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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종교관련

<무신론자의 첫 성경읽기>

by 디클레어 2010. 1. 15.

<무신론자의 첫 성경읽기>

 

우선 개인적인 내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내 종교는 전 세계 65억 인구 중 가장 많은 이들이 갖고 있다는 그것.  그래, '무교'.

 

실은 결혼전수녀가 되려고 하셨던 어머님 탓에 나역시 모태신앙을 지녔고중학교,1중반(?)때까지 천주교 신자라기 보다는 성당을 다녔다그러나 그건 내 의지가 아닌 어머님의 의지였고사춘기를 보내며 머리가 조금씩 굵어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일요일에 늦게 일어나고 놀고 싶었지어떤 무엇에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았다.(아마도 자유분방한 성격은 예전부터 그러했던 것 같다.)

하지만어머니를 상대로그것도 어머니가 가장 중시하는 천주교에 관련한 내 의견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킬 수가 없었기에(사실 특별한 의견견해가 있다기 보다는 그저 가기 싫다였으니...) 반항의 개념으로 '주일미사 거부투쟁에 돌입한다.

적들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그래서 난 주로 좀 비겁하지만 '도망'이라는 방법을 많이 쓰곤 했다.

이 방법은 그냥 그 시간대에 주위에서 사라져주면 되는 것으로 목적달성을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으나 그에 따른 후폭풍은 감수해야 하는 그것이었다.

3남매 중 막내였던 한 놈만이 유독 혼자서 어머님에,가정에,하느님에 '개김'을 실행함으로써거 참...일요일만 되면 나때문에 집안 분위기 흐려놓는 경우가 좀(?) 아니상당히 많았다.

 

...이젠 그 못된 호로자식이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간다.

그리고 시간이 헐렁하니 이것저것 접하는 것도 많아지고 새로운 것도 많이 알게 된다.

~~!  神은 없구나!!

됐다나는 이제 어머니를 설득할 수 있고논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내게 종교에 대한 강요를 포기하셨다.

더불어 나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성당을 가지 않았다.(지인의 결혼식장례식을 빼고)

종교와 관련해서는 천주교기독교 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불교나 토속적인 토테미즘샤머니즘에 오히려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실제 믿음이나 종교생활 말고 관념적으로 말이다.

 

유럽서구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라고 말해도 아마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독 궁금증이 많은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성경'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종종 발동되곤 했는데 그때마다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포기하곤 했다.

중간에 김규항님의 <나는 왜 불온한가>라는 책에서 간혹 일반인들이 읽으면 좋을 성경책 같은 것을 소개하기도 했었는데 너무 내용이 많고 힘들 것 같아서 아직 리스트에만 모셔져 있다

아주 예전에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라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서적을 읽은 것이 성경과 관련된 책읽기의 전부였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지난달 저자의 홈피에서 <예수전>을 출간했다는 말을 듣고서는 아주 기뻤다.

적어도 다른 신학자들의 성경 해석보다는 저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성경은 왠지 편협함 없이 또 나같은 무신론자들에게도 커다란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목차부터 예사롭지 않다주제별 구분이 아니라 마가복음(마르코복음)의 나열로 머리말 다음에 그대로 제12,.....16장으로 씌여져 있다난감하다보통 목차먼저 보고 내용을 가늠해보는 습관이 있는데...그 짓을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실은저자 역시 처음에는 그러하지 않으려 했다고 밝히고 있다하지만그동안 많은 성경예수관련 책들이 저자 자신의 주장과 관점을 나열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로 성경구절을 인용하는 방식은 예수의 뜻을 설명한다기 보다는 작자의 생각과 주장에 예수의 말씀을 이용한다는 측면이 있어 먼저 순수히 성경구절을그리고 나서 저자의 해석과 설명을 덧붙이는 강독하는 형식이다.

참 반갑다나같은 성경에 문외한인 사람이 읽어보기에 딱 좋다.

우선 성경구절을 그대로 읽을 수 있어서 그 행간의 의미를 혼자 생각해 볼 수 있고또 친절히 저자의 해석과 의견이 있어서 그것 역시 음미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조금 신경써야 할 부분은 바로 성경구절이다책장마다 앞에 빨간 글씨로 마가복음 성경구절을 그대로 옮겨 놓았는데나처럼 성경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한번에 머리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실은 그래서 이 책은 다 읽고 나서 바로 다시 한번 처음부터 읽어보았다.

 

한 권의 책을 사서 읽은 즉시 다시 처음부터 읽은 책은 아마도 <예수전>. 이것이 유일할 것이다.

저자 역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성향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읽으면 아마도 많은 실망(?)을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책은 부디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되다 읽고 나서 마가복음 성경을 한번 직접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나 역시 저자에 대한 일방적인 애정으로 인해 그동안 그의 글의 문체와 사뭇 다른 점을 보고 실망아닌 실망을 했으나그 역시 독자에게 책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한 의도된 것이므로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나처럼 성경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예수의 공생애 기간(...아마도 선각자가 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부활할때까지 총 3?)동안의 그의 행적들을 볼 수가 있고그 시대적 상황을 동시에 알아 볼 수 있다.

