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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카톨릭-바벨론

[스크랩] 모래위에 쌓은 모래성 가톨릭

by 디클레어 2010. 1. 13.

1. 카톨릭은 모래위에 쌓은 모래성

예수님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은 집을 반석위에 지은 사람과 같고 말씀에 불순종하여 행하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다고 하였다.

 

마태 복음 7장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들을 듣고 그것들을 실행하는 자들마다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들과 같으니

26. 나의 이 말들을 듣고 그 것들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들은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짓는 어리석은 자들과 같으니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세상교훈,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반역행위를 모래로 표현하고 계심을 알수 있다. 종말에 사탄을 상징하는 용은 바다 모래위에 설것이다(계 12:17) 여기서 바다는 세상 열국을 의미한다(계 17:1, 15) 따라서 하나님 말씀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교리위에 세워진 종교는 바로 바다 모래위에 쌓은 모래성인 것이다.

 

카톨릭에 대해 할말은 무궁무궁하지만 그 모든 교리들은 성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사고방식에서 합리적이라고 생각된 것들을 근거로 세웠으며 일부는 여신 숭배사상과 우상주의를 곁들인 것들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엄위하신 명령들을 깨뜨릴 수 있는가? 이제 천주교인들께서는 진정으로 깊이 생각해보실 차례다.


1) 평생동정녀 마리아:

이것은 마 13:55. 행 1:14의 형제들이라는 말을 친척들로 해석하고, 마태, 마가 루카 모두의 복음기자들이 마리아는 십자가의 현장에 간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 3 기자들은 그토록 중요한 마리아를 기록하지 않았단 말인가?

 

만일 형제들이라는 말들을 친척들이라고 주장할 수있다면 어머니 마리아라는 말도 이모라는 말로 부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카톨릭은 마리아가 요셉과 한집에 살면서도 성생활을 하지 않고 각각 다른 방을 썼다든지 성생활을 안하고 지냈으면 좀더 거룩한 여자로 추앙될 수 있다는 착각하에서 이 주장을 펴는 것으로 보인다.


2)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

.피조물이며 질그릇인 마리아를 보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창조주의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 타당한가? 누구든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신다.(마 12:48)

마리아가 하나님 아버지의 어머니였는가? 마리아가 성령하나님의 어머니였는가? 마리아가 예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분의 어머니였는가? 다비드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부를 때 (시편 110편 1절)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였는가?

 

성부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가? 왜냐하면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말할 때 그 문장에서 하나님은 성부하나님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3)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

그런 말은 성경에 없다. 요한에게 네 어머니라고 하신 말만 잘 읽어보면 깨닫는다. 너희 어머니가 아니고 네 어머니다(요 19:27).
갈라디아 4:26은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시라고 말한다. 자유자인 사라를 두고 예루살렘이며 우리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다. 마리아를 지적할 때는 단순히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갈4:4) 라고만 했다. 그 여자에게 기도한다든지 복되신 마리아님에게서 나오시고라든지 천황모후 마리아에게서 나오시고가 아니라 단순히 “여자에게서” 이다.


4) 마리아 우상 만들기 :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지 말것을 엄중히 명하셨다(출20:4-5)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만들까 염려한다고 했다(신 3:17) 이것에 대해 마리아는 예외라고 말하면서 언약궤도 만들라 하였고 성막도 만들라 했다는 것을 예로든다. 언약궤, 성막등은 예수께서 오시기까지 그림자요, 모형이었으며 그것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크기와 어떤 재질로 만들 것등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마리아의 우상에 대해서는 무슨 칫수가 있는가? 언제 만들라고 하셨는가?


5) 우상에게 절하기 :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출20:5) 하셨으나 절하며 촛불키고 기도한다.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공허한 것뿐이니라(사41:29)


6) 무염시태 : 이 것은 인류 모두는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말씀을 뒤엎는다. (롬3장10절 이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은총에 의해 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면 굳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피흘리시며 참혹한 죽음을 당하셔야 했는가? 그 은총을 모든 인류에게 배푸셨다면 예수님 참혹한 죽음 당하실 필요없이 모든 인류가 은총으로 죄로부터 보호받았을 것 아닌가?


7) 몽소승천: 전혀 성경의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명령을 좇아 마리아를 부양하였을 것이며 마리아보다 오래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요한복음이나 요한일서 2서 3서 어디에서도 마리아 승천을 언급한 적이 없다.


8)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다?

: 교회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벧전 2:6-8)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전 3:11) 페트로는 남성명사이고 페트라는 여성명사이다. 베드로가 마 16:16-18에서 고백한 내용의 진리 또는 그가 고백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반석이시다. 베드로는 곧바로 사탄으로 정죄받았고, 세번 예수를 부인했고, 바울에게 책망받았지만 우리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며 변함없으시다.


