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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계시록강해노트

숫자로 푸는 요한 계시록 강해 두 번째 시간.

by 디클레어 2011. 6. 22.

 

 

숫자로 푸는 요한 계시록 강해 두 번째 시간.

 

 

일곱교회에 대해 말씀드리기에 앞서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저는 첫 번째 들림, 두번째 승천,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휴거가 일어남으로 모두 세 번에 걸쳐 주님의 품에 안기는 순서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첫 번째 들림받는 열매는 전삼년반끝에 십사만사천명으로 보고 있는 빌라델비아교회요, 두 번째 승천하는 열매는 두증인과 그 후에 殉敎(순교)하여 후삼년반 끝에 하늘로 올라가는 순교성도인 에베소, 라오디게아, 서머나, 버가모교회이고, 그리고 마지막 열매라고 볼 수 있는 세 번째는 주님 재림시에, 두아티라와 사데교회라고 말입니다. 일단 2장의 네 교회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서 왜 그렇게 分別(분별)을 했는지 설명을 드릴 것이고, 뒤이어 3장에 있는 세 교회도 살펴보면서 解釋(해석)을 할테니 여러분께서도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들림받는 순서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순서로 볼 수도 있다, 라는 사실도 미리 말씀드립니다. 곧 십사만사천이 가장 높은 믿음의 후사들이요, 두 번째는 순교성도인 두 증인, 그리고 세 번째로 주님오실 때 휴거되는 주의 성도들이며 그것에 대한 증거도 앞으로 꾸준히 계속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2장

 

(1) 에베소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가지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께서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한글개역성경에서는 이 천사를 使者(사자)로 번역을 했는데, 정확한 번역은 天使(천사)가 맞습니다. 이것은 개역성경의 영문버젼인 NIV 즉 New International Version 에서도 angel로 표기가 되어 있어서 알 수 있는데, 확인해 보신다면 한글 개역만 다른 번역을 했음을 알 수가 있으실 겁니다. 각설하고 특히 이 천사의 역할은 그리스도에 의해 책임을 갖고 교회를 守護(수호)하는 하늘의 천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서서 여러분들은 이미 일곱별과 일곱교회에 대해서는 알아 본 바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오른손에 일곱별을 가지셨다는 것은 일곱천사 곧 교회를 지키라는 명을 받은 천사들을 그리스도께서 직접 다스리고 계심을, 그리고 그 천사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 使役(사역)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일곱 금 촛대사이를 거니시면서 이 일들을 말씀하신다는 것은 주님께서 항상 교회를 지켜보시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내가 너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며, 또 네가 어떻게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지만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찾아낸 것과

 

이 에베소교회는 역사적으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의해 기독신앙이 전해졌고 사도행전19장을 보면 바울과 디모데가 연이어서 사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이 도시는 아데미여신을 섬기는 그런 미신과 우상숭배가 극심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었기에 바로 그런 점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악한 자들이라 칭하신 것이고,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고 주장들이 있어서 논란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가 있습니다. 당시에 유대律法(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救援(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자칭 使徒(사도)들일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두 번째는 6절에 나오는 니골라당을 자칭 사도로 보는 사람들, 이렇게 두 해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라고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직접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을 다스리려고 했을 것이므로 당시의 니골라당들이 바로 자칭 사도들일 것이다, 라고 보는 것이 合當(합당)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계시록이 窮極的(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貫通(관통)하는 말씀이어야 하고, 그런데 현재 유대교는 그리 큰 同意(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을 봤을 때, 그리고 니골라당 가운데에는 지금도 하나님의 直通(직통)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恩師(은사)주의적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자칭 사도로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현재처럼 교회에 거짓 가르침을 들고 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3) 또 네가 참고 인내하며 내 이름을 위하여 수고하고, 지치지 않은 것을 아노라.

