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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계시록강해노트

숫자로푸는 요한계시록 강해 다섯 번째 시간

by 디클레어 2011. 7. 13.

 

 

숫자로푸는 요한계시록 강해 다섯 번째 시간

 

 

계시록4장

 

 

계시록4장과 5장은 사실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에는 해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른 이해하기 어려운 장들을 分析(분석)하고 解釋(해석)하기에도 바빴기 때문입니다. 이제와서 얘기지만 사실 어떤 장이라도 중요하지 않고 귀하지 않은 장이 있겠습니까, 그리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지금이라도 이 4장과 5장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1) 이 일 후에 내가 쳐다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는데 내가 들은 첫 음성은 나팔 소리 같았으며,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리로 올라오라. 내가 이후에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네게 보여 주리라." 하더라.

 

이 일 후에 라는 것은 앞선 교회에 대한 말씀들이 이제 마무리되었고 지금부터는 영안에서 새로운 계시, 곧 구체적인 계시가 시작되어야 함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요한이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그곳에 열린 문이 있었고, 또 이리로 올라오라는 나팔소리같은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 나팔소리같은 음성이라는 것은 앞선 1장 10절에서 보았던 것처럼, 예수그리스도(또는 성부하나님)의 음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또 열린 문이 있다는 것은 이제 사도요한이 그 곳을 통해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未來(미래)에 관련한 일들을 보게 될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세대주의에 물들은 교회나 이 해석에 몰입한 사람들은 이 때 열린 문으로 올라가는 요한이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얘기를 하고, 교회는 이 때 모두 휴거되어 6장부터 시작되는 7년간의 환란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석을 하고 있는데, 사실 그렇게 받아 들이는 개혁주의 해석자들은 많지 않을 뿐더러, 본인의 생각에도 그 해석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되지도 않는 그들만의 주장일 뿐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교회의 일원이 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혼자서 교회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마태복음18장,

 

(19) 다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무엇이든지 구할 것을 땅에서 합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느니라." 하시더라.

 

에 비추어 최소한 2명이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올라간 것은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계시를 받으러 올라간 것일 뿐, 이 장면은 휴거에 관련한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시고 살펴 보신다면 그런 해석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인지 곧 알게 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토록 세대주의자들의 해석에는 너무나 많은 虛點(허점)이 있다는 것을 앞으로도 여러분들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한이레인 7년 환란 전, 다시 말해 환란이 시작되기 7년 전에 올라간다는 그들의 주장은 계시록이나 혹은 다른 어떤 성경의 기록을 찾아봐도 그 근거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는 것에 사용하는, 아주 典型的(전형적)인 부류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성도라면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하므로 玉石(옥석)을 가려 믿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영상을 보는 여러분들은 부디 그런 것들에 眩惑(현혹)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2) 또 내가 즉시 영 안에 있게 되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보좌가 놓여 있고 한 분이 그 보좌에 앉으셨는데

 

이렇듯 요한은 하늘에 올라가서 본 장면들을 忌憚(기탄)없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세대주의자들은 교회는 이미 휴거되어 4장 이후부터는 교회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교회는 촛대, 그리고 두 증인으로 이름이 바뀌어 표현되어 있음을 여러분께서는 이미 알아보고 넘어온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계시록7장의 십사만사천과 그 후의 순교성도들이 교회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또 주장하기를 십사만사천이나 순교성도들은 혈통적인 이스라엘민족들이라 주장하고 있으니 보이는 부분만 보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영적소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사람은 부패하고 어리석어서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은 계시록 6장, 7장, 8장, 9장, 그리고 11장, 등등을 통해 계속 교회는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각설하고 요한이 하늘의 열린 문으로 올라가서 본, 한 보좌에 앉아 계신 그 분은 하나님아버지 되십니다.

 

(3) 앉으신 분의 용모가 벽옥과 홍보석 같으며, 그 보좌를 두른 무지개는 에메랄드같이 보이더라.

 

개역성경에는 이 용모를 모양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그런 단어는 물체들이나 물질들에 쓰는 표현이지 하나님을 지칭하는데 쓰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그리고 다음 절에 그 보좌를 두른 무지개는 에매랄드같이 보이더라, 라는 구절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무지개라는 단어입니다. 이 무지개는 노아의 홍수때를 연상시키는데 창세기의 하나님께서 모든 氣息(기식)하는 생명들을, 노아와 그 식구들만 남겨두신 채 모두 멸망시키셨던 그 창조주 하나님되심을 알려준다 하겠습니다.

