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마흔 두 달의 분별이 중요한 이유
그 동안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전 삼년반이고 마흔 두 달이 후 삼년반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하는 필자의 주장을 이 글을 보는 성도들께서는 지겹도록 들어오셨다. 사실 본인이 이렇게 분별하게 된 근본이 된 계기는 바로 김 명현교수의 창조과학 강의중 창세기 일장 일절의 비밀을 보고 나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놀랍고도 신비한 문자와 숫자의 相關關係(상관관계)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고 나니 다니엘과 계시록에 나와 있는 숫자들이 결코 단순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래서 숫자에 대한 연구에 돌입을 한 결과가 바로 그런 규칙을, 아니 법칙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하나님의 기록방식을 찾아내기에 이른 것이다.
사람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고, 어떤 이유로든지 覺醒(각성)하지 않으면 또 다른 것을 깨우쳐 나가기가 힘이 들고, 그런 일은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그러한 이유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또 다른 지체인 성도들과 능력을 합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법으로 보인다. 바로 그것이 주님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합일을 이룬다고 하는 비밀일 것이며, 각각의 성도에게 나눠주신 분량이며, 또 은혜일 것이라고도 생각이 된다. 다니엘도 예레미야의 글을 보고 칠십 년 만에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이 끝나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듯이, 하나님께서 한사람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는 방식은 즐겨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오히려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고, 또 배워 나가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필자는 그 강의를 보고 도움을 받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만약 혼자 이 모든 일을 알았고, 깨우쳤다면 근거도 없는 발견이 될 뻔 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는 이 발견의 중요성에 대해 깨우친 성도는 없다. 그럴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은 하지만, 왜 이 규칙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는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 그것에 대해 다시 한번 나눠 보고자 한다.
일단 여러분께서는 적그리스도가 한 이레라는 기간 동안 이 세상을 통치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다니엘서와 계시록을 보면 알 수 있고, 기록되어 있는 진리이기 때문에 거부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한 이레의 기간이 그 절반씩인 전 삼년반과 후 삼년반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도 아실 것이다. 그것 역시 다니엘서와 계시록을 읽다보면 알 수 있게 되는 사항인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마흔 두 달이 전, 후삼년반 어느 기간을 뜻하던 간에 상관없이 표시되어 있고, 그 두 기간이 년 수로 치면 삼년반을 의미한다는 것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도 이것을 깨닫기 전에는 날짜에 대한 표현을 그냥 아무 때고 사용하고 싶으신 용어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을 발견하고 나서 생각하기에, 창세기 일장 일절의 비밀을 본 것은 오년 전 쯤 이고 계시록을 붙잡고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그 후이니 알고는 있었지만 문득, 그 둘의 연관성을 발견해 낸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계시록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은 철이 들기 전부터의 본인의 욕망이었고, 또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필히 그 강의를 봐야만 했었는데, 그것을 발견해내서 본 것도 신기한 일이었으며 그것에 대한 연관성을 발견해 이 규칙을 발견해 낸 것도 개인적으로 너무 색다른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그런 식의 생각들을 했는지 모르겠다. 또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겸손이고 성도의 도리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본인이 똑똑해서 그것을 발견했다고 하기에는 왠지 교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확실하다는 듯 확정적으로 자신 있게 주장했던 것은 우물쭈물 자신 없어 보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고 상금을 건 이유이기도 하다. 얘기가 잠깐 딴 곳으로 빠졌는데, 일단 성경에서 세때 반이 쓰인 때를 찾아보자.