 

참고 인내하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수고하고 지치지 않을 만큼 , 이들의 신앙이 굳건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또 바울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다, 라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의 뒤를 이어 그들과 함께 생활했던 디모데도 마찬가지역할을 하였다, 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소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에베소라는 타락하기 쉬운 도시에서 그들의 신앙을 주님께서 칭찬하실 만큼 잘 지켜나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바로 그것을 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다소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첫 사랑을 저버린 것 때문이라.

 

이 첫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더불어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使命(사명)도 같이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계명중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행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베소교인들중에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믿음으로 인해 거짓사도를 구별해 낼 만큼의 영적분별력은 뛰어나지만, 거기에 비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행위는 중요시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고 있는 것을 많이 봅니다.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계명은 세상 끝 날까지 기독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인내와 절제를 행하고 구원의 後嗣(후사)로써 당연히 의로움과 거룩함에 거하려고 노력해야 할 성도의 열매가 겉으로 보여지지 않고 있음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의 말한 바, 구원을 얻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할 지라도, 그 구원의 후사로써 행위없는 자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라는 것을 증거하는 말씀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라면 어느 한 가지에 치우쳐서 말씀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아야 할 것이며,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에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기억하고 회개하며, 너는 처음 일들을 행하라. 만일 그렇지 않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너에게 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렇듯 기독인들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것은 물론이요, 확실한 주의 百姓(백성)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신다는 말씀을 보십시오. 이 촛대를 옮기신다는 것은 그 교회를 버리겠다는 말씀이거나, 너에게 주어질 높은 상급을 다른 교회로 옮겨버리겠다는 말씀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현대의 성도라면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하며, 그 분의 명령이 무엇인가도 알아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할 것이며 그 계명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6) 그러나 네게 이것이 있으니, 즉 네가 니콜라파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이라. 나 역시 그것을 미워하노라.

 

이 말씀은 너를 버릴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은 네가 나의 맘에 드는 行爲(행위)를 한 가지 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너희가 니콜라파의 행위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개역성경에는 니골라당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이 니콜라파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시는 것일까요. 이 니골라당을 사도행전6장에 나오는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니골라가 타락하여 만든 이단이라고 추측하는 일부학자들도 있으나, 그 일곱 집사에 속해 있었던 스데반이나 빌립등 그들의 믿음의 수준을 봤을 때, 그 주장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해석보다는 보다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측면, 즉 언어적으로 '니골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콜라이톤'은 '백성'을 뜻하는 '라오스'와 ‘정복하다'를 의미하는 '니카오'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그 뜻은 백성을 정복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안에서 백성을 정복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백성이라면 당연히 성도를 뜻하는 것이고, 그들을 지배하는 자들은 성도들을, 주님이 아닌 자신을 따르게 하려고 하거나, 그들 위에 서려고 하거나, 또 그들에게 존경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 즉 유대교에서 보면 성직자역할을 하는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같은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니 교회안에서는 절대로 위 아래를 나누는 일이나 다스리려하거나 억누르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만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는 것이 주님께서 바라는 바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처치, 즉 예배당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에클레시아, 곧 믿는 자들의 모임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 敎會(교회)에 대한 정의를 정확하게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 가운데 있는 생명 나무를 주어서 먹게 하리라.

 

