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3장, 유대에 있는 자들
마태복음24장과 마가복음13장은 약간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가복음13장을 가지고 말세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두 복음의 이 말씀은 평행선상에 있고 같은 것을 기록한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 장면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두 번씩이나 기록하셨는가도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4)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소서. 언제 이런 일들이 있겠으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때 어떤 표적이 있겠나이까?"라고 하니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기 시작하시더라.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7) 또한 너희가 전쟁과, 전쟁의 소문을 들을 때 걱정하지 말라.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겠지만 아직 끝은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며, 또 여러 곳에서 지진이 날 것이요, 기근과 재난이 있을 것이니 이런 일은 고통의 시작일 뿐이라.
이 일들은 후삼년반인 짐승의 때, 초반에 있을 일들입니다. 지진과 전쟁과 고통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주님은 마흔두달 시작된 후 그날들에 이러한 일들로 환란이 시작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후 절들을 보면 대환란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때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 ○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 이는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매질할 것이기 때문이라. 또 나로 인하여 너희가 총독들과 왕들 앞에 불려가서 그들에 대하여 증언하리라.
(10) 그리하여 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 가운데 선포되어야만 하리라.
(11) 그러나 사람들이 너희를 끌고 가서 넘겨줄 때에도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거나 생각해 놓지 말고, 그 시각에 너희에게 주시는 대로 말하라. 이는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심이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아들을 죽음에 넘겨 주며, 또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일어나서 그들을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9절을 보십시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성도들이 공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매질을 당하고, 또 어떤 죄목으로 총독들과 왕들 앞에 불려가서 정죄를 받아야 하는 걸까요. 성도들이 그들에게 한 잘못은 무엇이겠습니까, 잘못이라 할 만한 것이 있기나 한 걸까요?
또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아들을, 자식들이 부모를 거역하여 일어나고 심지어는 죽인다고 합니다. 도데체 무슨일로 내 부모를 죽는데 내어주어야 하고 내 형이나 내 동생을 또 사랑하는 여동생을 그리고 언니를, 사랑하는 자매를 죽음에 던져주어야 하는 걸까요, 더군다나 내 자식을 죽여야 하는 사태까지 겪어야 한다고 합니다.
답은 한가지일 겁니다. 내가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죽음에 내어 주어야 하는 사태, 물론 가족들을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해 홀로 고문을 받으며 견뎌내다 죽음에 이르는 이들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이길래 주님은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차라리 이때는 고아나 과부의 삶이 나을수도 있는 그런 환란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성도라면 인내하다가 차라리 순교하는 것이 나을 것으로도 보여집니다.
(13) 또 내가 하늘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는데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록하라,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니라. 이는 실로 그들은 자기들의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요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따를 것임이라."고 하시니라.
-요한계시록14장, 후삼년반 상황.
어떤 고통이 오더라도 굴복하지 마시고 이겨내기를 바라는 주님의 명령이요, 또 그런 자들은 복이 있을 것이라는, 곧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기억하십시오.
(14) ○ 그러나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했던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 있는 것을 볼 때면 (읽는 자는 깨달으라.)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
(15)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집으로 내려오지 말고, 집에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라.
(16) 또 들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집으려고 뒤로 다시 돌아서지 말라.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이 구절은 다시 살짝 시간을 되돌려서 전삼년반에 있을 십사만사천의 들림, 즉 계시록12장의 한때와 두때와 반때의 여인이, 뱀이 내 뿜은 홍수같은 물을 땅의 도움으로 피하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던 장면입니다. 이 땅의 도움이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계시록12장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14) 그때 그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는데, 이는 그녀가 광야에 있는 자기 처소로 날아가서 그 곳에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부양받으려 함이더라.
(15) 그 뱀이 여인 뒤에다 자기 입에서 물을 홍수같이 쏟아 그 여인을 홍수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그 땅이 그 여인을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이 그 입에서 쏟은 홍수를 삼켜 버리더라.
(17) 그러자 그 용이 여인에게 분노하여 여인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 즉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우려고 나가더라.
한때와 두때와 반때는 규칙에 의해 전삼년반의 기간입니다. 그렇다면 계시록에 전삼년반의 기간이 수록되어 있을 거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 수 있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이 장면이 한때와 두때와 반때의 여인이 땅의 도움을 받는 장면이며,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는 뜻이 담겨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도망하는 때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게 될 때라고 하십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적그리스도를 말함인 것은 이제 아실테고, 그렇다면 서지 못할 곳은 어디를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많은 해석가들이나 연구하시는 분들이 그곳은 바로 성전이라고 얘기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알아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2장입니다.
(3)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서는 그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나서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리라.
(4) 그는 대적하는 자이며 또 하나님이라고 불리우는 모든 것과 숭배받는 대상 위에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처럼 보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성전은 무너져서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예언대로 성전은 AD70년에 로마디도장군에게, 완전히 돌위에 돌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진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 현재 그 자리에는 이슬람이 세 번째로 거룩하게 여기는 모스크가 서 있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동영상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그곳에 세 번째 성전을 세워야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며 성전에서 사용할 기물등을 포함한 레위족속의 제사장들까지 뽑아놓고 다시 세울 그날만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성전을 세운다는 예언이 있던가요? 그렇게 중요한 성전이라면 언급될 만도 합니다만, 그러나 실상은 아니요, 아쉽게도 없습니다. 성전을 세워야 주님이 오실거라는 것의 근거는 바로 이 데살로니가후서2장외에는 없습니다.