(25) 그가 지극히 높으신 분을 대항하여 큰 말을 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도들을 지치게 할 것이고, 또 때와 법을 변경시키려고 생각할 것이라. 그들은 그의 손에 주어져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7장
(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다니엘12장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계시록12장
일단 다니엘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쓰였던 시기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보시다시피 그것은 성도다. 이 세 때 반이 전 삼년반이건 후 삼년반이건 상관없이 그 주체가 성도라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그렇다면 같은 이치로 생각해 보았을 때, 계시록12장의 여자도 하나님의 무흠하시고 완전하심을 생각한다면, 주님의 신부인 교회요, 성도라는 것을 알 수 있으실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하나님께서 누구를 양육하시겠는가, 한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이 여자를 이 시점까지 이스라엘로 보시는 세대주의분들은 성경상의 이스라엘과 교회의 위치에 대해서, 그리고 구약과 신약의 위치에 대해서 고민 좀 해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흔 두 달이 쓰였던 구절이다.
(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계시록11장
(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지속할 권세를 받으니라 -계시록13장
주님께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마흔 두 달을 전 삼년반이나 후 삼년반이나 그리고 아무 주체에 상관없이, 성도를 가리킬 때에도 그리고 이방인을 가리킬 때에도 쓰셨다면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그런 일이 일어났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다섯 가지 모두 철저하게 주체를 구분하셔서 그 숫자의 기간을 구별하신 것을 제위께서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이번에는 마흔 두 달 기간인 후 삼년반의 기간에 일어날 상황의 구절들을 한 번 보며 그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살펴보자.
계시록11장을 보면 이방인들에게 성소를 내어주어 짓밟게 하신다고 한다. 이것이 어떤 짓밟음이 될 것인가가 바로 계시록13장5절에 나와 있고 그 이후로 전개되는 사건들이 바로 그가 일으킬 재앙이고 환란이다. 특히 이 환란은 대 환란이란 말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럼 그 이전부터의 상황을 성경에서 찾아보며 마흔 두 달기간인 후 삼년반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이 상황들은 적그리스도가 주축이 된 구절들이다.
(8) 이에 내가 보니, 보라, 창백한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요 지옥이 그 뒤를 따르니, 그들에게 칼과 굶주림과 사망(온역)과 땅의 짐승들로 땅의 사분의 일을 죽일 권세가 주어졌더라.
(9)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을 여실 때 내가 보니, 제단 아래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 때문에 죽임 당한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계시록6장
적그리스도와의 전쟁으로 인해 죽임당한 혼들이다. 이때가 바로 성도의 권세가 무너지는 때인 마흔 두 달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15) 그 네 천사가 풀려나더라. 그들은 사람들 삼분의 일을 죽이려고 그 연, 월, 일, 시를 위하여 예비해 둔 자들이라.-계시록9장
이 상황도 적그리스도가 주축이 되는 후 삼년반인, 마흔 두 달상황이다. 사람들 삼분의 일을 죽인다고 한다. 그럼 어느 시기에 성도들을 죽이게 된다는 것인가,
(7) 또 그들이 자기들의 증거를 끝마칠 즈음에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온 짐승이 그들과 전쟁을 하여 그들을 이기고 또 죽이리라.-계시록11장
두 증인이 자기들의 증거를 끝마칠 즈음이라면 적그리스도가 전쟁에 이기는 때로써 마흔두 달 초입이니 바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말이기도 하고, 곧 이것은 마흔 두 달이 시작될 때임도 알 수 있으실 것이다. 이와 같이 앞서 살펴 본대로 전 삼년반이 성도의 때라면 이 전쟁이 일어날 때는 곧, 이 짐승이 올라온 때는 후 삼년반, 마흔 두 달 기간임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에 올라온 짐승이 두 증인이라고 기술되어 있는 성도를 죽이게 된다, 라는 결론이다. 그럼 여기서 그것이 맞나 확인도 할 겸 한 가지만 더 보도록 하자.
(15) 또 그가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주는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형상으로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죽이도록 하니라.-계시록13장
이 성도들을 죽이는 때에도 그렇다면 당연히 마흔 두 달일 것이고 후삼년반상황이 됨은 알 수 있으실 것이다. 이렇게 항상 후삼년반기간인 마흔 두 달기간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일어나는 그런 시기임을 알 수 있다. 그럼 반대로 이번에는 그 앞 기간 즉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인 전 삼년반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살펴보자.
