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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발람당과 니꼴라당 - 목사제도 - 교회안에 군림하는 자들

by 디클레어 2010. 10. 6.

발람당과 니콜라당

Κρατουντας Βαλαμ και Νικολαιτων

1.  문제의 제기

 

이 문제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 2 15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니콜라당이 마치 앞문장의 음행에 관련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이 문장의 전후 관계를 면밀히 정확히 분별해내는 것은 분별에 중요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발람교리를 좇는 사람들과 니콜라당 교리를 좇는 사람들을 거의 동일시 하거나, 니콜라당이란 음행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계시록 2 15절을 14절의 연속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2

14 그러나 내가 너를 거스리는 것을 조금 갖고 있으니, 곧 네가 거기서 발람의 가르침을 붙잡은 자들을 가진 것이며, 그는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실족거리를 놓게하고 우상제물을 먹게하고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15 마찬가지로 너는 또한 내가 미워하는 니콜라당의 교리를 붙드는 자들을 가졌도다.

 

그러나 당시의 교회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음행을 좇는 사람들이 특별한 교파를 형성하였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파를 형성하였다면 교회 밖에서 이미 정죄되었을 것이며, 내부에 들어왔다면 곧바로 정죄되어 축출되었을 것입니다. 이 니콜라당의 교리는 그렇게 쉽게 분별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매우 교묘히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에 대하여 잘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니콜라당은 계시록 2 6절에도 나오며, 예수님은 그들의 행위와 교리들을 미워하심에 틀림없습니다.

2장

6 그러나 네가 이것을 행하나니, 곧 네가 니콜라당의 행위들을 미워함이니, 나도 그것들을 미워하노라.

 

예수님이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신 것들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니콜라당의 행위들을 미워하는 것은 예수님의 칭찬 대상입니다!

 

(2) 니콜라당=지배계급, 교회안의 지배계급-성직자, 교역자

오늘날 히브리어와 고대 코이네 그리스어 원어 성경의 대부분의 해석은 신학교 출신의 목사들이나 교수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의 니콜라당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석은 바로 그들에 관련된 것이며, 그들에게 니콜라당이 누구이냐고 물어보는 것은 여호와 증인에게 이단들이란 누구입니까? 혹은 통일교인들에게 어떤 사람들이 이단들입니까? 혹은 몰몬교도들에게 성경을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쓸 수(저술할 수) 있는 것입니까? 또는 전도관이 이단입니까? 하고 신앙촌 사람들에게 묻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대목의 단어 니콜라당의 원어는 바로 교회안의 지배계급, 소위 성직자 계급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지배자, 정복자, 지배계급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일반 평신도 ( λαος 라오스)를 정복하다, 이기다 지배하다 ( νικαω 니카오)는 뜻의 합성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원래 교회안에는 성직자그룹과 평신도 그룹이라는 구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처럼 성직자제도가 초대교회 말부터 곧바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9 왜냐하면 내가 이것을 아나니, 내가 떠난 후에 맹렬한 늑대들이 너희가운데로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너희 자신들 중에서도 사람들이 자기들의 뒤를 좇을 제자들을 끌어내려고 왜곡되게 말하며 일어나리라.

 

 

 

성경안에 이 단어에 대한 해석이 없는 것은 그 단어 자체의 뜻에서 자명하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이 없는 것으로 분별됩니다.

 

