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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해석에 있어 그 옳음과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

by 디클레어 2011. 9. 13.


계시록해석에 있어 그 옳음과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




현 시대에 계시록을 알고 싶어 연구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어서 어느 것을 봐야 할지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정통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계시록해석은 보기도 힘들고, 또 설령 했다고 해도 세대주의의 누룩에 물들어 있어 그것을 모르는 성도들은 자칫 잘못된 해석들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한 때에 신천지나 몰몬교에서도 계시록해석을 한다며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기에 그것을 방지하고자 이 글을 쓰기로 한다.


계시록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글들 중에 서로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개혁주의나 세대주의를 막론하고 살펴봐야 할 것은 두 증인에 관련한 것이다. 그들이 죽어있다는 사흘반을 홑삼일반으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삼년반으로 해석하느냐 가 가장 중요한 이슈라는 거다. 왜냐하면 그 삼일반을 삼년반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은 그 해석에 있어 시기에 대한 중대한 오류를 품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흘반을 홑삼일반으로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해석을 했다면, 그런데 그것이 놀랍게도 삼일반이 아니고 삼년반이라면, 적그리스도가 받는 한이레 즉 7년이란 기간과 관련해서 그들의 해석은 오류를 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시록해석은 시기에 관해 어느 것 하나 잘못 해석하게 되면 그에 따르는 해석들이 모두 쓸모없는 그릇된 주장으로 머물러 버리고 만다.


따라서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사람들의 해석을 볼 때, 그 해석이 두 증인에 관한 사흘반을 삼년반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면 그 해석은 틀린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그 사흘반이 삼년반임을 증명해 보도록 하겠다.


계시록9장이다.

...

(12)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개역성경


이 첫째 화는 다섯 번째 나팔이다. 그러므로 여섯 번째 나팔은 두 번째 화가 되는 것이며, 세 번째 화는 일곱 번째 나팔이 되는 것이겠다. 그런데 이 계시록을 시간상으로 진행되어 가는 상황을 기술해 놓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9장 여섯 번째 나팔의 둘째화가 11장에서 또다시 등장하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안다 해도 아예 무시하는 사람들이다. 이 여섯 번째 나팔이 두 번째 화일 것이라는 것은 이 9장12절에서 알려주고 있으니 의심할 수 없으실 것이고 그러니 이번에는 11장에서 이 두 번째 화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알아 보도록 하겠다.


(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개역성경


이 둘째 화는 여섯 번째 나팔재앙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죽어 있다는 둘째 화, 즉 사흘반이 삼년반이란 기간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그와 같은 기간인 여섯 번째 나팔도 삼년반 기간 동안에 일어나는 일을 서술해 놓은 것임을 알 수 있게 되겠다.


생각해 보시라. 다섯 번째 나팔기간을 짧게 11절까지만 기록하시고 여섯 번째 나팔기간은 9장 중반부터 10장을 거쳐 11장까지 기록하셨다는 말인가? 그렇게 우긴다 해도 상관없다. 만약 그렇게 해석이 되어야 한다면 11장 2절에 마흔 두달이 있고 13장 5절에도 마흔 두달이 있으니 그 두 기간을 합하면 벌써 7년이니 그 앞선 기록중에 다섯 번째 나팔까지는 한이레 전, 즉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기 전에 일어나는 환란이 되어버리므로 시기적으로 치명적인 오류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또 12장에서 일어나는 남자아이를 낳는 여인의 사건에도 1,260일의 기간이 있고 그 후에 또 삼년반인 한때와 두때와 반때의 시기가 또 있으므로 그들의 해석은 11장2절부터 계산해도 자그마치 14년간 일어나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므로 어떻게 변명을 한다 해도 오류는 계속 발생되기 때문이다.


글이 길어지면 읽는 것이 피곤해지니 이제 삼일반이 삼년반임을 증명하고 매듭을 짓도록 하겠다. 요나는 삼일 밤 그리고 삼일 낮을 꼬박, 시간으로 치면 자그마치 72시간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요나서1장 (개역성경)


그것을 성경에서는 사흘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요나의 기적밖에 보일 것이 없다고 하셨던 주님께서도 사흘 만에 몸을 일으키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시간으로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살펴보자. 마태복음27장,

...

(45)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그리고 마태복음28장,


(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7장45절에 제 육시는 지금으로 치면 정오인 열두시다. 그리고 제 구시는 오후 세시가 된다. 그리고 그 무렵에 영혼이 떠나셨으니 돌아가신 시간은 오후 세시경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부터 자정까지는 9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28장에 보면 그 다음날 안식일 날은 24시간이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마리아들이 보러 갔다고 했으므로 그 시간은 새벽 6시? 혹은 7시나 8시로 본다 해도 시간으로 치면 채 9+24+8=41시간으로써 만 이틀도 채 안 되는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 시간을 사흘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계시록의 두 증인에게 하신 말씀은 다르다. 그들이 사흘하고도 반나절 죽어 있다고 하신 것이다. 사흘하고도 반나절이면 시간으로 치면 84시간이라는 얘기인데 72시간도 사흘이라고 하시고, 41시간도 사흘이라고 하신 분이 84시간 만큼은 사흘반이라고 정확히 기록하셨겠느냐 하는 것이다. 오히려 사흘반이라면 나흘이라고 하심이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만약에 주님이 그렇게 시간까지 정확히 말씀하시고 기록하시는 분이셨더라면 요한복음2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삼 일 만에 이것을 다시 세우리라."고 하시니라. 가 아닌,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채 이틀이 안 되어 이것을 다시 세우리라." 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식적인 결론과 규명방법에 의해 두 증인이 죽어있던 사흘반은 홑 삼일반이 아닌 삼년반이 옳은 것임을 알 수 있으실 것이다. 이것을 알고 계시다면 그들의 해석중에 사흘반을 삼일반으로 해석한 사람들의 해석은 시기적인 오류를 품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겠다. 그러니 그들의 해석은 날짜들이나 적그리스도의 칠년, 즉 한이레에 관련해서 어떤 방법으로도 그 해석이 옳음을 증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계시록해석을 보실 때, 그의 해석이 두 증인이 죽어있는 사흘반을 삼일반으로 해석했는지, 혹은 삼년반으로 해석했는지 살펴보시고 삼일반으로 해석했다면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 편이 낫다는 얘기이며, 그것을 분별못할 정도라면 다른 해석은 보나마나한 해석일 것이기 때문이다. 계시록해석은 시기에 관해 어느 한 구절 잘못 해석하게 되면 그에 따르는 모든 해석들이 틀어져 버리게끔 작성되어 있다. 이번기회에 그것도 살펴 분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