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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숫자로푸는계시록

계시록에 관한 여담

by 디클레어 2022. 8. 15.

현재의 우리는 적그리스도에게 주어진 한이레의 기간에 들어와 있는지 확실히는 알 수 없다. 단지 아직 대환란이라고 불리는 후삼년반의 기간에 들어와 있지 않은 것만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겠다.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연구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만이 빌라델비아교회인 144천에 속해 있기에,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44천은 후삼년반 시작 한 달전에 들림을 받아 하나님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대환란의 기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앞선 글들에서 이미 설명했기 때문이다.

 

계시록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일까? 계시록11절에는 그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이 글을 요한에게 작성하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계시록을 정확히 해석하지 못한다면 주의 종이 아니라는 얘기이고, 이 계시록을 이해하고 풀 수 있는 자들만이 주의 종들이라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이 땅에는 주의 종이라고 불릴 수 있는, 요한계시록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대로 해석한 사람들이 각 나라에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소수일 것이며 본인은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조금 편협하게 생각해 보자면 이를 올바로 해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지 않겠는가? 의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킹제임스성경의 영문조차 작은 오류가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알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이 이것을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의 누군가는 제대로 된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연구해서 해석해 낸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한 한 사람정도만 그 계시록을 해석해 낼 수 있다면 이건 누가 봐도 말이 안되는 억지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인은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에 대해 작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가능하면 계시록에 대해 올바로 알고 싶어하는 분들이 이 블로그를 발견하기만을 바랄뿐이다. 그들을 이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 글을 이해하는 그런 이들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고집이 있다. 계시록에 대해 연구하고 탐구하시는 분들은 그 고집이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도 하고 있다. 남의 말만 잘 듣고 다른 사람의 글과 사상만 공부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은 계시록해석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고도 있다. 그 중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의 해석을 자신의 논리와 비교해서 옳고 그름을 나름 잘 판단하고 있는 부류도 존재하기도 할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소수겠지만 바로 그런 말씀에 대한 분별력과 통찰력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바라는 자세이기는 할 것이나, 이런 접근법을 가지고 있는 이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하나님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더군다나 그 어렵다는 계시록해석을 비 전문인 사람들이 해 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힘들지 않겠나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 생각엔 아무래도 계시록해석을 해 내는 사람들은 말세에 세 사람?정도만 존재하지 않겠는가 추측하고 있기도 하다. 그 세 사람만이 말세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너무 숫자가 적어 터무니 없는 생각이기 들기도 한다. 이러다 주님앞에서 수없이 많은 해석자들과 조우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럼 황당하겠지? 어쨌거나 지금까지 나는 내 주위에서 단 한사람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각설하고, 이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을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런일을 할 필요가 있나?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숫자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택하신 자는 6억명이고, 그들만이 창세로부터 하나님께 택정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더불어 그 숫자에는 사람들의 어떠한 노력으로라도 더해지거나 감해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일 외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이고, 우리가 우리 힘으로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 그 어떤 도전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바 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혹시 이 글만 읽는 분들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하나 첨부하자면, 6억명은 하나님의 성전에 출입할 수 있는 자들인 것이고, 그 외에 성전밖에서 살아가는, 그들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하는 사람들의 수는 그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왕중의 왕, 만왕의 왕을 섬기는 6억명의 왕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백성들도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일이다. 그들은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기쁨과 환희에 끝없이 즐거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스려지는 백성들 또한, 적어도 이 땅에서보다는 만족한 삶을 영위할 것이다.

 

그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해야 할 일은 그분의 진노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세상의 부귀와 명성, 권력을 바라지 말고, 그저 오늘 주시는 일용할 양식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며, 부자청년에게 말씀하셨듯 네 가진 재산을 아끼지 말 것이며, 오늘 그 재물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실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한 좋은 집을 마련해 주실 것이다. 그 집을 마련하려고 가신다 하셨으니 주의 백성 각자 모두가 완전히 만족하는 좋은 집을 지어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직접 지어주신 집이라니...... 사실 본인은 그러한 집을 디자인할 만한 능력이 없기에 재능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서 지어도 되는데, 직접 지어주신다고 하시니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지 황송하기만 하다.

