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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계시록풀이 연관 관련

현재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모으셨는가에 대한 논쟁

by 디클레어 2011. 5. 7.

 

여기 히브리어를 어느 정도 아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시니까, 확인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위의 본문에 사용된 단어는 하찌로 반절이라는 단어이고, 중간에라는 뜻으로 쓸려면 미토크가 사용되었어야 합니다. 이 그릇된 번역으로 말미암아 적그리스도가 처음 3년반 동안에는 아무런 예배 금지도 하지 않다가 중간부터야 금지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생겨났습니다. 후 삼년반, 세때반 의 끝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세때반후에 세상이 계속된다면 그 세때반은 후삼년반이 아니라 전 3년반일 것입니다.

 

┗ 디클레어 10.10.23. 23:56

하토브님 위에 하신 말씀중에, 오류 종말론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 책임 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는 그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윗글에 제가 제안한 것에 대한 것을 풀어 해답을 보이신다면 그 말씀 받아 들이겠습니다.

 

하토브 10.10.24. 01:35

저는 매우 큰 확신 위에 큰 확신으로 전체 윤곽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느브캇네잘왕의 시대에 오늘날의 계시록 논쟁이 벌어져서 엉터리 예언자들 해석자들은 작두위에 목을 올려놓고, 맞추는 사람은 큰 상급을 준다고 하였더라면 오늘날 수많은 해석가들은 감히 도전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몇 몇 엉터리 용감한 자들은 목이 짤렸을 것입니다. 저는 그때에도 당당히 확신하는 바를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해석은 주님 앞에 책임질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계 8장 1-2절에서 반시쯤 하늘이 고요하던 때를 예수님 십자가 당시로 보는 것이 특이하지 않습니까?

 

하토브 10.10.24. 01:38

저는 여기 올려지는 여러 글들을 대충 보고 있습니다만 매우 쉽게 포착할 수 잇는 모순들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계 12장에서 예수를 낳은 여자가 쫓겨나서 3때 반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이 1260일이라고 누누이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십자가부터 종말까지가 1260일이라는 뜻입니다. 3때반이 종말 시점에 있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3때반은 은혜시대 직후에 옵니다. 그리고 그 세때반 이후에 주님의 재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남은 자손과 용이 싸우므로 후삼년 반이 아니라 전삼년반입니다. 또 사흘반 또한 짐승이 무저갱에서 올라와 성도와 전쟁하여 이긴 이후에(계 11:7) 있으므로 이 또한 전 3년 반입니다. 마흔 두달도 마찬가지

 

시크릿가든 10.10.24. 02:15

하토브님의 견해에 <일부동감, 일부이견>입니다^^

먼저 본구절에 사용된 명사 "헤치"는 하토브님의 견해가 맞다고 봅니다.

이 단어의 본질적 의미는 본래 "절반"이 맞고, 구약에서 100회 이상 사용되었지만 거의 모두 바로 "절반"의 의미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좀더 확실히 한다면..

"헤치"는 원래 동사 "하차"에서 온 것인데

이 "하차"는 원래 "둘로 분리하다, 나누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동사입니다.

특히 이 동사가 "인생의 반을 살다"라는 의미가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시55:23).

 

시크릿가든 10.10.24. 02:17

다만 개역한글(개역개정)에 "그 이레의 절반에"로 되어 있어서 원문번역에 가깝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본래 개역한글은 미표준역(ASV)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인데

ASV에서도 역시 "in the midst of the week"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역한글 역시 이것을 "그 이레의 절반에"로 번역했을 뿐이므로

결국 의미는 역시 "그 이레의 절반에 (이르러서)" 가 됩니다.

(즉, 전치사 "in" 이 사용된 영어번역은 모두 원문에 충실치 못한 번역이고

개역한글 역시 바로 이 "in"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답글 시크릿가든 10.10.24. 02:20 따라서 정말로 제대로 된 영어번역은 RSV, NRSV, 그리고 BBE ver. 로 보아야 합니다.

