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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여섯번째

by 디클레어 2011. 1. 19.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

 

(6) "주의 재림과 교회의 휴거"

 

문제1.

 

공중 휴거의 견해 공중 휴거(空中携去)란 말은 살전4:17절에서 나온 말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의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일에 대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이 말씀을 한문으로 간략하게 나타내는 방법으로 공중으로 이끌어 올린는 뜻의 '공중 휴거로 표현한다. 어떤 신학자들은 공중 휴거에 대한 언급이 성경에 오직 한 곳에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문자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 곳에 있건 열 곳에 있건 분명한 문장으로 언급되어 있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온당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점 일획도 오류가 없고 잘못된 표현이 없으며 가하거나 제해야 할 부분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공중 휴거에 관한 종말적 계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

.

 

정말 옳은 분석이며, 제대로 성경에 기초한 말씀으로써 감사드립니다.

 

(1) 공중 휴거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 개혁주의 신학의 종말관은 '역사적 전 천년설'과 '무 천년설'의 2대 지류(支流)로 나뉘는데 역사적 전 천년설에서는 교회의 공중 휴거설을 문자대로 인정하고 있다. 휴거의 시기에 대해서는 주님의 재림 직전으로 보고 있는데 휴거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신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교회의 공중 휴거를 전적으로 부인한다. 무 천년설 자가 교회의 공중 휴거를 인정한다면 그것은 이미 무 천년일 수가 없다. 공중 휴거는 전 천년설을 전제로 성립될 수 있는 종말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2) 공중 휴거에 대한 세대주의 신학의 입장 공중 휴거에 관한 한, 세대주의 신학에서는 그 입장이 너무나도 분명하고 너무나도 확고하다. 이들의 휴거설은 '7년 환난 전 휴거'로 일관한다. 이들이 이처럼 7년 환난 전 휴거설을 절대적 사실로 주장하는 이유는 그들의 세대주의 신학에 근거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교회 시대와 7년 대 환난 시대(세대주의에서는 7년 대 환난이라고 부른다)를 구분한다. 교회 시대는 7년 대 환난 직전까지로 규정하고 7년 기간은 교회와는 상관이 없고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한 회복기간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교회의 7년 대 환난 전 휴거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교회의 휴거 기간은 7년간이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와 함께 지상에 내려온다는 시나리오다.

 

 

너무 많은 분들이 이 세대주의 휴거론에 빠져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확신을 갖고 있는 근거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몇몇 세대주의목사들이 그것을 주장하고 있고 또 그것에 대해 성경에 몇가지 근거를 들이대고 사실이라고 하니 확인작업도 해보지 않고 그저 믿는 것이지요. 하기사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계시록연구부터 해야 하니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잘못 이끌어 가고 있는 세대주의사역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꾸중을 들을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며, 또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고 있는 자들 또한 칭찬받기는 힘들겠지요. 제가 자주 인용하는 주님 말씀중에 이런 말씀을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1) 그때 주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 있으리라!

 

 

(2) 이런 어린 자들 가운데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보다 차라리 연자 맷돌을 자기 목에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더 나으리라.

-누가복음17장

 

 

이 말씀은 실족하게 하는 자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실족하는 자가 발생한다라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이끄는 자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잘못 따라가는 자도 실족할 수 있다라는 것이니 그 끌려가는 자, 또한 어떤 핑계도 할 수 없다, 라는 말씀이 되겠지요. 억울해 하지 않으려면 하나님말씀을 연구해서 스스로 알아 내라는 말씀도 되겠습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당연한 일이구요. 그런 사람이 뜨거운 신앙을 가진 것이기도 한 것이겠지요.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한 점, 한 획도 부족하거나 어긋남이 없습니다. 하나님말씀을 올바로 알지 못하면 결국 손해는 본인이 진다는 것입니다.

 

 

 

2. 공중 휴거의 성경적 근거공중 휴거의 성경적 근거는 물론 살전4:17절에만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공중 휴거를 뒷받침해 주는 여러 성경적 근거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습니다.

