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계시록관련/계시록강해노트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 강해 스물 두 번째 시간

by 디클레어 2011. 8. 11.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 강해 스물 두 번째 시간 2021*10/09

 

 

 

 

 

요한계시록22장

 

 

 

드디어 계시록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성도여러분들께서도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실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3.0을 쓰면서 그것이 마지막 글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다시 연구하고 분석해 보면서 거기에 크진 않지만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뜨끔했습니다. 아마 이 동영상강해에도 어느 정도의 오류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강해를 보시거나 동영상노트를 보시는 분들에게 계시록의 기초정도는 제공해 드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으니 아무쪼록 마지막까지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1) 또 그가 나에게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수정처럼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을 보여 주더라.

 

 

21장 강해에서 요한에게 천사가 새 예루살렘도성을 보여주고 그 위용을 설명하며, 그 도성에 들어올 수 있는 자들에 대해 말하면서 천년동안 땅에서 왕노릇하던 첫째부활에 참여했던 성도들이 그들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 곳으로 들어온다는 부분까지 살펴보고 넘어왔습니다. 이제 그 부분에 연결해서 다시 도성안의 정경을 묘사한 것이 이 계시록22장 1절부터입니다. 요한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본 첫 번째 장면이 바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수정처럼 맑은 생명수 강입니다. 그리고,

 

 

(2) 그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와 그 강의 양편에는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과실을 맺으며 달마다 과실을 내더라. 그리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더라.

 

 

다시 요한이 본 도성안의 장면은 그 도시의 거리 한가운데 생명나무가 있고 또 생명수의 강이 있는데 그 강의 양쪽에도 가로수 길처럼 생명나무가 심겨져 있어서 모두 세 줄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무들이 三位一體(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음을 보여 주듯이 말입니다. 또 그 생명나무들은 달마다 열두 가지 과실을 맺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부활때에 썩지 않을 것으로 변화된 몸이, 죽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으며 다치지도 않는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단지 이 구절의 말씀의 의미만을 본다면 그 도성안에 참가하는 성도들은 이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으며 영원한 생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가 생명나무의 과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을 이해가 되는 범위에서 그대로 받아 들인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해 있더라, 라는 말씀도 변화받은 몸이 고통과 질병이 있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해석가들은 말하기를 새 예루살렘에서 치유할 수 있는 잎사귀가 존재하는 것은 단순히 새 예루살렘에 질병과 고통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에 참여하면 전혀 고통이나 부족함이나 질병이 없는 완전함을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Mounce,Ladd). 라고 해석하는데 그렇게 생각해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성도들의 몸이 썩지 않는 몸으로 변화가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세상에서 살던 형식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겠는가 하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은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낱말하나하나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있음을 봤을 때, 어찌보면 말씀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조금이라도 오해와 오류를 방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말씀을 드려 보며, 어느 쪽으로 이해하시던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3) 다시는 저주가 없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그 안에 있을 것이며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리니

 

 

저주가 없다는 것은 다시는 저주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을 뜻하고 저주할 일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그의 자손들은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으나 이제 이곳에서는 성도들이 다시는 죽는 일도 없고, 따라서 그런 일들로 마음이 아프거나 고통받는 일도 없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이 거하는 곳이니 세상에 존재했던 그런 일들이 없을 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안에 있어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긴다는 것은 영원한 천국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을 예배하며 경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4) 그들은 그의 얼굴을 볼 것이며 그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 위에 있으리라.

 

 

영원한 천국에 거하는 백성들은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어, 이제 모세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그 분을 모시게 된다는 뜻입니다.

 

 

(5) 거기에는 밤이 없겠고 그들에게는 촛불도 햇빛도 필요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라.

