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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신앙관련

[스크랩] 구원의 선물을 받게 된 근거

by 디클레어 2010. 7. 19.

신학적 편견이라고 보는 것 역시 또 다른 신학적 편견이라면
전자 신학적 편견은 편견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신자에게 있어 믿음과 행함은 서로 분리시켜 선택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며  성령은 성경말씀을 통해 믿음과 행함(순종)의
관계에 대해 성도가 온전한 이해를 하도록 도우실 것이고 그런
성령의 깨닫게 하심 따라 계속해서 배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제 견해는 참조만 하시기를...

예수님께서 행함을 강조하셨다면 그것은 행함으로 받는 구원을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고자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이
믿음안에서 행하여야 할 마땅한 바를 강조하신 것이겠지요.

결론부터 내리고 들어가자면 구원은 행함에서 난 의로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 난 의로 받습니다. 그렇기에 행함으로(도)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은 개신교내에서는 행위구원론이라 하여
이단설로 간주되고 있고 저 역시도 그리 보고 있습니다.

"일을 아니하실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

행함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유대인들이 그렇게 노력했는데
과연 유대인들이 믿음없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에 이르렀을까요, 만약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가능하였다면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실 필요도
십자가에서 달려 죄사함을 위한 구원을 이루어주실 필요도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 없으셨을 것입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나니
전 7:20>
행위에서 난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롬 3장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는 말씀과 통하는 말씀이지요
 
죄 가운데 죄 있는 육신,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담의
후손은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룰 수 없습니다. 야고보가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하였는데 행함에서 난 의로 즉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박국과 바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공통된 고백을 하였던 것이겠지요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5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28-29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아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로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정리하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고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고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가지게 되었고 성경은 바로 이런
지혜, 즉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그 지혜를 주는가. 바로 말씀을 통해 성도의 심령에
역사하는 성령을 통해서 (성령에 대해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요한일서 2:27절 참조)

홀리강님은 야고보가 믿음으로 뿐 만 아니라 행함으로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했으니 행함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신학논리를 펴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라면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홀리강님께
두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1.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그러나 믿음은 없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2.  믿음은 있으나  행함은 없는 거듭난 사람(신자,성도)이
있을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야고보의 말을 자세히 보면 “ (주께서 인정하실) 믿음이 있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스스로 믿음이 있노라 하는 자들: if a man claims to have faith/
though a man say he hath faith”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함은  없는 사람의 믿음은  죽은 믿음
이라고 한 것입니다.  죽은 믿음은 믿음의 효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무익한 것이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이 아니지요  
그 자신은 믿음이 있다고 착각 할지 모르나 실상, 그가 말하는
믿음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시고 감화시켜 회개시키시고 중생 –성화의
과정을 통해 영화에 이르게 하시는 구원여정에서 사람이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하심을 기억한다면  
믿음이 있고 행함은 없는 거듭난 신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
역시도 성경의 말씀들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26-27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구원의 선물을 받게 된 근거로 믿음과 행함이 있다면 어느 것이
더 무게가 나갈 것인가 어느 것이 더 중한 비율을 차지할 것인가
질문하신 것이라면 행함은 구원의 선물을 받게 된 근거에
포함조차 되지 않는다고 답할 것입니다.
0%, 만약 행함이 어느 정도의 비율을 차지한다면 답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여기는 결과가 되는 것이고
구원에 내가 조금이라고 기여한 바가 있다라고 자랑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난 의란 그리스도의 의로 받게 된 의이고
믿음조차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사람이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성령의 역사에
호응하였다고 그것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만 있으면 되고 행함은 중요치 않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의 관계 이전에  믿음과 구원의 관계를
바로 정립하자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를....

출처 : 기독교 원죄론
글쓴이 : ago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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