 

(1) 공중 휴거의 성경적 근거

 

ⓐ 살전 4:17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 살후 2: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그 앞에 모인다는 말은 어느 한 곳에 집결되는 상태로 살전4:17절의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말씀과 한 맥이 된다.

 

ⓒ 마24:15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살후2:1절에서 언급한 그 앞에 모임에 관한 일을 천사들이 맡는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다.

 

ⓓ 단12:11-12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1290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1335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1290일은 유대인들이 환난을 당하는 기간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보다 30일이 많은 기간이며 1335일은 75일이 더 많은 기간이다.

 

후3년 반에서 75일이 더 지나야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 왕국이 도래할 것이란 말씀이 된다. 그러면 그간의 75일간은 후3년 반기간 지난 후의 기간으로 이 기간은 일곱 번째 대접 심판을 내리시는 최종적인 심판의 기간과 천년 왕국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의 기간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기간이야말로 교회의 공중 휴거기간이라고 받아드려 진다.

 

 

 

1290일은 삼년반의 기간인 마흔두달을 日數(일수)로 풀어놓은 날짜에 한달이 더해진 날짜입니다. 따라서 후삼년반인 1260일중 남은 30일은 전삼년반으로 물려 들어가야 하는 날짜로 봐야 할 것입니다. 왜 뒤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앞쪽으로 들어가야 하는가의 이유는, 멸망케하는 가증한 물건은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그가 들어서고 나서부터 1290일이라고 했으므로 그가 들어선 날짜를 후삼년반 시작으로 잡게 되면 후삼년반 기간이 삼년반이 넘어가 버리기 때문에 정해진 날짜가 초과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흘반동안 죽어있는 두증인의 기간에도 오류가 생기게 되는 것이구요, 따라서 앞으로 30일을 보내는 것이 오류가 없다는 것이지요. 일견 이것은 오히려 마흔두달기간이 넘는 것 처럼 보여 오류처럼 보이지만 짐승인 적그리스도는 한이레의 기간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받기 때문에 전혀 오류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등장은 앞서 잠깐 얘기한 바가 있지만, 마흔두달이 시작되기 한달 전 쯤에야 알 수 있다고 말씀드렸던 것은 바로 이 날짜 계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1335일이 끝나는 날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살아 있던 성도들은 주님 재림시에 휴거가 되기 때문에, 복이 있다는 말씀을 그 구절에 해 놓으신 것이구요. 그 차이인 1335-1290= 45일간은 하나님의 진노가 땅에 쏟아지는 기간으로 보아야 전체적인 흐름에 오류가 발생되질 않겠습니다.

 

(2) 공중 휴거는 왜 있어야 하는가?

 

ⓐ 세대주의 종말론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시험의 때'를 7년 대 환난 기간으로 보기 때문에 성도들은 7년 대 환난이 이르기 이전에 공중으로 휴거 되어 공중에서 7년간의 '어린양과 함께 혼인 잔치'를 치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그들의 주장은 전 3년 반의 기간이 대 환난 기간이 아니라 두 증인의 예언 기간으로 앞으로 올 후 3년 반의 대 환난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지시기 위한 최종적인 은혜의 기간임을 간과(看過)한데서 온 잘못된 주장이다.

 

그리고 '시험의 때'로 나타난 후3년 반의 대 환난 기간에도 하나님께서는 공중에서 그의 백성들 보호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예비처에서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계시해 주고 있다. 이 지상에 인류의 역사가 존속하고 있는 한, 하나님의 보호처는 지상에서 이루어진다. 어린 아기 예수가 헤롯왕의 표적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어린 예수를 하늘로 끌어 올려 하늘에서 보호하신 것이 아니라 애굽으로 피하게 하여 그곳에서 헤롯왕이 죽기까지 보호해 주신 사실을 찾을 수 있다(마2:13-21).

 

 

 

사실 먼젓번 글에서는 전삼년반과 후삼년반 구분없이 7년대환란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번 글에서는 또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기도 하지만, 한가지 세대주의자들의 7년환란전휴거주장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하겠습니다.

