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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삼위일체

by 디클레어 2013. 5. 22.

삼위일체 (三位一體)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신가?

 

 

三位一體(삼위일체)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는 교리중의 하나이다. 바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똑같은 능력을 가지신 전능한 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즈음 (물론 과거부터도 그렇긴 했지만) 성경을 안다고 하는 이들에게서 교리는 항상 공격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런 주장들을 타파하기 위해 얼마전에 문제를 얘기했었지만 오늘 다시 한번 문제를 꺼내 조금 다른 측면에서 살펴볼까 한다.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는 이유에는 가지가 있다. 예수님은 항상 자신을 아들로 말씀하셨으며 성부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칭하셨고 심지어 사탄을 따랐던 귀신들도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1:27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5:7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그리고 이것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더 더욱 결정적인 것은 그를 전능한 하나님으로 인정하기에는 십자가고난을 앞에 두고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드러냈다는 데에 있다.

 

누가복음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마태복음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그리고 거기에 더해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으로 보기에는 안타까운.... 인간의 고뇌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시고 계신. 십자가상의 칠언중에 부분만 발췌한다.

 

마가복음 15:34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누가복음 23:46

예수께서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말씀을 하신 운명하시다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또 이런 말씀들은 어떤가?

 

시편 136:4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스가랴 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욥기 9:8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신명기 32: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이사야 2:11

그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이사야 44:24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디모데전서 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라고 성경이 증명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삼위일체라는 모호하고 애매한 표현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결국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됨도 부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항해 삼위일체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관한 것을 인간된 우리가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고 믿음의 문제라고 강변하고 있고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아들이라 칭하신 부분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자.

 

만일에 예수그리스도라는 존재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사장쯤 되거나 혹은 위대한 선지자쯤 된다면 성경은 이런 식으로 기록되어서는 안 된다.

 

이사야9

(6) 이는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것임이라

 

미가5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로마서9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계시록1

(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17) 내가 때에 앞에 엎드러져 죽은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8)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먼저 이사야 9장을 보게 되면 우리에게 아기가 났는데 아기가 바로 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원하신 아버지라고 하신다. 이사야는 우리에게 주신 아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가 다시 그 아들을 영원하신 아버지라고 불렀을까? 아들과 아버지가 같다는 뜻인가? 그는 삼위일체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혹시 아니라면 신성모독아닌가? 그리고 또 다른 선지자인 미가는 예수그리스도의 태생이 상고에 태초라고 기록했을까? 여호와하나님, 유일신을 섬겼던 유대교의 뿌리를 아는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불렀을까더불어 주의 날에 어린 양인 예수그리스도를 본 사도요한도 계시록에서 그분 모습을 설명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 이 모든 것들을 통틀어 다시 생각해 보면 한 가지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종파나 사람들의 주장이 맞으려면,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기만 하다면 성경은 항상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써만 기록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가 하나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정확한 비유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회사에 사장이 있다. 그런데 사장은 외부인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항상 자신을 직원이요 장사꾼이라고 얘기한다. 얘기는 틀린 얘기라고 수는 없다. 사장이긴 하지만 판매를 해야 하는 일도 할 수 기에 그렇게 자신을 소개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직함은 결국 회사의 사장이자. 직원들 월급을 주는 대표자다.

 

반면 여느 회사의 평범한 직원이라면 자신을 직원이라고만 소개할 있다. 그는 직원이지 회사의 운명을 결정을 내릴 없다. 모든 것을 지휘하고 총괄할 있는 사장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직원은 자신을 사장이라고 외부에 소개할 수 없다. 사기꾼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렇듯 직급이 높은 자는 자신을 낮춰 소개할 수 있지만 직급이 낮은 자는 자신을 높여 사장이라고 소개할 수 없다.

 

