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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신앙관련

텔레비전으로 위장한 데블비전(Devil-Vision)

by 디클레어 2010. 7. 26.

텔레비전으로 위장한 데블비전(Devil-Vision)

성도와 텔레비전 1

페리 록우드     

TV는 마귀가 인간의 혼을 파멸시키기 위해 쓰는 또하나의 도구이다
▲ TV는 마귀가 인간의 혼을 파멸시키기 위해 쓰는 또하나의 도구이다

서론
『그들이 왕의 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왕하 20:15)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키야에게 던졌던 물음인데, 그것은 이 텔레비전이라는 주제를 놓고 볼 때 매우 적절한 물음이 아닐 수 없다. TV 화상(畵像)을 통해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인의 집 안에 TV를 한 대 들여놓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을까? 가족 구성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는 데 있어 그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그것에 특히나 푹 빠져 있는 남녀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실제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물론, TV에 방영되는 복음이 반면에 얼마나 매력적인지도 한번 생각해 보라! 화면 가득한 눈을 현란케 하는 무대 장치며, 찬양단의 차림새와 설교자의 풍채는 어떠하며, 귀에 간드러지는 기막힌 음악은 또 어떠한가. 여전히 라스베가스 나이트 클럽들에 얼굴을 들이밀며 죄인들을 즐겁게 해주는가 하면, 또 TV에 출연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눈요기를 제공해 주는 쟈니 캐쉬(Johnnie Cash)와 같은 현대판 회심자들을 볼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큰 특전이란 말인가! 그러나 대답해 보라. 주님보다 사람을 더 높이는 TV 사역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바울이 그렇게 해서 복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던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말하기를, 자신은 주님의 두려우심을 염두에 두고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단 말이다(고전 2:1-4).


이집트인들에게 칠흑 같은 어두움만이 드리워져 있었을 때, 이스라엘은 『그들의 거처에 빛』을 가졌었다(출 10:21-23).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의 자녀들이니, 자고로 그들의 가정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서 발산되는 빛으로 특징지워져야 하는 법인데, 만일 당신이 집안으로 TV를 들여오는 날엔, 당신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엡 5:11)도 덩달아 들여오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한 라디오 아나운서의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의 뉴 브런스윅(New Brunswick)에 소재하고 있는 어느 대형 정신병원에서는 TV를 사용해 환자들을 잠재운다고 한다. 환자들을 안정시켜서 잠재우려고 수년 동안을 고심한 끝에 담당의들은 이번엔 TV를 한번 사용해 보자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래서 이제 환자들은 매일 밤 TV를 시청하다가 이내 스르르 골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이 나라 방방곡곡에 있는 성도들을 잠재우기 위해 마귀도 지금까지 TV를 이용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조용한 가정에 둘러 앉은 몇몇 집사들을 만나 보았더니, 다들 입을 모아 하는 소리가, 자신들의 안방에 TV를 들여 놓은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주일학교 섬김을 등한시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생활도 영적으로 냉랭해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TV가 그들을 ‘영적 수면’에 빠뜨려 버린 것이다.


또 다른 집사는 내게 말하기를, 집안에 TV를 들여놓은 이후로 혼들에 대한 열정을 상실했고, 또 죄인들을 찾아 집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욕망을 ‘TV 수면’에 빠지기 전만큼 가질 수 없었는데, 일 년 후, 출석 교회에서 간증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가서 TV를 치워 버렸더니 혼들에 대해 품었던 그 옛날의 열정이 되살아나더라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가정 생활이 이전의 영적 상태로 되돌아왔다는 간증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목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내게 털어놓기를, 자신의 성도들의 가정에 TV가 들어앉은 이후로 기도회와 주일 저녁 예배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내가 아는 대부분의 목사들은 자기들의 안방에도 버젓이 TV를 모셔두고 있다는 걸 말이다. 정확히 10년 전만 해도 그들은 헐리우드의 쇼 프로그램들과 그것들이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완강한 자세를 취했었지만, 오늘에 와서는 그들의 안방에도 그 동일한 쇼가 방영됨으로 인해 그들의 입에다 재갈을 물고 유구무언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어느 목사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TV 시청을 통제합니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 하지 말라. 오후 5시 30분경에 두 아이는 분명 ‘어린이용 쇼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옆방에 앉아 있던 나는 아까까지만 해도 들려오던 애들 소리가 푹 가라앉은 걸 감지하고 걔네들이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길래 그러는지 알아보기 위해 쓱 들러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들은 내가 구원받지 못한 아이였을 적에나 보곤 했던 것들과 같은 ‘와일드 웨스트’ 로이 로저스(‘Wild West’ Roy Rogers)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보란듯이 그 목사를 불러 어서 와서 그 ‘통제된 프로그램’이나 한번 봐 보시라고 말했다. TV를 통제하는 유일한 해결책을 말하자면 당번제 유급 감시원을 두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다 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에게 슬쩍 돈을 쥐어 주며 헐리우드 최고의 프로그램을 보자고 하지나 않을는지.