 

ⓑ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공중 휴거는 대 환난과의 관계가 애매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개혁주의 신학의 역사적 전 천년설이나 무 천년설의 경우, 전3년 반과 후3년 반의 구분이 명백하지 않다. 말하자면 7년 환난 기간을 상징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인류의 종말에 있을 대 환난 기간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대 환난 기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가에 대한 해답을 내릴 수 없다. 말하자면(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성도들은 이 지상에서 모든 인류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지상에 내리는 재앙이나 환난을 고스란히 겪어야 한다. 이 같은 상태가 주의 재림 시까지 계속되어야 하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비로소 공중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어찌보면 이 해석이 세대주의자들의 7년환란주장보다는 훨씬 더 성경에 근거를 둔 해석이라고 하겠습니다.

 

세대주의나 개혁주의나 이 같은 해석들은 비 성경적이며 성도들에게 대 환난에 대한 공포를 심어 줄뿐 주 재림에 대한 소망을 줄 수 없다. 그 무서운 환난을 고스란히 겪은 연 후에야 공중 휴거로 주님을 영접한다고 하니 종말에 있을 전쟁이나 적 그리스도의 등장으로 인한 짐승의 표, 기근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 등을 일정한 기간도 없이 모두 겪어야 한다면 이에 대한 두려움이 왜 없을 것인가?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계시록에 계시된 종말적인 재앙이나 대 환난이나 적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핍박 등을 실제 상황으로 보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몇가지 인정할 수 없는 주장도 있으나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수용할 만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 공중 휴거가 있어야 할 이유 전 3년 반은 두 증인의 '다시 예언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이 기간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 대한 회개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전개된다. 이 기간은 하나님의 교회에 반드시 있어야 할 기간이다. 이 기간은 대 환난 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피난처나 공중 휴거가 필요치 않다.

 

 

이 기간에 대한 말씀은 앞서 한 많은 글들로 대신하겠습니다.

 

1260일간의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이 끝나면 두 증인은 첫째 부활로 하늘로 승천하게 되고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후 3년 반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보호하심을 받게 된다. 이 후3년 반의 보호는 공중이 아니다. '하나님이 치시는 장막'이라고 하였고(계7:15)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라 하였고(계12:6)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는 곳'이라고 했다(계12:14).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곳에서 후3년 반기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된다.

 

 

전삼년반이나 후삼년반에 두증인이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반부인 한때와 두때와 반때에 두증인이 사역하는 기간인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앞서 했던 얘기지만 14만4천과 두증인은 같은 사역을 하지만, 구분을 하자면 14만4천은 전삼년반에 하나님의 인을 맞아서 시온산에 거하게 되고, 두증인은 인을 맞지 않은 관계로 후삼년반의 대환란에 들어가 순교를 하게 됩니다. 님께서 이것만 제대로 분별하신다면 계시록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여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님은 그동안 쌓은 경험과 knowhow로 계시록해석의 파급력이 저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시기를 기대합니다.

 

후3년 반의 정점(頂点)은 주의 재림이다. 주의 재림은 일곱 대접 심판 중 여섯 번째 대접에서 이루어진다. 여섯 번째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을 때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는데 적 그리스도의 전 군사력이 아마겟돈에 집결하게 되며 이때 적 그리스도가 최종적으로 이스라엘에게 환난을 주게 된다(마24:15. 단12:1. 슥14:1-5). 계19:11-21절에 언급된 주의 재림은 바로 이때 있게 된다.

 

 

그렇습니다.

 

여섯째 대접 심판으로 주님의 재림이 있은 후 곧 일곱 번째 대접 심판이 오게 된다. 그런데 이 일곱 번째 대접 심판은 다른 심판인 것이 아니라 바로 짐승의 표를 받아 사단의 백성으로 확인된 모든 인류들과 인간의 죄로 더럽혀진 이 지구 자체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이기 때문에 이 심판은 두렵고 놀라운 재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날을 요엘 선지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했다(엘2:3). 베드로는 이 날에 대하여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다(벧후3:10).