 

(4) 또 그 보좌 주위에는 스물 네 좌석이 있는데, 내가 본 그 좌석들에는 흰 옷을 입은 스물 네 장로가 앉아 있고, 그들의 머리에는 금으로 만든 면류관을 썼더라.

 

이 스물 네 장로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있습니다. 열거하자면 어떤 이는 구약의 열 두 족장과 신약의 열 두 사도가 합쳐진 것을 상징한다, 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종말 때에 일어 날 교회의 휴거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대표하는 모든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하고, 혹자는 구약의 이십 사 제사장 반열을 나타낸다고 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천상의 천사들을 가리키거나 천사장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나 유대인 교회를 의미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바벨론 신전의 이십 사 성좌에 해당하는 유대 인물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등, 너무나 많은 해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4장과 그 이후에 나오는 이십사장로들에 대해 기술된 상황들을 보았을 때, 일단 천사는 아닌 것으로 보이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살아서 들림받았던 에녹이나 그리고 주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의 일 중,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을 포함해서 역사적으로 하나님과 同行(동행)했던 그런 인물들중에 특별히 택함받은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하고 推測(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스물 네 장로에 대해서는 계시록외의 다른 곳에서는 따로 찾아 볼 수가 없기에 자료가 미약하니 역시 추측밖에는 할 수 없음을 밝혀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런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쓴 冕旒冠(면류관) 때문입니다. 이 면류관의 헬라어 '스테파누스 크뤼수스'는 단순한 왕관이 아니라 앞선 서머나교회에게 주신다는 2장10절의 면류관과 같은 의미로써, 이는 싸움에서 승리한 자들이 받을 수 있는 관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도가 된 자들의 자격과 승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거기에 더해 금 면류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봤을 때, 그들이 이 땅에서의 삶 가운데에 승리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한 자들이다, 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 그 보좌에서는 번개들과 천둥들과 음성들이 나오고,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불타고 있었으니, 그것들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계시록11장19절에는 이곳에 기록된 것처럼 번개들과 천둥들과 음성들이 있고 거기에 더해서 地震(지진)들과 큰 雨雹(우박)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번개들과 천둥들과 음성들이 나오는 이 세 가지 현상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라는 것을 暗示(암시)하는 것이며, 그 이후 기술된 지진과 큰 우박의 재앙 또한 바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설명드리자면 앞으로 나오는 그런 표현들, 즉 번개들, 천둥들, 음성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다, 라는 表現(표현)이고, 그 실행이랄 수 있는 직접적인 눈에 보이는 현상인 지진과 큰 우박으로 그 하나님의 진노가 이루어진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앞으로 11장과 16장 강해를 통해 두 장을 비교하며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곱 영인 보좌앞에 일곱 등불은 성령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6)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그 보좌 가운데와 그 보좌 주위에는 앞 뒤로 눈이 가득한 네 짐승이 있더라.

 

이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는 계시록15장 2절에도 나오는데, 바로 하나님의 일곱 진노대접이 쏟아지기 전의, 불로 뒤섞인 유리바다의 상황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그 때에 비해서 이 때는 잔잔함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유리바다의 잔잔함은 하나님의 평온함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되어 지고, 15장의 진노가 쏟아질 때는 불로 뒤섞였다는 그곳의 유리바다의 상황으로 보아 하나님의 憤怒(분노)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그 유리바다위에 순교성도가 있다는 것이고, 이 순교성도는 다시 계시록6장의 다섯 번째 봉인이 떼어지고 난 후, 하나님의 제단앞에 예수그리스도의 증거로 인해 죽임당한 자들이 자신들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울부짖었던 그 성도들의 歎願(탄원)에 답하는 하나님의 應答(응답)을 象徵的(상징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 다섯 번째 봉인이 떼어지고 난 후에 하나님제단앞에 죽임을 당한 혼들은 바로 이 15장에 나오는 유리바다위의 순교성도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때가 되서야 비로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셨던 그들의 원수를 갚아주시는 상황이 계시록15장 준비장을 거쳐 16장에 기록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는 하나님의 심정을 代辯(대변)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짐승이 보좌 가운데 있다, 라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고, 보좌 가까운데로 번역이 되어야 ’엔 메소’라는 헬라어 본연의 뜻이 되므로 그렇게 기록되어야 할 것이며, 그리고 그 주위에 앞 뒤로 눈이 가득한 네 짐승이 있다고 하는 것의, 앞 뒤로 가득한 눈이라는 것은 눈의 속성 상, 무엇인가를 본다, 라는 의미로 봤을 때, 짐승들에게 눈이 가득하고 특히 앞 뒤로 눈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겉과 속을 보고 살피는 영적인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할 것입니다.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에스겔1장에 보면 나와 있는데, 그들의 행동이 재빠르고 움직임이 마치 번개와 같다는 것에 비추어 봤을 때, 또 그들을 다루시는 분이 성령님인 것으로 보았을 때,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세상을 보고 살피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첫째 짐승은 사자 같고, 둘째 짐승은 송아지 같으며, 셋째 짐승은 사람과 같은 얼굴을 가졌고, 넷째 짐승은 날아다니는 독수리 같더라.

