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계시록관련/계시록풀이 연관 관련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문제 2-2

by 디클레어 2011. 1. 11.

 

3. 14만 4천을 잘못 해석한 데서 오는 착오 요한계시록에 있는 어느 한 사건의 잘못된 해석은 다른 사건에서 또 다른 착오를 가져오기 때문에 연쇄적인 영향을 가져오게 된다.

 

14만 4천을 전체적인 교회의 성도들이란 해석 때문에 찾아오는 착오는 요한계시록의 해석을 혼돈 속으로 몰아 넣게 된다. 첫째로 7:9절의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오는 '흰옷 입은 큰 무리'들을 14만 4천명과 동일 인물들로 해석하는 잘못을 초래하고 있다. 9절은 '이 일 후'에 사도 요한이 다른 계시를 본 것으로, 이 계시는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빼 낸 14만 4천명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각 지파를 의미하는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총망라한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왜 14만 4천과 '흰옷 입은 큰 무리들'을 동일 인물로 해석하게 됐는가 하면 14만 4천의 무리들을 모든 성도들로 해석하다 보니 흰옷 입은 큰 무리들도 동일 인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습니다.

 

둘째로 계9:4절에는 첫째 화를 당할 피해 대상자가 나온다. 그런데 그 대상자에 대하여 '오직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이라고 명시해 주고 있다. 만약의 경우,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14만 4천명의 무리들이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로 단정 짓는다면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자들'이란 자연히 성도들이 아닌 불신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14만 4천의 무리가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아니라 '그 중에서 인 침 받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라면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이란 불신자들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이 아닌 일반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흰옷 입은 큰 무리들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해석상의 차이는 요한계시록 해석에 큰 문제로 대두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첫째 화로 나오는 이 '황충이 화'는 사단이 하나님의 교회에 가하는 최종적인 시험의 기간이요 핍박의 기간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 피해자가 교회가 아니라 사단 편인 불신자라고 해석하니 납득할 수 없게 된다.

 

훌륭하십니다.

 

다음 세 번째로 계14:1절에는 하늘의 시온산에서 14만 4천명의 하나님의 종들이 어린양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곳에 그들의 다섯 가지 자격 요건이 나와 있다. 이 자격은 결코 구원받은 일반 성도들의 자격이 아니며 이들은 이미 순교한 후, 부활하여 하늘의 시온산에 올라가 있는 자들로 해석해야 한다. 만약 7장의 14만 4천명이 하나님의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라면 그들이 언제 부활 승천하여 하늘의 시온산에서 이 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인가? 아직도 지상에서는 종말적인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데 교회는 언제 천국으로 옮겨졌는가?

 

가지 오류가 발견되어 피치 못하게 다시 반론을 펼칩니다. 아주 올바른 해석을 해 나가시는 가운데 14만4천이 순교한 후 부활 승천한 성도라고 하셨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이들은 순교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바로 시기에 대한 개념인데, 아직 그 개념이 덜 잡혀있으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첫 순교자는 님께서 유브라데전쟁으로 알고 계시는 후삼년반의 시작에 죽임을 당하는 바로 삼분의 일이라는 성도의 숫자입니다. 이 때가 후삼년반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14장을 다시 잘 정독하셔서 읽어 보시면 14만4천은 순교성도가 배출되기 이전에 이미 시온산에 있습니다. 이 시온산은 하나님의 보좌앞입니다. 기술되어 있는 순서를 잘 묵상하십시오.

 

(1) 또 내가 쳐다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 위에 서 있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더라.

 

(2) 또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천둥 소리와도 같더라. 또 내가 하프 타는 자들의 하프 소리도 들었노라.

 

(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 같은 것을 불렀는데, 땅에서 구속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외에는 그 노래를 배울 사람이 없더라.

-계시록14장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떤 일이 펼쳐지는 가를 읽어보십시오.

 

(9) 셋째 천사가 그들을 따라가며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표를 자기 이마나 손에 받는다면

....

 

(13) 또 내가 하늘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는데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록하라,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니라. 이는 실로 그들은 자기들의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요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따를 것임이라."고 하시니라.