 

 

큰 틀에서 동의합니다만, 약간 착오가 있으신 듯 싶습니다. 일곱 번째 대접이 부어짐으로 해서는 대지진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대지진은 바로 아마겟돈전쟁터를 만드는 역할도 하게 되는데요. 이 때에 일어나는 지진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런 구절들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바로 너무도 엄청나서 사람이 땅에 거주한 이래로 그처럼 강력하고 큰 지진은 일찍이 없었더라.라는 계시록16장 18절 말씀을 볼 때, 또 20절에, 그러자 모든 섬이 사라지고 산들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라는 구절들을 통해서입니다. 여섯 번째 대접은 악한 영들과 짐승들과 그의 군대가 아마겟돈에 모이는 것이고, 일곱 번째 대접은 대지진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해석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대지진으로 아마겟돈전장이 세워지는 것이고 주님께서 재림하시면서 그 곳에 모인 악의무리를 진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1절에

 

 

(21) 또 무게가 각기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 위에 떨어졌는데, 사람들은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모독하니 이는 그 재앙이 심히 크기 때문이라.

-계시록16장

 

 

이 구절은 비록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쏟아지는 재앙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또 이런 구절들에서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주님 재림이 완료되고 난 이후에도 살아남은 비성도들이 있음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은 주님의 심판으로 그 죄의 경중에 따라 천년왕국에 참여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고( 이들은 바깥 어두운곳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권능으로 아마겟돈전장에 모인 짐승의 무리들을 멸망시키는 장면은 19장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주님 재림하시기 바로 전에 바로 14만4천과 두증인인 순교성도와 주님 오실 때까지 살아 남아있던 성도들의 마지막휴거가 일어날 것입니다. 바로 이때 바울사도께서도 말씀하셨던 자던 자가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들려올라 간다는 휴거가 실행된다는 것이지요. 이들이 바로 주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순서가 조금 뒤바뀐다해도 그리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이미 큰 사건들은 마무리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6장에는 여섯째 인을 떼는 사건으로 말씀해 주고 있는데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간다'고 했다(계6:12-14). 지구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은 일곱 번째 대접을 쏟는 사건을 언급해 주고 있는 계16:17-21절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이 같은 심판은 지구 자체의 파멸이기 때문에 지상에는 피난처가 존재할 수 없다. 부득불 지구 밖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여기서 공중으로 끌어올리는 공중 휴거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므로 공중 휴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하나는 주님을 영접하는 장소가 공중이란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최종적인 피난처로서 공중으로 휴거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것에 공감하고 동의하고 또한 생각할 부분을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구자체의 파멸이라고 하셨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듯 싶습니다. 그건 이런 말씀들에서 한번 추론해 보겠습니다.

 

 

(10) 온 땅이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평원처럼 바뀔 것이요, 예루살렘은 높여져서 그 곳에 사람이 거하게 되리니, 베냐민 문으로부터 첫째 문 자리와 모퉁이 문까지와, 하나느엘 망대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데까지라.

 

 

(11) 그 안에 사람들이 거하리니, 더이상의 파멸은 결코 없을 것이며 예루살렘에는 안전하게 사람이 살리라

-스가랴14장

 

 

여기서 주의 해서 봐야 할 것은 바뀐다는 부분입니다. 온 땅이 파멸되어 버리고 다시 땅을 만드셔야 한다면 이러한 말씀들이 서야 할 자리가 마땅찮아 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본 말씀들 가운데 계시록21장에서도 한번 보겠습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

 

 

이 계시록21장은 천년왕국이 끝나고, 사탄이 심판을 받고 또 모든 악인들이 불못에 들어가고 나서 승리한 주의 백성들에게 내려오는 하나님의 선물, 즉 예루살렘성에 관한 이야기이며, 영원한 천국의 시작을 알려주는 장입니다. 그런데 이 새하늘과 새땅이전에 또 새하늘과 새땅이 있어야 한다면, 두 번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물론 이사야서65장이나 66장, 그리고 베드로후서3장에도 새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만 그 뜻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 이 땅을 말하는 것이고, 천년왕국도 지금 이 땅과 같은 형질이긴 하지만 죄악으로 물들어 있는 이 땅은 이제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있는 살아있는 생수의 강물로 인해 변화되게 된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것에 대한 정확한 말씀들을 찾아 볼 수는 없기에 단언하긴 힘듭니다만 새 하늘과 새땅을 두 번 만드신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라는 생각에 의구심이 생깁니다. 끝으로 말씀한가지 보고 이 의문은 마치겠습니다. 이 문제는 연구가 필요할 듯 보입니다.