 

첫째 짐승이 사자같다는 것의 의미는 사자의 민첩성이나 용맹함에 비추어, 그리고 솔로몬의 보좌 양옆에 조각되어 있던 것으로 보았을 때, 王權(왕권)을 말한다 할 것이며, 송아지는 에스겔1장10절에 보면 그곳에서는 소로 나와 있으나 이곳에서는 송아지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아, 처음 소는 아마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을 증명해주는 에스겔24장14절이하를 보면 두로왕을 빗대어 말씀하시는 구절이 나오는데, 소로 표현되어 있었던 그 짐승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는, 촉망받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기름부음 받은 그룹이었으나, 이 후 그의 불법이 드러남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 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은 결국 소로 기술되어 있던 그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破滅(파멸)됨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 소는 바로 옛뱀, 마귀, 사탄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송아지로 새롭게 표현된 이 짐승은 그를 대신하여 새롭게 창조된 짐승으로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송아지가 의미하는 것은 에스겔 28장13절말씀에 비추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라 볼 수 있고 또 열왕기상 7장25절에 비추어 본다면 힘과 권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은 현명함과 총명함, 즉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독수리는 에스겔서에 나오는 번개같은 그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명령을 받잡는 신속함, 그리고 그의 속성이랄 수 있는 고고함을 나타내며, 특히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이끄셨던 것을 독수리의 날개로 표현하셨던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한다, 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8) 네 짐승들은 각각 자기 주위에 여섯 개의 날개를 가졌고 안쪽에는 눈들로 가득하더라. 또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말하기를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시여!" 하더라.

 

그렇게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이 짐승들이 눈이 가득한 여섯 날개를 가지고 밤에도 낮에도 쉬지 않고 주의 거룩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거룩하시도다, 가 세 번 반복되는 것은 거룩하심의 최상급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찬양받으셔야 할 이유를 의미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9) 그 짐승들이 보좌에 앉으시어 영원 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릴 때

(10) 스물 네 장로가 보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 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에게 경배하며 그들의 면류관을 그 보좌 앞에 던지며 말씀드리기를

(11) "오 주여, 주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니, 이는 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으며, 또 창조되었기 때문이니이다."라고 하더라.

 

이상 9절에서부터 11절은 한번 읽어보면 알 수 있는 내용들이기에 별다른 해석이 필요없습니다. 다만 11절은 원문과 비교했을 때, 번역상의 문제가 조금 있어서 다시 풀이해 보자면 이렇듯 네 짐승들과 더불어 이십 사 장로도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리며, 한 가지 더 하나님에게서 받았던 면류관을 그 앞에 던지며 찬양을 하는데, 그 찬양하는 이유가 바로 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만물은 주의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주의 뜻대로 주의 뜻에 의해 존재하고 있음을, 승리한 이십 사 장로가 宣布(선포)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계시록 5장

 

(1) 또 내가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서 한 권의 책을 보았는데, 안팎으로 기록되었고 일곱 인으로 봉해졌더라.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린 이 책은 계시록1장1절에 나오는 대로 앞으로 일어나야 할 상황들을 적은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두루마리를 뜻하던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책 모양을 뜻하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기록된 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라는 얘깁니다. 이 책은 앞서 아포칼립스(apocalypse), 즉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 보여준다, 라는 계시의 의미대로 앞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에 대한 것을 기록해 놓으신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合當(합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봉인을 떼실 때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고, 그래서 그 누구도 본 적도 없으니, 그러므로 이 책은 그 말 뜻 그대로 그 동안까지는 숨기고 감추어져 있었다, 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2) 내가 큰 음성으로 선포하는 힘센 한 천사를 보았는데 "누가 그 책을 펴며 그 봉인들을 떼기에 합당한가?"라고 하더라.

