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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계시록강해노트

요한계시록 강해 세 번째 시간

by 디클레어 2011. 6. 22.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 강해 세 번째 시간 

 

 

계시록3장

 

(1) 사데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네 행위를 아나니 네가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었느니라.

 

역사적인 측면에서 이 도시는 상업적으로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특히 염직 공업과 양털 염색, 금모래가 유명하여서 사치스런 부의 도시였고 무역의 요충지가 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대지의 여신인 레아를 섬겼고 또 황제 숭배도 극심하였습니다. 구절중에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님을 가리키며 '일곱 별'은 교회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천사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미 알아 본 바가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셨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성령과 천사의 역할을 주관하고 계신다, 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 네가 살아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었느니라 라는 말씀은, 내적인 측면에서 사데교회가 주님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여 준다 하겠습니다.

 

(2) 깨어 있으라. 그리고 남아 있으나 죽어가는 것들에게 힘을 돋우어 주라. 나는 네 행위가 하나님 앞에 온전함을 발견치 못하였노니

 

주님께서는 '깨어 있으라, 는 명령을 하심으로 이 사데 교회가 주님 보셨을 때에 아직은 생명을 상실한 것이 아님을 이 구절을 통해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깨우심으로 아직 남아있는 영적인 생명을 보존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또 네 행위가 하나님 앞에 온전함을 발견치 못하였노니, 라는 것은 내적인 측면뿐 아니라 외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적인 측면에서도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음도 더불어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또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하고 굳게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네게 임하리니 어느 때에 너에게 올 것인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이 구절을 통해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죽어가는 사데교회에게 영적인 생명을 일으키라는 명령을 하고 계십니다. 그 명령은 너희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하고 굳게 지키어 회개하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특히 이 회개하라는 뜻의 헬라어 '메타노에손'은 능동태 명령형으로써 단번에, 그리고 결정적으로 죄에서 돌이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깨어있으라는 것은 성경을 보고 주님 오실때의 징조를 알아서 세상을 통해 그 시기를 깨달으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이며, 그 시기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내가 도둑같이 임할 수 밖에 없다, 라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합당하지 않은 자를 구별해서 그를 바깥 어두운데로 내 쫓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도둑같이 임한다고 하시는 것은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에서 말씀드렸듯이 주님 재림때를 암시하는 것이니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셨던 두아디라교회와 함께 주님 재림하실 때 휴거되는 교회로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교회를 굳이 나누는 이유는 계시록 8장이나 9장에 나오는 삼분의 일이라는 숫자때문이니 여러분들께서도 기억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이 구절에서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도둑같이 임하신다는 뜻에 담겨있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많은 성도들은 말하기를, 너희는 빛에 자녀이니 내가 도둑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2절이하 말씀,

(4)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니 그 날이 너희를 도둑같이 덮치지 못하리라.

 

에 큰 의미를 두고 있으며 자신은 믿고 있는 성도이므로 진노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라는 虛誕(허탄)한 믿음을 얘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토록 자신이 빛의 자녀인 성도라고 자신한다면 과연 주님 오실 날에 이 땅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요한계시록16장 연구를 통해 한번쯤 연구해 봤던 이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어떤 목사가 그러다라, 혹은 어느 성직자가 그랬다, 라고 하며 그들의 이름을 들먹이기 전에 자신은 얼마나 거기에 대해 말씀을 보고 연구를 해 봤느냐 하는 얘깁니다. 물론 이 도둑같이 임한다는 주님의 재림을 맞을 자들은 어두움의 일에 참여한 자들에게니 믿는다하는 분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도 그러 하셨듯 바울사도도 앞선 2절에서 언급했듯이

 

(2) 이는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라는 것을 너희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하신 것을 또 무심코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성도라 자신하는 사람들에게도 말씀을 알지 못하고 있으면 도둑같이 임할 수 있다, 라는 사실을 暗示(암시)하고 있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하나님의 성도라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눈과 귀를 열어놓고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 보다 먼저 말씀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4) 사데에 있으면서 자기들의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이름들이 네게 있어 그들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이는 그들이 합당한 자들이기 때문이라.

