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와 목사독점주의
성경에는 전혀 근거를 찾아볼 수 없으면서도 오늘날 세계 각국의 기독교에 만연하고 통용되고 있는 제도가 바로 목사제도입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목사라는 말은 원래 찾아볼 수 없으나, 목사라는 제도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에베소서 4장11절에 원래 목자라는 은사(소질과 재능 혹은 역할에 해당)를 목사라는 단어로 변곡시킨 다름 그 명칭하에 교회의 거의 모든 권한을 부여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지도자의 선임방법과 자격요건은 교묘히 피해가는 한편, 그들만 교회의 강단에서 설교할 수 있고 ( 혹은 그들의 감독하에), 그들만 축도할 수 있으며, 그들만 성례(침례와 성만찬)를 주관 집례 할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타난 오직 두 가지 직책 곧 장로들과 집사들의 자격요건들을 교묘히 피해가는 한편 그런 자격요건이 없는 사람들로서 교회를 독점시키게 함으로서 성경에서 벗어난 가르침을 마음껏 구사하게 하며 사탄의 조종을 받게하기 위한 통로로 사용하기 위한 사탄의 고등 전술입니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항변들에 대하여 몇 가지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답변들을 담은 글을 올립니다.
목사제도 주장자들은 신학교의 근거가 성경에 있다며 그 근거로 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두란노 서원과 구약의 선지자 생도들을 근거로 듭니다. 그러므로 그 부분의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 두란노 서원 – 학당
사도행전 19장
8 그가(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달간 대화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들을 믿게하며 담대히 말하니라.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전도함)
9 어떤이들이 완고하여 믿지않으면서, 무리앞에서 이 도를 악담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떠나( 세상과 분리), 그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 에클레시아- 교회행위), 날마다 어떤 투란노의 학당에서 토론하였더라( 전도와 교회 활동- 초신자 훈련) 10 이것이 두 해동안 일어났으니 모든 아시아 거주하는 자들이,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주 예수의 말씀을 듣게 되었더라( 전도 사역)
1) 두란노 학당이란, 그리스와 터키의 서해안 지역 도시국가들의 전제군주, 독재자들이 세운 학교들을 말합니다. 두란노는 영어의 티라니( Tyranny) 에 해당되며 그뜻은 폭군, 폭정을 뜻합니다.
2) 두란노 학당은 바울이나 어느 그리스도인들이 세운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독재자도, 폭군도 아니었습니다!
3) 바울은 그 학당에 들어가 주로 전도하였으며 그 결과 아시아의 모든 거주자들이 주 예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전도한 것입니다!
4) 오늘날로 말하면 바울 같은 사람이 카톨릭에 들어가서 전도하였더니 대부분은 반대하였으나 그들 중 몇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데리고 나와서 초신자들을 양육하는데 그들 중에 두명이 서울대생이었습니다. 그들이 서울대 안에 그리스도인학생회를 구성하면서 그들이 “바울”을 초청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바울”이 전도하였더니 그 청중들이 계속 지인들을 불러와서 계속 정기적으로 성경 전도 모임을 갖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서울시내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 서울대라는 장소를 빌려서 전도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바울이 신학교를 서울대안에 세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모임(교회)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동등하게 모이는 모임으로서 그 자체 내부 성도들의 양육과 성장을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서 이루어 가는 곳입니다. 또한 교회는 전도의 기지요, 바탕으로서 마땅히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전도할 수 있는 중심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모든 성도 양육과 전도와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중심체인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신학교의 근거를 누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두란노 학당 출신이 목사되었다는 말을 읽어보셨습니까? 아니면 장로되었다는 말이라도 읽어보셨습니까?
오늘날 성경을 주로 공부하게 하는 어떤 교육기관(성경학교)이 있어서 어치피 자녀들이 다른 교육을 받을 바에는 성경 공부를 하도록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출신자들이 목사라는 직책을 업고 나와 교회안에서 검증되고 세워져야 할 사람들을 대체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디도서 1장과 디모데전서 3장의 교회 리더쉽에 관한 명령을 대체시킬 어떤 학교도 성경적으로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2) 선지자의 생도들
열왕기 하 2장
7절 대언자(선지자)들의 아들들 가운데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았는데 그들 두 사람이 요르단 옆에 섰더라.
15 여리고에서 바라보던 대언자(선지자)들의 아들들이 그를 보며 이르기를, 엘리야의 영이 엘리사 위에 거한다, 하고 가서 그를 만나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더라
열왕기 하 4장
1 이제 대언자(선지자)들의 아들들의 아내들 가운데 어떤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내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주를 두려워한 줄은 당신이 아시나이다. 빚을 준 사람이 이르러 내 두 아들을 취하여 노예로 삼고자 하나이다, 하매
그런데 이 대목을 한글 개역 성경은 선지자의 생도들로 번역하였다가 오늘날은 개역개정에서 선지자의 제자들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들은 브네이 느비임으로서 느비임은 선지자들이라는 말이고, 브네이는 아들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브네이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자손들 혹은 아들들로 말하며, 브네이 레비는 레비인들의 아들들을 말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이 Sons of Prophets로 번역한 것처럼 한글 성경은 선지자들의 아들들( 흠정역은 대언자들의 아들들)로 번역함이 옳은 것입니다.
왜 선지자의 아들들이 엘리사에게 모였을까요? 그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가르치는 바가 없으나 다음의 말씀들을 읽어보면 짐작하게 하는 바가 나옵니다.
열왕기 상 18장
이세벨이 주의 대언자(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주의 대언자들 중에서 백 명을 취하여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그들에게 빵과 물을 먹인 일 즉 내가 행한 일을 내 주께서 듣지 아니하였나이까?
이세벨이 많은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선지자들의 가족들은 풍비박산되어 흩어지기도 하고 자녀들을 돌볼 사람들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와 엘리사는 그 선지자들의 아들들을 돌보는 한편 공동체 생활을 하였을 수 있습니다.