(3) 교계에서 알려진 해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들어온 바로는 이 니콜라당에 대한 해석을 초대교회의 일곱집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니콜라( 6:5) 가 타락하여 믿음을 배반하고 자기 아내를 음행에 내어주어 매춘, 윤락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어디에도 근거가 없거니와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람을 잘못보아서 잘못 뽑았거나, 성도들이 거듭난 이후에도 심히 타락할 수 있다는 그릇된 추론이며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이 말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마태 7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선한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마다 악한 열매를 맺느니라. 18. 좋은 나무가 악한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나쁜 나무가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일곱집사들 중 두 사람의 믿음은 이미 알려졌습니다. 스테판과 필립이 그러했습니다. 그 일곱집사의 믿음 수준에 이르려면 엄청난 영적 수련과 주님께 대한 충성이 연단되었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으며, 나머지 다섯 집사들의 영적 수준들 또한 스테판이나 필립에 비해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합니다. 그들은 수없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기도하며 간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기를 연습하는 한편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바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전심전력, 전력투구하여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특히 니콜라는 안티옥 출신으로서 그곳은 로마제국 당시에 마리아 숭배를 끝까지 거부했던 최후 보루였습니다. 오늘날 킹제임스 성경 및 충실한 번역의 성경들은 그 뿌리를 알렉산드리아 계열에 대립되는 안티옥 교회에 두고 있다고 복음진영에서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의 소유자 니콜라가 그토록 타락했다면 교회에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안에 누가 그런 사람을 추종하는 사람들로 있겠습니까? 오늘날 장로교안에 정명석 교리를 따르며 정명석 혼음교리를 추종하는 자들이 있습니까? 이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가 아니겠습니까? 어느 교파안에 그런 음행을 가르치는 교리 추종자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퍼가모 교회는 안티파가 순교하는데에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2:13). 그런 교회안에 그토록 심각한 죄를 범하는 자들이 그냥 온존하고 있었겠습니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서는 상상할수도 없는 배도 행위를 니콜라당의 행위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그런 해석을 행한 자들의 구원여부를 매우 의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듭남이 무엇인지, 또 초대교회에서 선임된 집사들의 믿음이 어떠했을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해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이렇게 니콜라당과 음행을 연결시키는 오해가 나왔을까요? 그것은 다음에서 설명드리는 바와 같이 그리스어 원문을 오해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에서 니콜라당과 음행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4) 계시록 2장의 원어문

 

니콜라당이라는 말은 성경 전체에서 두번만 나오며 그것은 오직 계시록 2장에서만 나옵니다. 2 6절은 에베소교회가 니콜라당의 행위들을 미워하므로 예수님도 그것들을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니콜라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주지 않으므로 이를 근거로 니콜라당이 무엇이라하는 주장이 나온 적이 없습니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15절입니다.

 

2

14 그러나 내가 너를 거스리는 것을 조금 갖고 있으니, 곧 네가 거기서 발람의 가르침을 붙잡은 자들을 가진 것이며, 그는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실족거리를 놓게하고 우상제물을 먹게하고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15 마찬가지로 너는 또한 내가 미워하는 니콜라파의 교리를 붙드는 자들을 가졌도다.

 

많은 번역들은 15절의 접속사를 마찬가지로 또한, 대신에 그와같이 너희도 니콜라당을 가졌다고 하여 앞절의 발람이 음행하게한 구절과 연결시키며 그로 인해 14절과 15절이 동일한 행위들을 지적하는 듯한 뉴앙스를 주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며 접속 부사 후토스의 의미와 사용례를 살펴보면 오해의 근원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먼저 원어문을 옮깁니다.

 

2 15

Ουτως εχεις και συ κατατουντας την διδακην Νικολαιτων ομοιως

 

위에 빨간글씨의 후토스( Ουτως )«이와 같이»라는 뜻도 있지만 한편, 혹은 다른 한편 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영어의 One in one way, and another in another, 뜻이 되겠습니다.

 

이제 사용례를 보겠습니다.

 

고전 7:7

7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이 있기를 원함이라. 그러나 각자가 하나님께로부터 고유의 은사를 받았으니, 혹은 이러하고 혹은 저러하니라

 

여기서 이러하고 저러하다는 말은 후토스를 번역한 것이며 각각 다른 입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하고 저러한 은사가 동일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마태 12 40

40.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세낮과 세밤을 있었던 것처럼 그와같이 인자도 땅속에 세낮과 세밤동안 있으리라.

 

이 말은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원리와 마찬가지라는 뜻이지, 예수님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요나와는 대조적으로 십자가를 지셨고 무덤에 안치되셨습니다만

마태 24장 27절

27 번개가 동쪽으로부터 나와 서쪽까지 비췸같이 인자의 강림함도 그러하리라.