 

이 구절은 대부분의 사데 교인들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고 다만 몇몇 이름들만이 주님앞에 합당한 자임을 알려주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이렇듯 주님재림시에 휴거되는 자들은 앞서 먼저 흰옷을 입은 교회들의 숫자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 분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그들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라는 말씀은 주의 뜻에 합당한 그들이 구원합을 입어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광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약속하시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5)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의 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할 것이며, 또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 것이니라.

 

역시 지금까지 알아 봤던 네 교회와 마찬가지로 그들중에는 패배하는 자도 있을 것이며 승리하는 자도 있을 것임을 보여주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이기는 자는 흰 옷, 즉 의로움의 세마포를 입음과 동시에 구원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그 약속을 두 가지로 확증해 주는 구절이, 첫 번째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의 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할 것이며, 이고, 두 번째는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是認(시인)할 것이니라. 는 말씀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로 나누실 것이라는 마태복음25장 32절로 46절까지의 말씀처럼 주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자들은 영영한 천국에 들어갈 것이며, 그렇지 않고 게으르고 악한 자들은 영원한 형벌에 들어갈 것이라는 비유말씀의 실행구절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6)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앞서 에베소교회에 하신 말씀에서도 알아본 바가 있듯이 귀 있는 자란 교회 전체에 속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며, 조금 특별한 의미를 담는다면 여기에서의 귀 있는 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이해하며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7) 필라델피아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거룩하신 분, 진실하신 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열면 아무도 닫을 수 없고 또 닫으면 아무도 열 수 없는 분께서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역사적으로 필라델피아지역은 고원 도시로써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였습니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풍부함을 누렸으나 지진이 자주 일어나 피해가 많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많은 신전과 종교적 행사가 있었고 따라서 우상숭배도 성행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교회에게 지존하신 분께서 말씀하십니다.

 

(8)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노라. 이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일곱교회중에 빌라델비아 교회만이 責望(책망)을 듣지 않고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임은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교인들이 바로 이 빌라델비아교회가 되기를 素望(소망)하고 있습니다. 살펴보십시오, 그들 앞에는 닫힌 문이 아닌 아예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이것은 빌라델비아교회에 속한 자들이라면 누구라도 그 문으로 마음대로 들어 갈 수 있다는 주님의 허락입니다. 두드리면 열리리라가 아닌 처음부터 아예 문을 열어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앞에 있는 문은 그 천국문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열어놓으셨기 때문에 7절의 말씀처럼 아무도 닫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앞에 그렇게 문을 열어놓고 언제든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하신 이유는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否認(부인)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여기서 적은 능력이라 함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상태, 즉 세상적인 사람들의 눈으로 봤을 때, 사회적인 지위나 부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런 지위로 인해 세상사람들의 질시나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주를 믿는 믿음을 굳게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영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이 빌라델비아교회는 말세에도 있을 교회임이 확실하므로, 그런 그들의 믿음을 지켜나가는데 있어 오직 그 중심의 믿음은 성경외에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보지도 않았고 귀로 들은 적도 없는 예수그리스도의 命令(명령)을 오직 聖經(성경)하나만 가지고 진리로 믿고 따르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의심하지도 않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취급받는 그 무엇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이들은 주님께 인정을 받고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아무런 책망을 받지 않을만큼 믿음에서는 물론이요, 그 행위에 있어서도 여타 다른 교회들과 다르게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8절중에 가장 먼저 언급하신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아노라 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일곱 교회모두에게 행위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 행위는 누가 어떻게 말을 돌려한다 할 지라도 바로 주님의 명령에 속하는 것이니 그 명령을 지키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이들이 바로 14만4천이라고 분별한 바가 있기에 이들이 주님께 어떤 자들인지 말씀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시록7장입니다.

 

(3)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그들의 이마에 인장으로 표시할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또는 나무들을 손상시키지 말라."고 하더라.