 

이 힘센 천사는 천사들을 주관하는 천사장들의 한명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해석으로 보입니다. 천사의 역할과 네 짐승의 역할과 이십 사 장로들이 하는 역할은 각각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에 대한 오해 중 히브리서1장14절에 대해 잠깐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14) 천사들은 모두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하여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섬기는 영들이 아니냐?

 

이 구절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천사보다 지위가 높은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을 봤는데 그건 誤解(오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천사보다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천사들은 항상 하나님 가까이서 그분을 뵙고 그분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간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대로 그들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천사나 사람은 모두 같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재들이니 말입니다.

 

(3) 하늘이나 땅이나 땅 아래에서 그 책을 펴거나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이렇듯 하나님아버지께 다가서서 그 책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 천상의 그 높은 존재들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천사들도 예수그리스도의 권위와는 차이가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므로,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천사들중의 한 명이 아니겠는가 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4) 그 책을 펴거나 읽거나 또는 그것을 볼 만한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기에 내가 심히 울었더니

 (5) 그 장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기를 "울지 말라, 보라, 유다 지파의 사자인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책을 펴고 또 그 책의 일곱 봉인을 떼리라."고 하더라.

 

4절에 요한이 울었던 이유라면, 그는 계시를 받으러 올라갔는데, 그 계시가 기록된 책을 그에게 보여줄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입니다. 그 자신의 열정으로 말미암아 그의 가슴은 타고 있었지만 그것을 해결해 줄 인물이 보이지 않으므로, 혹시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감정이 일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5절에 유다지파의 사자인 다윗의 뿌리라고 하는 것은 이사야11장에 나오는 표현인데 그 장에는 메시아의 탄생과 그의 왕국에 관한 서술이 나타나고 있는데 결국 이것은 메시아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왕국의 주인이심을 보여주는 구절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뿌리이신 그 분께서 승리하셨으므로 곧 그분만이 그 책을 여실 수 있는 분이라고 이십사장로중에 하나가 그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6) 이에 내가 보니, 보라, 보좌와 네 생물의 한가운데와 장로들의 한가운데 도살당하였던 것 같은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졌더라.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여기 기술된 상황을 다시 표현하자면 가장 바깥에 이십사장로의 보좌들이 있고, 그 안쪽에 보좌를 중심으로 네 생물들이 둘러 있으며 그리고 그 한가운데인 보좌앞에 어린 양이 서 계심을 서술해 놓은 것입니다.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지닌 일곱 뿔에서의 이 뿔은 힘과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며,  일곱이란 숫자와 합하여 완전하고 영원한 왕권을 소유한 분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곱 눈은 일곱 영이며 이 일곱 영은 보혜사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聖靈(성령)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7) 그가 와서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서 그 책을 취하더라.

 

이로써 어린양인 그 분께서 성부하나님의 손에서 그 책을 취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야 비로서 그 내용을 요한에게 알려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8) 그가 그 책을 취하니 네 생물과 스물 네 장로가 각자 하프와, 향으로 가득한 금호리병들을 가지고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렸으니, 그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신 분에게서 책을 취하자, 네 생물과 스물 네 장로가 그 분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그 분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고 찬양하려는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린 양께서 그들에게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너무도 합당한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만물들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금호리병에서 나오는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고 하는데, 이렇듯 이 순간에 금호리병이 나오는 것은 이제 이 무렵부터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하나님께 올린 합당한 기도는 그분께서 듣고 계시며, 또 그러한 기도는 그 사역을 맡은 종들에 의해 올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9) 그들이 새 노래를 부르며 말하기를 "주께서 그 책을 취하시며 그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시니이다. 이는 죽임 당하셨던 주께서 하나님께로 각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주의 피로 구속하여

 

이제 찬양의 준비와 자세를 갖춘 네 짐승과 이십사장로들이 하프를 켜며 본격적으로 어린 양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그 찬양의 내용인 즉은, 죽임당하신 어린양께서만이 그 책을 취하시며 그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신데, 그 이유는 그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가운데서 택한 주의 選民(선민)들인 우리를 구속하셔서, 하나님앞에 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아 주신 것이 너무도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우리에게 땅을 다스릴 수 있는 통치자의 권세까지 허락하여 주셨으니 그 은혜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10) 우리 하나님 앞에 우리를 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으셨으니 우리가 땅 위에서 통치하리이다."라고 하니라.

