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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계시록강해노트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 강해 스물 한 번째 시간

by 디클레어 2011. 8. 11.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 강해 스물 한 번째 시간



계시록 21장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


창세로부터 존재했던 모든 사람이 되살아나 白寶座(백보좌)에 坐定(좌정)하신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의로운 행위를 한 자는 永生(영생)에, 불의한 행실을 한 자는 永罰(영벌)에 처해지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진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요한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새 하늘과 새 땅은 먼저 창조되었던 하늘과 땅과는 질적으로 다른 그런 하늘과 땅일 것입니다. 성경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이 모두 네 번이 나오는데 그것은 이사야서65장17절, 그리고 같은 이사야서66장 22절, 베드로후서3장13절, 그리고 지금 보고 계시는 계시록21장1절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쓰인 것은 네 번중에 두 번은 천년왕국에 들어갈 때 사용하셨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때 쓰인 것 역시 두 번입니다. 먼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때에 사용한 새 하늘과 새 땅이란 표현은 지금보고 계신 계시록21장 1절과 이사야서 마지막장인 66장 22절, 곧,


(22) 주가 말하노라. 내가 만들 새 하늘들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같이 너희 씨와 너희 이름도 항상 있으리라.


이고, 천년왕국에 들어가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이란 표현을 쓰신 것은 이사야65장17절에


(17) ○ 보라, 내가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이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와 베드로후서3장13절,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도다.


입니다. 이것은 文脈(문맥)에 주의하시고 이것이 어느 때인가 하는 시기에 집중하시면서 읽으시다 보면 구별할 수 있으니 여러분께서도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에 들어갈 때에 사용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의 의미는 사탄과 이방인이 주도했던 그런 세상이 아니고, 이제 하나님과 성도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상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여기서 한 가지 더 追加(추가)하자면, 아시겠지만 사람들의 부활은 모두 두 번의 시기에 걸쳐 일어나게 됩니다. 계시록20장6절에서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되다고 했으니, 이 주님재림 때 일어나는 사람들이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요, 그리고 천년이 지난 후에 같은 장 12절과 13절에서 백보좌 심판 때 되살아난 자들이 바로 두 번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바로 이 각각 두 번의 시기에 걸쳐 일어난 자들 중에 영생에 이르는 자도 있을 것이고, 영벌에 처해지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근거구절을 말씀드리자면 다니엘12장2절입니다. 그 구절을 상고해 보면 주님 재림때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는 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나 모두 일어나는 것은 아닌 것을 알 수 있고, 계시록20장에 나오는 백보좌 심판인 두 번째 부활때에 드디어 창조이래로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되살아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두 번째 부활 때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 마가복음12장23절에서 말씀하신 부활입니다. 곧,


(25) 그들이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면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되느니라.


라는 이 말씀의 시기가 두 번째 부활 때를 말씀하신 것이라는 겁니다. 주님말씀대로 그들이 두 번 장가가고 두 번 시집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살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천년왕국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것이라고 20장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꼭 천사들과 같다고 해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림을 받았던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을 상대로 네피림을 낳았던 것을 상기해 본다면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을 해 본다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個人的(개인적)인 추측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건 바로 이런 말씀들 때문입니다. 이사야66장9절입니다.


(9) 주가 말하노니, 내가 생겨나게도 하는데 태어나게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말하노니, 내가 태어나게도 하는데 태를 닫겠느냐?


이 말씀은 비록 천년왕국때에 있을 일들을 말씀하신 것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에서도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신다면 누가 反對(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서는 근거를 찾아보기 어려운 얘기이므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실 지는 아무도 모른다, 라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천년왕국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그 몸의 形質(형질)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리고 장가와 시집을 가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한 오해가 여전한 것 같아 그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말씀드렸으니 여러분께서도 이 부분에 대해 詳考(상고)해 보시기 바라고, 이것을 다시 말씀드리는 이유는 가끔 이 천년왕국과 영원한 천국에 사용한 이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이 같이 쓰였음을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같은 때로 생각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며, 특히 이 계시록과 이사야서의 천년왕국을 연구하시는 분들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절로 돌아와서 바다도 다시 있지 아니하더라에서 말하는 이 바다는, 하나님을 모르거나 거부하는 세상열방이 더 이상 있지 않다, 라는 얘기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성도들과 함께 계시고 말씀을 나누시며, 친히 빛을 비춰주시니 그 분께서 하나님되심을 모를 리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 곳에 들어갈 백성들은 그 분으로 말미암은 자들이기에 더 이상 믿지 않는 자들과 다툴 일도 없기 때문에 바다를 뜻하는 믿지 않는 세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나 요한은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예비되었더라.