(25) 그가 지극히 높으신 분을 대항하여 큰 말을 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도들을 지치게 할 것이고, 또 때와 법을 변경시키려고 생각할 것이라. 그들은 그의 손에 주어져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다니엘7장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상황인데 마흔 두 달 상황과는 달리 죽이거나 순교한다는 표현을 찾아보기 힘드실 것이다. 아니 없으실 것이다. 대신 지치게 한다는 말로 그 시기의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5) 또 그들에게 명령이 내려지기를 그 사람들을 죽이지는 말고 오직 다섯 달 동안 고통만 주라고 하는데, 그 고통은 마치 전갈이 사람을 쏠 때의 고통과 같은 것이라.-계시록9장
이 구절도 마찬가지로 전 삼년반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상황이다. 그래서 이 때를 전 삼년반으로 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시고 계시겠지만 전 삼년반이라고 분별한 이 구절에서도 죽인다는 표현은 없고 괴롭게 한다, 라는 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보실 수 있으실 것이다. 직접 찾아서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미혹적인 해석에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성도의 때로서 적그리스도가 그 난폭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때이고, 성도의 손끝하나 건드릴 수 없는 시기인 것이다. 다만 한 이레의 중간이 되는 4년차, 즉 반 때부터는 괴롭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5절의 앞 절인 4절에 있는 해친다, 라는 표현도 마음을 괴롭게 한다, 라는 뜻으로 쓰인 글임은 이미 밝혀 드린바 있다.
(13) 그 용이 자기가 땅으로 쫓겨난 것을 알고서 사내 아이를 출산한 그 여인을 박해하더라. (박해하더라,로 번역된 헬라어 에디와센의 문자적인 뜻은 추격하더라,이다.)
(14) 그때 그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는데, 이는 그녀가 광야에 있는 자기 처소로 날아가서 그 곳에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부양받으려 함이더라.-계시록12장
이곳에 쓰인 추격하더라,라는 글을 봐도 그렇다. 땅으로 쫓겨나 여인을 추격하는데 죽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 이 여인을 용은 절대로 건드릴 수조차 없다). 따라서 그가 성도를 찾아내고 박해하려고 할 뿐 그는 마흔 두 달이 되기 전에는 성도를 죽이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말이 나온 기왕에 여기서 일천이백육십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묵상해 보도록 하자. 이 일천이백육십일이 쓰인 곳 역시 마흔 두 달과 마찬가지로 딱 두 군데밖에 없다.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러면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하더라.
-계시록11장
(6) 그 여인은 광야로 도망하였는데 그 곳에는 그들이 그녀를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부양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곳이 있더라.-계시록12장
이 일천이백육십일이 쓰여 진 곳의 주체는 바로 두증인과 여인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알아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나 마흔 두 달의 상황을 보았을 때, 이 일천이백육십일의 기간은 절대로 이방인의 기간인 후 삼년반 즉 마흔 두 달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확인 차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기간인 전 삼년반에 이 일천이백육십 일을 사용하셨는가 살펴보려고 찾아보니 이 일천 이백 육십 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동시에 쓰인 장이 바로 계시록12장에 있었다.
(6) 그 여인은 광야로 도망하였는데 그 곳에는 그들이 그녀를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부양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곳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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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때 그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는데, 이는 그녀가 광야에 있는 자기 처소로 날아가서 그 곳에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부양받으려 함이더라.
