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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선교-예정론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가?

by 디클레어 2011. 9. 8.


예정론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가?



인터콥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올라오고, 따라서 선교에 대해 다시 천천히 살펴 보던중 이 글을 쓸 필요성이 있어서 올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잠언16장

...

(4) 주께서는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하여 지으셨으니, 정녕, 악한 날을 위하여 지으신 악인까지라.



이사야45장

...

(7) 나는 빛도 조성하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악도 창조하나니 나 주는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



에베소서1장

...

(11) 모든 것을 그 자신이 의도한 대로 행하시는 이의 목적을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그 분 안에서 유업을 받았으니

(12) 이는 먼저 그리스도를 믿었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양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정론은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일반적인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렇듯 말씀에 쓰여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으므로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난감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겠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다. 이 전능은 전지를 포함한다. 가끔 자신은 論理的(논리적)이라며 말장난하는 자들이 全能(전능)과 全知(전지)는 서로 矛盾(모순)되기 때문에 兩立(양립)할 수 없다고 하는 글을 써 대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글은 眞理(진리)다. 어느 곳에 한 구절만 적혀 있다고 하더라도 정의된 글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라는 거다.


예정론이 아니고 사람이 믿는 바에 따라 구원을 계획하셨다고 하는 사람들은 기회의 균등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필자의 경우를 보자. 본인은 운이 좋아서 하나님을 믿는 부모님을 만나 어렸을 때부터 예배당에 나가 그 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건 내가 잘 나서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운 좋게도 하나님을 믿는 부모밑에 태어났기에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세뇌를 당해 하나님은 萬古不變(만고불변)의 진리임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슬람에 태어났거나 인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나와 똑같은 기회와 환경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야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임을 의심받지 않을 것이며,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쉬우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가? 아니다.


하나님은 절대주이시다. 앞에 옮겨놓은 잠언과 이사야의 말씀대로 필요에 의해 그 분의 권한을 행사하시는 분이라는 거다. 그런데 그런 主權(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왜 공평과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지 않느냐는 거다. 간단히 말해서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대드는 꼴이다. 너는 지식과 지혜가 없다고 항변하는 것이며, 너는 그릇을 만들 자격이 없으니 내가 만들겠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바울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바울은 아시다시피 회심하기 이전에 교회를 진멸하며 그 남은 자들을 공회에 세우는 등 하나님 앞에 가증한 죄를 일삼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 앞에 주님께서 나타나시고 그를 돌이키게 하셨으며, -그 앞에 주님께서 현현하시지 않았다면 그는 회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만큼 사람의 생각은 바뀌기 힘들다- 오히려 그를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을 위해 선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신다. (행9:15)


그럼 公平(공평)함을 생각한다면 믿지 않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모든 자들 앞에도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나는 살아있는 주요, 하나님인 것을 증거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그런가? 그렇게 하셔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말이다. 필자는 지금 공평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이렇듯 예정론을 부정한다면 더 큰 난관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 관해서 만큼은 에베소서 1장 11절에 근거해서 예정하셨다고 보는 것이 조금이라고 오류를 줄이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예정하셨다는 말인가, 예정론에 대해 과격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말이 안 된다. 말씀을 단편적으로 보니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계시록21장에 보면

...

(12)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


그들은 심판을 받을 때 행위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들 모두 불못에 들어간다면 심판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디를 봐도 행위로 심판받은 그들 모두가 불못에 던져진다는 말씀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란다. 한 가지만 더 보자. 


누가복음10장이다.

...

(13) 코라신아, 너에게 화 있으리라! 벳새다야, 너에게 화 있으리라! 만일 너희 가운데서 행한 능력 있는 일들을 투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는 투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


어차피 주님께서도 가정을 하셨으니 본인도 가정을 해 보도록 하겠다. 주님께서 투로와 시돈에서 그 권능을 행하셨더라면 그들은 회개했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그들은 심판을 받을 때, 그 점을 참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는가, 심판 때 그 점을 참작하지 않고 무조건 불못에 떨어뜨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하다고 생각 하는가 말이다. 본인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런데 의외로 반대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말씀을 깊게 파고들지 못한 결론이고 단편적인 것에 치우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그 분은 절대주이시라는 거다. 그들 모두에게 죄를 물어 지옥에 던지실 수 있는 분도 그 분이시고, 그들 모두의 죄를 가리워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분도 그 분이시다. 먼저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아는 자만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렇다고 태어나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조차 불신자들에 포함시켜 지옥에 간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擴大解釋(확대해석)하지 말라는 얘기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도행전15장에 피를 멀리하라는 것을 확대해석해서 그러므로 헌혈을 해서도 안 되고 받아도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확대해석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라고 하는 말씀은 다른 어떤 신들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계시록13장을 보면서,


(8)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죽임당한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땅에 사는 모든 자는 그에게 경배할 것이라.


고 하는 말씀을 들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할 것이므로 그들 중에는 아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말은 앞 뒤를 분별못하는 어린 아이에게는 죄를 물으실 분이 아니심을 모르는 것이며, 그들 중에서 천년왕국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이 그 분께서 예비하신 것들은 단순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복잡하게 그 분의 공의를 실현하시는 것이다.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 분의 섭리가 바뀌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경륜을 사람의 생각에 맞추면 항상 오류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오히려 사람이 하나님 그 분의 섭리에 맞춰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인데 의외로 자신의 논리만을 강하게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절대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선 안 된다. 조심스럽게 그 분을 알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데도 수준이 있다. 그레이드(등급)가 있다는 얘기다. 얼마큼 하나님을 아느냐에 따라 상급이 결정될 것이다. 선교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 보다는 하나님을 알아나가는 것을 그 분께서 더 기뻐하시니 그 분을 알기 위해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 분이 조금이라도 더 기뻐하시는 것을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말씀을 깨달았다면 그 분을 알았다고 생각한 장성한 사람이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믿음이 어린 청년들을 그 곳으로 보내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땅위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나 時間(시간)이 존재하는 것일 뿐 전능하신 하나님앞에서는 삼차원, 혹은 사차원에 속한 시간이란 개념槪念(개념)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신 그 분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살아있는 자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거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는 過去(과거)나 未來(미래)라는 것은 없고 다만 現在(현재)일 뿐이며, 그래서 그 구원받을 숫자도 그 이름도 이미 생명책에 기록해 놓았다고 계시록에서 알려주시는 것이며, 그것을 보고 읽고 행하는 자들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는 거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깨닫는 자에게 더 큰 복이 임할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모든 구약과 신약의 말씀은 물론이요, 계시록까지 더욱 깊이 연구하고 나면 모든 의문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본인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 분은 선악을 창조하신 絶對者(절대자) 이심을 깨닫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