 

 

(8) 그 날에는 생수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솟아나서 그 절반은 앞 바다로 그 절반은 뒷 바다로 흐르리니, 여름과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스가랴14장

 

 

바로 이 생수가 죽어있던 땅들을 되살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사야서43에 있습니다.

 

(18) ○ 너희는 이전 일들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들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나리라. 너희가 그 일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정녕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들을 내리라.

 

 

이사야서에 보면 죽어 있는 땅인 사막을 살리시고 에덴동산처럼 만드신다라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41장이나 51장등에도 그런 말씀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형질이 완전히 다른 새 하늘과 새땅은 천년왕국이후에 예루살렘성전으로 봐야 할 것으로 보이고, 주 재림하시는 날에 일어나는 천재지변은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는 하겠지만, 땅이 파멸된다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재앙으로 보입니다. 베드로후서3장의 말씀들의 의미파악이 힘들기는 하지만 일단은 이것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3. 공중 휴거는 언제 어떻게 있게 되는가? 공중 휴거는 주님의 재림과 함께 있을 것이며 일곱째 대접 심판이 있기 직전에 있을 것이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31).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 시 천사들을 보내서 천사들로 택하신 자들을 모은다는 말씀인데 이 같은 모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란 말씀과 연결되는 말씀으로(살후2:1) 이 말씀은 곧 살전4:17절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라'는 말씀과 한 맥이 된다.

 

그렇습니다. 동의 합니다.

 

휴거의 방법은 '끌어올리신다'고 했다. 우리는 계14:14절 이하에서 인자 같은 이가 이한 낫을 가지고 곡식을 거두는 모습이 나오고 그 후에 그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져 넣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먼저 곡식(알곡)을 거두어 드리는 모습이 성도들의 공중 휴거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낫으로 곡식을 거두는 계시록14장의 구절들은 후삼년반에 순교한 성도들을 거두는 장면입니다. 해석에 동의 합니다.

 

끌어올리는 일은 주의 영이 하는 역사이다(행8:39. 고후12:2. 겔3:14-15). 우리는 휴거 장소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공중'이란 사실만 알고 있다. 공중이란 표현은 '궁창'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궁창을 하늘이라고 말하고 있다(창1:8). 하늘은 광대무변(廣大無邊)하다. 우리는 공중을 지구와 아주 가까운 장소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날에 일어날 지구의 폭발은 지구 가까운 공중에 존재하는 물체까지도 그 뜨거운 열기에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계15:1-4절에서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진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 재앙이야말로 하나님의 진노가 마쳐지는 재앙으로 2절에서 이 재앙을 피하여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들이 일곱째 대접을 피하여 공중으로 휴거되어 하늘 그 어디에서인가 머무르면서 생활하는 성도들의 모습일 것이다.

 

 

계시록15장의 유리바다에 있는 성도들은 계시록14장에서 예리한 낫으로 추수가 된 순교성도들입니다. 이들의 믿음 또한 14만4천과 함께 하나님의 보좌앞에서 깨끗함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바로 이들이 두 번째 열매가 되겠습니다.

 

4. 휴거의 대상과 휴거 성도의 형체

 

휴거의 대상이 되는 성도는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자'가 될 것이다. '그 택하신 자들'이라고 했다(마24:31). 이들은 창세 전부터 어린양의 생명 책에 기록된 자들이다(계20:15).첫째로 예비처에서 후3년반 기간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될 것이다(계12:6). 다음에 유대인들의 남은 자들이 될 것이다(슥14:2). 이들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회개의 은총을 받아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슥12:10. 롬 11:26-27).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유대인들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피난처로 피하게 될 것이다(욜2:32. 슥4:5. 사4:2-6).