 

바로 이 때 후삼년반의 순교가 시작이 되는 겁니다. 이 시기부터 순교, 즉 성도들이 죽는 일이 발생된다는 얘기입니다. 그 이전, 즉 전삼년반에는 누구도 죽거나 순교한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또 이 14만4천이 萬若(만약) 순교해야 한다면 빌라델비아교회에 말씀하셨던 시험의 때에 너를 지켜주겠다는 그 약속이 물거품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信實(신실)한 약속이 한갓 거짓말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뜻하기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14만4천과 빌라델비아교회를 같은 성도로 보고 있을 때의 가정이긴하나 아시아의 일곱교회와 계시록전체의 성도에 관한 말씀을 살피고 상고한다면 이 가정은 누구나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진실로 확연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4. '14만 4천'에 대한 세대주의 견해 14만 4천에 대한 문제는 개혁주의 견해와 세대주의 견해가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세대주의적 견해를 빠트릴 수 없다. 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14만 4천명을 유대인들로 해석한다.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뿐인데 그들이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나온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만 4천이니'란 말씀에 그 근거를 둔다. 14만 4천에 관한 세대주의 종말론의 잘못 세대주의 신학에서는 구약은 말할 것도 없고 신약에서도 이스라엘이란 단어를 육적 이스라엘과만 연결시킨다. 그러나 구약의 이스라엘은 영적인 면을 제외하면 분명히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이나 신약에 와서는 이스라엘이란 말의 영적인 의미가 표면화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이스라엘이란 단어가 물론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목도 더러 있지만 영적 의미에서의 교회를 가리키는 경우가 더 많다(롬2:28,28. 롬4:16. 롬9:8. 갈3:26-29. 갈6:6).

 

지극히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첫째로 시기적으로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때가 아니다(슥12:10). 인치는 시기는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전쟁을 억제하는 때이다. 이 때는 유대인들이 적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야로 영접하여 환영하는 시기가 된다.

 

그렇게 보아도 무방하며 전체의 틀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43)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너희가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는도다. 만일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영접하리라.

-요한복음5장

 

이 말씀을 근거로 유대인들이 적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야로 영접하여 환영하는 시기가 된다라고 하신 것 같은데 이 말씀은 분명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는 말씀이 맞긴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로 보아 예수그리스도를 받아 들이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는 지금의 이스라엘 땅, 즉 자칭 유대인들이라고 불리우는 자들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니엘과 계시록13장과 17장을 상고하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설명을 해서 올려놓은 글이 있지만 생략하고 성경에 있는 구절들을 옮겨놓기만 하겠습니다.

 

(8) 그러므로 그 숫염소가 매우 강대해지다가 강하게 되었을 때 그 큰 뿔이 꺾였으니, 이는 두드러진 뿔 넷이 하늘의 네 바람을 향하여 나왔음이라.

 

(9) 그 중 한 뿔에서 작은 뿔 하나가 나와서 남쪽과 동쪽과 아름다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10) 하늘의 군대에 이를 만큼 커져서 군대와 별들 중에 얼마를 땅에 던지고 그것들을 짓밟더라.

 

(11) 정녕, 그는 자신을 군대의 대장에게까지 높였으며, 그로 인하여 매일 드리는 희생제도 없어지고 그의 성소의 처소도 허물어졌도다.

 

(12) 한 군대가 그에게 주어져서 죄과로 인하여 매일 드리는 희생제도 반대케 하며 그 숫염소가 진리를 땅에 던지고, 마음대로 행하며 번성하였더라.

-다니엘8장

 

(3)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으나,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니 온 세상이 기이히 여겨 그 짐승을 따르더라.

-계시록13장

 

(8)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앞으로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나와서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 또 땅 위에 사는 자들, 곧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앞으로 나타날 그 짐승을 보고 놀랄 것이라.

 

(9) 지혜 있는 생각이 여기 있으니 일곱 머리는 그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10) 일곱 왕이 있는데 다섯은 패망하였으나 하나는 남아 있고, 또 하나는 아직 오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오면 잠시 동안 머물러야만 되리라.

 

(11) 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그 짐승이 여덟 번째지만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계시록17장

 

이 구절들을 연구하면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글을 옮기기에는 너무 길어서 역시 pass하겠습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에게 인쳐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

 

그렇습니다.