한 여성도가 라디오 집회가 끝나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 집에도 TV가 한 대 있긴 하지만 그것이 라디오보다 어디가 더 나쁘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청취자께서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거나, 아니면 기도회에 가는 것을 라디오가 발목을 붙잡고 못 가게 한 적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TV가 성경이나 기도 시간이나 기도 모임들로부터 당신을 떼어 놓은 적은 있으신지요?” “많아요, 아주 많지요.” 그녀의 대답은 정직했다. “그렇다면 청취자께서는 자문자답하신 거네요. TV가 당신의 영적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이지요.”


현 상황
내가 언제 그렇게 성도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됐든 3만 명이 웃도는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성도들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가족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7% 미만인가 하면, 성경을 매일같이 묵상하는 경우가 5% 미만이고 한 명의 혼이라도 이겨 오려고 해 본 경우가 5% 미만이었으며, 또한 복음주의적 교회 회원들 중 12-15% 가량 되는 이들만 기도 모임에 참석하는 걸로 나타났다.


한 달에 5천 마일 정도 되는 거리를 여행하며 이 교회 저 교회, 이 지역 저 지역을 다 다녀 본 결과, 성도들을 전체적으로 따져보면 한 군데도 예외없이 신앙이 미적지근하고 냉담하고 무기력하고 자기만족적이고 무사안일하고 세상적이고 육신적이었다.


우리처럼 복음주의를 자처하는 교회 내에서 구원받는 혼들이 왜 그리도 적은 걸까? 영적 무기력증에 대한 관심을 성도들 사이에서는 왜 그렇게 찾아 보기 힘드는 걸까? 왜 우리 시대에는 설교자들이 선지자로서 제 역할을 못하는 걸까?
나의 확신은 이렇다. 즉 이 시대에 영적 상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한 가지 주요한 원인은 다름아닌 데블비전(Devil-Vision; 마귀의 텔레비전)이 - 용서해 주기 바란다. 난 지금 TV를 이야기하고 있다. - 그러니까 그것이 우리 복음주의 교회의 설교자들과 성도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지금 TV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 관련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사활을 걸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 수년간 근본주의 교회들은 쇼 프로그램들과 춤들 그리고 여타 세속적이고 육감적인 관행들을 거슬러 또렷한 입장을 취했지만, 오늘에 와서는 이러한 모든 마귀적인 것들을 우리 성도들의 가정으로 버젓이 가지고 들어오는 TV에 대해 그런 입장을 취하는 교회나 설교자를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성도 중에 누구라도 TV가 자신의 영적 생활을 향상시켜 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모든 길에서 그를 인정하라...』 『그러므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악은 어떤 형태이든지 피하라.』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관여하지 말고』 『어리석은 생각은 죄요』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도 있는 생각이라.』 『너희 지체[눈]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 어느 성도가 TV가 자녀들의 실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만에 하나 자신의 자녀들이 영화나 보러 다닌다는 걸 알게 된 설교자들의 입에서는 과연 무슨 말이 나올까? 그러나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영화보러 가라며 날이면 날마다 부추긴다는 사실에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는 걸 잊어선 안 되리라. 『또 나를 믿는 이런 어린 아이들 가운데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그의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나으니라』(막 9:42).