19장
10 그가 이르되, 내가 주 만군의 하나님을 위하여 심히 질투하였나이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들을 헐며 칼로 주의 대언자(선지자)들을 죽였기 때문이오며 나만 곧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제거하려 하나이다,
인간의 보기에는 아합과 이세벨이 모든 진정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만큼 참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박해가 심했던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엘리야, 엘리사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아 주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그렇게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아주고 있습니까? 참고로 형제모임의 죠지 뮐러는 고아원 운동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목사제도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렇듯이 선지자의 생도라는 말은 의도적으로 목사제도나 신학교를 도출해내기 위해 선지자의 아들들을 교묘히 변개시킨 번역에 불과한 것입니다.
(3) 선지자의 무리들
사무엘상 10장
10 그들이 저쪽에 있는 산에 이를 때에, 보라, 대언자(선지자)들의 무리가 그를 맞이하고 하나님의 [영]께서 그에게 임하시매 그가 그들 가운데서 대언을 하니라.
11 예전에 그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보니, 보라, 그가 대언자(선지자)들 가운데서 대언을 하므로 이에 백성이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임한 이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사울도 대언자들 가운데 있느냐? 하고
어떤 목사제도 주장자는 이것이 바로 신학교의 원시적 형태이며 그 근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말씀교제하고 함께 모여 있으면 그것이 바로 신학교의 근거가 되며 그것이 바로 다른 성경에서 장로(=감독)들의 자격요건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대신하여 신학교 졸업자들로 교회를 독점하게하며 강단과 축도, 성례를 독점적으로 실행케하라는 말씀의 근거로 주장될 수 있겠습니까?
(4) 목사만이 침례 베풀수 있는가?
오늘날 목사제도 주장자들은 목사들만이 세례 베풀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세례는 성경에 근거도 없으며 침례가 옳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에서는 장로가 세례베푸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
35 필립이 자기의 입을 열어 이 성경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의 기쁜소식을 전하니라. 36 그들이 길을 따라 갈때에, 어떤 물에 이르니, 내시가 말하기를, “보라, 물이라. 무엇이 내가 침례받는 것을 막나이까? ” 37 필립이 이르기를, “ 당신이 온 마음으로부터 믿으면, 당신이 합당하니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것을 믿나이다.” 38 그가 병거(마차)가 서도록 명하고, 필립과 내시가 물속으로 둘이서 내려가, 저가 그를 침례하니라. 39 그러나 그들이 물속으로부터 올라왔을 때에, 주의 영이 필립을 취하여 가시니, 그 내시(신하)가 저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으나, 그가 자기의 길을 기뻐하며 갔더라.
한글성경등 많은 현대역들은 37절을 빼버렸습니다. 그것이 유아세례에 방해되기 때문입니다! 유아세례는 믿음의 고백없이도 받을 수 있으며 그리하여 수십억의 안믿는 자들을 교회로 들여오기 위한 사탄의 고등술책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항쟁했습니다.
필립은 집사였는데 침례 베풀지 않았습니까?
스테판은 집사로서 사도행전 7장에서 위대한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까? 목사만이 설교할 수 있습니까? 오늘날 스테판처럼 위대한 설교를 할 수 있는 목사가 몇이나 있을까요? 아니 누가 있을까요?
(5) 디모데 전서 3장
1 미쁘도다 그 말이여, 누가 감독직을 간절히 바라면, 그는 선한 일을 열망한다 함이라. 2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절제하며, 신중하며(건전하며), 고상하며, 나그네들에게 친절하며, 잘 가르치며, 3 술 취하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고, 대신 온유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 자기의 집을 잘 다스리며, 자녀들을 모든 진지함으로 순종케하며, 5 (만일 누가 자기의 집을 다스릴 줄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모임을 돌보리요?) 6 새로 심어지지(회심하지) 않아서, 교만하여져 마귀의 정죄에 그가 빠지지 않도록 할지니라. 7 또한,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그가 빠지지 않도록, 그는 마땅히 외인들로부터 선한 증거를 가져야 하느니라.
오늘날 교회의 감독직을 바라는 사람은 선한 일을 열망하면 (사모하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는 반드시 신학교 가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신학교 가기로 대체시켰습니다! 과거에는 대학 입학 예비고사에 불합격해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신학교 였습니다. 오늘날도 수능성적이 그리 높지 않아도 갈수 있는 곳이 신학교로 알고 있습니다.
절제하며, 신중하며(건전하며), 고상하며, 나그네들에게 친절하며 나그네들에게 친절한 삶을 살지 않았더라도 신학교 성적만 좋으면 됩니다. 때로는 신학교에서 커닝으로라도 성적만 좋으면 됩니다. 졸업식장에서 계란좀 투척해도 됩니다!
5 (만일 누가 자기의 집을 다스릴 줄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모임을 돌보리요?)
자기 집 다스려본 경험없어도 교회는 다스릴 수 있습니다. 왜요? 약관 25세의 나이에 신학교 나오면 할 수 있는 벼슬이 바로 목사벼슬이기 때문입니다!
(6) 디도서 1장
5 이를 인하여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둔 것은, 내가 네게 지시한 바와 같이, 네가 부족한 일들을 바로잡고 성읍마다 장로들을 세우도록 하려함이니, 6 만일 누가 흠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고, 방탕하다거나 불복종한다는 비난이 없는, 믿는 자녀들을 가졌으면 가하니라. 7 왜냐하면 감독은 마땅히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며, 쉽게 화내지 않으며, 술취하지 않으며, 구타하지 않으며, 더러운 이를 탐내지 않으며, 나그네에게 친절하며, 선을 좋아하며, 냉철하게 생각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자제하며, 9가르침을 좇아 믿음의 말씀을 견고히 붙들어, 그가 능히 건전한 가르침으로 권면할 수 있어야 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훈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바울이 여기서 장로 자격요건을 설명하다가 감독이라고 바꾸어 말한 것은 그 직책이 동일한 실체임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신학교가 이렇게 사람을 바꾸어줍니까?
더러운 이를 탐내지 않으며, 나그네에게 친절하며, 선을 좋아하며, 냉철하게 생각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자제하며,
(7) 사도행전 20장
17 그가 밀레토에서 에페소로 사람을 보내어 그 모임의 장로들을 부르니라.
…………….
