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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문제 3-2

by 디클레어 2011. 1. 12.

 

ⓓ 이 흰말 탄 자의 정체는 무엇보다도 '흰말'이란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흰말 탄 자가 요한계시록에 예수님 외 다른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란 말씀이 있다(계19:14). 이들은 누구인가? 하늘의 군대란 말에 근거하여 많은 신학자들은 이들을 하늘의 천사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천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하늘 군대는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아마겟돈에 내려와 적 그리스도의 군대와 싸워 승리하는 군사들이기 때문이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지상군과 상대하여 실제적인 실전(實戰)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이시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천사는 영적인 존재임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주님이 재림하실 때, 하늘의 천사들도 하는 사역이 있다. 예수님의 재림 시에 천사들도 함께 데려 오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들이 할 일은 아마겟돈에서 적 그리스도의 군대와 싸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대 환난 중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모으는 일을 이들 천사들이 한다(마24:31).

 

천사에 대한 오해가 있어서 한 말씀 덧붙입니다. 천사들을 영적존재라고 하시면서 육체가 없는 듯이 말씀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그 형질이 땅에서 난 사람들과는 다른 육체인 하늘의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천사들이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창세기18장과 19장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18장에서는 천사들이 과자와 버터와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를 먹었구요, 19장에서는 그들의 이런 모습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을 롯과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가서 말하기를 "고운 가루 세 되를 속히 가져다가 반죽을 하여 화덕 위에다 과자를 구우라." 하고

 

(7) 아브라함은 소떼에게로 달려가서 부드럽고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가져와 청년에게 주니, 그가 그것을 잡아 요리하더라.

 

(8) 아브라함이 버터와 우유와 그 사람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서 그들 곁에 서니 그들이 먹으니라.

-창세기18장

 

(1) 저녁 때 두 천사가 소돔에 오니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더라. 롯이 그들을 보고 일어나 맞이하고 그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창세기19장

 

이들이 주예수그리스도의 초림 전 주님과 함께 나타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천사들입니다. 따라서 천사와 인간은 비록 형질은 다를지 모르지만 똑같은 형체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천사들의 형질이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간단하게 고린도전서15장을 보겠습니다.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52) 마지막 나팔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

 

(54)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또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되면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천사들은 썩어질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고 하늘의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는자들도 부활할 때 천사들처럼 하늘의 육체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또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는 땅에서 난 육체를 입고 계셨지만 부활하신 이후에는 그 형질이 하늘의 육체로 변화가 되셔서 제자들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또 그 얼굴도 본 모습으로 변화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증명은 계시록에도 있지만 여기서는 요한복음21장을 잠깐 보겠습니다.

 

(7) 그때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주시다."라고 하니, (베드로가 웃옷을 벗은 채로 있다가) '주시다.'라는 말을 듣자 어부의 겉옷을 걸치고 바다 속에 뛰어들더라.

...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와서 먹으라." 하시니 그가 주이신 줄 아는 고로 제자 중에 아무도 감히 "누구시냐?"고 묻는 자가 없더라.

 

주님께서 지상에 있는 모습과 똑같았다면 요한이 바닷가에 서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주시다”,라고 할 이유도 없었으며 12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가 주이신 줄 아는 고로” 라는 불필요한 설명을 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모두 아시고 있는 얘기를 거창하게 꺼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상의 육체와 하늘의 육체는 형질만 다를 뿐 같은 역할을 한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꺼낸 것이니 별다른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결론은 땅에서 난 육체는 썩지만, 하늘에서 난 육체는, 그리고 성도의 변화된 육체는 썩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마겟돈의 전쟁은 육적으로 치고 받는 전쟁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능력으로 사탄의 무리들은 썩어지며 무너지는 것입니다.

 

(15) 그의 입에서는 예리한 칼이 나와서 그것으로 민족들을 칠 것이요 또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틀을 밟으실 것이라.

-요한계시록19장

 

(12) ○ 주께서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싸운 모든 백성을 치실 재앙이 이러하리니, 그들이 서 있을 때에 그들의 살이 녹아 없어질 것이요, 그들의 눈이 그 구멍 속에서 녹아 없어질 것이며, 그들의 혀가 그 입에서 녹아 없어질 것이라.