사도요한 당시에도 신부는 신랑을 위하여 단장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본 새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을 신부에 비유했을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사는 것이 혹시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분들이 있을까 하여 이사야65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을 잠깐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18절입니다.


(18) 그러나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창조하고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노라.


여기서 注目(주목)해야 할 말씀은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라는 것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며, 그 창조는 또한 성도들을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 분의 창조가 펼쳐질 때 성도들이 느끼는 것은 항상 새롭고 여전히 신비하다, 라는 감정일 것입니다. 그러니 티끌같은 인생들은 하나님의 무한대분의 일도 모르니 그 분을 알기 위해 영원토록 배우며 살아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지루할 틈이 없다는 얘기도 될 것 입니다. 또 지루한 감정을 아예 하나님께서 제(除)해 버리신다면 항상 새롭고 신선하기도 할 것이니, 그런 걱정은 접어두셔도 좋을 것입니다.


(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말하기를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그 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그 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성막은 모세외에는 거의 접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하늘의 예루살렘에 있는 성막은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고,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천국백성 모두의 진정한 하나님이 되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직접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그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두렵겠지만 자꾸 대화하다 보면 적응도 될 것입니다. 이 말이 뜻하는 의미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종이었던 모세급의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충분한 이유도 될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내시며 다시는 사망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이 없고 고통 또한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음이라."고 하더라.


이 예루살렘에 거하게 될 백성들은 이제 다시는 자식이나 부모를 잃거나, 또는 형제 자매를 잃는 슬픔, 친구를 잃고 애곡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사망은 불 못에 던져졌고 죄지은 자들을 가둘 지옥마저 불 못으로 던져져 이제 그곳에는 죄가 존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참여하는 선택받은 사람들은 영원히 살아갈 것입니다.


(5) 또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만드노라."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 말씀들은 참되고 신실하니 기록하라." 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은 지금껏 보며 살펴왔고, 앞으로 살펴 볼 말씀들을 확증해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신실하시고 선한 분이시니 택한 백성들을 위해 말씀하신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는 그 모든 것들을 지키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6) 또 내게 말씀하시기를 "다 이루었노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을 값없이 주리라.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다 이루었노라, 라는 말씀입니다. 아시겠지만 어떤 일에 대해 다 이루었다는 것은 構想(구상)하고 豫定(예정)하고 作定(작정)하신 일들을 모두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슨 일을 다 이루셨다고 하시는 걸까요, 그것은 그 후에 나오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는 것에서 암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알파와 시작이라는 것은 그분께서 天地(천지)를 創造(창조)하시고 이 모든 歷史(역사-history)를 시작하셨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며, 오메가와 끝이라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과 배도자들을 영벌에 처하시고, 음녀를 멸망시키고, 사탄과 그를 따르던 천사들을 영원한 불 못에 던지심으로 말미암아 그 끝을 내셨다는 것이며, 그 분께서 택한 백성들을 데리시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것까지를 모두 이루시고 이루셨고 이루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을 값없이 주시겠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 자들에게는 아끼지 않고 계시록2장28절에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시겠다고 했던 새벽별, 즉 그 분을 주시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가난한자와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바로 생명수 샘을 값없이 받을 자들일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로 이미 그들은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들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고하지 않는 자들이며, 온유한 자들이고, 애통하는 자들이며 자비롭고 마음이 순결한 자들이고, 평화를 위해 힘쓰는 자들이니,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복을 주어 천국백성으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7) 이기는 자는 모든 것을 상속받으리니, 나는 그에게 하나님이 될 것이요 그는 나에게 아들이 되리라.