이 6절과 14절 사이에는 하늘에서 미가엘과 사탄의 전쟁이 일어나는 일이 있다. 그러니 이 일천이백육십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같은 기간을 말함이 아님을 알 수 있으실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의 주장을 보면 이 여인이 같은 처소로 보이는 광야에서 부양받는다는 이유로 일천이백육십 일을 같은 기간, 즉 전 삼년반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그럼 하늘의 전쟁은 어디로 가야 하겠는가, 아시다시피 이 여자가 처음에 광야로 도망하고 난 후에 하늘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늘의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언급이 되는데 그 때 여자에게는 처음과 다르게 큰 독수리의 두 날개 ( given two wings of a great eagle) 가 주어진다. 이것이 처음 도망간 광야와 두 번째 도망간 광야와의 차이이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자기 처소로 도망간 여자는 앞서 살펴보았다시피 전 삼년반의 기간에 특별히 보호받는 여자인 것이다. 그럼 앞선 일천이백육십 일의 여자는 누구이겠는가, 바로 창세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신실한 이스라엘 즉 영적유대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천이백육십 일에 대한 것은 사실 앞서 자세히 서술해 놓은 것이 있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분들을 위해 확신을 주고자 강조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얻은 결론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적어도 세대주의자들이나 계시록해석을 했다는 사람들의 해석을 볼 때, 첫 번째 나팔부터 네 번째 나팔까지의 상황을 7년 환란에 넣고 있는 것은 잘못된 해석임을 알 수 있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후 삼년반이 시작되기 전인 전 삼년반에는 사람들이 죽는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해석이 틀림을 확인할 수 있는 전 삼년반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기간의 성경기록을 살펴보면 이때도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 기록은 셋째나팔까지의 상황이다.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가 섞인 우박과 불이 따르더라. 그것들이 땅에 쏟아지니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모든 푸른 풀도 타버리더라.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거대한 산이 불에 타서 바다로 던져지는 것 같더니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더라.
(9) 또 바다에 있는 생명을 가진 피조물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더라.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등불처럼 타는 큰 별이 떨어졌는데 그것이 강들의 삼분의 일과 물들의 원천에 떨어지더라.
(11) 그 별의 이름은 쑥이라 하고 물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니 그 물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그 물로 죽더라.
-계시록8장
첫째나팔이 불리고 난 후 타버리는 풀과 나무를 자연계가 타버린다고 해석했던 기존의 해석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가 있지만 혹시라도 이해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4) 그들에게 명령이 내려지기를 땅의 풀이나 또 어떤 푸른 것이나 어떤 나무도 해치지 말고 다만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장으로 표시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치라고 하더라.-계시록9장
이 구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땅의 풀이나 나무는 자연계가 아니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천사의 나팔로 인해 타버리는 풀과 나무가 타버린다는 것은 성도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순교를 한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으실 것이다. 두 번째 나팔이 불리고 죽는 피조물이나 배들도 세상에 속해 호흡하는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말씀도 드렸다. 이것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일이므로 증명을 하기가 어려워 짧게 언급할 수밖에 없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세 번째 나팔에서도 죽는 일이 또 다시 발생함을 볼 수 있으실 것이다. 이 쑥이 변질되었다는 본질적인 의미는 복음이 변개되었다라는 것을 뜻한다고 풀이한 적이 있지만, 어떤 이들의 말대로 그것이 자연계에 떨어져 물이 쓰게 됨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죽어야 한다, 고 해석하는 것 만큼은 적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다는 얘기이다. 이상 살펴보셔서 아시겠지만 전 삼년반 즉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사람이 죽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고 다만 괴롭게 하거나 지치게 하는 일만 가능하다, 라는 것을 확인하셨다. 그러므로 전 삼년반에 사람이 죽는 환란이 시작된다는 그들의 해석은 오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셨고 결국 계시록의 기록은 주님 승천하시고 난 이후부터의 사건들에 대한 기록임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상 살펴 본 바대로 일천이백육십 일과 세 때 반과 마흔 두 달만 확실히 구별하고 이해한다고 해도 서투른 해석에 미혹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계시록해석을 보아도 그들의 오류를 잡아낼 수 있는 기본도 갖추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아무쪼록 이 규칙을 발판삼아 계시록의 두려움을 물리치시기를 기원하며 성도님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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