 

 

거기에 밤이 없고 촛불과 햇빛도 필요하지 않는 것은 그분께서 영광의 빛으로 비추시기 때문인 것임은 앞서 많은 말씀들에서 보았던 관계로 아시는 부분이라 생각이 되고, 문제는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느냐일 것입니다. 모든 구원얻은 백성들은 차별없이 하나님과 지내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해석가들은 이 부분의 해석을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온전한 자유와 권위를 갖게 될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이해하셔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중에서 마태복음11장21절에 보면,

 

 

(21) "코라신아! 너에게 화 있으리라. 벳새다야! 너에게 화 있으리라. 너희에게 행한 권능을 투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심판 날에 투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

 

 

이 말씀은 죄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방 도시보다는 유대인의 성읍인 코라신과 벳새다에서 많은 권능을 행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들을 들려주었으나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그들은 그 이방 도시들보다 더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고라신과 벳새다에 베푼 이적들을 이방인 두로와 시돈에서 베푸셨더라면 그 도시들의 주민은 회개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할 시에 이 점을 참작하실 것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경륜하에서 뜻을 계시하신 만큼 심판 때에도 아주 공평(公平)하게 판단하실 것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하늘나라에도 상급의 등급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지옥의 형벌에도 등급이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견디기 쉬우리라, 라는 말은 '참아내기 쉽다는 뜻으로, 그들의 심판이 가벼운 심판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누가복음 12장48절에도 보면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찾으실 것이다, 라는 것을 봐도 이것과 같은 문맥의 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들은 천년왕국에 들어가기 전 심판중에 일어날 사건들일 것이라고 분별은 하지만, 이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 백보좌 심판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분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왕이 되어 영원토록 다스릴 사람들은 두 번째 부활 때에 일어날 사람들을 포함해서 견디기 쉬운 형벌을 받는다고 했던 이방인들 가운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근거를 다시 한번 찾아보자면 이사야서 14장11절 이하에,

 

 

(12)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개역성경에는 계명성(곧 예수그리스도이신 새벽별)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을 연약하게 하였던 네가 어찌 땅으로 끊어져 내렸느냐!

(13) 이는 네가 네 마음 속에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내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보다 높일 것이요, 내가 또한 북편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내가 구름들의 높은 곳들 위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 하였음이라.

(15) 그러나 너는 지옥까지 끌어내려질 것이요, 구렁의 사면에까지 끌어내려지리라.

(16) 너를 보는 자들이 너를 자세히 살펴보고 숙고하여 말하기를 "이 자가 땅을 떨게 하고, 왕국들을 진동시켰으며,

(17) 또 세상을 광야같이 만들었고, 그 성읍들을 멸망시켰으며, 그의 갇힌 자들의 집을 열어 주지 않았던 그 사람이냐?" 하리라.

 

 

이 때 말씀하셨던 일들, 즉 사탄이라고 불리던 루시퍼를 볼 수 있는 이런 일들이 바로 이 영원한 천국,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로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루시퍼는 지옥에 있고 그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 천년왕국때는 그가 무저갱에 들어가 있으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고 영원한 천국, 즉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되면 그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와 열왕이 고통받고 있는 불못도 영원하므로 천국백성들이 그를 볼 수 있는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경을 보고 분별한 推測(추측)임을 말씀드립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봤을 때, 영원한 천국백성으로 선택되어 왕이 되어 다스리는 자들이 있고, 또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도성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년왕국때의 상황과도 흡사할 것으로 분별하고 있는데, 역시 먼 미래의 일이라 추측하는 것 뿐이기는 하나, 그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를 묵상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해석가들 중에는 이 보다 더한 상상도 하는 경우가 많으니 여러분께서도 말씀에 비춰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6) 또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이 말씀들은 신실하고 참되도다. 거룩한 선지자들의 주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들을 그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느니라.

 

 

이 구절의 말씀은 예루살렘도성을 보여준 천사가 한 말로 분별이 됩니다. 구절중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되어 질 일들을 그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더라.