여기서 이기는 자들이라 함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았으나 그것을 이겨내고 승리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곧 적그리스도를 경배하지 않고 그의 표를 이마나 오른손에 받지 않는 자들이니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그들도 신처럼 된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표면적인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여 신성모독(神聖冒瀆)을 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들이 봤을 때,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다면 하나님이 곧 둘이 된다는 것이니 그들의 정서와 이해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므로 그를 하나님 모독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조금 더 깊이 詳考(상고)하고 이해했더라면, 그리고 주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행하신 일들을 보고 깨달았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살면서 그 분과 대화를 하며 산다는 것은, 그 분과 얼굴을 맞댈 수 있다는 것이므로 한국인들의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긴 하지만, 큰 의미에서 봤을 때, 하나님의 친구이기도 하면서 더불어 아들도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친구라는 것은 그 분과 對話(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만큼, 通常的(통상적)으로 말하는 허물없는 친구라는 의미는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분께서 너희는 친구라고 하셨다고 해서 정말 친구처럼 허물없이 그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신도들 사이에서도 많이 있는데, 그건 아버지의 姓銜(성함)을 함부로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공경하고 사랑해야 하며 또한 두려워해야 할 絶對主(절대주) 하나님이십니다.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가증스런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시더라.


여기서 둘째사망에 들어가는 자들에 대해 알아보자면, 이 8절에 서술되어 있는 자들은 물론이겠고, 창조이래로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 행위로 의로움을 보이지 못했던 자들이고, 음녀와 함께 살아온 자들이며, 따라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자들이고, 배도했던 자들이며, 짐승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마나 오른손에 표를 받았던 자들, 그리고 이사야서에서 보듯 천년왕국에서 태어났으나 저주를 받아 백세이전에 죽었거나, 스가랴서에 보듯 자신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말하며 예언하는 자들이고, 에스겔38장이나 계시록20장에서 보듯 곡에게 미혹을 당해 곡과 마곡전쟁에 참여했던 자들입니다. 그들 모두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이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자들은 첫째 부활때 일어났던 자들 중에 수치와 모욕을 받았던 자들을 포함해서 계시록20장13절에서 일어나 백보좌 심판을 받는 중, 생명책에 그 이름이 없어서 불 못에 던져진 모든 자들을 포함합니다.


(9) 또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득 담은 일곱 호리병을 가진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내게 와서 나와 대화하며 말하기를 "이리 오라, 내가 너에게 신부인 어린 양의 아내를 보여 주리라." 하고


세상을 살아오면서 계시록6장의 검은 말을 탄 천사의 저울에 달려 지옥과 사망으로 먼저 들어갔던 자들도 불못에 던져지고, 마지막으로 그들을 구속하고 있었던 사망과 지옥까지도 불못에 던져지고 난 후에, 어린 양의 신부인 큰 도성 예루살렘, 즉 주의 택한 백성들이 들어갈 장소를 보여주기 위해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나아와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10) 그가 영 안에서 나를 이끌어 크고 높은 산으로 가서 큰 도성 거룩한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가는 것을 내게 보여 주니


드디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큰 도성 예루살렘이 등장하게 됩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이란 개념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 분을 찬양하며 함께 기뻐하며 살아가는 곳을 뜻합니다. 특히 이곳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그 분 자신을 위해 만드신 곳이기도 하고, 또 성도들과의 交通(교통)을 위해 마련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이사야서66장22절에서 만들거라고 하셨던 새 하늘과 새 땅이 드디어 만들어졌고 그 새 땅으로 예루살렘도성이 내려가는 것을 요한이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도성의 광채가 가장 귀한 보석 같고, 벽옥 같으며, 수정같이 맑고


여러분께서는 계시록4장3절에서 요한이 하늘에 열려있는 문으로 올라가서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용모를 보았는데, 그 모습이 벽옥과 홍보석 같으며, 그 보좌를 두른 무지개는 에메랄드같이 보이더라. 라는 말씀을 보고 넘어 오셨습니다. 거기서 보았듯이 하나님의 용모가 벽옥과 홍보석같다는 것으로 보아 그 구절을 근거로 추측을 해보면 그 분의 모습이 보석처럼 투명하고 빛이 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 都城(도성)에서 나는 광채가 寶石(보석)같고, 碧玉(벽옥)같고 水晶(수정)같이 맑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도성자체가 아예 하나님의 榮光(영광)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이 도성자체에 하나님의 빛이 어려 있다는 것으로 보아 그 도성이 그 분으로부터 말미암았으며, 그 도성자체가 곧 성전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므로 지성소가 됨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2) 또 크고 높은 성벽도 있으며, 열두 대문이 있고 그 문에는 열두 천사와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더라.