28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스스로와 모든 양떼를 위하여 조심할지니, 그 안에서 성령께서 너희를 감독들로 세우셨고, 하나님의 모임을 목양하게 하셨으니, 그분은 그것을 자기의 피로 사셨느니라
위에서 에페소의 하나인 교회에서 장로들을 불렀는데, 바울은 말하기를 성령께서 그들을 감독들로 세우셨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즉 단수의 교회 안에 감독들이 여러명 있었음을 말하여 주지 않습니까? 또한 장로들을 감독들로 불렀음을 말해주지 않습니까?
이 사실은 다음에서도 확인되지요?
(8) 필립포서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인, 파울과 티모데는 필립포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의 모든 성도들에게와, 더불어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필립포에는 교회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안에 복수의 감독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이들은 감독이란 일정지역의 여러 교회들을 다스리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필립포지역에서도 벌써 여러명이 아닙니까?
목사는 왜 파울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집사보다 하찮은 직책이라 빼버렸습니까? 그럼 오늘날 목사들은 집사들에게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증거들이 오늘날의 목사제도를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제도로 확인시켜 줍니다만 다음의 반박글로 보충하고 마치겠습니다.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니골라당 한국교회 목사들
아래 글은 교회에서는 오직 신학교를 나온 목사만이 설교권이 있고 축도권이 있다며 목사제도는 성경에서 제정된 직책이라는 주장을 하는 글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목사들이 많고 이런 목사들에 의해 세뇌된 한국교회의 기독교인들이 많은 까닭에 부득이 반박하는 글을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일이 반박해봅니다. 파란색 글은 어느 목사의 글이며 검은 색 글은 제가 반박한 내용입니다.
목사의 소명(召命)과,장로의 설교권에 대하여
장로의 설교권에 대하여 글 / xxx 목사
아직도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 간에 설교권을 두고 첨예
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설상가상으로 모 종파에서는
오늘날 목사의 명칭에 대해서조차 성경에는 목사(pastor)
라는 호칭 보다는 장로(elder)나 감독(bishop,overseer)
이란 직책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하며,아예 목사라는 존재
성을 부인하려고까지 합니다. 목사의 수난시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목사와 장로에 대한 직임과
권한에 대한 올바른 기준과 인식을 가져야 하겠기에,그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 보고자 합니다.
먼저 알아볼 것은,신약시대의 만인 제사장입니다.
첫째, 만인 제사장이란 무엇인가
• 신약시대에는 모든 성도가,만인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代贖)의 피를 흘려 죽으실 때,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졌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 10:19,20/
마태복음 27:50,51)
이 은혜로써 1년에 하루(7월 10일)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
만이 들어가던 지성소를,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
든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의 제사장의
기능과 사역을,성도들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근거에 의하여,만인 제사장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
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
장이 될지니라”(베드로 전서 2:4,5)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
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 전서 2:9)
만인 제사장직이라는 성경의 진리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시작합니다.
둘째, 그러면 예배권(강단권)은 누가 가지고 있는가
•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최고의 아름답고 거룩
한 의식의 행위이며 축복입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라
면 누구나 드릴 수 있는데,예배를 인도하는 예배권과 하나
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권은 누가 가질 수 있는가?
무엇이 예배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수 있습니다(요한 4:23, 로마서 12:1)
롬 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내가 너희를 권면하노니 너희 몸들을 살아있고, 거룩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희생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의 합당한 예배이니라.
이 예배를 어느 특정인만 드릴 수 있습니까? 예배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예배도 못드리면 그가 무슨 제사장입니까?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권은 누가 독점해야 합니까? 무식한 사람들은 성경을 안읽고 성경 밖에서 근거만 가져옵니다!
고린도 전서 14장
29 그러나 둘이나 셋 예언하는 자들로 말하게 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하게 하라. 30 그러나 만일 앉아있는 다른-사람에게 어떤 것이 계시되어졌으면, 먼저의-사람은 잠잠하게 하라. 31 왜냐하면 모두가 배우도록 그리고 모두가 권면받도록 너희 모두가 하나 하나씩 예언할 수 있음이라.
이 바울은 한국교회에 오면 이단되겠습니다! 너희 모두가 하나하나씩 예언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또한 어느 특정인만 예언(설교) 하는 것이 아니라, 앉아 있던 사람에게 무엇이 계시되어졌으면 먼저 말하던 사람은 잠잠하고 나가서 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유대인 회당에서도 이러한 관행은 있어왔지요?
사도행전 13장
14 그러나 저희는 퍼가로부터 가로질러가 피시디아의 안티옥에 도착하였고 안식일들의 날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더라. 15 율법과 선지서들의 낭독후에, 회당장들이 저희에게 사람을-보내어 말하기를, “ 형제들아, 너희에게 백성을 위한 권위의 말씀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파울이 일어나 손으로 손짓하며 이르기를, “이스라엘 형제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들이여, 들으시오.
오늘날 한국교회에 바울이 오면 절대로 바울은 설교할 수 없겠지요? 신학교를 나왔습니까? 장로교 헌법을 압니까?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까? 그러하니 바울에게 설교하라고 기회 주겠습니까?
• 최근 한국 교회의 거대 교단 중의 하나인 장로교 통합
측에서는 노회장인 장로가 목사를 대신하여 설교를 하고
안수한 것에,목사가 이의를 제기하여 목사와 장로 간에 반
목과 갈등이 생기고 있습니다. 목사측에서는 설교와 안수
와 예전집행권(?)과 축도권은 목사의 고유 권한이며,장로
교의 헌법에서도 “치리와 설교를 하는 장로인 목사”와
“치리를 하는 장로”로 구분하고 있다며 장로가 설교와
안수에 참여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장로측은 이전부터 장로가 설교하고 안수에 참여
하는 것이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행해 오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문제냐며 오히려 목사의 문제 제기에 대해
맞서고 있습니다.(목회자 신문 4월 7일, 교회연합신문 4월
14일).
그러면서 '예장 통합측 전국원로장로회'측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성경 어디를 상고해보아도 장로가 설교
하지 말라는 말이 없다. 설교가 목사의 독점물인가?
야고보서 5장 14절에 청함을 받은 장로가 분명히 설교했
을 것으로 사료된다. 우선 스데반 집사와 빌립이 명설교를
했다(사도행전 7:1~53/사도행전 8:4~7,12,13/26~40).