 

이렇듯 하나님의 인장으로 표시받으며, 특히 하나님의 종들로도 불리울 수 있는 자들입니다. 도대체 어떤 종들이기에 이렇게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일까요, 그 증거는 계시록14장입니다.

 

(4) 이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들이니 이는 그들이 동정들임이라. 이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들로 하나님과 어린 양께 첫 열매들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서 구속을 받았느니라.

 

여자들과 더불어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들이라는 것의 이 여자는 가증한 淫女(음녀)종교를 얘기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삶속에서 어떤 위기가운데서도 그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지 않으면 일어나기 힘든 일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선지자를 모두 죽인 후에 이사벨을 피해 도망가다가 열왕기상19장에서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14) 엘리야가 말하기를 "내가 만군의 주 하나님으로 인하여 심히 질투하였사오니, 이는 이스라엘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의 선지자들을 칼로 죽였음이니이다. 나, 오직 나만이 남았는데 그들이 내 생명도 앗아가려고 찾고 있나이다." 하니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18) 그러나 내가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에 아직 칠천 명을 남겨 두었나니, 곧 바알에게 꿇지 아니한 모든 무릎과,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모든 입이라." 하시니라.

 

이렇듯 하나님을 위해 남겨놓은 칠천명처럼 이 14만4천도 주님을 위해 남겨놓은 주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칠천명은 당시 사람들 가운데 전혀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었고, 그들의 존재자체도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셨습니다. 바로 그들과 같은 이 14만4천명도 이 칠천명의 신앙수준에 견주어 遜色(손색)이 없고 오히려 그들의 水準(수준)을 뛰어 넘는 듯, 말세라는 시점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그 분의 行使(행사)도 듣지 못하고, 그 목소리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또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주님의 信實(신실)한 종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바로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양의 무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그에게 문지기가 문을 열면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러면 그는 자기 자신의 양들의 이름을 불러서 이끌어 내느니라.

(4) 그가 자기 양들을 이끌어 낸 후 양떼 앞에서 걸어가면 양들이 그를 따라가나니 이는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알기 때문이라.

 

바로 이렇듯 이들은 주님의 목소리만을 들으며, 또 그 목소리를 듣고 어디든지 따라가는 주의 종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따라간다는 계시록 14장4절과, 이제 보셨던 요한복음10장4절의 이 말씀은, 결국 믿음뿐만 아니라 행위적인 측면으로도 주님말씀에 합당한 종들이었음을 가르쳐준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 14만4천명이 오직 칭찬만을 듣고 그 앞에 열린 문이 있으니, 교회로 치면 이미 冕旒冠(면류관)을 받은 빌라델비아교회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계시록3장으로 돌아와서 특히 다음 절인 9절을 봤을 때 민족적 유대인들이 가하는 시련도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진리의 편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9) 보라,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아니요, 오히려 거짓말하는 자들을 내가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로 만들었으니, 보라, 내가 그들을 오게 하여 너의 발 앞에 경배하게 하여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리라.

 

