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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 두번째,

by 디클레어 2011. 1. 10.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현대종교 2001년12월호부터 게재)

 

<이 난은 월간지 "현대 종교" 2002년1월호에 게재된 민병석 목사의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에 대한 원고 중 그 두번째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하여 매월 현대 종교에 연속 게재되는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를 이 난에 실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요한계시록 연구와 설교에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두번째,

 

 "144.000"의 해석 문제1. 종말론에서 144.000은 반드시 그 해답이 나와야 한다. '14만 4천'에 대한 계시는 계시록 7장에 나온다. 14만 4천의 무리가 누구냐는 문제는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해석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만약 이 문제가 잘못되면 계시록 뿐 아니라 종말론 전반에 걸쳐 다른 문제를 옳게 해석할 수가 없다. 그만큼 14만 4천명은 요한계시록 전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사건은 언제나 단독적으로 진행되고 단독적으로 마치는 경우가 없다. 모든 계시가 종말적인 사건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한 사건은 다른 모든 사건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한가지 문제의 잘못된 해석의 영향은 요한계시록 전체에 미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14만 4천명'의 문제는 더욱 그러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전체적인 문맥을 통한 면밀하고 깊은 분석으로 올바른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렇습니다.^^

 

2. '14만 4천'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의 견해 '14만 4천명'에 대한 해석은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 거의 공통적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총수(總數)라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다른 계시처럼 '144.000'도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이들의 상징적 해석의 방법이 묘하다. 대개의 경우 한국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주석에 나타난 '십 사만 사천 명'은 크레다너스(Greidanus)의 설을 취하고 있는데 144,000이란 하나님의 수인 3에다 사람의 수인 4를 곱한 12란 숫자를 만수인 10이란 숫자와 3제곱하면 12,000이 되며 이것을 종교적 의미가 있는 숫자인 12로 곱하면 144,000이 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이 수효는 구원받은 교회 성도들의 총수라고 해석한다. ⓐ 이 같은 해석은 실인즉 상징적 해석도 아니며 다만 이상한 숫자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왜 144,000이란 숫자를 계시해 주신 것일까? 만 단위는 숫자가 너무 작고 백만 단위는 너무 많아서 십만 단위를 취하신 것인가? 12란 숫자가 3 × 4 = 12에서 나왔다는 자체가 너무도 인위적인 방법이며 거기다 3제곱하는 식은 성경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동의합니다.

 

ⓑ 계시록 7장에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인이 구원의 인이 아닌 것은 천사가 인을 쳤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성도들에게 구원의 인으로 쳐주시는 인은 천사의 인 일수 없고 그 인 침 받는 자리가 이마 일수도 없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엡1:13)."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 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후1:22). 위의 성경 말씀을 보면 구원의 인은 성령으로 치며 성령으로 인 침 받는 곳은 '이마'가 아니라 '마음'이다.

 

 

반론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친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거기에 너무 주안점을 두시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마에 인을 맞는다는 것은 구원의 의미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께서 특별히 생각하시는 그런 주의 성도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4만4천은 말세에만 존재하는 아주 특별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렇게 분별하고 있는 이유는 계시록8장과 9장의 삼분의 일이란 숫자 때문 입니다. 여기에서 설명하기에는 너무 길어서 다 적을 수는 없습니다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들이 가진 믿음은 환란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만큼의 수준이며, 그 마음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들로서 이미 승리한 자들이며 또한 면류관을 벌써 받은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마음에 딱 “합한 자들” 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시아의 일곱교회중에 하나를 고르자면 책망받는 말씀이 하나도 없이 오직 칭찬만 받았던 빌라델비아교회를 꼽을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나머지 여섯교회들은 책망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아무 꾸지람도 받지 않았던 빌라델비아교회의 이런 자들이 바로 14만4천급의 믿음 아니겠습니까, 또 한가지 공교롭게도 이 14만4천은 환란에 들어가지도 않고 환란의 때인 마흔두달인 후삼년반전에 들림을 받아서 시온산에 거하게 됩니다. 이것은 계시록14장을 정독하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환란에 들어가지 않은 14만4천처럼 그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겠다는 말씀이 공교롭게도 바로 빌라델비아교회에 하신 말씀중에 똑같이 나타나 있습니다.

 

 

(8)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노라. 이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시험의 때에 너를 지키리니, 이는 온 세상에 임하여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라.