 

이렇듯 감사의 노래로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11) 내가 또 보니, 그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들의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네 짐승과 스물 네 장로의 노래가 끝나자 잠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 요한이 어느샌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천사들을 보게 됩니다.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이것은 수 없이 많은 숫자를 표현한 것이라고 주석가들은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12)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권세와 부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라고 하더라.

 

만만이요 천천인, 이 수를 정수로하면  일억하고도 또 백만이 넘는 하늘의 천사, 그들 각각의 큰 목소리로 외치는 광경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 莊嚴(장엄)함과 雄壯(웅장)함은 실로 듣는 이들의 심장을 두드릴 것이며 그 찬양소리를 듣는 모든 이들을 압도하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결코 외로운 분이 아니심에도 불구하고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도 그 분의 영광을 나눠주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신 위대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곳에서 본대로 그 분의 사랑과 은혜는 끝이 없으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분의 영광에 참여할 성도들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않고 기도하는 것이 의무감으로 이겠습니까, 감사함으로 이겠습니까, 이것을 아는 분들은 행복한 분들이고, 그 분의 영광에 참여할 성도들일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니 이런 자들을 주의하십시오, 그 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므로 죄를 지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불못에 던지지 않으실 거라는 허황된 믿음을 가르치는 자들을 말입니다. 또한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는 말장난에도 속지 마십시오. 그 천하보다 귀하다는 비유는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저 많은 참새보다 귀한 존재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누가복음12장7절,

 

(7) 도리어 너희 머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모두 세어 두셨느니라.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에서 하신 이 말씀을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것은 성도여러분들의 가치를 떨어뜨리고자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저 구원을 이루기까지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흰옷과 면류관을 받고 완벽한 구원을 이루었을 때, 그때에야 비로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수 있는 資格(자격)과 부끄럽지 않은 이름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과 땅과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각 피조물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이 말하기를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 무궁토록 있을지어다."라고 하더라.

 

그 천사들의 찬양이 끝나자 이제 그에 화답하듯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이 그분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결국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고, 그분의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고, 그분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가르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온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創造(창조)하셨고 攝理(섭리)하고 主管(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4) 그때 그 네 생물이 말하기를 "아멘" 하고 스물 네 장로가 엎드려 영원 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에게 경배하더라.

 

그 온 피조물들의 찬양이 끝나자 영적인 존재인 네 생물이 아멘으로 화답하고 스물 네 장로는 영원무궁토록 살아계시는 분에게 엎드려 절을 하며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으로 계시록 4장과 5장에 관한 해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런 부분이 있을 수 있고 틀린 부분도 있을 수 있으며, 또 여러분께서 생각하는 부분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린다는 큰 테두리안에서 생각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해석이라면 그리 큰 의미를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다르게, 그리고 각각 특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조금씩은 그 생각하고 이해하는 바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점을 참조하고 보시기 바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해석한 것이 꼭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인지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통일해서 다수결로 해석을 했다면 아마 지금쯤 벌써 계시록은 논란의 여지없이 그 숨겨져 있던 베일을 벗고 여러분앞에 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던 것은 너무 많은 해석들과 그릇된 주장들이 범람을 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을 지배하는 어두움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이 올바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고 혼란케 했던 것입니다. 특히 그들이 했던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개역성경이 되겠습니다. 바로 그 개역성경의 기록을 빼기도 하고 넣기도 하고, 삭제하기도 하고 변역시키기도 하면서 말씀을 보는 성도들의 바른 이해를 가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입니다. 의심이 나면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이 계시록이 풀리는 시대에 살고 계십니다. 그것은 곧 주님 오실 날이 머지 않았다는 얘기와도 같습니다. 속히 온다고 하셨던 주님은 이제 곧 오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으로 여러분들이 원하는 답을 찾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다음 6장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