장로도 성경지식이 해박하고 성령충만한 장로가 설교하는
데, 설교권이 없느니 있느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과거에 경산 하양읍교회 김순도장로님이 전국적인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김인서장로님이 전국적인 부흥사로 활
동했다"
목사가 설교했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목사라는 직책도 없는 것을 번역자들을 통해 제조해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나가면 한방에 작살납니다! 유구무언됩니다. 그동안 불쌍한 사람들을 많이 속여먹었지요!
1. 목사(牧師)는 누구인가
• '목사'(牧師)를 뜻하는 라틴어 '파스토르'(pastor)는
라틴어로 파스토르는 목자를 뜻합니다! 목사가 아니지요!
헬라어로 '포이멘'에 해당하며,이는 '보호하다'(to prote
ct)라는 의미입니다. 신약성경에 도합 18회 나오는 이 용
어는 양 떼를 지키고 먹이는 '목자'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마태복음 9:36/마가복음 6:34/누가복음 2:8/요한복음
10:2),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
습니다(마태복음 26:31/마가복음 14:27/요한복음 10:14).
Ποιμην이 신약성경에 명사로 쓰인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마태 9:36, 25:32, 26:31
2. 마가 6:34, 14:27
3. 루카 2:8, 2:15, 2:18, 2:20
4. 요한 10:2, 10:11(두번), 10:14, 10:16
5. 에베소서 4:11
6. 베드로 전서 : 2:25, 5:4( Αρχιοποιενος=목자장)
이 모든 용례들은 양들을 지키고 보호하며 먹이는 임무를 말한 것이지 그것이 집사나 장로를 대체하기 위한 용어로 쓰인 적도 없고, 그것이 어떤 직책을 표기하기 위해 쓰인적이 없습니다.
• 목사와 장로와 감독은 기능상의 차이이지,위치상으로는,
같은 것으로 나타납니다(베드로전서 2:25/5:1~4).
여기서 성경말씀을 변질시키는 기술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아니라 목자입니다. 그리고 목자는 기능과 역할을 표현한 것일 뿐 어떤 직책명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전서 2:25절은 예수님이 우리 영혼의 목자요 감독이라고 하셨지 목사라는 직책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성도들의 영혼의 목자요 감독입니까?
목사들도 신자들도 모두 양들일 뿐입니다! 그 목사들의 영혼의 감독이며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즉 목사(牧師)는 목양(牧羊)의 은사를 강조한 것이며,장
로는 목사와 감독을 포함하는 교회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바쁜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목사가 장로에 포함된다는 말이 있습니까? 장로가 목사와 감독을 포함한다면 목사는 장로나 감독들의 선임방법에 따라 선임됩니까? 아니면 신학교 나오는 것으로 성경을 대체합니까?
다만 '감독'(헬라어로 에피스코포스)은 초대 교회 시대 장로들 가운데서 선택된 자로서, 일정 지역이나 교회들을 관장했던 특별한 직분인 것으로
전해집니다(빌립보서 1:1/디모데전서 3:1/디도서 1:7).
어디에 일정 지역을 관장한다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까? Επισκοπε(감독), 빌립보에 있는 감독들에게 쓰여진 빌립보서에서 감독들은 복수이지요? 빌립보에는 교회가 몇 개 있었습니까? 빌립보서가 쓰여지는 시점에 빌립보에는 한 개의 교회가 있었을 것으로 믿어지지 않습니까? 4장15절을 읽으십시오. 그교회에 복수의 감독들이 있지 않습니까(1:1)?
에베소교회는 하나였지요? 그 한 에베소 교회에서 복수의 장로들을 부른 바울은 너희를 감독들로 삼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20장
17 그가 밀레토에서 에페소로 사람을 보내어 모임( 단수: 교회) 장로들(복수)을 부르니라.
사도행전 20:28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스스로와 모든 양떼를 위하여 조심할지니, 그 안에서 성령께서 너희를 감독들로 세우셨고, 하나님의 모임을 목양하게 하셨으니, 그분은 그것을 자기의 피로 사셨느니라
단수인 에베소 교회에 복수의 장로들을 부른 다음 그들을 복수의 감독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안보입니까? 안보이는 사람들은 목사(目死) 들입니다!
이로 볼 때 목사(牧師)의 직분은 처음부터 뚜렷하게 구별
된 교회의 직분이 아니라,초대 교회와 중세 카톨릭 교회를
거쳐 종교 개혁 시대 이후 특히 18세기에 이르러 고정되었
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고대 로마시대부터 성직자제도가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초대교회를 지나는 시점부터 니골라당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클레멘트 당시부터 완연히 드러납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요한에게 니골라당의 교훈을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6, 15)
1. 두 종류의 장로직
• 신약시대에 이르러 교회에는,두 종류의 장로가 있어 왔
습니다. 예컨대 교회의 조직,행정,성도의 치리 문제를 담당
하는'치리 장로'(Ruling Elder)와,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
고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는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가 그것입니다.
디모데 전서에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가 나온 것은 한 예들에 불과합니다. 장로들은 복수로 여럿이 있었으며 그들중에는 역할을 분담하기도 했고 역할이 중첩되기도 하였을 수 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외에도 자비의 사역을 담당하는 장로도 있었겠고, 전도를 전담하는 장로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던 교회의 장로는,초기에는 '감독으로
불리다가 오늘날에는 '목사'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장로들은 감독들로 불리웠음은 사도행전 20장 17절과 28절을 비교해볼 때 나타납니다. 또한 디도서 1장5절-9절을 읽어보면 장로들을 세우라고 하다가 감독들은 자격요건이 이러해야 한다고로 바뀝니다. 이것은 장로와 감독이 같은 실체를 부르는 직책임을 알수 있게 해줍니다. 목사가 장로보다 높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스스로를 장로라고 불렀습니다(벧전 5:1) 요한 사도도 스스로를 장로라고 불렀습니다(요한2서 1절, 요한 3서 1절) 요한 3서가 쓰인 시점은 초대교회가 정립된 시기였습니다. 오늘날 목사들은 요한이나 베드로보다 높습니까?