같은 얘기로 만일에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성경에 그를 하나님으로 소개할 수는 없다. 아들을 어버지처럼 하나님으로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일 그가 하나님이시라면 자신을 人子(인자)라고 말씀하실 있고 아들이라고 칭하실 수도 있다. 그리고 능력을 숨기신 단지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실수도 있고 말씀하실 수도 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 분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온 분이시기 때문이고 더불어 겸손한 분이시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그 겸손하신 분이 스스로 고난을 받기로 정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아들이 되시고 또 아들이라 불리시며 순종하셨던 것이다. 또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해 감당하신 시련으로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몸을 낮춘 겸손을 몸으로 실천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자하나님이 겸손하시다면 성부하나님께서도 겸손하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분은 결코 다를 수 없다. 만일에 그렇다면 홀로이신 하나님이라고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다르다면 한 분 하나님이 아니고 두 분 하나님 내지는 세 분 하나님이 되셔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간에 서열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한 분 하나님께서는 동등한 하나님이 되셔야만 한다. 그래야 홀로이신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잠시 후에 이 문제는 끝에서 다시 한 번 다루기로 하고 이번에는 십자가사건에 대해 살펴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분께서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신분으로 십자가에 달리실 있을까? 생각해 보시라 분께서 자신의 능력을 거두지 않고 계시다면 과연 어떤 인생이 분의 손발에 못질을 있겠는가? 만약에 그것을 거부하신다면 태초부터 예정하시고 작정하신 일들이 과연   일어날 있었겠는가 말이다. 앞서 천지창조목적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이 세상은 그 분의 백성들을 예수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게 하고자 창조하신 연단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연단받을 인생들을 위해 그 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순간 만큼은 인생이어야 하며 하나님이심을 포기하셔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애타게 아버지하나님을 바라보신 이유였던 것이다. 물론 십자가에서 육이 죽은 후에 영으로 지옥으로 가사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말이다.(베드로전서218,19)

 

바로 그런 작정된 일들 의해 분께서는 스스로 인생이 되실 밖에 없으셨고 공생애기간 동안  인자라고, 사람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인간이 창조주를 죽일 있는가 하는 문제와 하나님이신 분께서 십자가에서 숨이 끊어질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는데 그것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언급해 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가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없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내 세우는 구약에서 여호와하나님께서는 항상 홀로 분이심을 증거하셨다는 것에 대해 알아보자. 앞에서 보셨겠지만 너무나 많은 구절들이 홀로 분이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홀로 하나이시라는 하나님에 대한 글들에 반대되는 개념의 글을 살펴보자.

 

창세기1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3

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개역성경

 

22 And the LORD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to know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fe, and eat, and live for ever: -KJV

 

우리의 모양대로와 우리 하나라는 말씀이 낯설지 않으신가? 여호와하나님께서 창조중에 우리라는 말씀을 쓰시고 우리중 하나 라는 말씀을 사용하셨다고 생각하는가? 창세기 3 22 주석을 잠깐 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개역성경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보아라,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하여서는 된다."-표준 새번역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제 사람이 우리들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먹고 끝없이 살게 되어서는 되겠다" 생각하시고 -공동번역

 

'우리 하나' 말은 일체(一體)이시나 삼위(三位) 계신 성부, 성자,성령 하나님을 가리키는 삼위일체적 표현이다.

-그랜드 성경주석

 

혹시 주석이라 누군가의 주장이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이미 앞서 보셨듯이 많은 성경의 구절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三位(삼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최소 二位(이위)라도 증명하고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여기까지 드러난 말씀들을 봤을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은 뜻이 같으시다라는 것이다. 만일에 성부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땅에 오셨다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성부하나님, 분이 예수그리스도가 되는 것이요, 아들이라 불리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하면   바로 아버지와 아들은 단지 아버지와 아들을 구분하시기 위한 別稱(별칭)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결코 다른 뜻을 가지실 없다. 만일에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면 결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한복음14

8.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분이 단지 피조물일 뿐이고 아버지보다 열등한 분이셨더면 이렇게 말씀하시면 된다는 것이다. 항상 이렇게 말씀하셔야 한다.

 

지금은 너희가 아버지를 없으되 날이 오면 나의 아버지를 보리라. 지금은 너희가 분을 감당할 없도다.

 

라고 말이다. 주님은 겸손하신 분이시다. 너희는 내게 겸손함을 배우라고 하신 분이 어찌 아버지와 자신을 동급 취급하실 있다는 말인가?

 

븐명히 아버지와 아들은 둘로 각각 존재하시지만 뜻과 성품이 같기에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으로 칭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하신 일체의 의미이다. 만일 하나님간에 뜻이 다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서로 다투시고 의견이 충돌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또 만일 이렇게 해석되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모든 말씀들이 서로 어우러져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겠는가?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고 단지 천사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그냥 인자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말씀들에 거치는 결과들을 낳게 된다.

 

그런데 요즘 세태를 보면 이런 성경의 말씀들을 믿지 못하고 번역탓을 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생각에 맞는 성경을 경우에 따라 각각 다르게 가져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만일에 그렇다면 성경하나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는 하나님이시라는 결과를 낳기에 문제를 초래한다. 그런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어지러운 하나님이시다. 더군다나 그런 종류의 사람은 교만에 가득찬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그런 사람에 속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번역만이 옳고 다른 사람의 번역은 틀렸다고 과거 성경번역자들을 비하해 버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극에 달한 교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 하나 집중해 보자. 마태복음24장이다.