어렸을 적에 우리는 야구, 술래잡기, 필드 하키 그리고 다른 놀이들을 하며 집 밖에서 시간 가는 줄 몰라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오히려 곧잘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리고는 총알이 날아다니고 피범벅이 되고 살인과 죄악이 저질러지는 장면을 멋모르고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의도하셨던 바인가? 『아이를 그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훈육하라. 그리하면 그가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설교자들, 집사들 그리고 다른 교회 성도분들이 나에게 다음처럼 말하는 걸 듣고 산다. “있잖아요. 전 TV가 잘못된 거라 생각진 않아요.”라고 말이다. 그들이 만약 그것에서 잘못된 것을 찾지 못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 안경의 도수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 다들 이 지경이 됐으니 기도 모임들이 시덥잖은 옛날 이야기처럼 되어가고 주일 저녁 예배가 시대에 뒤져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그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능력한 지도자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간통을 저지르는 남녀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반쯤 벗겨진 알몸으로 버젓이 나뒹굴며 음욕에 미쳐 돌아가는 그들의 살덩어리를 보란듯이 내보내는 장면을 앉아 지켜보는 것이 잘못된 일일까?


맥주, 독주 그리고 와인을 들이키라고 부추기며 우리의 자녀들에게 술 마시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잘못된 일일까? 심방을 하던 어느 목사가 다음과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고 하니 어디 한번 들여다 보도록 하자.


다섯 살도 채 안된 꼬마 여자 아이가 TV를 보며 앉아 있다가 같이 있던 엄마에게 갑자기 “목 말라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 왈, “냉장고에 보면 오렌지 주스 있다.” “오렌지 주스는 먹고 싶지 않아요.” “음, 그렇다면, 포도 주스는 어떠니.” “포도 주스도 싫어요.” “애야, 그러면 뭐 마시고 싶은데?” “쉴츠 맥주(Schiltz beer)요.” 그 말에 그 엄마는 웃긴다는 듯 자신의 귀염둥이가 보고 들은 걸 재빨리 습득한다고 대견스러워했다.


바보 같은 엄마 같으니! 그녀는 자신의 어린 것을 콱 깨물어 버리려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그 뱀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데블 비전(Devil-Vision)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다수의 영적 지도자들과 성도들과는 그 어리석음에 있어서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누군가가 저질스럽고 상스럽고 음탕한 죄악에 찌든 언어를 우리의 안방으로 들여다 놓고 그들의 언행으로 우리의 정신을 가득 채우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잘못된 일일까?


음주, 흡연, 애무, 난잡한 성교, 욕설, 살인, 강도, 춤, 도박, 강간 그리고 속된 것들을 부추기는 것이 잘못된 일일까?


어떤 이들은 라디오도 나쁘기는 매 한가지라고 말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가 라디오가 지닌 죄에 대해서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해도 거기엔 다른 점이 있다는 걸 알아두기 바란다. 다시 말해, 그것은 창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 그녀가 당신 눈 앞에서 주변을 양다리로 활개치며 다니도록 내버려 두는 것 사이의 차이요, 또 그것은 맥주와 독주에 대해서 귀로만 듣는 것과 그들이 당신의 거실에 술집을 하나 차려 놓고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술을 들이키도록 내버려두는 것 사이의 차이인 것이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90%에 달하는 우리의 정신 생활이 바로 우리가 보는 것에 의해서 자극을 받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사고 중 단지 10%만이 청각, 후각, 촉각 그리고 미각에 의해서 자극을 받는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TV야말로 정신을 오염시키고 혼을 저주하는 가장 신속하고 확실하기 짝없는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 시대에 TV는 가장 뛰어난 시간 낭비가이다. 성경 공부, 가정 예배, 기도 모임, 아니면 심지어 주일 저녁 예배에 들일 시간이 없다는 성도들이 되려 외눈박이 괴물에다가는 수시간을 쏟아 붓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아래에 이어지는 시 한편이 이러한 세뇌를 그 어떤 것보다도 잘 표현한 것이리라.


마귀의 비전 (The Devil’s Vision)
- J.C. Woodward


한번은 마귀가 부하 마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이 돼 가는 꼴이 하나같이 너무도 지지부진하구나.
영적인 사람들이 우리 앞을 떠억 가로막고 서 있어.
그들은 쇼나 연극 같은 건 안중에도 없기 때문 아니겠어.
그들은 이렇게 가르치지. 카니발, 서커스 그리고 춤,
도박판이 벌어지는 싸구려 카바레와 선술집,
음주와 흡연, 이 모든 게 다 틀려 먹었다고,
그러니 성도들은 불경스런 떼거리들과 뒤섞이지 말아야 한다고.