-스가랴14장

 

요한계시록19장의 상황은 아마겟돈상황이 분명한 것은 아실 것이라 생각하고 또 혹시 분별하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스가랴14장의 이 전쟁도 바로 아마겟돈전쟁상황입니다. 이렇듯 그 악한 무리들은 말씀의 권능으로 썩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주님과 함께 재림하는 신부들(승리한 주의 백성, 성도)이 하는 일은 환호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하는 시간쯤에는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의 휴거가 이미 끝나 있을 때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말씀하신 마태복음24장31절 말입니다.

 

(31) 또 주께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시리니, 그들이 하늘 이편 끝에서 저편 끝까지 사방에서 그의 택하신 사람들을 함께 모을 것이라.

 

이 31절의 성도를 모으는 장면은 재림과 동시에,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은 재림하시고 땅에 가까이 오실 무렵 일어나는 것이라고 봐야 계시록 19장과 마태복음24장31절을 서로 비교해 봤을 때, 시기적으로 오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백마를 탄 하늘의 군대는 첫째 부활자들인 순교자들이다. 이들에 대하여 계17:14절에서는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다.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했는데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늘 군대란 바로 이들 '그와 함께 있는 자들'로 이들은 천사가 아니라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이다. 이들의 자격은 바로 계14:1-4절에서 언급해 주고 있는 144,000명의 자격에 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습니다. 다만 약간 다른 것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모든 성도, 즉 14만4천과 순교성도,그리고 주님 재림하실 때 휴거되는 성도들이 모두 포함된 것이 바로 하늘의 군대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 다른 성경에는 이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가?계17:14 - 부르심을 얻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유14 -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고전15:23 -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슥14:5 -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그렇습니다. 그 얘기였습니다.

 

3. 둘째 인의 붉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번째로 등장하는 말이 '붉은 말'이다. 4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붉은 말의 등장 모습을 보면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칼을 받았더라'고 했다. 이 붉은 말에 대하여 개혁주의적 입장이나 세대주의적 입장이나 공통적이다. 전쟁으로 해석한다. 땅에서 화평을 제한다. 큰칼을 받았다고 하는 붉은 말의 모습은 전쟁으로 해석하기에 이의가 없다. 그런데 이 전쟁은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유브라데 전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붉은 말은 어느 한 나라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전쟁을 일으킬 세력들, 곧 네 바람을 가리킨다. 이 네 바람에 대하여 계7:12절에서는 '땅의 사방의 바람'이라고 했고, 계9:14절에서는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라고 했다. 이 전쟁은 중동에서 일어날 전쟁이기 때문에 유대인들과도 관계된다. 이 전쟁 세력에 대하여 단7:2절에서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 전쟁의 최종적인 승자는 적 그리스도에게 돌아간다(단7:23). 이 전쟁으로 세계는 황폐화되고 세계 인류는 그 ⅓이 죽게 된다(계9:13-15). 그러므로 이 전쟁은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무서운 재앙으로 7년 환난 중에 등장하게 된다. 이 전쟁의 양상은 남방 왕이 적 그리스도를 찌르는 일로 일어나고 이 전쟁에 북방 왕도 개입하게 된다(단11:40). 이 전쟁은 유대인들에게 큰 화가 될 것이다(단11:41).

 

이 붉은 말은 개혁주의자들이나 세대주의자들이 모두 잘못 해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첫 번째 나온 흰 말을 탄자가 어떤 인물을 의미한다면 이 붉은 말을 탄 자도 인물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검은 말을 탄 자도 마찬가지일 것이구요. 제가 미리 읽어본 바에 의하면 님께서도 청황색 말을 탄자를 적그리스도로 분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과 끝은 인물이라고 하시고 중간에 말을 탄자들을 무형의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붉은 말을 탄자를 사탄이라고 해석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길게 서술해 놓은 글이 있기에 여기에 옮기진 않겠습니다만 처음에 인물로 견지한 해석을 전개해 나가셨다면 끝까지 말탄 자들을 인물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며 이 계시록을 알리시는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계시를 하셨을 거라는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브라데전쟁은 적그리스도가 등장한 이후에, 님의 말에 의하면 7년환란중반에 벌어지는 전쟁입니다. 그런데 청황색말을 적그리스도로 해석하신 분이 이 청황색 말을 탄자가 나타나기 전에 붉은말이 유브라데전쟁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오류가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니엘11장에 나오는 남방왕과 북방왕은 말세에 일어날 일을, 당시에 일어났던 일로 상징화시켜 보여주는 일단의 전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역사적인 인물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적그리스도로 상징화시켜, 말세인 주의 날에 연결한 하나님만의 계시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자료와 다니엘12장으로 연결되는 1절을 주의깊게 보시면 알게 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4. 검은 말은 무엇을 의미해 주는가?