이곳의 유대인들이 가진 문제는 예수의 메시야 되심을 부정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오히려 핍박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血統的(혈통적)인 유대인이고 民族的(민족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고,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메시야되시는 예수님을 부정함으로써 결국 사단을 추종하는 자들이 되고야 만 것입니다. 앞서 얘기한 바가 있지만 진정한 유대인이란 육적이라 할 수 있는 外的(외적)인 요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지는 內面的(내면적)인 것임을 이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오게 하여 너의 발 앞에 경배하게 하여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리라. 유대인들은 이사야서등에 나와 있는 말씀등을 들어 이방인들이 자신들에게 찾아와 굴복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바와는 정 반대로 혈통적인 유대인들이 내면적인 유대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와 굴복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결국 그리스도께서는 예수님의 메시야성을 부인한 육적이며 민족적인 유대인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셔서, 내면적이고 영적인 유대인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굴복케 하심으로 메시야이신 당신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드러내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해석이니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나오는 유대인들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민족적인 그리고 혈통적인 유대인들이 확실하지만, 그들은 폐하여졌고, 주님께서 진정한 유대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사야 2장이나 11장, 35장, 60장, 65장, 그리고 에스겔36장, 스가랴8장, 14장등등, 새하늘과 새땅인 천년왕국의 예루살렘에 살고있는 이스라엘민족이나 유대인들로 표현된 그들이 육적이거나 혈통적, 민족적인 그런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일곱교회의 集合體(집합체)라는 생각이 혹시 들지 않으십니까, 주님께서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시면 아마도 이 해석의 의미가 와 닿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세대주의자들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 때문에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시는 그 일을 미루고 연기하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정하셨다는 말입니다. 처음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셨고, 이 후에는 만백성에게 나타내실 것이라는 것을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그들에게 주시고 지키라고 명했던 거룩한 安息日(안식일)을 폐하시고 복음시대에는 主日(주일)로 대체할 것을 처음부터 아셨다, 라는 것입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이 미루어지고 연기된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들을 하지만, 사실 그것은 이미 太初(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작정해 놓으신 바 라는 얘기입니다. 바로 그런 문제들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다, 라는 正體(정체)성에 혼동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근본을 흔들 수 있다, 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모두 알려고 드는 사람들의 억지스러움이, 하나님의 本性(본성)을 歪曲(왜곡)시킨 점이 없지 않다,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시험의 때에 너를 지키리니, 이는 온 세상에 임하여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라.

 

여기 등장하는 인내의 말이란 것은 세상의 것을 탐하지 않고 바로 성도에게 주어진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킨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만을 들으며 목자인 그리스도께서 인도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는 자라는 것은 그들이 구원받기 이전이라 할 지라도 변함없는 행위로 주님의 명령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험의 때라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해석하듯 7년간 적그리스도와 열왕에게 주어진 한이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절 안에서도 그 때는 온 세상에 임하여 땅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라, 라고 미래시점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간이 바로 마태복음 10장과 24장, 그리고 평행구절인 마가복음 13장등에서도 언급하셨던 바로 그 환란의 기간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은 대환란 기간이라고 할 수 있는 후삼년반이며, 마흔두달이고, 그리고 두 증인이 죽어있었던 삼일반동안의 기간을 가리킨다 하겠습니다. 그 증명은 계시록9장과 11장에서 다시 하겠습니다.

 

(1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들어서 아무도 너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의 이 속히는 노아의 때에 오시는 것을 상징한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혹시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없었다면 지금 합니다. 그리고 이 때는 빌라델비아교회인 14만4천명을 데려가시는 때입니다. 그럼 언제 데려가시느냐가 문제인데 그 때는 바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게 될 때이고, 그 때를 가르쳐주는 마태복음24장 15절과 데살로니가후서2장3절을 봤을 때, 그리고 다니엘7장25절과 9장 27절을 봤을 때, 그리고 그 다니엘과 마태복음의 구절들을 계시록11장7절, 그리고 12장17절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한이레의 중간시점이므로 전삼년반 끝무렵임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들림과 승천과 휴거, 이 세가지 열매에 대해 간단한 증명으로 누가복음12장의 말씀을 보며 조금 더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이 천국비유의 말씀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의 자격에 대한 것이며, 노아의 때에 오시는 주님이 신실한 첫 번째 열매인 14만4천, 즉 빌라델비아교회를 취하실 때의 상황을 묘사한 것입니다. 주인이 와서 깨어있는 종들을 보고 신실한 그들에게 나아와 수종을 든다는 것입니다.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이제 주님께서 이경에나 삼경에도 오실텐데 그 때도 그리하는 종들이 있으면 복이 있을 거라는 이것은 주님의 성품을 봤을 때, 결코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의 사역을 보고 말씀을 연구했을 때, 3번에 걸쳐 들림과 승천과 휴거가 일어난다고 하는 주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오시는 때는 노아때와 같이 오셔서 빌라델비아교회인 14만4천을 데려가는 것이고, 이경인 두 번째는 두 증인인 후삼년반 끝에 순교성도, 그리고 삼경인 세 번째는 도둑같이 오시는 주님재림하시는 때에 휴거성도들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휴거는 환란전이나 환란후에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가르침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보고 말씀을 묵상해야 함은 성도의 당연한 權利(권리)이며 또 義務(의무)일 것입니다. 그리고 옳은 解釋(해석)을 보는 것은 더욱 重要(중요)합니다.