 

몇 번 한 얘기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착각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 드린다는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단 한톨도 바칠 수 없다. 그 한톨도 하나님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분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 분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며, 가르쳐주신 기도문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바램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하여 주듯이, 아버지께도 우리의 죄를 사해 달라고 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 용서하는 것이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잠언 24장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17).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18)

 

나는 선한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내 원수라고 생각하는 악인이 엎어질때에도 기뻐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에 관한 깊은 묵상이 필요한 부분이긴 하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도 창조하시고 선인도 창조하신 그야말로 절대적 주님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에 그 분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것을 알고 있다. 그 영으로 인해 악인들이라 생각했던 그들조차도 맑은 영으로 화할 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와 친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무언가를 알고 순수한 것과, 모른 채 순수한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아담과 하와는 순진하고 깨끗했지만, 아직 지혜는 부족하여 옛 뱀, 마귀, 사탄에게 속고 말았던 것을 현대의 하나님을 따르는 우리들은 기억하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이들은 교만하기 쉽고, 다수의 누군가를 무시하기도 쉽다. 이것을 교만이라 부르며, 우리를 개미와 같은 존재로 치자면, 그 지혜자는 다른 개미들보다 뛰어나다고 인정받을지 모르지만 하나님보시기에는 그냥 개미다.

 

그러나 한탄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이고,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좋으셨다고 여기시는 피조물중에서도 으뜸에 속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하늘과 땅과 사람중에 사람은 하늘과 땅을 연결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존재들로써 지어졌고 살아갈 것이니 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그 분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받았던 역사도 없었을 것이며, 또 우리를 위해 영원한 생명을 예비하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아는 자들은 하나님을 따를 것이며, 또 그들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가장 미천한 존재일 수도 있고, 또 가장 고귀한 존재일 수도 있는 그 사이를 왕래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말이다.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일 것이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기준이 될 것이다.

 

구원에 관하여서는, 모두가 치우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나 보려한 즉 하나도 없으니 아무도 없더라, 라는 말씀에 의거하여 생각해 보면, 생명을 얻는 보편적인 기준이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단순한 과정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사람을 구원하고, 또 올바른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또 다른 구원 조건은 필요불가결한, 그야말로 지극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사람은 단순한 걸 좋아하나, 하나님의 단순함은 인간의 복잡함을 뛰어 넘으니 그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고,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소수일 것이나, 이해하든 못하든 그들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영생을 허락하셨으니 모든 사람에게 편만하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사람들은 영원히 감사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최근 들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라가 나라를 치고, 민족이 민족을 친다는 것은 대환란의 서곡에 불과한 것이며, 이제 마흔 두 달 대환란에 들어가게 되면, 통치자의 군대가 이 땅의 성도들을 혼란과 공포와 아비규환의 세계로 몰아갈 것이다. 그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이는 일들을 서슴치 않을것이며, 난폭하게 굴 것이며, 여자들은 욕을 당할 것이고, 또 믿지 않는 자들조차도 두려움에 떨며 그들을 신봉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지 못하는 학자들에 의해, 지금도 성경은 난도질당하고 있고 과학이라는 미명으로 수많은 기적들이 부정당하고 있는 현실에 한탄하며, 그들을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의 행하심에 감사를 표한다. 적어도 그런 이들보다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 우리가 더 그 분의 나라에서 인정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다투기 싫어서 대화를 아예 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여도 그 중 한명이고 말이다. 세상이 많이 어지러운 이 때, 그러니까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선한 사람이 괴로운 현실을 보내고 있는 이때를 잘 보내야만 하나님의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티끌로 만들어져 그 티끌들 가운데 그나마 큰 티끌로써 하나님께 쓰여진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다면 그보다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어려운 일들 잘 이겨내시고 주님의 나라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