이 귀 있는 자는 세상의 모든 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곧 이기는 자라는 얘기이고, 결국 이 에베소교회는 주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후사들로써 두 번째 승천하는 그룹중에서도 가장 먼저, 그러니까 계시록9장15절에 나오는 그 해 그 월 그 일 그 시에 삼분의 일이 순교하는 교회중에 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에베소교회를 후삼년반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이억명이 순교한다는 성도들의 교회로 보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 첫 번째 이유는 내가 네 촛대를 옮기리라, 에 담겨있는 숨겨진 의미와 두 번째는 후삼년반 중반에 순교를 당하는 교회는 서머나, 버가모교회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고 또 주님재림하실 때, 휴거되는 두 교회도 두아티라와 사데교회라는 것을 정확히 분별 할 수 있기 때문에, 따라서 후삼년반초에 순교하는 교회는 에베소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계시록3장까지 모두 끝난 후에 다시 총정리를 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8) 스머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처음과 마지막이요, 죽었으나 살아 계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스머나(개역은 서머나)는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쓴 호머(Homer)의 출생지이며 학문, 특히 과학과 의술이 발달한 도시였고, 종교적으로는 이교 문화와 종교의 집합처로 황제 숭배의 중심지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스머나는 소아시아 도시들 가운데서 지리적으로나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그로 인해 복음이 순수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皇帝(황제) 崇拜(숭배)가 성행하는 등, 우상숭배와 그에 따른 迫害(박해)가 자행된 도시였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처음과 마지막이요, 죽었으나 살아계신 분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9) 내가 너의 행위와 환란과 궁핍을 아노라. (오히려 네가 부요한 자로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

 

내가 너의 行爲(행위)와 患亂(환란)과 窮乏(궁핍)을 아노라, 에서 이 행위라는 단어를 보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하는 분들 중에 행위를 이단시 하는 분들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분들은 율법의 행위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강제해 나가는, 즉 방종으로 흐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성도의 행위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것과 주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聖化(성화)되어 가는 실천의 행위를 구분 못하는 가르침은 결국 반만 가르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행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만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과 행위라는 것은 동전의 양면같은 것이어서 어느 한 면만 강조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넘어가서 앞서 말씀드린 그런 황제숭배가 만연하고 있는 도시에서의 믿음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중에서도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모독이 있다는 것을 말씀중에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 이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과연 유대인들이 아닐까요? 그렇지는 않을겁니다. 유대인들이 아니면서 유대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이 아니면서 굳이 유대인이라고 주장할 이유가 없으며 특히 바울도 이 곳에서 사역을 한 바가 있었고 또 교회안에는 이스라엘민족들중에 택함받은 자들도 있었을 것이어서, 유대인도 아니면서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하는 거짓말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민족적인 유대인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신 것을 넘어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라고까지 언급하셨을까요, 여기에는 深奧(심오)하고 그리고 아주 중요한 영적인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肉的(육적)이고 民族的(민족적)인 유대인을 더 이상 유대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주님의 宣言(선언)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구약의 선지서등을 보며 증명을 해야 하지만 시간관계로 인해 이 부분은 계시록7장에서 십사만사천의 구원을 해석하면서 그때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서머나교회에 환란과 궁핍을 아신다고 하시면서 위로를 하시는데, 이것은 말세에 있을 환란성도들과 연결을 시키시면서 당시에 그들이 당할 어려움과 굶주림등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신 것으로 보면 다음 절들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10) 너는 고난받게 될 일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서 시련을 당하게 하리니 그러면 너희가 열흘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이 구절의 의미는 서머나교회가 당했던 이런 시련과 환란을, 말세에도 똑 같이 겪어야 할 교회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複線(복선)계시로 알려주시는 겁니다. 각 교회가 받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명이나 명령은 일곱교회가 듣는 책망과 시련과 상급이 다르듯이 모두 똑같지 않습니다. 교회가 똑같지 왜 다르냐,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건 좀 인간적인 생각일 뿐이고, 주님의 말씀중에 한 句節(구절) 가져와서 의미를 나눠보겠습니다. 계시록22장12절입니다.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모든 사람에게가 아니고 각각의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라고 하시는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사람들의 믿음은 각인들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받아야할 賞給(상급)과 대우도 달라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것이 公義(공의)로운 하나님의 방식일 것입니다. 구원을 얻게되는 最終的(최종적)인 목표는 달라지지 않는다 할 지라도, 하나님앞에 뜨거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과 미지근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세에는 같은 시기와 때에 모두 환란중에 있게 되지만, 그 중 조금 견디기 쉬운 환란에 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야말로 참아내기 어려운 고통스런 환란으로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이 일곱교회가 가진 의미이고, 한 교회가 아닌 일곱 개의 교회로 나누신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의심하는 분들은 왜 주님께서 그분의 지체인 교회를 한 촛대, 한교회로 통일하지 않으시고 일곱 촛대 일곱 교회로 나누셔서 지키시는 것일까를 한 번 생각해 보신다면 이 해석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서머나교회가 지독하고 완전한 재앙의 때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는 열흘동안의 환란에 처해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바로 이들이 대환란기간으로 불리는 후삼년반 환란의 때에 들어간다는 것을 이 구절에서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신실하라, 는 것도 이들이 순교를 당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서머나교회와 뒤에 나올 버가모교회는 두 교회 모두 순교자를 배출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이 교회들을 후삼년반중반에 순교하는 두 교회로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증명은 계속 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11)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으로부터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 서머나교회는 둘째사망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주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둘째 사망이 무엇인지는 요한계시록21장8절에 있습니다.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가증스런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시더라.