 

 

(1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들어서 아무도 너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앞서 제가 말씀드린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첨가하자면,

 

 

(12)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으로 삼으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그 사람 위에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성의 이름, 즉 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기록하고, 또 나의 새 이름도 그 사람 위에 기록하리라.

 

 

12절의 내가 그 사람위에 내 하나님의 이름과 ... 또 나의 새 이름도 그 사람위에 기록하리라, 라는 구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위에 기록한다는 것은 이마에 새긴다는 것으로 해석을 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영문성경을 봐도 on의 문어체인 upon을 쓴 것으로 봐도 그렇구요.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긴다는 것이 마음에 새긴다는 의미인건 이마에 새긴다는 의미이건 혹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의미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인을 받는 것이고, 또 그 인을 받는 시점이 계시록 7장과 9장, 14장을 비교하면서 보면 전삼년반이라는 사실이며 그 기간끝에 들림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대환란에 들어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결국 이것은 빌라델비아교회에게도 말씀하셨던 환란의 때에 지켜주신다는 계시록3장의 10절의 말씀과 동일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이 14만4천과 빌라델비아교회는 같은 무리요, 같은 교회이며 인을 받은 성도임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 14만 4천명의 이마의 친 인은 그 인 치는 시기가 어느 한정된 기간임을 말씀해 주고 있다. 1절에서 '땅의 사방의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한 후' 인치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면 언제 이 같은 일이 있게 되는 것인가? 9:14절에서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는 명령이 내려질 때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⅓을 죽이는 세계적인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 전쟁은 바로 7년 환난 중, 후3년 반에 들어가면서 일어나는 전쟁이기 때문에 천사에 의해 쳐지는 인은 7년 환난 직전에 있을 사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구원받을 온 세계 인류들에게 구원의 약속만 해 두었다가 이 시기에 일시에 그들의 이마에 구원의 인을 쳐준다는 것인가? 그러면 그때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이미 죽은 성도들의 구원의 인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정말 예리하고 논리정연함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문을 제가 한번 풀어 보겠습니다.

 

 

14만4천이 이마에 인을 맞는 시기는 전삼년반입니다. 그 이유는 9장2절부터 11절까지는 전삼년반의 상황인데 특히 2절과 3절사이에는 3년의 시간이 있습니다. 이 3년의 시간중에 그러니까 메뚜기가 올라오기 전인 이 성도들의 때인 한때와 두때와 반때에 천사에게 인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적그리스도도 자신의 때인 후삼년반, 마흔두달에 666으로 인을 치려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3절에 나오는 메뚜기는 그 가증한 모습을 그려봤을 때에 바로 데살로니가후서2장3절에 나오는 배도하는 자들이라고 분별하고 있습니다.

 

 

(3)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서는 그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나서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리라.

 

 

이 구절은 앞서 언급했었지만 상당히 여러 가지 뜻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순서적으로도 계시록9장의 전삼년반 상황과 너무도 일치합니다. 배교하는 일이 있고나서 멸망의 아들이 드러난다고 하는 것은 계시록9장11절에 아바돈이며 아폴루온이라고 하는 명칭을 가진 깊은 구렁의 천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천사가 바로 옛뱀이며 용이며 이 사탄이 바로 문제의 적그리스도에게 자신의 권세를 주는 것입니다. 결국 이 아바돈이요 아볼루온의 등장은 멸망의 자식이 등장한다고 하는 그 구절을 만족시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계시록9장 11절을 보면,

 

 

(11) 또 그들에게는 자기들을 다스리는 왕이 있으니 끝없이 깊은 구렁의 천사요,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아바돈이며 헬라어로 그의 이름은 아폴루온이더라.

 

 

사탄과 적그리스도, 그들이 합한 이름이 바로 파괴라는 뜻을 가진 아바돈이요, 아볼루온인 것입니다. 전삼년반 끝 무렵인 11절에나 가서야 그 이름이 거론이 됨은 이 적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시기가 바로 전삼년반의 끝무렵임을 은연중 암시해 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여섯째 나팔은 님이 분별하셨다시피 후삼년반, 즉 마흔두달기간임을 말씀하셨는데 동의하는 바이고 저도 그렇게 분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분별하신 후삼년기간중에 삼분의 일이 죽는 전쟁이 발발할 거라고 하셨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자료라 패스하겠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전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성도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재앙의 시기입니다. 바로 성도의 순교가 일어나는 때인 것입니다. 이 사건이 바로 계시록 6장 다섯째 봉인에 나오는 그 순교자들이 배출되는 그런 학살입니다.

