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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알미니안의 5개조 전제와 칼빈주의 5대 강령과 다른견해의 비교

by 디클레어 2011. 5. 30.

 

 

 

 

알미니안의 5개조 전제와 칼빈주의 5대 강령과 다른견해의 비교 2021*10/09수정

 

 

 

<알미니안> 1. 하나님이 예지하신 바에 따라, 사람의 믿는 여부를 조건으로 한 선택에 의하여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창세전에 작정하심 <조건적인 선택>

 

<칼빈주의> 1. 사람의 어떠함이나 행위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창세전에 작정하신 바꿀 수 없는 예정에 따라 구원과 멸망이 각각 정해짐. <무조건적 선택>

 

<다른 견해> 1.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길은 두 가지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이 첫 번째요, 또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진 나라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을 믿지 않았거나 못했을 경우에는 그가 양심과 이성에 따라 보편적 사고를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행위로 구원받는 방식이다.

 

 

 

<알미니안> 2.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이것을 제한시키는 것은 각 사람의 믿는 여부임.

 

<칼빈주의>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예정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만의 속죄를 위한 것임. <제한된 속죄>

 

<다른 견해> 2.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연단과 단련을 시키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괴로움을 겪으며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바이다. 그것들을 알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과 친구됨이 어렵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을 이런 방식으로 교육하는데 있어 사람들의 반발이 있을까하여 그 분께서 본을 보이신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인 것이다.

 

 

<알미니안> 3. 타락한 상태의 자연적인 인간은 스스로 선하게 될 수도 없고 새로워질 수도 없다. 의지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가 없이는 인간은 자신이 구원에 대해 무력하고 무능함. <자연적인 무력함>

 

<칼빈주의> 3. 범죄한 인간은 스스로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전적으로 타락하였으며, 실제로 중생은 회심보다 우선함. <전적인 타락>

 

 

 

<다른견해> 3. 사람에게는 선과 악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단련시키시려고 사람안에 넣어 두신 것이며, 인간은 그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절대 변명할 수 없다. 회개하고 죄를 짓고 회개하고 죄를 짓고, 아니 죄를 짓고 다시 뉘우치고 죄를 짓고 다시 뉘우치고 이것은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렇다고 좌절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한 그의 중심을 보실것이며 결코 그를 버리시지 않으실 터이니 말이다. 그렇게 한다는 자체가 그 사람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보편적인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알미니안> 4.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됨이 없이는 인간의 구원은 시작될 수도 없고, 진행될 수도, 보존될 수도 없다. 그러나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는 그 역사하시는 방식 때문에 인간의 악한 의지에 의하여 거부될 수 있음. <저항이 가능한 은혜>

 

<칼빈주의> 4.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선택된 자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역사하시지만, 저주가 예정된 자들에게는 이 은혜가 주어지지 아니함. <불가항력적인 은혜>-거짓

 

 

 

<다른견해> 4. 사람들은 자신이 뜻한바 대로 살아가며 자신의 행위에 따라 구원을 받고 심판을 받는 것이지, 이미 정해진 것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도 소수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예정이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구원과 저주는 예정된 것이 아니고 각 사람의 믿음의 정도와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구원이 결정될 것이다.

 

 

 

<알미니안> 5.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죄와 유혹에서 능히 지키시고 보존해 주지만, 인간의 나태함에도 불구하고, 이 은혜가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성경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음. <조건적인 견인>

 

<칼빈주의> 5.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은 결코 상실되지 않으며 끝까지 보존됨. <궁극적인 견인>-거짓

 

 

<다른견해> 5. 사람에게는 선과 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수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도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상급이 결정되는 것이지 영원한 것은 없다.

 

 

 

<결론> 가령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다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눈으로 어린양의 생명책에서 이름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서신서중 믿음을 강조한 어떤 글들이라 하더라도 그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를 동반한 믿음이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며 그 행위가 동반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구원의 안정권에 드는 것이니 혹시 이 주장이 틀려 보인다 할 지라도, 제위께서는 받아 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안다면 행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니 말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행위를 얘기하면 말씀에 위배되고 이단적인 사상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께도 이단이라고 대들 사람들이다.

 

혹시 그런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서 인건가?

아니면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혹은 사랑을 베풀지 않아서 양심에 찔리는 것이 있는가?

아니면 혹시 죄를 짓고 있는 가운데 있어서 스스로 괜찮다는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인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에 걸맞는 열매가 눈으로 보여지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심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지 않은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성도라 자신하는가?

 

그것에 대한 대답은 한가지다. 사랑을 받고 싶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분께서 기뻐하는 일을 당연히 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분의 말씀을 지키지 않을 것이며, 고로 그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황금율이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 행위로는 부정하는 자들은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린 자라는 사도바울의 말을 기억하시라.

 

다시는 행위가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 얘기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이것은 본인의 행위가 의롭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꾸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싶은 마음에서 강한 룰을 두고 싶어서 인 것이다. 받으실 수 있는 분들만 받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