 

이 구절은 바로 백보좌심판(세상의 마지막 심판)이 일어날 때, 불못에 들어가는 자들에 대한 성격을 기술해 놓은 것입니다. 이들도 모두 永生(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 영생은 불과 유황이 타는 연못에서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바로 이 불못에 들어가는 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서머나교회는 둘째사망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12) 퍼가모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날카로운 양날 가진 칼을 가지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이곳은 에베소와 서머나가 상업적으로 아시아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면 문화적인 측면에서 아시아의 중심부 역할을 했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의학교도 있었으며 장서 20여 만권을 소장한 도서관도 있었고, 책을 만드는 종이인 양피지의 생산지이기도 하였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치료의 신으로 이해되었던 '아에스쿨라피우스'(Asclepius)라 불리는 뱀신과 신들의 왕인 '제우스'(Zeus), 그리고 생성신이며 로마신화에서는 박카스로 불리는 '디오니소스'(Dionysos) 등을 숭상하는 우상 숭배지로써 그 영적타락이 어느 정도였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날카로운 양날가진 칼을 가지신 분이 말씀하신다는 것은 그분의 심판주로써의 권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앞서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13) 내가 너의 행위와 네가 거하는 곳을 아노니, 곧 그 곳은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네가 나의 이름을 굳게 붙들어서 심지어는 나의 신실한 순교자 안티파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하던 그 날에도 나의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주님께서 버가모교회의 행위에 대해 칭찬을 하는 것이며, 네가 거하는 곳을 안다고 하는 것은 버가모가 황제 숭배는 물론 온갖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기에 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苦難(고난)을 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는 것이 앞서 얘기했듯 황제 숭배는 물론, 모든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할 것입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붙들어서 내 신실한 순교자 안티파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하던 그날에도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라는 것은 그런 죽음의 고난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오직 주님만을 굳게 의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하겠습니다. 이 순교자인 '안디바'에 대해서는 '모든 것에 대적하는 자'란 의미로 버가모 교회의 감독이었으나 황제 숭배 거절로 인해 불에 타 순교한 것으로 터툴리안은 보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버가모교회에서도 앞서 본 서머나교회와 마찬가지로 순교자를 배출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그 환란의 기간이 안디바가 순교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듯 보임으로 후삼년반기간중에 순교하는 교회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내가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이는 네게 발라암의 교리를 지키는 자들이 있음이라. 그가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거치는 것을 놓게 하며,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고 또 음행하도록 하였느니라.