 

이 또한 원리가 비슷하다는 뜻이지, 예수님이 번개라는 뜻도 아니며, 번개가 사람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 계시록 2 14절과 15절을 해석하는 것은 뚜렷해졌습니다. 퍼가모 교회에는 안티파가 순교할 때에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흩어지지도 배도하지도 않았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 중에는 발람당과 니콜라당이 있었습니다. 발람당은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고 다음 단계에서 음행하게 하였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또 니콜라당을 갖고 있었던 것이며, 그것은 배도의 측면에서는 발람 당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진리에서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니콜라당은 앞서 설명한대로 교회안에 있는 정복자 계급을 의미하며 그것은 바로 성직자다, 교역자다 하고 불리우는 자들을 말하며 이들은 자기들을 제외한 사람들을 평신도라고 분류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니콜라당의 행위와 교리들을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은 성직자제도, 교역자 제도, 신학교 출신들로 안수받은 자만 설교할 수 있고, 특정계급만이 축도하며 특정계급만이 침례와 성만찬을 집례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다른 성도들의 참여를 막고, 그들로부터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것을 막는 행위들을 미워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발람의 교리는 왜 미워하실까요?

 

(5) 발람당의 교훈과 문제

발람은 민수기 22, 23, 24장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돈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돕기도 하고, 이스라엘로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며 음행하게 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게하는 역할을 해냈습니다.

 

그러므로 발람의 교훈을 좇는 자들인 발람당은 크게 3가지의 죄악들을 범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첫째 우상의 제물들을 먹는 죄를 범했습니다 ( 2:14) 또 그들은 음행에 관련되었을 것입니다(2:14)

이런 행위들을 행하는 자들은 « 이것은 종교가 아니라, 문화행사야, 혹은 민족의 고유 명절이야등의 변명으로 조상제사에 참여하기도 하며, 여신 숭배행사에 참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발람당은 베드로 후서와 유다서에서 그 행태를 볼 수가 있습니다.

 

 배드로 후서 2

15 저희는 발람의 아들 브올의 길을 좇아, 곧은 길을 버리고 빗나갔으니,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했었으나, 16 자기의 범법함에 책망을 받았으므로;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음성으로 말하여, 그 선지자의 미침을 막았느니라. 17 저희는 물없는 샘들이요, 돌(태)풍에 밀려가는 구름들이니, 저희를 위하여 어두운 흑암이 영원토록 예약되었느니라

 

오늘날 돈신숭배하고 헌금강요하는 목사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삯을 위하여 성경말씀을 변질시키고 성도들에게 억지로 (고후 9:7) 헌금을 내도록 공갈협박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간 것입니다.

 

유다서 11

삯을 좇은 발람의 빗나감으로 달려갔으며 코라의 반역에 멸망하였느니라.”

 

그런 까닭에 오늘날 목사들 중에는 발람당 당원들이 많습니다!

한국 교회 목사들의 십일조 강요와 공갈협박 수법은 아주 탁월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전 4장

11 조용하기를 열심히 노력하는 것(배우는것)과 자기 일들을 실천하는 것과 너희 자신들의 손들로 일하는 것이니, 우리가 너희에게 명한 바와 같으며

 

살후 3장

7 왜냐하면 너희가 마땅히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 스스로가 아나니, 이는 우리가 너희 중에서 질서없이 행치 아니하였고 8 누구에게서도 값주지 않고 음식을 먹지 아니하였고, 도리어 밤낮 수고와 땀나는 노력으로 너희 중 아무에게도 짐이 되지 않도록 일하였으니, 9 이는 우리가 권리가 없음이 아니라, 너희가 우리를 본받도록 우리 스스로를 너희에게 모본으로 주고자 함이었느니라. 10 또 왜냐하면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이것을 우리가 너희에게 명하였으니 즉 누구든지 일하기를 원치 아니하거든 그는 먹지도 말게 하라! 는 것이라. 11 이는 어떤-사람들이 질서없이 너희중에 행하며, 아무일도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참견하러 다닌다는 것을 우리가 들음이라. 12 그러나 이러한 자들에게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엄명하고 권면하는 바는 조용함으로 저희가 자기들의 양식을 먹도록 함이라.