 

 

이 계시록은 초대교회의 종들에게 보내졌다고 볼 수도 있고, 그러나 더욱 이 편지의 수신자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말세에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주의 백성들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빌라델비아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분별이 됩니다. 왜냐하면 속히 오신다는 주님은 일곱 교회 모두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특히 그 중에 에베소, 버가모, 빌라델비아교회에 하신 말씀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노아때에 오시는 주님이 속히 오시는 주님이고, 그 노아 때에 오시는 주님은 대 환란 전인 전 삼년반이 끝날 무렵에 빌라델비아교회인 14만4천을 데려가시는 때 입니다. 그러니 성도여러분께서는 믿음의 정수인 14만4천에 들어 갈 수 있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빌라델비아 교인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이 계시록을 이해하고 그 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서신의 첫 머리인 1장에서도 말씀하셨듯 마지막장인 22장에서도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강조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8) 나 요한이 이런 일들을 보고 들었노라. 내가 듣고 또 보고 나서 이 일들을 내게 보여 준 그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보라, 그리하지 말라. 나도 선지자들인 네 형제들과 이 책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들과 같은 너의 동료 종이니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하니라.

 

 

천사를 경배하려고 하는 요한의 행동은 앞서 해석한 바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0)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봉인하지 말라. 이는 그 때가 가까움이라.

 

 

그리고 나서 다시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이어 나가십니다. 봉인하지 말라는 것의 의미를 알기위해 다니엘 12장을 살펴 보면,

 

 

(4) 그러나, 오 너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그 말씀을 닫고 그 책을 봉하라. 그 때에는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릴 것이요, 지식이 증가하리라." 하더라.

 

 

여기서 그 책을 봉하라 하신 것은 그 기록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다니엘이 깨달은 바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것이며 다니엘서를 보는 그 누구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24장15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리니, 라고 하신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이 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인들은 다니엘서를 읽어 볼 수는 있었지만, 그 의미는 읽는다 한들 당시의 지식으로는 깨달을 수도 없으며, 감도 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요한계시록이 다시 계시됨으로 다니엘에서 말씀하신 그 말씀의 의미들도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이며, 따라서 말세에 그 해석을 알고자 하는 자들에게 가르쳐 주신다는 뜻이 됩니다. 다니엘12장 4절에 보면 마지막 때까지 그 말씀을 닫고 그 책을 봉하라, 라는 것은 마지막이 될 때까지는 다니엘을 해석할 수 없다는 뜻도 되는 것이어서, 그것이 풀어지고 있는 지금, 여러분들이 이 강해를 듣고 계시는 이 때가 바로 말세이며, 따라서 이 때 풀어지는 것을 보면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인정하시든 그렇지 않으시던간에 상관없이 이 다니엘과 계시록이 풀렸다는 것은, 주님께서 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11)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함에 있게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러움에 있게 하라. 반면에 의로운 자도 그대로 의로움에 있게 하고 거룩한 자도 그대로 거룩함에 있게 하라.

 

 

이 구절에 대해서는 깊은 묵상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은 마치 전도나 선교가 필요 없고 그대로 내버려 두라 라는 듯이 보여 지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해석가들은 다음에 올 17절을 인용하면서 성령님과 신부가 모든 사람을 초대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이 구절의 의미를 애써 축소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해도 그 구절과 이 구절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 17절의 의미가 하나님의 뜻이어야 한다, 라고 하면 이 11절은 불필요한 기록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7절은 이 말씀을 듣는 자(여기서 듣는 자라함은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와 목마른 자와 원하는 자에게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는 2장, 3장의 일곱 교회와 계시록7장, 그리고 계시록9장을 거쳐 오시면서 구원받는 성도의 수를 들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수는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숫자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미 면류관을 받은 빌라델비아교회의 14만4천, 그리고 후 삼년 반에 순교하게 되는 4억의 성도, 그리고 주님 재림때에 자는 자 가운데서 일어나고, 또 그들과 함께 휴거되는 성도의 수가 모두 2억 명이 된다는 것을 들으시며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全能(전능)하신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셨다면 옳은 觀點(관점)을 가지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택하신 백성이 있고, 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한 사람을 전도한다고 해도 그 마음을 열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고 그 분이 하지 아니하시면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다시 한번 계시록 총정리시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이 12절은 두 번, 세 번의 휴거로 갈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구절입니다. 교회가 갈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보면 하나님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각을 마치 하나님의 생각인양 얘기하는 것을 봅니다. 고린도전서 1장25절에 보면

 

 

(25) 이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연약함이 사람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니라.