 

36. 그러나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아들께서는 진정 날을 모르시는가? 하나님이신데 모를 수가 있는가?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분은 날을 아버지와 공유하고 계신다. 다만 날을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실 수는 없기에 아버지에게 권한을 넘기신 듯이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에 말씀을 하신 , 재림하는 날이 천년 후의 어느 날이라고 하신다면 어떻게 그날로부터 주님오시는 때를 앙망하는 기독교인들의 고대함이 있을 있겠는가? 그러므로 분께서는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 부분만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이제 가지 증명을 더 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그동안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구절이다.

 

요한계시록19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뇌성(우뢰,천둥)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오늘은 바로 부분에 대한 증명을 하려고 한다. 사실 증명은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 강해에서 먼저 일이 있지만 조금 자세히 6,7,8절이 성부하나님의 목소리임을 증명해 보도록 하겠. 6절에 보면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뇌성(우뢰,천둥) 같아서라는 구절에 대해 성부하나님의 음성인가 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때문이다. 증거를 찾아보자.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다는 것은 계시록 1장에도 나오는 표현이다. 먼저 많은 물소리.....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소리 같으며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도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뇌성(천둥)같다는 표현은 욥기서에서 있다. 한글 킹제임스성경이다.

 

37.

(4) 후에 음성을 울려 퍼져 나가게 하시며 그는 위엄의 소리로 천둥같이 내시며 그의 음성이 들리면 그들을 붙들고 계시지 아니하시리라.

 

(5) 하나님께서는 그의 음성으로 놀랍게 천둥 소리를 내시며 우리가 알아차릴 없는 일들을 행하시는도다.

 

그리고 다양성을 위해 40장은 개역개정성경으로 살펴 보자.

 

9.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 소리를 내겠느냐

 

이와 같이 굳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천둥소리에 비유한 것의 여러 가지 이유중 하나는 천둥이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세베대의 아들들에게 우뢰의 아들 천둥의 아들이란 별명을 달아 주셨던 것이고 말이다. 천둥의 아들이란 하나님의 아들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가복음 3:17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둘에게는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따라서 요한계시록 19장의 6,7,8절은 성부하나님의 음성이란 것을 감추시고자 그런 표현을 쓰셨던 것이다. 이유는 그것을 보고 연구해서 깨달아 알아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말이다. 여러분께서는 하나님께서 계시록에, 그것도 끝부분이라고 있는 19장에서, 영어 성경에서 번밖에 쓰이지 않은 단어인 omnipotent ( almighty ) 단어를 예수그리스도께 사용하셨는지 상고 보시기 바란다.

 

이제 계시록이 풀림으로써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이 명백히 드러나게 되었다. 아직도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겠거든 그리고 분별이 되지 않으시거든 믿으시라 혹시 틀렸다고 해도 아버지께서 꾸지람하지 않으실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의심나면 계시록을 연구하시면서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명백한 증거를 발견하게 될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한 번 보시기 바란다.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10

 

어떤 선지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가? 또 어떤 선지자가 자신에게 일어날 일과 해야 할 일을 이토록 명확하게 예언한 적이 있었는가 말이다. 어떤 누가 자신은 자신의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한 일이 있었는가? 과연 누가 인생들을 자신의 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천사가? 천만에다. 천사도 사람과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다. 이렇듯 그분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할 수 없는 말씀들로 그분의 공생애는 도배되어 있다. 물론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긴 하나 상관없다.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믿음을 연단받고 상급을 고대하며 주님을 알아가고 또 재림을 앙망하는 수련장과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른다고 구원받지 못한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다 아는 말씀 한 구절 보고 마치려고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태복음2237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올바른 것들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이런 다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중에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몰몬교도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믿음에 따른 구원은 각자에게 주어질 것이요, 단체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나는 장로교, 혹은 침례교, 혹은 감리교에 속해 있기에 구원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제 그런 생각은 버리시라. 혹시 구원받는다면 그가 그리스도인이기에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지, 어떤 종파도 합당하지 않은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할 순 없기때문이다.

 

이상이니  보시고 아무쪼록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시는 시간들 되시길......

 

P/S  삼위일체는 성부하나님을 성자하나님의 위치로 끌어 내리는 것이 아니고 성자 하나님을 성부하나님의 위치로 올려 드리는 것이니 반대로 생각하는 일은 없으시기 바라며....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