성전의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장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獻物(헌물)과 贖罪祭(속죄제), 贖愆祭(속건제)를 바치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전하면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것이 아주 머릿속에 박혀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도 그가 하나님자리에 선다고 하는 것을 성전에 앉는다는 표현으로 기술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만일 정말로 성전이 세워져야 한다면, 그리고 적그리스도가 그 자리에 앉아 하나님이라고 성도들을 상대로 선포를 한다면 너무 눈에 뻔히 드러나는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계시를 하시겠는가요,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지금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이 모으신게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으신다고 했던 이사야, 에스겔, 스가랴서의 약속들은 야곱의 자손이며 혈육된 이스라엘자손을 모으신다는게 아니고, 바로 십사만사천포함 들림과 승천, 휴거된 승리한 열방의 이스라엘을 모으신다고 말씀하셨다는데에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것은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모으셨는가, 1, 2, 3”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지금 이스라엘을 모으신 것도 하나님이 아니시고, 그들이 성전을 세운다는 것도 성경에 없는 것이니 그들이 성전을 세울 거라는 것은 이 구절을 하나님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한 사람들의 공허한 주장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들이 계실거라는 생각이 들고, 아무래도 좀더 세상정사에 관심을 두시고 돌아가는 상황들을 지켜보시면 어렵게나마 알게 되실 것이라 믿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그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순간 십사만사천은 들림을 받아 시온산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마가복음13장14,15,16절과 마태복음24장의 평행구절이 증명합니다. 이후 17절은 후삼년반 들어가서의 상황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왜 17절부터는 후삼년반으로 해석을 하느냐고 의문을 가지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성경의 기록은 모두 장과 절의 구분이 없었던 것을 근세에 들어 삽입한 것이고, 특히 다니엘이나 계시록은 행간을 잘 살펴야 숨겨져 있는 비밀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13장도 행간을 잘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직 개인적인 판단으로 밖에 파악할 수 밖에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17절의 “그날들에는”으로 시작하는 그 그날들을 바로 마흔두달로 분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6절까지는 전삼년반에 속해 있는 것이고 17절부터는 후삼년반으로 즉, 그 도망간 날 이후의 날들로 본다는 것이지요. ^^
확인해 보시죠.
(17) 그 날들에는 아이를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 있으리라!
(18) 너희는 피난하는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 그 날들에는 고난이 있으리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시작으로부터 지금까지 그와 같은 일이 없었으며 그 후에도 결코 없으리라.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단축시켜 주시지 않았더라면 어떤 육체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나, 주께서 선정하신 그 택함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단축하셨느니라.
(21) 그때 누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보라, 저기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할 수만 있다면 택함받은 사람들까지도 미혹하려고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주리라.
(23) 그러므로 너희는 주의하라. 보라, 내가 모든 것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이 말씀들은 앞 절에서도 이미 본바가 있습니다. 바로 5절과 6절에서 확인한 것입니다. 여기 다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바로 이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자세히 가르쳐주고 계신 겁니다.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친절히 다시 한번 확인하라고 일러주시는 거라고 볼 수 있는 거죠.
(24) ○ 그러나 그 날들에 환란 후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또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고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 때에 사람들은 인자가 큰 권세와 영광으로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아시겠지만 이절들은 주님 재림시에 일어날 일들을 묘사한 구절입니다.
(27) 그리고 나서 주께서 자기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그의 택함받은 사람들을 함께 모으시리라.
주님 재림시에 주의 백성들을 모으시고 들려 올리시겠다는 약속입니다.
(28) 이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가지가 이미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워진 줄 너희가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 때가 문들 앞에 가까운 줄 알라.
이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현재 이스라엘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주님 오실 때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전에는 모든 연구가들이나 이 글을 쓰는 저도 이스라엘의 국화인 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보며 이스라엘이 독립을 했으니, 주님오실때가 된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마는 그냥 단순한 비유일 뿐입니다. 후삼년반에 앞서 말했던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또 그 고통의 순간이 무르익었을 때, 곧 환란의 주동자인 그들이 안전하다, 평안하다라고 할 그 때쯤에 주님이 오실 것이다라는 겁니다.
(1)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으니
(2) 이는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라는 것을 너희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할 때에 아이 밴 여인에게 진통이 오듯 갑작스런 멸망이 그들에게 임하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전서5장
2절의 도둑같이 오신다는 것은 주님재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택하신 백성이 失意(실의)로 소망을 놓을 무렵에 재림하셔서 악의 무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 오실때까지 절대로 낙담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30)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리라.
(31)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 그 날과 시간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르나니, 정녕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주의하여 깨어 기도하라. 이는 너희가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이라.
(34) 이는 인자가 마치 자기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가면서 그의 종들에게 권세를 주어 각자에게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지키라고 지시하는 사람과 같음이라.
이 34절에 담긴 뜻은 참으로 소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하나님께 직접 명을 받는 그런 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마치 직접 종을 택하시고 또 그들에게 많은 것을 맡겨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십니까? 그래서 이 구절을 집어내어 마치 자신이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은 양, 그리고 사도인양, 굴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거짓입니다. 지금은 사도시대가 아니고 스스로 말씀을 보고 알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깨달음을 주시는 그런 시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직접계시를 듣는다고 하는 자들은 경계해야 할 것이며, 특히 깨달음을 얻은 자들은 그것들을 감추어 혼자만 알지 말고 더욱 널리 알리기에 힘쓰는 충실한 종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더 큰 것으로 주님께서 그에게 맡기실 것이고 더불어 주님께서 베푸는 잔치에 참예하는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이 후 절들을 보시면서 말세가 다가온 이때에 항상 깨어있는 종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그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저녁일는지, 밤중일는지, 닭이 울 때일는지, 아니면 아침일는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라.
(36) 그가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잠든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니 깨어 있으라."고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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