 

셋째로 지금 이스라엘에는 지파 관념이 전혀 없다. 왜 그런가? 그들은 지금 모계 혈통(母系血統)으로 유대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혈통은 부계 혈통이며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완전히 부계 혈통이어야 한다. 예수님 당시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대인들의 멸시를 받았던 이유는 그들의 혈통이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을 유대인이라 부르지 아니했으며 그들에게는 지파 관념도 전혀 없었다. 지금 유대인들은 그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의 혈통보다 더 혼합되어 있으며 잡종(雜種)중에서도 잡종의 종족을 이루고 있는 민족이 유대 민족이다. 그들에게서 12지파를 찾아낸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12지파는 영적인 의미가 주어져 있으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교회를 말한다. 교회의 성도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교회의 온전한 수효를 12지파로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라 넘어갑니다. 마지막결론인 하나님의 교회의 온전한 수효를 12지파로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라는 것에 대해 동의를 표합니다.

 

다음에 7장을 설명해 주는 계14장에서 이들의 자격 요건이 결코 육적 이스라엘을 의미해 주고 있지 않고 있다. 다음에 12지파의 배열과 이름으로 보아 영적인 의미가 다분히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된다. 구약적 서열 (르으벤,시므온,레위,유다,스볼론,잇사갈,단,갓,아셀,납달리,요셉,베냐민)과 7장에 나오는 서열 (유다,르으벤,갓,아셀,납달리,므낫세,시므온,레위,잇사갈,스블론,요셉,베냐민)은 다르다. 유다 지파가 르으벤 지파보다 앞서 있다. 단 지파가 빠지고 모낫세 지파가 들어가 있다.

 

감사합니다. 쐐기를 박아 주셨습니다.

 

5. '14만 4천'은 과연 누구인가? 14만 4천의 올바른 해석은 본문과 요한계시록 전체에 연계된 사건을 문장적으로 면밀히 분석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 이들의 인 침 받는 기간과 인 침을 끝내는 기간이 나타나 있다. 7:3절에서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는 말씀은 이들에게 인치는 시기를 말해 준다. 이것은 1절에서 언급해 주고 있는 네 천사에 의해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불지 못하게 억제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면 네 천사가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불지 못하게 억제함으로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고 한 내용의 재앙은 무엇인가? 이 문제와 연루된 사건이 계9:14절에 나온다.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⅓을 죽이기로 예비된 자들이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 사건은 세계 인구의 ⅓을 살상하는 유브라데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14만 4천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유브라데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인으로 인 침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인 침 받는 일이 끝나면 얼마 안 가 결박한 네 천사를 풀어 주는 일로 이 땅에 곧 유브라데 전쟁이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전체적인 부분에서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앞절에서 잠깐 언급을 했습니다만, 세계의 삼분의 일이 죽는 전쟁은 적그리스도의 군대와 하나님의 성도간에 벌어지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이 총칼을 들고 벌이는 육적전쟁이 아닌, 믿음을 시험받고 연단하는 영적전쟁이기에 성도와 비성도를 포함한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이 멸절되는 그런 전쟁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순서에 대해서는 곧,“그러므로” 이하의 순서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 이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선발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에 의한 새로운 사명자의 선발 대상자이다. 유브라데 전쟁은 중동 지역에서 인류의 종말에 일어날 수 있는 세계대전이다. 그러나 이 전쟁이 억제 당하고 있는 이유는 14만 4천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을 선발하시기 위해서다. 유브라데 전쟁은 7년 환난 중반 경에 일어나는 세계대전이므로 14만 4천명이 그 이마에 인 침 받기까지는 절대로 이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14만 4천이 등장하고 그들에 의해 예언의 사역이 끝나는 날이면 곧 유브라데 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유브라데전쟁을 세계 제3차대전정도의 전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 후에 나오는 해석들이 모두 오류를 포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전쟁이 7년환란중반에 일어나는 전쟁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후삼년반시작에 성도들의 순교가 비로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을 유브라데전쟁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다시피 이 전쟁은 적그리스도입장에서는 일방적인 학살이고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하나님께서 보시고 있는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계시록14장13절에서 보듯 오히려 성도들이 승리하는 것이며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입니다.