RSV(NRSV)-->"and for half of the week"

BBE ver.-->"and so for half of the week"

그리고 또한 2005년 천주교 새번역성경도 분명히 "반 주간 동안은"으로 정확히 번역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번역이 정확하다는 KJV도 그렇고, 또 제가 신뢰하는 번역인 Darby Trn. 과 YLT 에서도 모두

"in the midst of the week"로 번역되어 있음은 좀 유감스럽긴 합니다) 

 

하토브 10.10.24. 03:09

저는 새번역을 살펴보지 않았는데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새번역이 적어도 번역원칙에서는 정확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탕원문을 잘못택하는 점은 로마 카톨릭의 속성상 어쩔수 없을 것입니다. 시크릿 님의 조심스러운 접근 방식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토브 10.10.24. 03:49

다비 YLT 마저도 여기서 나가 떨어졌다고 분별됩니다. 별도의 전치사가 없고 그냥 하치만 나와 잇습니다. 또는 미토크라는 중앙에, 가운데에, 라는 전치사가 사용된 것도 아닙니다.이런 사례들로 보면 그 시작점이 어찌되었든 반주간이 맞습니다. NRSV 가 여기서 문자적 번역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토브 10.10.24. 03:13

디클레어님은 제가 늦게 읽어서 지적하지 않았습니다만 올려놓으신 글들이 서로 모순되는 점이 잇습니다. 홀로코스트 유대인 희생자 수가 벨기에의 증언을 들어 150만이라고 하는가 하면 제리 골든을 들어서 이스라엘 대법원 건물이며 등등이 로스챠일드 가문의 지원으로 지어졌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런데 제리 골든의 사이트로 들어가면 600만 희생이 당연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로 모순 되는 주장을 하여도 내가 필요한대로 짜깁기를 한다면 아전인수밖에 안나올 것입니다. 유대인 150만 희생 주장은 아랍 테러단이나 네오 나치 등이 주장하고 아마드쟈네이드 이란 대통령은 아예 그것을 신화로 부인합니다.

 

하토브 10.10.24. 03:16

이와 같이 우리가 무엇을 듣는가? 무엇을 인용할 것인가? 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디클레어님의 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모으시는 것은 언제인가? 의 글에서 에스겔 39장을 풀이할때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세계 열국에 흩으신 다음 돌아오게 하는 시점이 에스겔 예언 직후 바빌론 포로귀환의 때와 천년왕국의 때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해석은 바로 오늘날 19세기 부터 있은 알리야를 부정하기 위한 해석에 불과합니다. 어떻게든 오늘날의 이스라엘의 귀환은 성경에 예언된 귀환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나온 해석입니다. 에스겔 이후 19세기까지 이스라엘이 세계열국으로 부터 귀환하여 더 이상 흩어지지

않도록 하리라는 예언이 성취된 적은 19세기까지 한번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에스겔 직후에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주장은 근거를 상실합니다. 또 천년왕국때에 이스라엘이 귀환하여 안전히 거한다는 주장은 스카랴 서 12장 14장과 모순되거니와 그런 해석 구절을 계시록이나 어디에도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그릇된 해석은 오늘날 우리 자신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옵니다. 또한 우리가 여기에 올려놓은 종말 예언들은 주님 앞에서 판단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간증과 고백, 찬송, 기도의 글들은 얼마든지 용인되며 부족한 능력은 채워주시고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나 예언 해석은 훨씬 더 신중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디클레어 10.10.24. 17:26

저의 입장은 기존에 제가 올린 그대로 입니다. 저는 하토브님이 올리신 스가랴 12장과 14장을 곡과 마곡전쟁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거기는 아마겟돈전쟁이 맞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요. 그대로 일 겁니다. 그 놀라운 글의 이해력을 보였던 하토브님께서 어찌 이리 흔들리시는지요.

 

하토브 10.10.25. 10:22

바로 그점입니다. 스카랴 12장과 14장이 아마겟돈 전쟁이라면, 아마겟돈 전쟁이전에 이스라엘의 귀환은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두번째로는 아마겟돈 이전에 성립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인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록 오늘날의 이스라엘이 제수이트가 건국케 했다느니, 프리메이슨 건물 투성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간구하는 심령을 주시고 긍휼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아마겟돈 상황과 동일한 상황이 곡과 마곡에서도 또 일어납니까? 어디에 곡과 마곡이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는 말이 계시록에 있습니까? 에스겔 39장 25-26절에서도 이스라엘이 회개한다음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먼저 돌아온 다음에 회개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오늘날의 이스라엘이 스카랴 12-14장의 이스라엘임은 분명합니다.