 

 

그리고 7년환란중 전삼년반의 환란은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그런 류의 환란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창조이래로 다시 없을 환란이란 것은 바로 후삼년반에 일어날 대환란입니다. 전삼년반은 성도의 때이며, 그 시기에는 적그리스도가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가, 바로 그가 활동하는 때인 후삼년반에 모습을 드러내어 이 때로부터 그의 무자비한 통치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가 마흔두달시기이며 그의 마각을 드러내는 시간대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원의 인을 전삼년반에 맞는 것은 14만4천뿐입니다. 나머지 성도들은 인을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14만4천, 즉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아직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교인들은 구원이 완성된 후에, 즉 승천하거나 휴거된 이후, 어느 때엔가 받을 것으로 분별하고 있습니다. 이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어떻게 성도에게 차별이 있을 수 있느냐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상이 사람들에게 깊숙이 박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수준에 깊고 얕음이 있듯이 상급에도 크고 작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구원받는 시기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계시록의 마지막장인 22장에 간략히 나와 있습니다.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모든 사람이 아니고 각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결코 차별이 아니고, 믿음대로, 말씀대로, 또한 계명을 잘 지킨자와 그렇지 못한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이요, 항상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공의인 것입니다. 제가 만약 상급을 받지 못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만 주어진다고 해도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만큼 그 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감히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과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 7:3절에서 인 침 받은 자의 대상이 나온다.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라고 했다. 인 침 받은 대상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물론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도 '하나님의 종들'로 불려질 수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란 말은 분명히 일반 성도들을 일컫는 표현이 아니다.

 

여기서 신학을 했다는 분들의 독단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종들과 일반 성도들을 구별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진실을 말하자면 신학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앞에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지키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종인 것 입니다. 그들이 바로 14만4천이요 빌라델비아교인들이란 얘기입니다. 보십시오. 계시록1장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라. 이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에게 주신 것이요, 그의 천사를 그의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니라.

 

 

이 구절에 나오는 그의 종들을 일명 신학을 한 사람들로만 분별하겠다는 것인데 님의 논리에 의한다면 이 계시록은 하나님의 종들만 보는 것이 되겠습니다. 또 그렇게 되면,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누가복음12장

 

(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계시록6장

 

이 말씀도 신학을 한 양반들에게만 해당 되겠습니다.

부탁인데 한정되고 막혀있는 사고를 버리시고 열려있는 사고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시기를 건의 드립니다. 옳고 바른말은 받아 들이기에 쓰디 쓴 법입니다.

 

 

ⓔ 7:4절에서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만 4천이니'라고 했다. 이 말씀은 14만 4천의 대상의 기준을 밝혀 내는 일에 대단히 중요한 계시다. '이스라엘 각 지파'란 분명히 전 세계적인 모든 교회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데 인 침 받은 대상이 '이스라엘의 각 지파'가 아니라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라고 했다. <중>이란 말은 '그 가운데서'란 말로 모든 대상을 지칭하는 표현인 것이 아니라 모든 대상에서 특별히 '그 가운데서 뽑아 낸 자들'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 모든 교회가 그 대상인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선발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 그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자격이 계14장에 별도로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훌륭한 분별력이십니다. 미처 제가 생각지 못한 부분도 짚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하자면”의 밑에 부분은 동의할 수가 없음을 앞절에서 말씀드렸습니다.

 

ⓕ 7:9절에 보면 '흰옷을 입은 큰 무리'가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이 곧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 해당된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14만 4천의 무리와 이 '흰옷 입은 큰 무리들'을 한 대상으로 해석하지만 그같은 잘못된 해석은 14만 4천명을 모든 교회의 성도들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흰옷 입은 무리들과 연결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습니다. 14만4천과 흰 옷입은 무리는 같은 무리가 아님은 글을 읽을 줄 안다면 삼척동자라도 알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곡해하는데 있어, 특별히 이 계시록을 읽고 연구하는 성도들을 유치원생 이하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첨언을 하자면 이 흰옷입은 무리는 후삼년반의 대환란중에 순교한 주의 백성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후삼년반이 끝나고 나서 승천한 모습을 기술해 놓은 것입니다. 전삼년반에는 십사만사천이 인을 받아 들림을 받았고, 후삼년반에 순교성도들이 승천하여 구원의 대열에 끼어 천상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7장은 구원얻은 성도들에 대한 것을 기술한 장이요, 다섯째 나팔과 여섯째 나팔에 삽입되어야 할 삽입장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