• 웨스트민스터 헌장의 장로직은 "유대인 교회의 백성들
의 장로들이 교회 정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함께하
였듯이 그리스도가 세우신 교회에서도 말씀 사역을 하는
목사 곁에서 치리의 은사를 하게 하셨으며,개혁교회에서는
이들을 일반적으로 장로라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치리 장로'나 '가르치는(교역자) 장로'는 서로간
에 어떠한 신분적 우열은 있을 수 없고,다만 그 사역하는
역할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웨스트민스터 헌장은 성경보다 우월합니까? 그것으로 성경을 폐합니까?( 마태 15:3) 목사라는 직책을 자꾸만 제조해내고 있습니다!
(참고,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1647년 무렵에 창의적으
로 만들어진 것으로,기독교 역사에 등장한 여러 가지 신조
문과 신앙고백서 가운데 하나이지만 여전히 그 탁월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여러 장로교회들이 신앙고백서로 채택
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분량의 웨스트민스터신앙
고백서는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과 더불어 장로교
권에서 널리 수납되어왔습니다. 스코틀랜드교회와 미국
장로교회는 이것을 3백년 이상 유일한 교리표준으로 사용
해 왔습니다)
장로교 헌법이나 신앙고백서로 성경을 폐할 수 없습니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는 안가르칩니까?
2. 디모데전서 5장 17절 말씀에 나타난 '두 장로'
본문에 보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
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칼빈은 이 디모데전서 5장 17절을 주해하면서,'두 가지
장로설'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잘 다스리는 장로들'
은 '치리 장로'라 볼 수 있고,'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은 디모데나 디도나 유다나 요한 실라와 같은 가르치
는 교역자 장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칼빈은 유아세례를 주장하고 세례중생주의를 주장하였으며,
유아에게 세례를 안베풀면 구원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세르베투스를 삼위일체 부인과 이 유아세례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참수할 것을 주장하다가 공의회에서 그를 화형시켰습니다. 칼빈의 교리로 성경을 폐하려 합니까? 유아세례를 믿습니까? 칼빈은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이단으로 몰고 카톨릭을 옹호하는 교리를 펼쳤습니다. 칼빈이 성경보다 우위입니까?
잘 다스리는 장로를 치리 장로라고 불렀으면 목사가 생겨납니까? 목사 제조과정좀 설명해주시지요?
어쨌든 디모데전서 5장 17절 말씀 중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라고 한 대목에서,'존경'에 해당하는 헬라어 '티메스'
는 원래 '가치' '가격'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는 '보상' '사례금'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이지
만,오늘날 '치리 장로'에게 사례금을 주는 교회가 없는 것
으로 봐서 정신적인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교회에서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교역자'에
겐 이들을 더 생각하여,'삯'을 주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
입니다.
이어지는 디모데전서 5장 18절에 보면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라고 하
였습니다.
• 이는 신명기 25장 4절의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명령과,레위기 19장 13절과 누가복음 10
장 7절에 나타난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명령에 근거한 것입니다.(참고,고린도전서 9:9)
하지만 오늘날 어떤 교회에서는 지나치게 헌금을 강요하
고 그 종류가 많아서,성도들에게 부담을 줄 뿐 아니라 목
회자가 물질을 탐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니 속히 개선되
어야 할 문제입니다.
일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보수를 주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논하는 것은 교회 안에 목사라는 직책이 있어서 일인독재하도록 성경에 있는가? 그리고 목사라는 직책은 성경적으로 장로에 근거를 두엇다면 성경대로 교회안에서 삶을 통해 검증된 사람으로 선임하는가? 아니면 그런 것 없어도 신학교 나오면 선임되는가? 그 목사라는 직책은 교회안에 한 사람이 있어서 일인독재하도록, 강단을 독점하도록 성경에서 가르치는가? 입니다!
2. 장로(長老)의 역사적 기원
• 여기서 '한국복음신학연구원 학장' 손병호 목사님의
견해를 참고해 봅니다.
우리 말의 장로(長老:Elder))라는 말은 가문이나 마을이
나 도시나 국가에서 '나이가 많은''연세든 이' '어르신'
'노인'을 말합니다. 이들을 또한 원로(元老:Presbyter)라
고도 합니다. 이를 한국 장로교회에서는 통칭,'장로'라
하는 대명사를 씁니다.
• 성경에서 '장로'의 역사적인 기원은 창세기 24장 2절
의,아브라함의 '늙은 종(장로)'으로 시작됩니다. 이는 물
론 종교직이거나 제사장직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다만,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있는 늙은이었습
니다. 그런데 애굽의 바로 궁에서는 아브라함과는 달리,
국가적인 차원에서 원로회를 이루어 왕정을 보필하는 장로
직분이 제도적으로 있었습니다(창세기 50:7).
이런 원로제도를 모세가 출애굽을 하며 이스라엘에 도입
을 한 것이 “이스라엘의 장로들”이며(출애굽기 3:16),
이들이 대의직(代議職)으로 원로회(元老會)를 이룬“70인
의 원로제도(24제사장.24장로.24서기관)”였습니다(출애
굽기 24:1,9/민수기 11:16~25). 물론 이 때 장로들에게는
제사권이나 종교권은 없었습니다.
• 출애굽기에서는 4권이 분립이 되었는데,입법은 하나님
과 모세가 하였고,행정과 사법은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
부장과 십부장이 하였으며(출애굽기 18:13~22),의회는
70 인 원로들(장로들)이 하였으며(출애굽기 24:1,9),종교
나 제사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세습적으로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8:1~3). 이런 4권 분립은,왕국이 망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북왕국과 남왕국이 망하자 왕족
이나 제사장족들은,정치나 종교에 나설 수 없는 판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의 장로들
이 나서서,바벨론 당국의 허가를 받아 안식일이면 강가나
건물 모퉁이에서 지역적으로 모여서 제사종교 대신에 기도
를 드리며 찬송을 하고 율법을 읽는 모임(Synagogue)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포로에서 귀환을 하여 성전종교를 복원하였을 때,
포로시에 모인 모임을 전국적으로 확장하며 회당 종교화
를 병행하였습니다. 즉 성전(聖殿)에서는 제사장들이 성전
종교를 주도하였고,회당(會堂)에서는 장로들이 율법을
가르치며 친교를 도모하였습니다. 이들 회당에서 총대가
나와 상회인 노회(게루시아나 프레스비터리)와,70인 원로
회(산헤드린 총회)에 파송을 하고 지도와 편달을 받았습
니다.