(13) 동편에 문이 세 개, 북편에 문이 세 개, 남편에 문이 세 개, 서편에 문이 세 개이며


여기에 나온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이라는 것은 계시록7장에서 본 열두지파의 이름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 곳에 들어가 살게 될 자들이 선택받고 택함받은 일곱 교회의 집합체는 물론이요, 천년왕국에서 태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무리들과 또 백보좌 심판 때 살아난 자들 중에 생명책에 그 이름이 녹명되어 있는 자들을 포함한 모든 주의 백성들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14) 또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는데 거기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더라.


이 구절에 대한 다른 주석가들의 해석을 보며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열 두 기초석에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문 위에 새겨진 열 두 지파의 이름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도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세워진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많은 해석가들이 주장합니다. 또 열 두 지파와 열 두 사도의 이름이 같이 나열된 것은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과 신약시대의 교회의 통일성을 암시하며 동시에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가 신약 시대와 구약 시대를 총괄하는 것임을 시사한다라고 하는데, 좋은 해석으로 보이고 그렇게 이해하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15) 나와 말하는 이는 그 도성과 그 문들과 그 성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16) 그 도성은 네모가 반듯하며 길이와 너비가 같더라. 그러므로 그가 갈대로 그 도성을 측량하니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또 그가 그 성벽을 측량하니 일백사십사 큐빗이라. 이는 사람의 척도, 곧 천사의 척도라.


하나님께서는 이 부분에서 그 도성의 크기를 측량하여 그 위용을 성도들에게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 도성이 단지 영적인 의미의 예루살렘이 아니고, 실체가 있는 것임을 알려주려고 하심일 것입니다. 여기서 그 크기를 알아보자면 일만 이천 스다디온'은 약 2,200km쯤 됩니다. 이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거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동일하다 함은 정육면체인 큐브(cube)형으로 되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곧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과거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성막이나 또 성전의 지성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곳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성벽이 일백 사십 사 큐빗이라 함은 약 66m정도 되며 높이를 말하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두께가 그렇게 두껍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지어졌고 그 도성은 순금으로 맑은 유리 같고


(19) 그 도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양 보석으로 단장되었으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사파이어, 셋째는 옥수, 넷째는 에메랄드이며


(20) 다섯째는 홍마노, 여섯째는 홍보석, 일곱째는 감람석, 여덟째는 녹보석, 아홉째는 황옥, 열째는 녹옥수, 열한 번째는 제신스, 열두 번째는 자수정이더라.


(21) 또 그 열두 대문은 열두 진주니 그 문들은 각각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더라. 그 도성의 거리는 순금이며 투명한 유리 같더라.


이상 구절들은 상상하시면서 그 모양을 짐작해 보시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특히 그 문이 진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마태복음7장과 13장에 기술되어 있는 진주에 대한 용례를 살펴봤을 때, 믿음이 없거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은 결코 그곳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며, 역시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 분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22) 내가 보니, 성 안에는 성전이 없더라. 이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이 그 곳의 성전임이라.


(23) 그 도성은 해나 달이 그 안에서 비칠 필요가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곳을 비추고 어린 양이 그 곳의 빛이 됨이라.


역시 그 도성 자체가 하나님께서 성전에 임재하셨던 지성소와 같은 장소이므로 따로 성전이 필요치 않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큰 도성은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져있는 새로운 地球(지구)에 安着(안착)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크기가 남한과 북한을 합한 한반도길이 1.178km의 약 두 배 정도가 되는 크기에다가 넓이와 높이도 그 정도이니 그 크기를 대략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도성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24) 그리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민족들이 그 도성의 빛 가운데서 걷겠으며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과 존귀를 그 곳으로 가져오리라.


구원받은 각 지파의 모든 민족들은 그 도성을 비추는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그 분을 뵙게 될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천년 왕국때부터 왕이 되어 백성들을 다스렸던 주의 신실한 백성들이 있고, 또 그 곳에 들어가서도 영원히 통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증거는 마태복음24장 47절로부터 시작합니다.


(47)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주인이 그를 그의 모든 재산을 다스리는 자로 세울 것이라.