걔네들은 우리가 하는 일마다 꼬치꼬치 정죄하는 데 선수야.
불신자들이 적지 않다는 걸 보여 주려는 속셈이야.
그들은 이렇게 외치지. 이 모든 게 죄다 마귀에게서 나온 거라고.
그러니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훨씬 고상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것들 보라구, 흠잡을 데 없이 참된 그들의 신학이
우리가 손대려 하고 있는 일을 막고 있지.
우린 지금 두 팔 다 걷어 부치고 서둘러서 짜내야만 돼.
그들이 세워 놓은 기준들을 최대한 빨리 바꿀 계획을 짜내야만 돼.


마침, 내겐 우리가 할 수 있는 비전(vision)이 하나 떠올랐어.
귀기울여 봐...이 속임수를 너희들에게 말해 주겠어.
그러니 머리 하나 끝내주게 잘 돌아가는 타락한 녀석을 하나 내게 데려다 줘.
나를 거들어 이 계획을 완수하는 데 이용해 먹을 녀석을 데려다 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큼 실감나는 게 어디 있지?
이건 정말 두 눈과 정신과 마음이 맞장구칠 말이지.
그러니 바라다볼 물체보다 더 나은 게 어디 있겠어.
그러니까 내 말은 그게 잘 작동해서 꽤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살거란 얘기 아니겠어.


가정이 바로 이 죄악 덩어리 장치가 자리잡을 곳이야.
속아 넘어간 사람들은 그것을 꽤 마음에 들어 할 거야.
세상은 그것을 소유할 거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알아낼 수 없을 걸.
그것은 모두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고 지옥에서 몰래 계획됐다는 걸.
우리는 최근판 뉴스를 거기에 담아 팔 거라네.
그들이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는 동안 우리는 술 광고를 내보낼 거라네.
혼을 저주하는 담배도 그들은 보게 되겠지.
하나님이 성경에서 뭐라 말씀하는지 까마득히 잊어버릴 때까지.


그것은 처음에 그들에게 충격을 가할 거야. 아마 정신이 몽롱해질 걸.
그러나 얼마 못가 돌석처럼 돼 가지고 뚫어져라 계속해서 바라다 볼 걸.
그러면 우리는 너무 강하지 않은 어떤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할 거야.
그리고 몇몇 복음 성가를 현악기에 실어 보내고 말야.
그들은 최신 유행 광고들을 빨아 먹겠지.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악마같은 열정을 일으키는 쇼들을 시청할 거고 말이지.
살인과 정사 장면들을 그들은 보게 된다네.
그들의 혼이 몹시도 냉랭해질 때까지 그럴 거라네.


한때는 그토록 마음을 사로잡던 ‘그 잘난 가정 예배’는 곧이어
별일 없었다는 듯 몸둘 곳을 몰라하며 사라질 거라는 것 아니겠어.
남몰래 드리는 기도 역시 온데간데없어질 거야.
그들이 수신료 걱정없이 화면을 바라보는 동안 말이야.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타협하는 설교자들은
이 새로운 비전을 높이 사고 그것을 원대하게 여길 거거든.
그들은 사람들을 속이는 데 일조해서 그들이 죄 짓도록 할 거야.
이 악을 애써 찾아내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말이야.


영향력이 지대해, 넌 이걸 볼 수 있다구.
내가 내려가는 걸 지켜보기나 해, 너희도 동의하고야 말 거라구.
내 부하 마귀들이 말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거야.
사탄의 비전이 지옥을 채울 거라 말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야.
이혼이 증가하고, 성범죄가 만연할 거라네.
순진무구한 피가 땅 위에 낭자히 흐를 거라네.
가정이 순식간에 저주받을 거야, 장담해.
그러니까 내 이 비전이 자리잡을 때.


전 부대원은 일에 착수하라, 그리고 이것을 방송에 내보내라.
교회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지 어디 한번 보거라.
우리 앞을 떠억 가로막고 서 있는 영적인 사람들이
쇼와 연극을 거슬러 부르짖던 외침은 곧 수그러들겠지.
우리는 이 “데블비전”을 가지고 지구로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린 “텔레비전”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위장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큰 기쁨을 얻고 있노라고 생각하겠지.
적그리스도가 와서 자신의 자리를 넘겨 받을 때까지.


그때 그가 세상을 통치할 거라네. 시청자들이
자신들을 매수해 버린 “그 짐승”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동안 말이지.
어떤 ‘고집불통’ 설교자가 나와서 그것을 맹렬히 비난할 테면 해 보라지.
우린 속임수로 승리할 거야. 이 일에 실패란 결코 있을 수 없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