70인 원로회에는 장로들만으로 구성되지 않았고,24제사장
들과 24장로들과 24서기관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를 장로회라 하니까,장로들만의 모임으로 착각하는 일
이 없지 않았습니다. 회당의 장로직에는 성전종교의 제사
권이나 종교권이 전혀 없었습니다. 포로 이전 까지는 마을
의 원로들이었으며 국가적인 의회나 총회의 원로였으나,
귀환 이후에 회당에서는 안식일 예배나 교육이 오늘의 교
회학교처럼 시행되며 장로들이 무료로 가르치는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서로 설교를 하는 일은,하지 않았습
니다. 그리고 장로들을,목사(Pastor)라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제사장들이나 회당의 장로들은 하나 같이,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전까지는 목사는 장로들 중에서 가르치는 장로였다고 주장을 펴서 근거를 찾아내려 안간힘을 쓰더니, 이제는 장로들이 설교하는 것, 축도하는 것을 반대하려니까, 장로들은 설교한 적이 없다, 장로들을 목사라고 하지도 않았다로 다시 종전의 주장을 스스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목사직은 장로직과는 상관없습니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1) 오늘날 목사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제사장과 선지자와
사도들의 계승으로 이어지는
직임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목사 뿐만 아니라,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장 중심의 성전직제나,장로 중심
의 회당직제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특히 당시의 장로들은 예수그리스도를,가장 괴롭히는 자
들 중의 으뜸이었습니다(마태복음 16:21).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에 제사장직이나 장로직이나
서기관직이나,랍비직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율법적인 종교인들 보다는 차라리 자연인 농부나
어부들 중에서 제자를 삼으시고,그들이 비유의 말씀을
그대로 듣고 보고 깨달아 전해주며 증거(證據)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마가복음 3:13~19,마태복음 10:1~4,누가복음 6:12~16),
3년여 동안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학교 출신 없이도 예수님 이름으로 두세사람이 모이면 거기에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모임이 바로 교회올시다!
마태 18:20 내 이름을 위하여 두 세 사람이 모인 그곳에 나도 그들 가운데 있느니라.
그리고 이들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땅끝까지 이르러,자기의 증인(證人)을 삼고자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
초대교회는 이들을 사도(Apostles)라 하였으며,선지자
(Prophets)라,복음전하는 자(Evangelists)라,목사(Pas
tors)라,교사(Teachers)라 하였습니다(에베소서 4:11).
이것은 바로 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안에 선지자 직책이 있습니까? 사도 직책도 있습니까?
에베소서 4장
. 7 우리의 각자 하나 하나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을 따라 은혜가 주어졌도다. 8 그러므로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 사로잡은 자를 사로잡고 선물들을 그 사람들에게 주셨다.> 하시느니라. 9 이제 <올라가셨다>는 것은 땅의 보다 낮은 부분들로 먼저 그분께서 내려오셨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려오신 분, 그분이 또한 하늘들의 모든 것들 위로 올라가신 분이시다는 것은 그분께서 만물을 충만케하시기 위함이라. 11 또한 그분께서 어떤이들을 사도들로, 어떤이들을 선지자들로, 어떤이들을 전도자들로, 어떤이들을 목자들이면서 가르치는 자들인 자들로 주셨으니,
우리 각자 하나 하나에게 주어진 은혜의 선물들 중에 하나가 사도, 선지자, 목자 아닙니까?
•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초대교회에 '두 가지
의 장로'가 있었다고 할지라도,목사직이 장로직으로 부터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교 회당에서는 예배.교육.관리 3종류의 장로가 있었
습니다.그러나 회당 예배에서는 장로가 설교를 하지 않았
습니다. 다만 사회를 하였고 성서는 봉독만 하였습니다.
때문에 장로직에서,사도직이나 제사장직이나 선지자직
이나 전도자직이나 목사직이나 교사직이 나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로 목사직이 성경의 가르치는 장로라는 논리를 펴시더니 이제는 웨스트민스터 교리로 목사직은 장로직에서 나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합니다. 어느 입이 맞습니까? 웨스트민스터 교리는 무오류입니까? 성경은 웨스트민스터 교리 없이는 부족합니까?
• 신약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한 복음의 터 위에
세워진 것으로(에베소서 2:20),그 교회에 파송되어 말씀
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목회자는 구약의 제사장 뿐 아니라
사도들과 선지자의 복음 정신을 이어 받아 사역하는 자들
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목사는 소도 잡고 양도 잡습니까? 누가 목사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고 합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복음정신을 이어받지 않고 목사들만 그런 복음정신을 이어받았습니까?
2) 사도 교회와 장로 직제에 관하여
•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사도들은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손이 부족하여 도와 줄 직분자들을 세우기 시작하였습
니다.
먼저 '일곱'을 세웠으며(사도행전 6:3),이어서 장로직을
교회에서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사도행전 14:23).
그리고 감독직과,집사직을 세웠습니다(빌립보서 1:1).
물론 사도들은 장로직에게 사도나 선지자나 전도사나 목
사나,교사나 선교사 일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다
만 교회와 교인들을 돌 볼,교회의 원로들로 장로직을 세웠
습니다. 사도들은 순회 선교를 하였고,개척교회에서 고정
적으로 목회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근거도 없는 목사직은 엄청 독점하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누구는 안된다는 말이 없습니다. 집사 빌립과 집사 스테판이 위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고전 14장 29-31절은 어찌될까요? 거듭난 성도 누구나 설교하지 않았습니까?
• 바울은 디모데나 디도나 누가나 마가나 요한 같은 사도
들에게,목사 안수를 하여 그들을 임직하였습니다(디모데
전서 4:14/디모데후서 1:6).
어디에 그것이 목사안수였습니까? 디모데가 어느 신학교 나왔습니까?
