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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신앙관련

[스크랩] 유아세례

by 디클레어 2010. 7. 19.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를 신앙안에서 양육하고자 하는 경건한 부모들은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의무가 있습니다. 양육에 유아세례를 행해야 하는 것까지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을 가르치고 말씀대로 사는 본을 보이고 신앙안에서 자라나도록 기르면 되는 것이지요.

세례를 받는 자리에까지 나아가도록 양육할 의무가 있는 것이지 세례를 받게 결정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의무는 성경이 명한 것이 아님을 복음과 믿음과 세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성경말씀을 읽다보면 의심없이 명확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라고 분명하게 명하였고 제자란 복음의 도를 듣고 믿고 따르기로 결심한

자들입니다. 막 16:16 절을 보면 세례란 복음을 듣고 믿은 자들이 받는 것임을 알 수 있고 사도 베드로는

 <물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하였습니다.

세례는 할례처럼 단순히 언약의 대상자임을 상징하는 표를 넘어서 구원하는 표이고 (성령과 연합하여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것이라면)  구원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디도서 3:5)

 

할례와 세례를 연관시켜 본다 해도 마찬가지 결론이 나옵니다.

할례는 언약의 대상자인 이스라엘 남아가  태어난지 8일만에 받는 것이고

(남아에게 한정되었다는 것도 다시 말하자면 구언약이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정된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요) 

세례는 유대인이건 헬라인이건 이방인이건 육신의 출생은 상관없이 복음을 듣고

말씀의 씨로 거듭난 자들이 남녀에 상관없이 받는 것입니다.

(모든 족족에게 개방적으로 주어진 새언약)

 

예수님께서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눅 8:21)

언약의 대상이 어떤 사람들일지 명백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고 행하는 자들이 바로

언약의 대상자이고 세례를 받을 대상자들입니다. 

사도요한도 복음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중생한 신자들을  아이들이라 불렀고 (요일 2:18)

바울도 그의 서신에서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질때까지 해산하는 고통을 겪어 나은

자녀들이라는 표현을 하였습니다.(갈 4:19).      

 그렇다면 언약의 상징이라는 측면에서 세례를 주는 것도 복음안에서 말씀의 씨로

중생한 자녀들이어야 마땅합니다. 중생한 자녀들이 비록 믿음에서 장성한 자녀가

아직 아닐지라도 그리스도안에서 젓을 먹는 영유아일지라도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언약의 할례는 표면적 유대인에게 행해진 육체의 할례이고

새언약의 세례는 이면적 유대인에게(참 감람나무와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자들)

행해진 그리스도의 할례요, 마음의 할례인것이지요.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행 7:51>새언약의 세례는 육체를 따라 출생한지 8일된

남아에게 시행하는 할례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마음과 귀에 받는 할례에서

그 모형을 찾아야하고 그렇기에 유아세례는 양피에 받는 세례이고 신자세례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아 그리스도로 옷 입는 세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오묘하지 않습니까 율법과 복음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복음안에서 믿음안에서 율법의 의가 더 굳건하게 세워진 것을 이

할례와 세례만 놓고 봐도 알수 있습니다.

 

유아세례의 근거를 예수님의 어린아이 축복기도에서 찾는다면 더 더욱

근거가 희박해 집니다. 마가복음 10:13-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지 죄사함을 받게 하거나 천국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신

것이 아니니까요.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부모들이 그리스도가

머리로 계시는 교회앞으로 데리고 나와서 신앙공동체 앞에서 신앙으로 양육할

것을 서약하고 예수님의 명령인 양을 치고 먹일 책임을 위임받은 목사님들께서

 영유아들에게 안수하고 축복기도해주면 되는데 굳이 그것을 세례로 확대시키니

비성경적이라 하여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로 인해 반대하는 자들을

핍박까지하였던 비복음적인 과거가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

 예수님께서 금하지 말라고 하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기에 영유아에게는

아직 세례가 필요 없고 행해져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장하면서 죄를 인식하고

 죄인됨을 고백하고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필요할때에,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어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복음의 도를 따르기로 결심할때에 세례가

주어져야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명령대로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는 것이기에(갈 3:2)

유아세례는 부모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겠다는 의미외에는 세례의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효과도 없는 것임이 분명하며 예수님의 지상명령의

하나인 세례의 의미를 변질시킬 우려가 있고 그렇기에 언약의 상징인 할례처럼

어린아이라도 십자가 복음 언약의 대상자로 포함시켜 양육하고자 하는

마음이 진정이라면 형식도 바르게 하기 위해서 세례대신 영유아 축복기도와 부모의

 신앙안에서 양육서약같은 식으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기독교 원죄론
글쓴이 : ago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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