9) 카톨릭 밖에는 구원이 없다. 얼마전 여기 천주교인들은 부인했지만 카톨릭이 무오하다고 주장한 교황의 공식 선언들은 여러번 카톨릭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현재 카톨릭이 작전상 후퇴를 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 (요14:6, 행 4:12) 아마 카톨릭 안에는 구원이 없다를 잘못 표현한 것은 아닐까? 밖에는이 아니라 안에는 구원이 없다가 훨씬 더 정확한 것으로 심판의 날에 드러나지 않겠는가?


10) 죽은 자에 기도:
죽은 자는 잠자고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고전 11:30, 15:51, 살전 4:15) 산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반문하신다. (사8:19)

11) 마리아에게 기도:
천주교에서는 자주 말하기를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어머니를 통해 말하면 아들이 잘 들어주시듯이 잘들어주신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할 것이라(요6:37) 하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8) 하셨으며 무엇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받게하신다고 하셨다. 마리아는 피조물이며, 그 마리아의 인자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자하심에 전혀 비교가 안된다. 자꾸만 마리아께 기도하는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는 기회를 잃을 뿐이다. 마리아는 잠자고 있는 성도에 불과하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한분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딤전 2:5). 이것은 여신숭배 사상에서 온것 이외로는 설명이 안된다.

12) 독신 사제제도
이미 카톨릭 교도가 쓴 간추린 역사를 보여주었듯이 그 제도는 처음부터 실행된 것도 아니며, 소위 초대 교황이라는 베드로도 결혼하였었고, 여러 교황들이 결혼하였었거나 결혼한 사제들의 아들들이었다. 그 제도가 역사적으로 보편성있게 시행된 것이 아니라, 일정 지역이나 시기에만 실시되기도 하였고, 많은 성직자들이 결혼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과잉충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으로 미혹하는 영과 귀신을 좇는 사람들이 혼인을 금한다 하신 말씀(딤전4:3)에 해당되는 것이다. 인간들에게 새로운 계명들을 부과시킬 수 있다면 계속하여 몸을 괴롭게 하는 것과 자의적 숭배를 더해갈 수 있을 것이다. (골2:23) 그러한 인간적 규범의 결과는 성직자들의 음행, 교황들의 방탕과 음행( 교황들은 매독으로 죽기까지)으로 나타났으며 오늘날도 카톨릭 성직자들의 타락은, 비록 한국에서는 깨끗하 편이지만, 세계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형편이다.

13) 죄사함과 미사
카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완전 속죄를 믿지 않는다. 무언가 사제들이 용서를 구하여 용서받게 하는 것이다. 반면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믿는다. 이 믿음이 결여된 관계로 카톨릭은 죄사함과 정죄 없음을 죄를 안짓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무한히 노력하는 행위를 강조한다.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사해졌음을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사제들이 미사에서 죄 용서를 구하되 십자가의 속죄가 이미 이루어졌음을 믿거나 증거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화체설 또한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이 실행하고 과거에 이루어 주신일을 믿는 것과 그것을 기념함이 아닌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7-19을 읽어보시라. 더 이상 희생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느니라 하셨음을 읽지 못하시는가?

14) 연옥설
천주교의 교리서에 따르면:

1030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으려면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완전히 정화된 사람이 한국 천주교인들 중에 몇명이나 되는가? 성인으로 시성이나 시복이 되지 않는 이상 천국으로 직행하기는 틀렸고 아니면 지옥으로 직행하든지 연옥으로 가야한다. 지옥은 아주 악한 사람들이 간다면, 특별히 성인으로 시성되지 않는한, 완전히 정화된 삶을 살지 않는한 모든 천주교인들은 연옥으로 가야한다.
그 연옥에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지내야 할지는 확실치 않으나, 엄청 긴 세월로 알려졌다.  카톨릭은 믿으면 연옥에 간다. 기독교에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옆의 한 강도가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복된 말씀을 들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셨음이 모든 죄를 사해주셨음을 믿기 때문에 곧바로 낙원에 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은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에 충분한 속죄였으며, 그것을 믿으면 그분의 거룩하심을 힘입는다. 반대로 그것의 완전함을 안믿으면 거룩함을 못입는다. 카톨릭은 그것을 안믿기 때문에 고통받는 연옥으로 간다고 하는데 가서 깨달으면 그곳이 지옥인 줄을 알것이다.
돈많고 빽 좋아서 자선사업도 많이하고 메스컴에서 유명해지면 성인으로 책봉된다.그러면 천국간다.돈없고 빽없는 서민 대중 천주교인들은 죽으면 연옥에 간다. 거기서 고통받으며 참회의 세월을 보낸다.

15) 기타
연옥에서 여러 카톨릭 신자분들이 얼마나 고통받으실까? 참으로 불쌍하다.
카톨릭은 이외에도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제도들로 채워져 있다. 추기경이라는 직책이 어디에 있는가? 묵주기도(로자리오)는 어디서 나왔는가? 파티마의 기적이니 허황한 소문을 만들어낸다. 조상제사를 지내는 것을 윤지충이 알면 억울하게 괜히 죽었다 하지 않을까?