일해서 자기 양식을 먹는 것이 사역자의 기본적인 출발점입니다! 물론 교회가 성장하여 성도들이 전심으로 사역하는 장로들을 부양할 수 있을 때는 전심사역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권리가 없음이 아니라고 말한 바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스스로 이렇게 섬겼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4 너희 자신들도 아나니 나의 필요들과 나와 함께 있는 자들을 위하여 이 손들이 섬겼느니라. 35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고 친히 말씀하신 주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여, 이렇게 수고하여 우리가 약한자들을 도와야 마땅하다는 모든 것들을 내가 너희에게 보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날 목사들은 신학교를 나와서 일해본 경험도 없이, 세금내본 경험도 없이, 가정에서 자녀들을 양육해본 경험도 없이 안수받아 목사가 되어 기업인들을 가르칩니다. 그들은 교회안에서 마치 특별한 계급에 속한 사람들인 양 행세합니다!

 

이것이 바로 발람당 목사들의 행태입니다!

 

(6) 니콜라당 문제의 심각성

교회안에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교회안에서 아무리 신실하게 섬겼어도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으면 강단에 서서 설교할 수 없는 반면, 자신들의 삶이 검증되지도 않았어도 신학교를 4년 다녔다는 근거로 목사가 되어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은 교회 안에서 되는 일이 없고 그가 원하는 일은 안되는 일이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일반 성도들이 말씀을 전하거나, 가르치려하면 네가 무엇인데 가르치려느냐? 혹은 너는 목사의 승락을 받았느냐? 하는 말로 다른 성도들의 사역을 밟아버리는 행위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오늘날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으면 오늘날의 교회에 나가도 설교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바울이 현대교회에 온다면 그가 신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상 그에게 설교권도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날 성도들 중에는 바울처럼 살려는 사람, 예수님 처럼 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신학교를 다니지 않는 한 그들에게 설교할 기회나 그들이 침례를 시행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계 모든 족속들로 제자들을 삼아 침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셨으며(마 28:19)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딤후 4: 2) 이것은 목사들에게만 주어진 명령이 아닙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전도를 평신도들에게 권하는 것은 자기 교회로 모으라는 말이지, 전도의 본질을 가르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에는 반대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나, 우리는 그 세미한 뉴앙스에 주목해야 합니다.

 

니콜라당은 다음과 같은 근원지를 신약에서 갖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9 왜냐하면 내가 이것을 아나니, 내가 떠난 후에 맹렬한 늑대들이 너희가운데로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너희 자신들 중에서도 사람들이 자기들의 뒤를 좇을 제자들을 끌어내려고 왜곡되게 말하며 일어나리라.

 

오늘날 교회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좇도록 신자들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들을 좇게하려고 사람들을 모으며, 사람들 위에 군림합니다.

 

또한 목사라는 직책은 성경에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성경에는 오직 두개의 직책이 있으며 그 하나는 장로이고 다른 하나는 집사입니다.

장로는 감독이라고도 불리웠으며( 20:17, 28) 감독과 집사의 자격요건은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에 소상히 나와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 카톨릭에서 초대 교황이라고 불리웁니다만, 그는 스스로를 장로된 자라고 말하였으며(벧전 51) 사도 요한도 스스로를 장로라고 불렀습니다(요한21, 요한 31)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초대교회의 회의에서는 장로와 사도들이 나오지만 목사라는 직책은 없습니다. 빌립보서 1 1절에도 감독과 집사는 나와도 목사라는 직책은 없습니다. 목사라는 직책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으로서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볼수도 없기 때문에 그 자격요건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목사들의 또 다른 근원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 3 9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트레페

 

그외에

휘메네오 알렉산더(딤전 1:20), 필레토스(딤후 2:17)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사제도의 조상들은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7) 니콜라당 목사들은 모두 지옥으로 가는가?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안믿고에 달려있는 것이지 니콜라당이라고 해서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안믿는다는 말은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목사들이 구원얻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믿을 때 얻는 것이며, 많은 목사들이 이 진리를 믿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어떤 목사들은 권위적인 자세가 거의 없고 오직 주님께 헌신하고 있으며, 헌신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낮은 자리에서 성도들의 의견들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수많은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공과는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평가될 것이며 그들의 헌신은 결코 무시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목사들은 오늘날 현 세상에서는 매우 존경을 받지만 하나님 앞에 나가는 날에는 창피를 당할 것입니다!