 

 

고 하셨는데 이것은 사람들의 가장 합당하고 현명한 생각이라 하더라도 하나님보시기에는 어리석기 그지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분일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조차 誤謬(오류)와 偏見(편견)에 빠뜨리는 結果(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며, 처음과 마지막이라.

 

 

역시 어린 양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창조주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강조하시는 구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4)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 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

 

 

그의 계명들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얘기합니다. 7년 환란전에 교회는 휴거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 즉 세대주의자들과 그의 누룩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교회가 아닌 휴거되지 못하고 이 땅에 남아 환란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곱 교회중에는 칭찬받는 교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교회도 있었으며,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주님께서 행위를 강조하셨음을 보고 넘어 온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들에는 모두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리고, 오직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알고 있는 그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렇게 믿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말씀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결과로 모두 환란에 들어가게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 중에는 殉敎(순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이겨내지 못하고 두려워하여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도망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그들의 믿음에 걸 맞는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15) 그러나 개들과 마술사들과 음행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누구든지 거짓말을 즐겨 행하는 자는 모두 다 성 밖에 있으리라.

 

 

여기서 개들이라 함은 이사야56장 9절 이하에 보면,

 

(10) 그의 파수꾼들은 눈멀었고, 그들은 모두 무지하며 그들은 모두 말 못하는 개들이니 그들이 짖지를 못하며 잠자고 눕고 졸기를 좋아하느니라.

(11) 정녕, 그들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 많은 개들이며, 깨닫지 못하는 목자들이라. 그들 모두가 그들 자신의 길만을 보나니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이익만 도모하고

(12) 말하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니 우리가 독주를 진탕 마시자. 내일도 오늘처럼 더 많이 풍요하리로다." 하느니라.

 

 

라는 말씀을 보았을 때, 주의 일을 한답시고, 자신의 이득만 차리는 자들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뜻에 맞게 말씀을 변개해서 가르치고, 또 엉뚱한 교리들로 신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이며, 이 세상에서의 富貴榮華(부귀영화)가 하나님의 복이라고 얘기하는 자들입니다. 또 그들은 주의 백성들을 平信徒(평신도)와 聖職者(성직자)로 나누는 자들이고, 그들에게 대우받으려고 하는 자들이며, 權威(권위)를 앞세우는 자들이고, 교회위에 君臨(군림)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받을 刑罰(형벌)은 성문밖에 버려져서 그 문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기술되어 있는 나머지 성 밖에 있을 자들에 대해서는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16) 나 예수는 교회들에 관한 이런 일을 너희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나의 천사를 보내었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또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시니라.

 

 

이 일이라는 것은 일곱 교회에 속한 모든 주의 백성에게 주어진 일로서, 이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을 보고 깨달은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게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신 것은 그 분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시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17) 또 성령과 신부가 말하기를 "오라."하더라. 듣는 자도 "오라."말하게 하고 또 목마른 자도 오게 하며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게 할지어다.

 

 

성령은 성령하나님을, 신부는 21장 9절에서 보듯 새 예루살렘도성을 의인화시켜 성도들을 초청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듣고 오라하시는 것이며, 그 귀를 닫은 자, 즉 하나님께서 초청하지 않은 자들은 결코 그 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며, 의에 목마른 자와 주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그의 나라에 참여하고 싶은 자들은 누구든지 와서 생명수를 마시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초청하여 그 생명수를 마시라고 하시지만,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선택받는 자들뿐이니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마음을 열어 그 분의 권고를 받아 들여야 할 것입니다.