 

그리고 이들이 일곱째 대접 심판을 피하여 공중으로 휴거 될 것이다. 세 번째로 대 환난을 통과한 성도들이 될 것이다. 이들은 미련한 처녀들로 세속적인 생활 속에 잠겨 있다가 대 환난(후 3년 반)을 맞이했기 때문에 당연히 대 환난 중에서 회개하게 된다(마25:10. 계11:13. 계12:17). 하나님의 은혜로 후 3년 반의 대 환난 중 생존한 자들은 마땅히 일곱 번째 대접 심판에서 유월 하게 될 것이다(마24:22). 이들 세 종류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의 구원의 은혜도 동일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도 동일하다. 유대인들은 천년왕국에 육체로 들어가고 성도들은 변화된 몸으로 들어간다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이나 일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은 성경의 기초적인 구원론 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변화 받아야 한다면 다같이 변화 받아야 하고 변화 받지 않는다면 다 같이 변화 받지 말아야 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허물어지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지체로서 하나가 된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복음이 전파되기 전 구약 시대에 있는 사건이 아니라 복음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이 무너진 신약 시대 마지막에 있는 사건이다. 그리고 휴거시 성도들의 몸은 육체를 가진 상태의 몸 그대로를 가지고 휴거 된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그 성경적 증거는 이렇다. 살전4:17절에 나오는 성도들의 휴거는 직접적인 공중 휴거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말씀인데 성도들의 몸이 변화된다는 말씀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고전15:51절의 변화는 주 재림 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시기인 백보좌 심판 시에 일어날 사건으로 이 사건은 주 재림의 시기와는 무려 1천년간의 시기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고전15:50-54).

 

데살로니가전서4장17절의 시기와 고린도전서15장 50절이하의 말씀들을 같은 시기로 보지 않는 것에 대해 의아함을 가집니다. 바울은 어떤 글에서도 천년왕국이후를 설명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용하신 이 구절 말고 다른 구절이 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이 구절은 제가 보기에 명백히 주님 재림하실 때의 상황입니다.

 

만약 성도들의 공중 휴거시 변화 받게 된다면 무 천년설이 된다. 천년왕국의 존재가 필요치 않는 것이다. 천년왕국은 변화 받은 성도들이 거주할 곳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성도들이 살아갈 곳이기 때문이다. 땅에 거하는 몸은 육체의 몸이다. 자손의 번식은 육체를 가진 인간만이 가능하다. 천년왕국 마지막에 또 한번의 심판이 있게 되는데 이것은 천년왕국에서 번식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천년왕국의 생활은 땅을 개간하여 땅의 식물을 먹고 살아가는 육신적인 생활이므로 변화나 부활한 몸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솔직히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아직 저도 확실히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안에 거하는 주의 성도들도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은 전부터 제가 가진 의문이기도 합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천년왕국에 대한 말씀들을 볼 때에 아이가 존재함으로 인해 낳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들림을 받는 변화된 몸으로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로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이후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명백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이 땅에서의 삶 중에, 계시록20장에 보면 천년왕국이후에 곡과 마곡전쟁을 일으키는 사탄이 바다모래같이 많은 자들, 즉 땅의 사방백성을 모아 예루살렘거민들과 전쟁을 일으킨다라는 구절을 보았을 때, 여기 언급된 땅의 사방백성들은 분명 아이를 낳고 키우는 그런 족속들일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들에서 많은 혼란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므로 오해하고 있도다” 라는 말씀대로 오해하기도 싫고,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할 수도 없고 해서, 저는 제기하신 의문에 대해 새하늘과 새 땅문제와 마찬가지로 두 손을 들겠습니다.

 

 

답을 제시하기는 커녕 오히려 의문만 늘려 드린 것 같아 이번 장에서는 죄송함을 느낍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비밀로 하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비밀을 풀어내는 많은 주의 종들이 대한민국에서 수 없이 많이 탄생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이번 핵심문제는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