제리 골든의 글에는 600만 살육을 그대로 인용하고 잇습니다.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네오나치들과 아랍권, 러시아 등이고 이란 대통령 아마드쟈네이드는 아예 부인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 이전의 폴란드 주민들의 50% 는 유대인이었고 50% 는 폴란드인들이었다는 것이 폴란드인들의 증언입니다. 아우슈비츠, 다카우 등의 켐프에서만 살육된 사람들이 300만을 넘습니다. 그외에도 무수한 사람들이 살육되었습니다. 아마도 600만을 초과한 수였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soldier 10.10.24. 07:22

참으로 귀한 해석이군요. 저역시 근본주의적인 해석에 머물러 있어서 깨닫지못하고 있는(근본주의,세대적진리에 의한해석)그대로 이해하고 아무런 저항이 없었으나 귀하게 진리의 지식에 접근할 수있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토브 10.10.24. 08:21

다비의 경우 이런 경우에 정확한 번역을 놓친 것은 상당한 실망입니다.또 영스리터럴도 그렇습니다. 특히 영은 곳곳에서 정확했는데 여기서 그렇지 못햇습니다. 오늘날의 다비역은 1880년 대에 다비가 죽고 난이후에 수정되고 삭제된 성경입니다. 이 문제는 독일 학생들과 성경을 비교하다 발견했는데 다비 이후 다비 성경 출판위원회에서 개정위원회의 수정판들을 많이 반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비의 다수사본 원칙에서도 벗어나 네슬알란드가 많이 반영되엇습니다. 원래의 다비역을 어디서 구할수 잇을지는 모르겟습니다.

 

고헌 10.10.24. 09:10

지난번, 처음 하토브님께서 단 9:27 번역 문제를 언급하셨을 때 기존 성경과는 달라 혼동스러웠습니다..그러나 비록 반절의 기간이라고 하더라도 저는 이 기간을 후삼년반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토브 10.10.25. 10:29

9장 27절에서 밝혀진 것은 이레의 절반기간 동안 제사와 예배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그 문장으로는 그것이 전삼년반일 수도 있고 후삼년반일 수도 잇습니다. 이제 7장 21절과 7장 24-25절으로 가봅니다. 21절에서는 적그리스도가 성도와 더불어 싸웁니다. 그리하여 핍박이 시작됩니다. 즉 새로운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전에, 기존에 존재하던 성도들을 싸워 이긴다음 싸움에 진 그 성도들을 핍박합니다. 이것은 환난전 휴거를 부정합니다. 다음으로 그 성도들을 핍박하여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하면서 3때 반이 지납니다.(25절)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등극하여 성도들을 핍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핍박이 진행되는 기간이 세때반으로 분별되는 것입니다(25절). 다음으로 이 상황은 다니엘 8장 13-14절에서 언급하는 2300 주야의 일부임은 분명합니다. 그 2300 주야는 매일 드리는 제사를 금하는 기간이며 성도들을 짓밟는 기간으로 8장 13-14절은 언급합니다.그렇다면 전3년반에는 제사와 예배가 허용된다면, 2300주야를 채울수가 없습니다. 7년은 2420일이며, 예수님은 7년에서 그 기간을 감하지 않으시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므로(마 24:22) 그 날들을 감하시는 기간이 120일로 분별되어 2300 주야만에 적그리스도 지배기간은 종말을 맞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보면 적그리스도 등장직후부터 예배는 금지됩니다.