 

 

(18) 이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함이니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 더하는 자에게 재앙들을 더 한다는 것은 곧 대 환란이나 불못에 던져 넣으시겠다는 것이며, 그 예를 들어보자면 앞서 계시록 12장 17절에서 있지도 않은 바다모래를 더한 것을 본 바가 있고, 삭제한 것이라는 것은 간단한 예로 1장에서 어린 양께서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오, 시작과 끝이라는 것을 빼버렸다는 것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다. 이렇듯 이 계시록에는 빼면 안 될 것들과 삽입하면 안 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이 계시록에 더하고 빼며 성경을 변개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0) 이런 일들을 증거하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이제 이것으로 계시록의 해석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 이 계시록의 최종적인 결론을 아홉 가지로 내려 보며 여러분과 그 의미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시록을 해석하고 나서 첫 번째로 알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는 앞으로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7년 동안의 기간이 올 것이고, 그의 등장을 대부분의 성도들이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후 삼년반이 시작되고 나서 어느 정도의 기간이 흐른 후일 것입니다. 따라서 다섯째 나팔인 전 삼년반에 들어가는 시기는 성도들 가운데서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어 있어서 각별한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살아가야 함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십사만사천이 들림 받은 것을 안 소수의 성도들이 그 사실을 퍼뜨린다면 그가 출현했음을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석가들 중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한이레시작(7년 환란시작) 때 알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니엘 12장의 1,290일과 1,335일의 의미와, 그 날짜와 더불어 주님께서 마태복음24장15절에서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고 하신 말씀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그것과 더불어 데살로니가후서 2장3절의 의미도 정확히 모르므로 그런 해석이 나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그 7년 기간중 전삼년반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비교적 조용히 지나갈 것이나, 특히 그 기간 끝에 배교하는 자들인 蝗蟲(황충), 즉 메뚜기들이 나오고 나서 주의 성도 중 택함 받은 빌라델비아교회성도인 14만4천명이 살아있는 채로 시온산으로 들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대환란 때인 후 삼년반이 시작되는 초반, 즉 그 해 그 달 그 날 그 시간에 전 세계에 있는 주의 택하신 성도중에 2억명이 먼저 동시에 순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네 번째, 후삼년반 마흔 두 달 기간동안 다시 2억명의 순교성도들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 기간 내내 전 세계에서 하루에 약 16만명 정도가 죽임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들은 먼저 순교한 이억명과 함께 후 삼년 반 말경에 다시 살아나 승천하게 됩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나팔인 후 삼년 반, 즉 대 환란 때인 마흔 두 달기간이 끝나고 45일간의 하나님의 일곱 진노 대접이 쏟아지고 난 후에, 이 땅에 오시는 주님 재림시에 휴거되는 성도의 수는 약 1억명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예루살렘백성들은 말세의 성도중에 5억(14만4천명포함)명이 될 것이나, 그 수 중에 1억명의 성도가 더 추가가 될 것으로 보는데, 그들은 창세때로부터 자는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 중에 또 약 1억명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년왕국의 예루살렘에 참여하는 성도의 수는 총 6억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깥 어두운 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거나 책망 받은 종들, 그리고 이방인 중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던 사람들, 그리고 당시에 앞 뒤를 분별할 수 없었던 아이들과 여자들이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선택받은 예루살렘백성들은 다시 죽음이나 슬픔이나 애곡이 없고,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데 그들은 바깥 어두운 곳, 곧 예루살렘주변에 거하는 자들을 다스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덟 번째, 그 천년이 끝나고 사탄이 무저갱에서 놓여, 바깥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주의 성도들이 빗장도 없고 담도 없이 행복하게 모여 사는 예루살렘을 파괴하려 하는, 곡과 마곡전쟁을 일으킬 것이나, 모두 하나님께 멸망당할 것입니다.

 

 