 

세 번째로 등장하는 말이 '검은 말'이다. 검은 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 말의 등장은 인류의 기근을 의미해 준다. 이 같은 해석은 모든 신학자들간에 공통적이다. 이 검은 말을 탄 자의 모습을 보면 손에 저울을 가졌다고 했다. 그리고 네 생물 사이로서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고 하는 음성이 사도 요한에게 들렸다.

 

저울은 경제적인 수단으로 사용되는 도량 형기인데 저울이 등장한 것은 인류의 종말에 말할 수 없는 기근이 인류들에게 닥쳐올 것을 의미하며 경제적인 통제 정책을 말해주기도 한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물건의 매매도 금지하는 무서운 법이 시행되는 일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임금을 의미하는데 그 임금으로 살 수 있는 양식은 말 한 되와 보리 석 되밖에 안 된다.

 

이 검은 말을 탄자가 기근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모든 신학자들의 공통이다라는 말씀으로 사실인 양 이끌고 가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신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도 그것은 잘못된 해석일 수 있습니다. 앞서서의 해석을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았다면 이번에는 뒤에 나오는 청황색말을 가지고 이 해석의 논리가 어긋남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청황색말을 적그리스도로 해석하신 것에 대해 지극히 공감을 표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떤 권세를 가지고 사람 사분의 일을 죽이는가를 보십시오. 바로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 사람 사분의 일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 검은 전쟁을 말함이요, 사망은 자신을 경배하지 않는 자를 죽이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고, 또 검은말의 무기였던 기아, 즉 기근으로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굶주림이 그 앞에 있는데 또 다시 기근으로 죽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기아나 기근, 그리고 굶주림으로 기술된 이것은 환란의 한 방편으로 사용될 뿐이고 , 검은 말을 탄자가 기근이라면 따로 특별히 거론되어야 할 만큼의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검은말을 탄자는 기아나 기근을 뜻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고 할 것입니다.

 

저는 이 저울을 든 검은 말을 탄자를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천사로 분별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을 옮길수는 없습니다만 이 저울에 대한 각별한 의미가 있는 구절을 다니엘에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27) 테켈은 왕을 저울에 달았더니 부족함이 나타났다 함이요,

-다니엘5장

 

바로 이 의미입니다. 주님의 피값으로 살 수 있는 성도인가를 재는 역할이 바로 이 검은말을 탄자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각 성도들을 주님의 피값인 한 데나리온으로 재서 구원의 가부와 함께 먼저 심판으로 나아가는 자를 분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24) 어떤 사람들의 죄들은 먼저 드러나서 먼저 심판으로 나아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뒤를 따르나니

-디모데전서5장

 

그동안 기아나 기근으로 또는 흉년으로 많은 분들이 해석을 하셨고 그래서 그렇게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만, 조만간 이것이 올바른 해석임을, 그리고 글의 전개상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기근은 왜 온 것인가? 두 증인이 예언할 동안 하늘을 닫아 비를 못 내리게 한다(계11:6). 유브라데 전쟁(핵전쟁)으로 온 땅이 황폐화되어 식량난이 극심하게 된다.

 

여기에 대한 반론은 앞에서 전개한 바가 있어서 이곳에서는 생략합니다.

 

이 기근으로 짐승(적 그리스도)은 '6.6.6. 표'를 받지 않는 자에게는 매매를 못하게 하므로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

 

굶주림과 매매는 상관없습니다. 매매를 못하게 한다는 것은 짐승을 경배하지 않으면 죽여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기근의 재앙에서 해함을 받지 않을 존재가 있다. 6절 끝에 나오는 말씀,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는 명령이 그것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무엇을 말하는가? 감람유는 성령을, 포도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감람유와 포도주의 대상은 두 증인에 의해 척량에 합격된 자들로 신부의 준비를 갖춘 슬기 있는 처녀들이며 '큰 환난에서 나오는 흰옷 입은 무리들'이다(계7:13-14. 마25:1-10). 해치 말라는 명령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들의 보호를 말한다. 이 보호는 흰옷 입은 그리스도의 신부들에 대한 보호처에서의 양육을 의미한다(계7:16-17. 계12:6,13-14).