 

고헌 10.10.25. 16:33

저는 2300주야는 한이레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기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위와 같은 하토브님의 분별은 이미 소개가 된 여러 견해(주석)와는 색다른 접근으로 보입니다..저는 한 때 두 때 반 때를 포함한 거의 모든 기간(1260, 42달 등)이 후삼년반을 가리킨다고 분별하고 있습니다..우선 번역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하시고 몇몇 성경은 하토브님의 주장과 같은 내용이니 좀 더 지켜보고 싶습니다..이 부분의 다니엘 해석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토브 10.10.25. 21:25

1260일을 삼년반과 동일시 하는 것은 계 12장을 놓고 검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2장 5절에서 만국을 다스릴 아들을 낳고 그가 하나님께 올리워진 다음 여자가 도망합니다(6절) 그것이 1260일의 시작입니다. 이 1260일이 종말의 3년반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바로 이 점에서 예수님의 승천이후, 1260일 사이에 2천년의 세월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한때 두 때 반때 (12장 14절)도 종말의 3년 반이라고 믿어진 다면 두 개의 삼년 반이 지나갑니다. 그런 다음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때반이후에, 여자의 남은 자손과 용이 싸우려고 대치상태에 들어갑니다(12장 17절) 즉 후삼년 반이후에도 용과 성도들의 대치상태가 지속되고 아직도 예수님의 강림하심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말이 3년반 (1260일)+ 세때반+ 용과 성도 대치기간= 으로 마치 10년반 기간처럼 들리게 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세 때반을 종말의 시점으로 보고, 1260일은 예수님 승천 직후 시작되는 기간이며, 그 1260일의 끝에 3때반이 온다고 믿으면, 1260일은 2천년 은혜기간으로 미지의 기간을 그렇게 표시한 X 년수가 되며, 3때반 은 전삼년반이요, 그 세때반 이후에 용과 남은 자손들이 대치하는 기간이 바로 후 3년 반이며, 그 후에는 예수님의 강림하심으로 용과 그 일당들이 진멸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어떤이들은 계시록 11장에서의1260일은 12장에서의1260일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종말의 기간이며, 3일반(11장 9절)은 그냥 3일반 장례식 기간이라고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후 3년반도 해석이 안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12장에서 분별해낸 1260일이 2천년 은혜기간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3일반(11장9장)은 전 3년반이며, 그 전 3년반 후에 성도들의 휴거가 있고(11:11-12) 그 휴거가 있은 후에 대지진이 있으며 그 광경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남은 자들(휴거되지 못한 성도들)이 있음을 우리는 보게됩니다(11:13) 그 남은 자들이 셋째 화의 기간( 후 3년반)을 통과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11:14)

 

디클레어 10.10.25. 21:44

훌륭한 분별이십니다.^^

그런데 하토브님, 앞선 글에 댓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저는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는 것을 부정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것을 세울 수 있게끔 허락하셨다고 분별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다니엘과 계시록의 숫자에 관한 것을 올린 것을 푼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요, 제가 왜 그것을 올려놨는지 그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으실 겁니다. 그것을 스스로 풀어내야 숨겨있던 하나님의 비밀이 보입니다. 그것이 가리웠던 눈을 뜨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푸셔야 합니다. 거의 완성 직전이십니다.

 

하토브 10.10.26. 08:22

이 말이 바로 핵심입니다.

""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

그렇다면 언제 하나님이 세우시는 이스라엘이 등장합니까? 오늘날의 이스라엘을 이루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귀환시킨 것은 하나님입니까? 제수이트입니까? 하나님이 귀환 시킬 이스라엘은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디클레어 10.10.26. 09:41

 

제가 거기에 대한 답변은 문제를 푸신 다음에 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스스로 풀어 보십시요. 앞으로 한달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풀지 못하시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이해 못하실 것이기 떄문에 스스로 풀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거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누구나 쉽게 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에는 "그렇지 않는건가?" 라는 의문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하토브님은 거의 도착한듯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신 섭리를 생각하십시요,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 그 크신 하나님의 섭리말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앞에 육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족속을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장자로 선택되었을 뿐입니다. 이 답은 사실은 하토브님이 제시하셨고, 스스로 알고 계시는데 그 의미의 파악이 안 되고 있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무래도 한달은 너무 긴 것같아서 일주일후로 바꾸겠습니다. 그 후에 제가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 안에까지 해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찾지 못하시면 저는 제 임의대로 생각하겠습니다. 이것은 하토브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보여주시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분별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모으신 것인가 아닌가로 카페에서 다뤘던 얘기중에 토론부분을 가져왔습니다. 지금 읽어보니 역시 이런 토론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입장은 변함이 없다는거....

 

느낀점은,

사람이 자신이 가진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인 것이다. 가 느껴지는 토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