아홉 번째, 그 곡과 마곡전쟁이후에 벌어지는 백보좌 심판때 선택받고 택함받은 모든 주의 성도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안착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예루살렘도성에 참여하게 되어, 영원무궁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 도성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영원한 불못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록을 해석하고 얻은 결론인데 기쁨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세세한 증명은 이미 설명 드렸으므로 그 증명은 생략하고 말씀드렸는데, 아마도 이 최종적인 결론을 보시고 충격을 받으신 분들이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도 마지막 결론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결론을 보지 못하고 성경을 해석하려 하거나 그분에 대해 알려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또 가르치는 자들에게는 잘못 가르치게 되는 失手(실수)를 낳게 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은 모르는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특히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말씀의 결론도 알지 못한 채, 주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찌 보면 語不成說(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자기를 合理化(합리화)시키려고 하는 말들은 자기 같은 同僚(동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계시록을 내가 모른다고 해서 부끄러울게 없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 職務遺棄(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가장 책망을 많이 받을 사람들은 바로 가르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론을 모르고 가르친 그들의 잘못된 敎訓(교훈)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失足(실족)하게 됐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니골라당을 미워하시는 것이며, 선생되기를 즐겨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라고 하신 이들중에 아마도 太半(태반)이 바로 이 pastor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특히나 성도들을 平信徒(평신도)와 聖職者(성직자)로 나누는 자들은 더욱 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티끌도 못되는 가련한 인생들이 그 분 앞에서 나는 크고 너는 작다 라고 싸우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 그런 作態(작태)에 불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중에 큰 자가 되려면 먼저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신 가르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르치면서 본인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表裏不同(표리부동)한 자세입니다. 다른 이에게 대접받고 스스로 큰 체하는 것은 하늘나라에서는 종 아니라 문지기로도 쓰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알고 싶거나 그 분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다면 계시록을 먼저 연구하시기를 다시 한번 권해 드립니다. 결론인 계시록은 팽개쳐두고 그 앞에 놓인 글들로 아무리 다퉈봐야 서로 의견차이만 확인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한다는 모든 일들이 자기 자랑에 그치게 되어 버리고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될 것이라는 얘깁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 한사람에게 영광을 받으시려고 이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의 도움도 구하지 않습니다. 그 분께서 친히 호흡을 주시는데, 코로 기식하며 그 분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돕는단 말입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분이 바라시는 것은 택한 자들이 세상에서 구별되게 사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에클레시아, 곧 교회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영생에 들어가게 하실 자들을 구별하여 그들에게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특히 말씀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분별하지 못한 젊은이들을 복음전도라는 명목을 내세워 선교로 내 모는 것은 최악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원받을 숫자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 숫자는 사람들이 하는 선교나 전도의 힘으로 더해지지도 않고 감해지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선교자나 전도자가 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 구원받은 숫자에 얼마정도의 수를 더하는 것을 못할 하나님도 아니시기에 기도하라는 명령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늘보좌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시도하려 하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먼저 알고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그를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나, 하나님께서 그 일을 원하시는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성경에는 그 혼자 스스로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하겠다고 하다가 함정에 빠진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에 스스로 떠오르는 것들을 얘기하며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대적하거나, 주님을 위해 무엇이라도 바치려고 했던 자들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필요하여 사람들로부터 구하실 필요가 없는 분이심을 알고 錯覺(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종이라면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스스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얘기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 라고 하며 간증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자들에 특히 주의 하시고, 그렇게 말하며 믿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정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가를 정확히 분별하고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강론을 받았던 교회의 그 사람들 중에 대개의 경우,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입니다.

 

 

해외에 나가 말씀을 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말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주의 일을 하겠다고 뛰어드는 것을 봅니다. 그들을 선교로 내 모는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의 명령을 알고 있고,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선교를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장로급의 인사들이 하는 것이 옳습니다.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말 그대로 의욕만 가진 채,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뛰어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말씀을 보고 배우고 깨달으며 에클레시아를 세워 나갈 수 있는 力量(역량)을 키워 나가는 것이 그 나이에는 더 합당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해 나가기가 현실상 너무 어려우므로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교회당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스스로 공부하지 않고 듣는 수준에서 만족한다면 그 또한 하나님께 깊이 다가갈 수 없을 것입니다. 높은 수준의 신앙을 원하는 분들은 항상 말씀을 보고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주님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 성도들이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덕목이 바로 항상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믿음은 개인적인 것이지, 다른 사람의 기도와 믿음이 자신을 구원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알아나가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구원을 잃어 버릴 수 없는 신앙을 갖추는 계기도 될 것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전도나 선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말씀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깨닫는 것은 30년이 걸릴지, 혹은 40년이 걸릴지, 50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서두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다 싶을 때 선교에 뛰어드십시오.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 마르다보다는 마리아를 더 높게 평가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이상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강해를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꼭 주님의 나라에서 뵐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