 

이 검은말이 활동하는 주 시대는 교회시대요 은혜시대인 일천이백육십일, 즉 7년환란전 기간입니다. 따라서 감람유와 포도주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시기상오류가 되겠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감람유는 저울에 합당한 성도이고, 포도주는 계시록14장에 포도즙이 밟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악인들로 봐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심판에는 여러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명백하게 드러나는 죄악이 있고, 마지막때에 가서야 심판을 받아서 시시비비를 가릴 그런 죄악말입니다. 그러나 특히 악의 축인 포도주는 다니엘11장41절에서 보듯이 마지막심판때까지 그 죄악의 심판을 유보한다, 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5. 청황색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지막 네 번째로 등장하는 말이 청황색 말이다.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고 했다(계6:8). 이 자의 해석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 이 자는 그냥 단순한 죽음의 재앙만을 의미하는 존재는 아니다. 이 자의 정체야말로 적 그리스도, 바로 그 자이다. 사람들이 이 자를 적 그리스도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첫째 인을 뗄 때 등장하는 흰말을 이미 적 그리스도로 단정 짓고 있기 때문이다. 청황색 말이 적 그리스도란 사실은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다. 그의 이름이 사망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이름은 사망의 사자, 사망의 왕이란 뜻이다. 적 그리스도는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 자는 자신의 표로써 세계 인류들에게 사망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 자의 뒤에는 음부가 따른다고 했다. 음부란 곧 지옥을 의미하는데 짐승의 표를 받으면 누구든지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계14:9-11).

 

 이 자는 땅의 ¼의 권세를 가졌다고 했는데 이 같은 권세는 적 그리스도가 처음에 4대 열강 중에 하나로 세상에 등장한 사실을 의미해 준다(단7:1-7. 계7:1). 그가 가진 권세로 하는 일이 몇까지로 열거되었다. 검으로 죽인다고 했다. 이 검은 그 자가 가지고 있는 권세이다(계13:15).흉년으로 죽인다고 했다. 이 흉년을 이용하여 짐승의 표를 준다(계13:17). 사망으로 죽인다고 했다. 짐승의 표를 받게 함으로 죽이게 한다. 땅의 짐승으로 죽인다고 했다. 이 땅의 짐승은 거짓 선지자를 의미한다(계13:11-15).

 

아주 훌륭한 분별로써 저도 한 수 배웠습니다. 그런데 몇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땅의 권세 사분의 일이라는 부분입니다. 이 땅은 세상열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열국은 다니엘과 계시록에 모두 바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땅이라는 것은 이 부분에서는 특히 종교 관련한 것 즉, 성도의 무리라는 것을 말한다라고 보는것이 타당하다,할 수 있겠습니다. 이유는 계시록7장1절에서 알아보겠습니다.

 

(1) 이 일들 후에 내가 보니,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사방에서 부는 바람을 붙잡아 그 바람이 땅이나 바다나 어떤 나무에도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동쪽에서 올라오는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장을 가지고 있더라. 그가 땅과 바다를 손상시킬 권세를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3)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그들의 이마에 인장으로 표시할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또는 나무들을 손상시키지 말라."고 하더라.

 

물론 대환란기간은 성도나 비성도나 모두 맞이하게 될 이 땅에 내려지는 시험기간입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 시기는 성도들에게 아주 큰 시련과 고난의 날들이 될 것임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입니다. 적그리스도를 아무 거리낌없이 하나님으로 섬기면 되는 일반인들은 그나마 무사할 것이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를 경배할 수 없기 때문에 순교로써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거나,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그 핍박을 피해다니며 믿음을 지키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앞에 그렇게해서라도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흔두달의 환란이 하나님의 시험기간인 것이요, 믿는 자들에게는 연단의 기간이요, 그렇게 하므로 완전한 주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기간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 얘기를 꺼냈는지 의아해 하실 것 같습니다. 결론을 단순하게 내려 보겠습니다. 이 사분의 일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성도의 숫자를 얘기하고 그가 사분의 일을 죽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순교성도들중에 사분의 일을 죽인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하게 애기를 하면 순교성도가 모두 4억이라면 그중에 사분의 일인 1억명의 성도를 이 짐승이 죽인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별한 모든 글을 옮길수는 없지만 바다와 땅이 가진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이 해석을 받아 들일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상으로 계시록의 9가지 핵심문제중 세 번째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