 

그러면 왜 이들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 쳐주시는 것일까? 그들에게 하나님의 종들로서의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사도 요한에게 주신 '다시 예언'하는 사역으로 발전한다. 계10:11절에서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 예언은 사도 요한이 하는 예언이 아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이 계시를 받고 얼마 안 가 죽었다. 그가 한 일은 밧모섬에서 받은 계시의 내용을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로 써서 그 사자들에게 보낸 일일뿐, 다시 예언하는 사명을 이루지는 않았다. 이 일은 계11장에서 사도 요한을 대신한 두 증인에 의해 성취하게 되는데 이들 두 증인이 14만 4천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과 연관된다. 왜냐하면 두 증인이 적 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하자 곧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가 놓여 둘째 화인 유브라데 전쟁이 발발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다시 한번 오류를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은 십사만사천과 두 증인을 같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십사만사천은 전삼년반, 즉 한때와 두때와 반때에 활동을 하는 성도이고, 두 증인은 계시록11장14절에 보듯이 마흔두달, 즉 후삼년반에 활동하는 성도들입니다. 이 14만4천과 두 증인이 같은 시기에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봐야 한다면 계시록14장에 시온산에 있는 14만4천과 두증인이 같이 후삼년반시작에 시온산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두 증인이 죽어 있어야하는 사흘반이란 시기에 오류가 생겨버립니다. 이 사흘반은 삼년반의 기간으로서 후삼년반이 끝날무렵에 승천하는 것이기에 두 증인과 14만4천을 같은 성도로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14만4천은 오히려 계시록12장의 한때와 두때와 반때에 광야로 피하는 여인으로 보는 것이 옳으며 그렇게 보는 것이 시기적으로도 오류가 없습니다.

 

이 광야란 하나님의 보살핌이 있는 곳이며 주님께서 산들로 도망하라(마태복음24장16절, 마가복음13장14절)고 말씀하신 그 산(시온산)을 뜻하기도 합니다. 받을 만한 분은 받으십시오.

 

ⓒ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선발은 계10장에 나와 있고 7:9절 이하에 나오는 흰옷 입은 큰 무리들의 선발은 계11장에 나와 있다. 10:8절 말씀에서 주님께서 사명자에게 작은 책을 갖기를 원하신다(계1:3). '펴 놓인 책을 가지라'는 명령을 받게 되고 이에 사명자는 '작은 책을 달라'고 하여 받아먹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을 받아먹은 사명자는 입에는 달지만 먹은 후 배에는 쓰게 된다고 하셨다. 달다는 말씀은 사명을 받았을 당시의 소망과 상급에 대한 기쁨을 의미하며 쓰다는 말씀은 적 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할 것을 가리킨다.

 

작은 책을 받아먹은 종말적 사명을 받은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 의해 작은 책에 대한 예언이 전세계적으로 전개하게 되는데 이 기간이 7년 환난 중, 전 3년 반이며 이 기간 동안에 회개하여 흰옷 입은 큰 무리가 형성되어 나오게 된다. 이들은 이 기간에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을 의미하며 이들이 대 환난을 피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예비처로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계7:9, 14, 16-17).

 

전체적인 개념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으실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이라 하면 일단 성경적인 의미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얘기합니다. 이들이 바로 계시록6장에 다섯째봉인을 떼었을 때 나타나는 순교한 혼들이며, 계시록12장17절에 한때와 두때와 반때의 여인이 들림받은 후에 여인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이기도 합니다. 앞서 얘기한 바 있지만 바로 이 한때와 두때와 반때의 여인이 14만4천이며 이 여인의 씨가운데 남은 자들은 11장의 두 증인이며 곧 후삼년반에 사흘반동안 죽어있는 성도들입니다. 님께서 사명자라고 주장하시는 십사만사천과 두증인을 같은 성도로 혼동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적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에 의해 작은책에 대한 예언이 전세계적으로 전개될거라고 하셨는데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런식으로 복음사역을 전개해 나가지 않으십니다. 말씀하신대로 전삼년반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성경 어디서도 전삼년반에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한때와 두때와 반때가 전삼년반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로 표현된 어디를 봐도 그리고 전삼년반이라고 생각되는 어느 구절을 살펴도 그러한 것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가장 확실한 예로 다니엘 12장을 보겠습니다.