왜요? 성경에 있지도 않은 목사제도를 만들어서 자기들을 다른 신자들과 구분하는 한편, 다른 신자들은 설교하지도 못하게 하고 기도하지도 못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로 앉아 계셔야 할 자리에 앉아 군림하며 온갖 교훈들을 왜곡시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앞서서 매우 헌신적인 목사들이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에게서 마저도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오늘날 니콜라당 목사들은 지옥으로 간다기 보다는 다음의 말씀처럼 인간들의 예상을 넘어 지극히 작은 자들로 여겨질 것입니다.

 

마태 5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들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라도 허물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면 그도 천국에서 지극히 작게 여김을 받을 것이요, 그것을 행하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니라.


위에서 보듯이 그들은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들로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구원얻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8) 니콜라당 과 144,000

 

예수님은 니골라당의 교훈과 행위들을 미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144,000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14:4) 따라서 니콜라당은 144,000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목사들은 매우 신실하며, 헌신적이고, 성도들을 섬깁니다.

 

그들은 교회안에서 군림한다기 보다 매우 헌신적이며 교회와 신학교라는 것을 전도를 위한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택했을 뿐이지 군림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 수많은 구원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목사제도, 성직자 제도를 유지했다하여 구원을 잃는 것도 아닐 것이며, 그들 중에 매우 온건한 목사제도를 유지한 사람들은 144,000에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목사제도 자체는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것임에 틀림없으며 그들의 행위들을 예수님은 미워하시고 그들의 대부분은 십사만 사천에는 포함될 자격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발람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십사만사천에는 포함될 수없으며 이들 중에는 구원얻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오늘날 조상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신사참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구원얻지 못하였거나 구원얻었더라도 당연히 144,000에는 포함되지 못할 것입니다.

 

결론

디모데 전서 6

20 오 티모데야, 부탁한 것을 너는 지키라, 헛된 통속적인 것들과 소위 “지식”이라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반론들을 피하라,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라는 단어는 그노시스( Γνοωσις)의 번역입니다. 영지주의와 소위 성서 비평류의 학문을 의미하며 이런 헛된 지식에 빠지는 것을 피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런 이론들, 학문들은 오늘날 신학교에서 많이 가르쳐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매우 잘못되어 있습니다. 신학교를 통해서 교회 지도자들을 육성하려는 시도는 비성경적입니다.

 

이런 니콜라당들은 또 카톨릭등의 종교와 종교통합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일종의 우상교와의 야합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어느 줄에 설 것인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계시록 2 15절에서의 니콜라당을 발람당처럼 음행에 물들은 교회로 보는 것은 그릇된 것이며, 니골라당에 의한 해석일지 모르겠으나, 참된 의미의 니골라당은 바로 자배계급, 성직자집단, 평신도와 반대되는 부류를 의미합니다. 그러한 성직자제도는 주님이 미워하십니다.

 

인간의 교리 위에 서서도 안될 것이며, 우상교와 야합하는 종교에 가담하여도 안될 것입니다. 성경말씀 위에 서야 하며 성경에 충직한 교회들에 속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부지런히 상고해야 합니다. 목사들에게 진리의 분별을 맡기고 안일한 생활을 하는 것은 «누가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콜로새서 2:8) 하신 말씀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상고하여 성경말씀에 충실한 생활을 해야 하고 인간들의 가르침에 의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친히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은 다음의 카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Eliyahu?t__nil_cafemy=item

 


 

출처 : Shekinah Korea
글쓴이 : 하토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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