디모데는 우주 신학대학교 나왔습니다. 캠퍼스가 세계 최대이지요. 온 세상이 캠퍼스요, 총장님은 유명한 분인데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웁니다. 이사장님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교수부장님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디모데 전서 4장
14 네게 있는 은사를 소홀히 하지 말라, 그것은 너에게 장로모임의 손들의 얹음과 함께 예언에 의하여 주어졌느니라.
디모데 후서 1장
6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살리도록 내가 너를 상기시키나니, 그것은 나의 안수함을 통하여 네 안에 있느니라.
오늘날 바울처럼 안수하여 은사가 살아나도록 할 믿음의 능력 가진 목사가 몇이나 되며 누구입니까? 알고 싶습니다. 그가 안수하면 은사가 불살아나듯 일어날 능력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장로모임이 그렇게 은사를 줄 만큼 믿음에 충실하여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까? 목사들의 모임은 아니지요?
디모데전서 4장 6절에서 우리
말 번역에서는 디모데에게 '선한 일꾼이 되어'라고 번역하
였으나,영어권에서는 '선한 목사'로 번역하였습니다(You
shall be a good minister of Christ Jesus).
Αδελφοις καλος εση διακονος Ιησου Χριστου
디아코노스의 뜻이 무엇인지 잘모르면 사전좀(렉시콘) 찾아보십시오. 일꾼 혹은 집사입니다. 목사라는 직책 제조해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면 사전도 성경도 안보이지요!
한편 예루살렘 원로회(노회)는 사도들(12사도,주의 형제
야고보,바울,바나바,유다,실라 등)과 장로들과 함께 교회
의 교리 문제를 의논하였습니다(사도행전 15장).
그런데 이를 장로회라 하자 사도나 목사는 제외된,장로들
만의 장로회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교회에
서는 장로를,사도라거나 선지자라거나 전도자라거나 목사
라거나 교사라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로마 카톨릭교회가 대두되며 사도계승론(Apostolic
Succession)으로 교황직과 감독직으로 교회의 체제와 직
제를 달리하는 바람에,1천여년간 장로직은 사도교회에서
처럼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는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 선지자(15:22, 15:32, 15:6) 들만 나오고 목사라는 말은 있도 없습니다! 그나마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이라(15:23) 하여 장로들도, 사도들도 모두 형제들이라 불리웠음을 볼수 있게 해줍니다. 오늘날 목사들은 교회에서 형제들이라 불리웁니까? 아니면 목사들을 형제라고 부르면 펄쩍 뜁니까? 어느 교회가 목사를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셋째, 목사의 설교권과 축도권
• 목사의 설교권이나 성례권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
사도들에게,주님께서 위임하신 지상 명령과 같습니다.
그러나 '치리 장로직'은 열한 사도직이 아닙니다.'치리
장로직'에는 어떤 설교권이나 성례전을 위임하신 적이
없습니다.
목사의 축도권은 구약에서 제사장 아론으로부터 이어진
것으로,사도 바울이 이를 다시 행한 데 근거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린도후서
13:13).
이런 축도권이 '치리 장로직'에게 부여된 적이 없으며,
위임된 적도 없습니다. 더우기 축도문을 장로들의 여론
대로,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바울이 편지 끝에 마지막 인사말을 쓴 것은 누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교회가 축도를 해야 한다는 말도 없고, 누가 특별히 누구만 축도할 수 있다는 말도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기도할 수 있으며, 다만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고전 14:34) 성례갖고 장사하는 것은 로마 카톨릭이 하는 법입니다. 바울은 심지어 자기는 직접 침례 베푼 기억이 별로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고전 1장14-16)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며, 그것은 목사가 성도들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그리스도인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에 초대받은 명예로운 손님들이며(왜냐하면 그분의 피로 씻음을 입었으니까) 그 주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시는 것이며 참여자 모두는 동등한 손님들입니다. 목사가 피흘려 죽지 않은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성례에서 존귀히 되어야 합니다!
1) 먼저 소명을 받고
신학교육을 받아야....
이런 말이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치리 장로직'은 대의직(代議職)이며 총대직(總代職)입
니다. '치리 장로직'은 소명(召命)으로 목사가 되는 직분
이 아니며,신학을 3년 이상 전공하여 소정의 시험이나
인허나 고시에 합격하여 임직을 받거나 위임을 받는 직분
이 아닙니다.'치리 장로'는 교인으로서 신앙의 경륜을
가지면 대의직과 총대직에 선출되며,교회정치와 행정과
사법에 가담하여 목회를 돕고 보필하는 데 있는 직입니다.
이런 직분자에게 설교나 성례나 축도나 당회장직이 찬탈
된다면,집사들도 나서서 자기들도 다수 결의로 목사직을
수행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 '치리 장로'가 목회 사역을 하고자 할 때는 먼저 하나
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그리고 신학교에 입학을 하여 정
규 교육 과정과 각종 인허와 고시를 거쳐 임직이 되고 위
임을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나 과정을 전혀
밟지 않고 교회에서 세워주었다고 하며,감독인 목사와
동등하다 하거나 성직자 운운을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목사직은 회무직이나 의회직에서 선출이 되는 직분이 아
닙니다. 목사직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름을 받고 각종
교육을 받고 세움을 받으며,고시와 인허에 통과가 되어
합법적으로 노회를 통하여 임직이 되고 파송이 되는 직분
입니다. 목사의 임직이나 위임은 노회를 통하여(through
presbytery)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으로서,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파송이 되거나 위임이 되는 직분입니
다. 그리하여 교회는 존재는,예수 그리스도의 목회를 계
속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 장로에게도 설교권이 있다는 근거는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 두고 있으나,이미 위에서 살펴본대로 '치리 장로'
는 교회에서 성도의 신앙을 돕고 다스리는 직임이요,말씀
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자는 장로는 목사직에 해당하는 감
독자에게나 주어지는 권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
의 신학교나 목사 제도를 부인하는 자들은 교회에서 추천
을 받으면 장로,감독직을 부여 받아 강단에서 무엇이든
행할 수 있다고 믿는가 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가장
성경적인 것처럼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개신교의 현행 신학교육제도는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이며,목사 고시도 성경과 전혀 상관없는 불법이
되고 맙니다. 그 뿐 아니라 개신교 500년 역사가 그동안
잘못을 저질러왔다는 말이 되고,한국 개신교 120 여년
역사가,하나님 앞에 강력한 불법을 저질러 왔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지 그렇게 인식하고,개신교를 신랄하게 비난하
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비판과 정죄는 도리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없는 말들로 횡설 수설입니다. 신학교는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감독직의 자격요건(딤전 3:1-7, 디도 1:5-9, 행 20:17, 20:28, 벧전 5:1) 을 인간의 계명과 인간 지식으로 대체시키기 위한 교활한 인간들의 대체행위요, 하나님께 대한 반역행위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으면 이단입니까?