 

(4) 그러나, 오 너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그 말씀을 닫고 그 책을 봉하라. 그 때에는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릴 것이요, 지식이 증가하리라." 하더라.

 

이 때는 한때와 두때와 반때인 전삼년반입니다. 뭐라고 이 사람이 얘기합니까, 그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지식이 증가하리라,라는 말씀 뿐입니다. 이것은 지금으로 치면 미디어의 발달과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세계에 일어날 일을 알 수도 있고, 또 사람들의 지식이 늘어난다고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인터넷의 발달 때문에 계시록의 해석이 날로 완성을 향해 치닫게 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전에는 만나서 해야 할 일들이 지금은 안방에서 컴퓨터자판으로 실시간으로 지식을 주고 받게 되었으니까요.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리고 예언은 누가 한 두마디 해서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예정하심과 택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헛된 사람의 일일 뿐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믿는 성도들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는 자라 하더라도 성경의 예언이라고 얘기하면 콧방귀끼는 사람들도 있고 믿지 않더라도 예언이라하면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는다고 하는 그들 가운데 단지 삼년반만에 아니 그 개인들로 치면 사흘반도 안되는 기간일텐데, 전한다고 받아 들이겠습니까, 받아 들이기 힘들 거라는 것은 조금 생각해보면 초대교회에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봐서라도 알 일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명자를 쓴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인 것이고, 실은 바로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받아 들이지 않으면 내일 하늘이 두쪽난다고 해도 듣지 않을 사람들은 듣지 않습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전삼년반만에 회개하여 흰옷입은 큰 무리를 형성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해석이 되는지는 제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면 님께서 말씀하셨던 사명자라는 것은 바로 교회(에클레시아)를 얘기하는 것이며, 특히나 먼저 말씀을 깨달은 자들을 얘기한다고 봐야 하는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 이들에 대한 정확한 해석의 반증은 계14장에 나와 있다. 계14장은 14만 4천명으로 나오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자격 조건과 이들이 전3년 반기간에 전 세계적으로 전한 작은 책의 예언의 내용(영원한 복음)이 나오고 곧 후3년 반인 대 환난의 도래와 추수 심판에 대한 장면의 계시가 나온다. 이들의 자격 조건이 다섯까지로 나와 있다.

 

이상은 윗 구절들에 말씀드렸으므로 그것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첫째,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고 했다. 여기 있는 여자는 계17장에 나오는 '음녀'로써 진리에서 떠난 교회의 집단(협의체)을 의미한다. 둘째,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했다. 사람을 따르지 아니하며 음녀 기구를 따르지 아니하며 적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셋째,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했다. 여기서 구속이란 부활을 의미한다. 처음 익은 열매란 부활의 순서인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성도들 중, 부활의 첫 열매로 첫째 부활자를 의미한다. 이들은 순교의 사명을 가진 자들이다(계20:5. 고전15:22)).

 

구속이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이고 속해 있다라는 것이지 부활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또 처음익은 열매란 부활의 순서가 아니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한 것과 구원이 완성된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14만 4천은 순교하지 않고 살아서 들림받습니다. 그들이 죽는다는 것은 성경어디에도 기록된 적이 없습니다. 두증인은 14만4천이 아니며 이들은 후삼년반에 죽임당하는 순교성도들입니다.

 

넷째, '그 입에 거짓말이 없는 자'라고 했다. 진실한 종들을 종말의 14만 4천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로 쓰신다(마24:45-46). 다섯째,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했다. 거룩함으로 자기를 단장하는 자들이다. 양 무리의 본 된 행실로 양 무리를 인도하는 자들이다. 순교의 각오와 소망을 가지고 그 날을 기다리는 자가 아니면 이 같은 요건을 갖추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란 어렵다. 이들이 하늘에 있는 시온산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은 그들이 이미 계11장의 사역을 마치고, 순교한 후 부활하여 하늘 보좌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양무리의 인도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양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성령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게 하는 일이 바로 성령하나님의 역할이며, 이 성령님은 또 혼자 단독으로 그 일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바로 아버지하나님과 어린양의 뜻에 따라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13)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 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 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일어날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

 

(14) 그 분이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 분이 내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임이라.