내 개인적인 <예수전읽기의 과정은 성경 구절에서 사용하는 단어 하나한국 교회에 대한 보편적인일반적인 궁금증(예컨데 감리교예수교...또 잘 생각안남등등 교파?) 등등을 책을 읽으며 주변의 기독교 신자인 지인에게 묻고묻고를 반복하면서 진행되었다그 과정 또한 쏠쏠한 재미였음을 밝힌다.

그 지인은 성경을 처음 접한 내게 전도의 의미를 느껴 즐거울 수 있었을테고나는 책을 읽으며 궁금한 것을 그때 그때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 속에는 역시나 그동안의 김규항님이 그토록 혐오하는 '위선'에 대한 반감도 엿볼 수 있다.

다만 그 정도가 기존의 글과 책속의 것과 조금 다를 뿐...

역시 그 시대에도 어김없이 저자가 혐오하는 위선적 행동의 주인공이 있었나 보다

그 주인공인 '바리사이인'(로마 괴뢰 세력에 저항하며 이스라엘의 현실과 미래를 고뇌하며 실천하는 사람들그러나 젤롯당처럼 목숨을 걸고 로마세력과 싸우는 세력도 아니고에세네파처럼 성전 지배세력과 절연하고 금욕적 공동체 생활을 하지도 않는 적당한 열정과 적당한 순수함으로 삶의 안정과 사회적 존경을 받았던 사람들.....지금으로 말하면 지식인계층시민운동가뭐 그정도 말할 수 있겠다.)에 대하여는 예수조차 '위선자'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으며 논쟁을 벌였다고 설명한다예수 역시 '랍비'라 불리우는 어찌보면 '바리사이인'들과 매우 가까운 사회적 정체성을 지닌 동지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과연 왜 그랬을까?  저자는 이에 대하여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비판이 반드시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며, '그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세력'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시대의 바리사이인들은 기득권층으로 이성적으로는 올바른 사회의식과 양식있는 행동을 행했으나 절대로 현실의 변화를 원치 않는, '진정한 변화를 막기 위한 변화라는 그들의 본연의 임무를 지속했다고 평한다.

좀 더 풀어 설명하자면지배세력의 폭압에 '혁명'이라는 커다란 불길로 번지는 것을 바리사이인들의 적당한 사회개혁 실천을 통해 차단하고 인민들의 변혁의지를 중화하는 이른바 체제의 안전판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이웃사랑과 관련하여 내것과 남의 것의 철저한 분리즉 엄격한 사유재산 제도를 기본 정신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예수의 이웃사랑과 적대적인 사회체제이며자본주의에 적응하고 지지하면서 예수의 이웃사랑을 실천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설명한다자본주의는 예수의 이웃사랑과 적대적인 사회체제이며그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려는 사회주의의 기본 정신이 예수의 이웃 사랑에 닿아있다고 말이다.

예수의 이웃사랑은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며 진정한 기독교인은 '선량한 자본주의자'가 아니라 특별한 '사회주의자'라는 것이다또 우리가 쉽게 알고 있는 것으로 '부자가 천당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라는 구절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또 이렇게 옮겨 썼다고 레드컴플렉스에 걸린 이들에게 반감을 살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주 인상적인 구절임에는 틀림없다누구도 오늘날 한국 교회의 기복종교 현상에 대해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진정으로 예수의 삶을 따라 충실히 사랑을 나누는 모범적인 교회와 목사도 많겠지만우리가 아는 대형교회의 권력화와 세습화 그리고 사회적 부조리 등 기독교의 폐해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분명 예수의 삶을 따르는 현세의 행동은 아니지 않는가!  

심각한 레드컴플렉스에 걸린 이들의 반감이 무서워서 그 주저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와 같이 예수의 말씀을 접하지 못한 이들이 한국사회의 교육현실 속에서 무의식중에 자리잡게 되는 자본주의적 사고와 사회주의에 대한 자동적 적대감으로 인해 이 책을 선택함을 져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참으로 의미있는 독서였고의미있는 예수와의 만남이었다.

영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적고 싶지만그건 나중에 그동안 퍼오곤 했던 김규항님의 글을 통해서 간직하련다.

내가 그동안 yes 블로그에 리뷰를 쓰면서 별 10개를 준 책은 단 한권.. 리영희 교수님의 '대화이후로 두번째 별 10개가 탄생했다물론 이번에 날린 10개의 별은 기술한 바와 같이 내게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책이기에 그러하다.

 

처음으로 연달아 두번을 읽고 난 지금...

아마도 어머님께 '저 마가복음을 다 읽었어요~!' 라고 말하면 굉장히 기뻐하실 것 같다.

그리고 예상되는 답은 '이제 성당 다녀라~!' 일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느꼈느냐고 물어보면 참 좋을텐데 말이다.

나역시 어머님 못지 않게 기쁨을 느낀다.  

 

무신론자의 첫 성경과의 만남예수와의 만남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젠 마음이 조금 바뀌었는가?

神은 이제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가?

스스로의 물음에 답한다.

 

"아니요!"

나는 여전히 '무신론자'이다.

그러나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예수의 삶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았다머리속에 있던 부활이니 오병이어 이적이니치유 이적이니 하는 것 등에 대한 내 생각과 견해는 예수를 이해하는 본질적 접근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것을 느낀 것 하나만으로도 아주 커다란 소득이다.

 

예수를 아는 이와 전혀 모르는 이모두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예수전>을 펴라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