부조리를 제거하는데 앞장서라”

 

제13회 곽선희 목사 - “지혜로운 사람은 국민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마음을 소유할 때 가능하다”

 

제26회 조용기 목사 - “한국교회가 집단이기주의, 기복주의를 벗어버리자"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40회 국가조찬기도회는
역대 최고의 규모와 내용으로 치러졌다.
무려 4000명이나 참석했다.
기독교인이자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모두들 관심이 쏠렸다.

 

“지금까지 기도로 후원해준 한국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문을 연 이 대통령은 “기도로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을 받아 이를 나눠줄 수 있도록 노력하자”면서
인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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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를 위해 축복기도와 찬양을 올려드린다는  한경직 목사



1980년 8월 6일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회' 영상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7977407




국가조찬기도회, 정교유착에서 벗어나 기독교 성찰의 계기로 (장규식 교수)

http://data.cnews.or.kr/cnews2006/1634/04_1634.htm 

  


CBS '국가조찬기도회' 생중계 파문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41385

 

불교가 목숨걸고 저항할때.. 기독교는 뭐했을까? (진민용 기자의 블로그)

 http://blog.daum.net/jmy386/8967802

 

1974년 조찬 기도회 영상 (e-영상 역사관/대한뉴스)

http://ehistory.go.kr/pop/movie_pop.jsp?srcgbn=KV&mediaid=1043&mediadtl=6981&gbn=DH&quality=W


삼청교육대 각본대로 인터뷰하는 언론
mms://newsvod.imnews.imbc.com/imnews/imtv/tmachine/2004/08/03/0803samchung_MBC_WMV_1.wmv




이런 역사가 있었으나 기독교는 무엇을 했나.
mms://ohmyvod.ohmynews.com/ohmytv/vod/1500/ohmytv_610_video_040610.wmv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 똑똑히 생각해라"

이만열 (장로) 교수(국사편찬위원장) 강연

 

mms://210.118.170.43/new2/kef2007-0302.wmv





 

박형룡· 김윤찬· 조용기· 김준곤· 김장환 목사. 등...

[3선개헌 지지자 이름 밝혀]

   
 
 

▲ 한복협 월례 발표회가 3월 9일 새문안교회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만열 교수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민족에 기여한 부분과 과오를 범한 부분을 알렸다.

 
 

민족의 현실과 유리된 교회의 행보를 더 이상은 지켜만 볼 수 없었던 것일까?

 

한국교회의 원로 사학자인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가 한국교회를 향한 쓴소리를 했다.

 

이 교수는 3월 9일 '한국교회와 나라사랑'이란 주제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 월례회에서

몇몇 교계지도자 실명을 거론하며

 

"여러분들도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말 기독교는 영향력 있는 종교였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가 역사 속에서 어떤 종교보다 나라를 위해 공헌했었다며

지금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교회와 교직자들의 타락을 보면

고려시대 불교와 승려의 그것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교수는 "혈통 중심으로 계급화된 봉건사회에서 근대화가 일어난 것은

기독교의 인간관이 들어왔기 때문이며, 기독교는 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데도 공헌했다.

<대한그리스도인회보>,<황성신문>에 의하면 부패한 지방 관리들이 기독교가 들어간 고을에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고 했다.

당시 인구가 1200만 명이고, 기독교인이 1만 명에 불과했음을 감안하면

 당시 기독교인은 적은 숫자였음에도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그는 "지금은 온갖 부정부패에 기독교인들이 연루되지 않은 곳이 없다.

교회의 장로·집사·권사들이 성경에 손을 얹고도 거짓 증언을 한다.

우리 선조들은 그러지 않았다.

 

한국교회를 이렇게 키워서야 되겠나?"며 월례회에 참석한 목사들에게 반문했다.

1907년 대부흥운동에 대한 평가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교회가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열병에 걸려있지만,

당시 대부흥운동을 살펴보면 나라를 지키려는 기독교인들의 노력이 눈에 더 띈다.

을사늑약이 있던 해에 기도회가 열렸고,

길선주 장로가 1905년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해서 기도운동이 시작되기도 했다.

상동교회에서도 나라 위한 기도회가 일주일간 열렸다.

새벽기도도 그즈음 열렸다"고 밝혔다.

대부흥운동이 나라를 위한 기도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을사조약 철폐운동을 벌이고, 세금불납운동을 펼쳤던 이들도 기독교인이고,

의혈투쟁을 벌였던 이들도 기독교인들이다.

이등박문, 이완용 등을 제거하는 데에도 개신교인이 앞장섰다.

3·1운동을 주도한 48인에도 기독교인이 24명이고,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곳도 주로 교회와 교회학교였다"며

기독교가 민족운동에 앞장섰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 것인가 생각하라!

 

   
 
 

▲ 이만열 교수는

"오늘날 애국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

여러분도 자기 이름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앤조이 유헌

 
 

하지만 광복 이후부터 기독교의 나라사랑은

주춤한모습을 보인다는게 이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미국과 이승만 정권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일보다 효율적인 통치를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제 시대의) 경험 있는 관료와

경찰들이 필요했고,

남북의 분단 상황은

친일파들이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을 줬다"고 했다.

그는 "그 결과 사회전반에 정의감이

상실되고
역사허구주의가 팽배하게

되었으며
민주적 발전이 뒤처지게 되었다.

김구, 김규식 같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통일국가 건설운동에

나서긴 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민족운동다운

운동을 펼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권주의적 권력지향적인 교회 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개혁적인 교회는 주류에서

뒤쳐졌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가 이날 발제에서 가장 목소리를 높였던

부분은 그 다음이다.

"그동안 교계의 진보와 보수가 함께 민족을

위해 여러 운동을 펼쳤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 시도 때 권력에

대한 대응에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김재준·함석헌 등이 3선 개헌 저지 범국민

투쟁위원회를 만들고 성명서를 내자

박형룡·김윤찬·조용기·김준곤·김장환 등 242명은

이 성명서가 '교인들의 양심의 혼란을 가져오는 선동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불상앞에 마음을 바치는 한국교회 장로(?)

 

 

그 장로를 뽑게 돕고   광우병 미친소 수입을 찬성한 먹사들.... 4대강 찬성하여  ....창조질서와 원리를 거역하다.
출처 : 플레비언 교회개혁연대
글쓴이 : 주님마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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