 

(12)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으로 삼으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그 사람 위에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성의 이름, 즉 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기록하고, 또 나의 새 이름도 그 사람 위에 기록하리라.

 

이 구절의 말씀을 빌라델비아교회에 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들이 바로 14만4천인 정도의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또한 이들위에 내 하나님의 이름과 예루살렘을 기록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새 이름도 기록한다는 것을 보십시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서라도 혈통적인 유대인들의 시대는 끝이 난 것이고, 내면의 유대인인 基督(기독-Christ)인들의 시대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름을 기록하신다는 것의 의미는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신것과 마찬가지로 너는 내것이다라는 영적의미도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13)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역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권면입니다.

 

(14)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시며,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역사적으로 이곳의 특징은 교통의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모직물 공업의 중심지였으며 안약이 유명했고 더불어 의학교도 있었습니다. 또한 활발한 금융거래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물 사정이 좋지 않아 히에라볼리와 골로새로부터 항상 수로를 이용해 물을 공급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골로새서를 보면 에바브라가 수고한 것으로 보이며 그 교회와 함께 바울이 지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말씀하십니다. 썬데이 크리스천중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창조주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 14절을 읽어 보시면서 그 의미를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불어 도움을 받으실 책은 요한복음입니다.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바로 이 말씀은 현대의 기독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껍데기만 기독교인들인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겁니다. 가족을 염려하고 자녀들을 염려하며 그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살펴 보십니다. 그렇게 세상에 취해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누가복음21장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34) ○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 그리하여 어느 때라도 너희 마음이 방탕과 술취함과 이생의 염려로 무겁게 되어 그 날이 갑자기 너희에게 임하지 않게 하라.

 

이 구절의 의미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염려로 마음이 무겁게 되어 있을 때, 그날이 갑자기 너희에게 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이생의 염려로 인해 혹시 주님의 말씀을 輕忽(경홀)히 여기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그러한 분들이 계시다면 그들에게는 주님의 날이 덫과 같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16) 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

 

이생의 염려로 일을 하고 세상일만 생각하며, 주를 향한 사랑에 뜨겁지 아니하면, 즉 주의 말씀에 대한 갈증이 없이는 천국이 저의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이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네가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세상에서 아무리 부유하고 주위사람들에게 재산을 자랑하며 산다고 할지라도, 그 인생은 결국 허탄할 것이기에, 그것을 아는 주님께서 그런 자의 종말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몇십년간의 부유한 생활을 위해 영원한 형벌을 택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말라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권고라 할 것입니다.

 

(18) 내가 너에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요하게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며, 또 안약을 네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주님께서 파신다는 불로 단련된 금은 세상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의의 흰 옷, 즉 에베소서6장14절 이후에 진리로 너희의 허리띠를 두르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화평의 복음을 준비한 것으로 너희 발에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또 안약이라 함은 안약으로 유명했던 라오디게아의 역사적배경을 말씀하심으로 진정한 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의 부질없는 물질과  권력에 한 눈을 팔고 있는 소경과 같은 신세를 자각하고 영적인 눈을 뜨라는 의미로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19) 내가 사랑하는 자마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말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 모두 이루어지는 결말이 말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모두 알고 본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더욱 말씀을 연구하고 깨닫는 자들을 주님께서 사랑하지 않으실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라오디게아교회를 주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문밖에 서서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문을 열어 주님을 영접해야 할 때입니다.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주님은 항상 성도들앞에서 계속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문을 열어 그 분을 영접하시고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21)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을 자격을 주리니, 이는 내가 이겨서 내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으리라.

 

주님께서 그에게 통치자와 심판자의 자리를 주실 것입니다.

 

(22)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권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