-요한복음16장

 

지금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이, 아니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르는 지역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저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새로 태어나서 자란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많이들 그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합니다. 언제쯤 주의 날이 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주를 영접하지 않으면 어떤 기적을 일으킨다 해도 그들은 받아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누가복음 16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31)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기를 '만일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비록 누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다 해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니라.' 하니라."고 하시니라.

 

삼년반만에 수없이 많은 성도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단지 꿈일 뿐입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때라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종말에 그의 백성들을 환난에서 건져내시고 적 그리스도의 권세와 싸울 수 있는 순교적인 종들을 새롭게 뽑으신다. 종말에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을 분별하시는데 알곡과 쭉정이로 나누신다. 먼저 하나님의 종들부터 알곡 중에서 쭉정이를 걸러 내시는 작업을 하시는데 이 일이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역사가 된다. 물론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작은 책의 비밀을 전하지 않은 악한 종들은 그 대열에서 떨어지게 된다. 또 이들 14만 4천에 의해 성도들을 분별하게 된다. 이들이 다시 예언하는 복음을 받아 드려 어린양의 피로써 희게 씻는 회개를 한 슬기 있는 처녀들과 회개치 못한 미련한 처녀들로 나뉘어지는데 슬기로운 처녀는 알곡으로 대 환난에서 보호를 받게 되지만 미련한 처녀는 쭉정이로 대 환난 가운데 떨어져 무서운 재앙 가운데서 회개하게 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앞에 있는 것들과 大同小異(대동소이)하기에 넘어갑니다. 그런데 쭉정이는 마귀가 심은 것입니다. 그 쭉정이가 재앙가운데서 회개하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쭉정이는 악인들이며 성도들을 시험들게 하고 괴롭히는 역할이며, 대환란중이라고 하면 믿는자들을 고발하고 핍박하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또 이 존재들은 계시록14장의 포도송이들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즙틀에 밟힐 자들인 것입니다.

 

14만 4천명이 사명을 받는 순서는 이러하다.

 

㉠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7장에서 천사에 의해 그 이마에 인 침 받으므로 사명자로서의 권능을 받게 된다.

 

따로 사명자로서의 권능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믿는 자라고 한다면 하나님말씀을 상고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해야 할 일을 그에게 깨우쳐주실 것입니다.

 

㉡ 이들이 10장에서 작은 책을 받아먹고 예언 전파의 사명을 받게 된다.

앞절과 같습니다.

 

㉢ 이들이 11장에서 1260일간의 전3년 반 기간 동안 다시 예언하는 사명으로 전세계적으로 주 재림의 복음을 전한다.

 

일천이백육십일은 주님 부활승천한 이후의 교회시대를 말하는 것이며, 전삼년반은 한때와 두때와 반때입니다. 따라서 주 복음을 전하는 일은 은혜시대인 일천이백육십일이나 전삼년반기간인 한때와 두때와 반때나 시기에 상관없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 이들은 적 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한 후, 첫째 부활자가 된다. (계11:12. 계20:4).

 

14만4천은 순교하지 않고 살아서 들림을 받으며, 여기서는 처음 언급하지만 결론을 내리자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이 십사만사천과 후삼년반에 순교한 성도, 그리고 주님재림시 휴거된 백성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세열매가 바로 첫째부활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 이들은 하늘의 시온산에 올라가 새 노래를 부르며 주 재림의 날을 기다린다(계14:1-5).

그렇습니다.

 

㉥ 이들은 주님과 함께 하늘의 백마 탄 군대로 아마겟돈에 내려온다(계2:26,27. 계19:14,15).

 

감사합니다.

 

㉦ 이들은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입은 자들로 종국적으로 승리한다(계17:14. 고전15:23. 유14).

 

이상 십사만사천에 대한 두 번째 문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단원에서는 십사만사천과 두증인을 혼동하셔서 많은 오류가 발견이 된 것 같습니다. 판단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하시겠지만 아무쪼록 현명한 판단하시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