2)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선지자의 생도'
• 구약 성경에 보면 열왕기하 2장 3절,5절,7절,15절과
4장 1절에 '선지자의 생도들''선지자의 생도'가 나오고,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의 생도라는 말은 선지자들의 아들들의 번역오류로서 번역자들이 의도적으로 신학교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변개시킨 번역으로 보입니다. 킹제임스는 Sons of Prophets 로 옳게 번역했으며 원어는 브네이 느비임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지못하고 신학교의 근거로 주장하는 것은 무지의 극치입니다!
사무엘상 10장 5절과 10절에도 '선지자의 무리'란 용어
가 나옵니다. 이외에도 구약시대에 어떤 특별한 선지자
의 집단이 존속하고 있었다는 중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세벨을 피해 동굴에 숨어 있던 일백인의
선지자들(열왕기상 18:4,19),예레미야 선지자로부터 비
난을 받았던 선지자들(예레미야 23:9~40),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열왕기하 9:7/아모스 3:7) 등.
이것은 초기 왕조시대에 선지자 단체가 있었고,그들이
꽤 조직적인 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오늘날 목사집단처럼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집단이 목사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서 죽이려 하면 목사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 살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학교의 근거가 됩니까?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바로 바알 우상 숭배자들이 많아서 살기 힘들므로 함께 모여서 지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이것이 신학교를 세우라는 신약성경의 명령으로 보입니까?
예레미야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렸던 선지자들이 바로 오늘날 목사들의 조상입니다!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로서 하나님이 가르치지도 않은 것을 예언하고 다녔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하나냐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예렘 28장)
그리고 이러한 선지자의 생도들이 주로 모였던 곳은 열
왕기하 2장에 기록된 것처럼 벧엘(2:3),여리고(2:5),길갈
(4:38) 등이 있고,에브라임 산지도(5:22) 주요 활동지에
속합니다. 이들은 금욕적인 공동체 생활을 하였으며(열왕
기하 4:38~44),자신들의 집과 배움의 장소를 직접 건설했
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는 단체적으로 황홀경을 추구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선지자들의 아들들로서 선지자의 생도로 왜곡 번역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오늘날의 목사들에 대항하여 싸웠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목사들에 대항하여 싸우면 황홀경을 맛볼수 있겠습니다!
• 이러한 증거들로 인해 대개의 학자들은 사무엘 당시나
엘리사가 활동할 당시에,원시적인 형태나마 선지자 학교
가 존재했었다는 근거를 가져봅니다. 그렇다면 개신교의
현행 신학교육제도는 절대 불법이 아니란 것입니다.
다만 오늘날 각 교단들이 신학교육제도를 통하여 자기들
의 교단 교리를 섞어 교육함으로,피차 담을 쌓게 되고 성
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 잘못이 있을 뿐
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유구무언이 될 거짓말을 열심히 하시네요. 하나님은 이런 사기꾼 목사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불못에 던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결론
오늘날 이 땅에는 개신교 교회 뿐 아니라,많은 종파의 교
회와 유사 기독교가 산재해 있습니다. 모두가 나름대로
자기들이 정통이라 하며,성경의 진리를 전한다고 합니다.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성소에
서 부터 심판이 시작되고,늙은 자부터 시작한다고 하였습
니다(에스겔 9:6/참고,베드로전서 4:17). 명심해둘 말씀입
니다.
그러므로 장로이자 감독인 목사 뿐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
님의 집에서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진실로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이 하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
를 돌봐야 하고(사도행전 20:28),'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
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여' 장차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시
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5:2~4).
성경을 비틀어서 사람들을 미혹해서야 되겠습니까? 누구든지 교회안에서 동등한 형제들 중의 하나로서 봉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일해야지, 다른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것만 골돌히 연구하여 성경에서 목사직을 제조해내고, 성경을 변개시켜 해석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양무리를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장로이자 감독인 목사라는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언제는 자꾸만 장로는 축도권도 없다, 설교권도 없다 해놓고 목사는 장로라니, 목사는 축도권도 없고 설교권도 없습니까? 교회에는 목사만 설교권이 있습니까? 고전 14장 29-32절은 폐기했습니까?
결론은 삯군 목자의 푸념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니골라당 목사들은 자기들만 설교할 수 있도 자기들만 침례베풀며, 자기들만 성만찬 주관할 수 있다하여 모든 거듭난 성도가 전도하고 주님을 기억하며 침례베푸는 것을 제한하고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복음 전도의 암적 요소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족속을 제자 삼아 침례베풀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음 세대를 제자삼아 침례베풀었고 다음 세대가 그 다음 세대를 제자 삼아 침례 베풀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세대까지 제자들이 되었으며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직접 전도하고 가르쳐서 제자삼고, 침례 베풀어야 할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신학교 나온 사람만 침례베풀수 있다며 전도하지 못하게 하고 침례 베풀지 못하게 하는 삯군 목사들의 말에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에서 목사들만 침례베풀고 성만찬을 주관하라 하였습니까?
'종교관련 > 종교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한국교회 대표들 바티칸 방문 및 로마와 런던 순례 (0) | 2009.12.17 |
---|---|
[스크랩] `자기를 섬기는 우상숭배자`-김영길 목사 (0) | 2009.12.17 |
[스크랩] 아래 Brother형제님의 댓글들을 보고..... (0) | 2009.12.16 |
[스크랩] Re 혹시 이사람들 입니까?? (0) | 2009.12.16 |
[스크랩] 극히 조심해야할 무리들. (0) | 2009.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