그리고 역시 같은 마태복음25장21절,


(21)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기를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내가 너로 많은 것들을 다스리도록 하리라. 네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라.'고 하더라.


그리고 이와 더불어 누가복음19장에도 각각 충성된 종에게 열 고을과 다섯 고을을 다스리게 하신다는 비유가 있으며,

또 베드로전서2장9절에는,


(9) 그러나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그에게 속한 친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너희로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라고 기술함으로써 택함받은 성도가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2장25절이하 두아디라교회에 하신 말씀중에는


(26) 이기고 나의 일들을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줄 것이요

(27) 그가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이 질그릇같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라고 말씀하셨고, 5장10절에는


(10) 우리 하나님 앞에 우리를 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으셨으니 우리가 땅 위에서 통치하리이다."라고 하니라.


라는 말씀과, 11장15절에,


(15) 그 후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있어 말하기를 "이 세상의 나라들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어서 그 분이 영원 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고 하더라.


라고 하시며 성도에게 왕의 권세를 주실 것과 그들과 함께 영원한 천국을 이루실 것임을 역시 이곳 24절에서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시록22장5절에,


(5) 거기에는 밤이 없겠고 그들에게는 촛불도 햇빛도 필요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라.


입니다. 다음 25절,


(25) 또 그 곳의 성문들을 낮에는 결코 닫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곳에 밤이 없음이라.


역시 새 땅에 안착한 예루살렘도성으로 주의 택한 백성들이 출입할 것임을 알려주고 있고, 또 그곳은 영원한 행복과 안식이 있어 대대로 기뻐하며 살아갈 성도들의 終着驛(종착역)이 될 것임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곳에 밤이 없다는 것은 그 분의 영광의 빛이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이것은 베드로후서2장에서 말씀하신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그 말의 의미로 생각을 해 봤을 때, 주의 택한 모든 성도들이 지성소를 출입할 수 있는 제사장들같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에서 성전의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출입하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으나, 이제 이 새 예루살렘에서는 주의 택한 모든 백성들이 대제사장처럼 지성소인 큰 도성 예루살렘을 왕래하며 하나님을 뵙고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큰 도성 예루살렘에서는 절기때마다 축제가 벌어질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가진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며, 기쁨과 환희가 끝없이 이어지는 꿈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26) 그들이 민족들의 영광과 존귀를 그 곳으로 가져오리라.


천년동안 왕들과 제사장들이 되어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치고 하나님을 섬겼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제 그들이 왕의 자리에서 누렸던 영광과 하나님께 받은 존귀함을 가지고 그곳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백성들이 큰 도성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그 도성안에서 살게 되는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다는 것과 그 새로운 땅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볼 수 있는 큰 도성 예루살렘이 자리한다는 것, 그리고 그 도성 사방에 열두 개의 문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 묵상을 해 보자면 새 땅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예루살렘의 두 곳을 왕래하고 출입하며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보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살던 혹은 도성안에서 살던 어느 쪽이건 간에 영원한 삶은 끝없이 이어지며 또한 행복한 나날들이 될 것이니,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고, 그러므로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7) 무엇이든지 더럽게 하는 것이나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나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 곳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며, 다만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자들만이라.


이제 21장의 결론입니다. 앞으로 22장 한 장을 더 남겨 놓고 있기는 하지만 거의 계시록의 해석이 끝이 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영원한 도성 예루살렘에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자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십사만사천의 들림이나 마흔 두 달 순교성도의 승천, 그리고 주님 재림시 휴거가 되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성도라는 것을 확인한 다음 祝杯(축배)를 들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사람에게 驕慢(교만)을 심어주어 그를 失足(실족)케 하는 수법을 씁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게 하여 단지 믿었으니 구원 받았다라는 간단한 命題(명제)로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는다라는 말씀만을 들어 따라하게 하고 그렇게 한 자에게 당신은 구원받았다라고 간단히 선포해 버리는 것은 옳은 복음전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주의 말씀을 듣고 각인하여 그 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녹명되는 방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그 분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 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임을 알고 아무쪼록 이번기회에 주님이 복 받으라고 주신 이 계시록연구를 통하여 변하지 않는 그 분의 신실한 약속들을 확인해 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고, 다음 계시록22장 강해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