 

말씀중에 네게 발람의 교리를 지키는 자들이 모두가 아니고 몇몇있다는 것으로 보아 모든 성도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으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지만 부분적으로 발람의 敎訓(교훈)을 좇는 자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가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거치는 것을 놓게 하며,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고 또 음행하도록 하였느니라.라는 이 말은 버가모 교인들이 따랐던 발람의 교훈에 관한 설명인데, 그 교훈은 민수기 22장부터 25장, 그리고 31장:8절,16절등을 봤을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사람들과 결혼을 하게 하고, 우상 숭배하는 일에 타협케 한 것을 가리킵니다. 발람은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압 여인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유혹하게 하여, 음행케 함으로써, 그 백성 중 이만사천명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게 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발람의 교훈'은 신약성경에서도

 

베드로후서 2장:15절에서 보듯이 불의의 삯을 사랑하거나 역시 유다서 1장 :11절의 말씀처럼 탐욕을 좇아 행하고

 

있었음을 말한다 할 것입니다. 이처럼 이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당시 버가모교회에 있는 자들 중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貪慾(탐욕)은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이니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또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유혹에 자신의 영혼을 파는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중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에 맞는 비유라 할 것입니다.

 

(15) 그리고 네게 역시 니콜라파의 교리를 지키는 자들도 있도다.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

(16)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와서 내 입의 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그러한 탐욕을 가지고 있는 것을 회개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면서 산다면, 이스라엘백성의 적지 않은 수가 주님의 진노로 죽음을 당했듯이 그들 또한 그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추상같은 명령이 되겠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 또한, 이 명령의 의미를 깨달아 자신의 이익과 탐욕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보고 회개하며 그 앞으로 주저함없이 나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추어진 만나를 주어서 먹게 하리라. 또 그에게 흰 돌을 주리니, 그 돌에는 새로운 이름이 기록되어서 그것을 받는 자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으리라.

 

결론적으로 이 버가모교회가운데 이기는 자라면 당연히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은 없을 것이며, 또 후삼년반이라는 시기에 걸맞게 당연히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시는 황제숭배와 똑같은 적그리스도를 숭배하라는 명령은 목숨을 걸고 거부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이때의 시기는 적그리스도의 한 이레중 대환란때인 후삼년반에 666표의 施行(시행)이 벌어져 그 표를 받지 않아야 하는, 다시 말하면 적그리스도를 敬拜(경배)하는 자만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그런 때이므로, 자신의 목숨과 구원을 맞바꾸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이유들로 인해 버가모교회성도들은 대환란가운데서 서머나교회와 함께 순교하는,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구원을 얻게 되는 교회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추어진 만나를 주어서 먹게 하신다는 것은 요한복음6장49절에

 

(49)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으나

(50)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니 그것을 먹는 자는 죽지 아니하리라.

 

라는 구절의 의미로 보아 이 만나는 에베소교회에 생명나무를 주어 먹게 하신다는 것이나 서머나교회에 승리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흰돌에 쓰여진 새로운 이름이라는 것은 승리하는 버가모교인들에게 영적인 의미로 다시 태어났음을 알리는 주님의 선언입니다. 즉 새로운 이스라엘민족이 되었으니 아브라함과 야곱과 그리고 베드로에게 새 이름을 주셨듯이, 그 영생에 걸맞는 지파와 이름을 새로 받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버가모교회는 계시록22장에 하나님으로부터 새하늘과 새땅으로 내려오는 영원한 천국인 예루살렘성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18) 두아티라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빛나는 놋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두아디라의 역사적 배경은 태양신 '아폴로'(Apollo)와 '다이아나‘ 라고도 불리는 아데미여신의 신전이 있었던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의 도시였습니다.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에서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언급은 일곱 교회 서신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관한 기술 중에서 여기서만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것은 신이라 불리는 이름을 가진 거짓 신들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아들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9) 내가 네 행위와 사랑과 봉사와 믿음과 네 인내를 아노니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네 행위와 사랑과 봉사와 믿음과 네 인내를 안다는 것은 앞선 다른 교회들과 같이 행위를 강조하는 것에 다름없어 보이고, 특이한 것은 나중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처음에는 비록 말씀가운데 올바로 서 있지 못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믿음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 말씀때문에 두아디라교회를 주님오실 때 휴거되는 교회로 분별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로 보았던 것입니다. 결국 두아디라교회가 환란가운데서  진리를 발견했다고 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이는 네가 자칭 여선지자 이사벨이란 여자를 용납함으로 그녀가 내 종들을 가르치고 유혹하여 행음하게 하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기 때문이라.