카톨릭은 그래도 자기들이 사도들의 전승을 지켜왔으며 개신교들이 자기들에게서 나갔다고 착각할 지 모른다. 우리가 여기서 논하고 변론하는데 여기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세상사람들이 역사를 기록한다면 과연 언급이나 되었겠는가? 카톨릭 외에도 동방정교회가 있었으며, 알메니안, 앗시리안 교회, 인도 사도 도마교회 등에다가 유럽내에서도 알비, 왈도, 드보아, 재침례교도 등 무수한 복음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들에 의해 성경이 보존되기도 하였다 (카톨릭의 성경 금독령에도 불구하고) 따라서 카톨릭은 전체 기독교 유산중 일부를 전달하였거나 그 역할에서 미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그 역사가 카톨릭의 교리가 모래성위에 쌓아올린 것이라는 비판을 막아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2. 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시고 피흘리시고 거룩하신 자기 몸을 부서지게 하셔서 이루어 놓으신 거룩한 세계가 그분의 참된 교회이다. 그것은 우주적 개념의 설명이며, 지상에 설치된 가시적 교회는 지역교회들로 구성된다. 그것은 교회들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심을 말한다. 개교회의 머리도 예수 그리스도시요, 전체 우주적 교회의 머리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성령님께서 그안에서 일하신다.

 

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님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통해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졌음을 증거 전파하는 교회이며, 그분의 부활하심을 증거함으로 부활의 소망을 가르치는 모임들이다.



지역교회의 조직과 직임등에 관해서는 내가 다녀본 교회들 중에서 형제모임의 분별이 가장 정확하다. 형제모임들에 대해서는 장로교에서 열심히 책잡을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할말이 없으므로 주님의 신실한 교회라고 선언해버렸다. 그래 놓고도 목사가 없느니 뒤에서는 흠잡는다. 그러나 진정한 지역교회는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분별에 순종해야 한다.


형제모임 교인들에게 교파를 물으면 교파는 옳은 개념이 아니며, 교파는 성경에서
금하셨다고 말한다. 그래도 자꾸만 무슨 교회 나가느냐면 형제교회라고 굴복해버린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그래가지고야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목숨을 내놓겠는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외에는 말할 것이 없어야 하지 않는가? 물론 그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만큼 교파주의는 강하며 그것은 인간적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이 교파를 집요하게 묻는데는 수많은 이단들에 속은 경험도 있고 여러가지 피해 사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 접근 방식이 아니다. 구원은 개별적인 것이며 그 이후의 신앙 또한 개별적이다. 내가 나가는 교회 사람들과 나의 교회관이나 신앙의 여러면들은 많이 다르다. 누구에게 교파를 묻는 것은 교파(분파)를 허용하시지 않은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는 것이다.(고전 1장, 마18:20 -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파를 묻는 것은 도매금으로 싸잡아 비방하기 위한 수단이다.

 요즈음 나는 이라크에 있는 교회들에 대해 듣는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수십개의 교회가 있는 것과 쿠웨이트에 200명이 넘는 교회들이 있다는 것을 듣고 놀란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은 눈에 잘 띄지 않게 모이는 것이다. 그들에게 형제모임에서 분별한 바와 같이 신약교회를 충실히 이루라고 하는 것은 무리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신약성경에 충실한 독립된 교회들이 우주적 교회안에 속해있는 상태, 그것이 성령께서 보시는 바일 것이다. 이제 한국은 그동안 양적 물적 성장으로만 보였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지금 열심히 일하신다. 과거에는 복음 말하면 율법주의자들에 치여서 할말 하지도 못했다. 복음주의자들은 생명을 받은 이후에 일반 교파교회들을 적대시만 할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안에서도 일하심을 알고 인정하며 그들에게 조언하며 교제하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일반 교회들 안에 복음을 알고 깨닫고 믿는 사람들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외적인 기독교인의 숫자는 비록 정체되어있지만. 
 
나는 어느 분이 예시한 대로 카톨릭에 의해 저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축복받는 줄로 믿으며 카톨릭에 의해 축복받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저주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허황한 모래성 교리이니까. 하나님이 그들로 지옥에 갈 자유를 허락하시듯이 나도 그들의 자유를 존중한다. 그러나 여기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증거하지 아니하는 것은 소극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그분도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부인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엘리야 때에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자들 칠천을 남겨두셨다 하였다.그러나 바알숭배자들과 싸운 사람은 엘리야 뿐이었다. 나머지 칠천은 보호받기는 하였지만 엘리야처럼 휴거 승천의 축복은 받지 못했다. 남들이 싸울때에 비겁하게 뒤로 물러서지 말라.

 

집을 살때는 여러가지로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 기초가 반석위에 섰는지, 지붕은 새지 않는지. 영원한 집을 살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섰는지, 잘못 샀을 때는 손해 막심하기를 영원히 한다.

출처 : Shekinah Korea
글쓴이 : 하토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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