 

'이사벨'은 열왕기 상하에 보면 시돈국의 공주로써 이스라엘 왕 '아합'의 왕비가 되어 바알신을 이스라엘에 가져와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를 하게 함으로 영적 간음을 행하게 했던 그런 음녀였습니다. 그러나 두아디라교회의 이 이사벨은 어떤 특정 인물이기보다는 상징적인 인물로 봐야 할 것이며,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사벨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자라고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합당한 주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당시 선지자 엘리야당시에 왕비 이사벨이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듯이 두아디라교회내에서도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성적 부도덕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할 것입니다.

 

(21) 또 내가 그녀에게 자기의 음행을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녀가 회개하지 아니하였도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는 그릇 행하는 자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열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시고 그의 마음을 돌이키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22) 보라, 내가 그녀를 침상에 던질 것이며, 그녀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자기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대환란에 던지리라.

 

보라 내가 그녀를 沈床(침상)에 던질 것이며, 의 이 침상을 환자용 침상의 뜻이 들어있는 헬라어를 확대해석해서 그녀에게 병을 안기는 것이다, 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주석가들중에도 있는데, 사실 그 주장은 그 뒷 절을 보았을 때, 그리 설득력이 없는 해석이라고 여겨집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음에도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계속 음행을 행하도록 내버려 둘 것이며, 그런 그녀와 같이 행음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대환란에 던져버리시겠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의미상 옳아 보입니다. 이 대환란은 후삼년반의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며 앞으로도 증거할 것입니다.

 

(23) 또 내가 그녀의 자녀들을 사망으로 죽이리라. 그러면 모든 교회들은 내가 사람들의 속과 마음을 살피는 자임을 알게 되리라. 또 내가 너희의 행위에 따라 너희 각자에게 주겠노라.

 

이 구절에서 그녀의 자녀들이라 함은 이사벨의 가르침과 교훈을 따르는 모든 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그들을 따라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 자의 마음을 주님께서 모르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람은 육적이어서 誘惑(유혹)에 빠지기 쉽고 절제나 인내보다는 쾌락과 향락를 즐기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빠져있는 자들에게는 심판으로 대하시겠다는 것이고, 그러한 것들을 이겨내고 주의 계명을 지키고자 인내하고 승리한 자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영생으로 보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4) 그러나 내가 너희와 두아티라에 나머지 사람들, 즉 이 교리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이 말하는 사탄의 깊은 것들을 알지 못하는 많은 자에게 말하노니, 내가 어떠한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겠노라.

 

여기서도 모든 교인들이 아니고 몇몇이 이세벨의 교리를 따르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같은 교회안에서도 각 사람의 행위대로 그의 받을 상급을 나누는 주님의 공의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가장 먼저 자신부터 말씀안에 올바로 서 있는지 분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일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5) 그러나 너희가 이미 가진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고 있으라.

 

이미 가진 것은 구원을 말하는 것이고,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고 있으라는 이 말씀은 주님 재림하실 때이니 두 말 할 필요없이 이 두아디라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여 주님 오실 때 휴거되는 교회로 분별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그 첫번째 이유입니다.

 

(26) 이기고 나의 일들을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줄 것이요

 

(27) 그가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이 질그릇같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역시 이기는 자에게는 주님께서 統治者(통치자)의 자리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28) 또 내가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이 새벽별은 주님이고 주님을 소유한 자는 영생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새벽별에 대한 증명은 계시록 22장 16절입니다.

 

(16) 나 예수는 교회들에 관한 이런 일을 너희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나의 천사를 보내었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또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시니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역시 모든 사람에게 권면하시는 주님의 말씀이니 듣는 귀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