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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千年王國(천년왕국)에 참여하는 聖徒(성도)들의 數(수), 두 번째

by 디클레어 2011. 10. 9.


千年王國(천년왕국)에 참여하는 聖徒(성도)들의 數(수), 두 번째




대환란이라고 불리는 날들이 말세를 살고 있는 성도들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계시록2장이다.


(10) 너는 고난받게 될 일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서 시련을 당하게 하리니 그러면 너희가 열흘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보시는 바와 같이 미래 시점이다. 또 계시록3장이다.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시험의 때에 너를 지키리니, 이는 온 세상에 임하여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라.


역시 미래의 시점인 것을 알 수 있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은 앞으로 주님께서 땅위에 사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가 있을 거라는 말씀이시다. 사실 이 고난의 때는 마태복음 10장과 24장에서도 말씀하셨고 그와 평행 구절인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기에 성경을 정독해 본 성도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기는 하다. 이 분별에 대해 세대주의해석에 물들어 있는 7년 환란전 휴거론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는 하나 그들도 멀지 않아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7년 환란전 휴거론자들의 믿음은 상당히 높은 수준인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런 이유로 아마도 그들 중에서 가장 많은 순교성도들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분별하고 있기도 하다. 계시록을 올바로 분별하거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의 수준과는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들로 탈바꿈될 것이다.


각설하고,

그들이 알고 있는 환란 전에 휴거되는 사람들은 계시록7장에서 하나님의 인을 맞은 십사만 사천 명 뿐이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고 대 환란이 시작되는 후삼년반 기간의 환란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14만4천이 그 시기 전에 들림 받는다는 것은 많이 증거했기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고, 문제는 마흔 두 달, 즉 후 삼년반 기간 동안에 순교한 성도들은 언제쯤 승천하느냐 하는 것이겠다. 그것을 알기위해 계시록7장과 11장을 비교해서 보도록 하자.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보라, 모든 민족들과 족속들과 백성들과 언어들에서 온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시록7장


(12) 그들이 하늘로부터 나는 큰 음성을 들었는데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리 올라오라." 하므로, 그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바라보더라.-계시록11장


바로 이 계시록11장 12절의 성도들이 짐승의 표를 이기고 後(후) 삼년반 (사흘 반) 끝에 하늘로 올라가는 순교성도이다. 그리고 계시록7장은 그 장면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고 말이다. 바로 이들이 계시록9장에서 순교한 15절의 삼분의 일과 18절의 삼분의 일인 4억명의 성도들이라는 것이며 계시록7장에서는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라는 표현으로 이들의 수를 감추셨던 것이다.


이 계시록에 반대하는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서는 곳에서 서야 한다는 말로 이 해석을 平價切下(평가절하) 하려고 한다. 바로 거기까지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한계이며 수준이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 초림당시에 주님께서 비유말씀을 아무리 들려줘봐야 해석해 주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했던 영적소경들이나 다름이 없다는 얘기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계시록해석을 보면 10장에서 늘상 하는 얘기가 있다.


(4) 그 일곱 천둥이 소리를 발할 때 내가 막 기록하려는데, 하늘에서 한 음성이 내게 들리며 말하기를 "일곱 천둥이 말한 것들을 봉인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일곱 천둥이 말한 것들을 봉인하고 기록하지 말라”는 말씀을 붙잡고 성경에서 알지 못하게 했으니 더 이상 알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며 순종하지 않는 것이라고 겁을 주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나 그 분의 실상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분께서 진정 비밀로 하려고 하셨다면 그 구절 자체를 아예 기록하지 않으셨을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24장15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 주님께서 그 깨달으라는 것의 의미를 풀이해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 구절의 명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서로 내 해석이 옳다며 싸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계시록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분의 心情(심정)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계시록은 비유이며 상징이다. 주님께서 주신 비유말씀들을 알아 듣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계시록의 해석을 할 수도 있고 알아듣기도 하다는 얘기이다.


이제 결론을 지어 보자.

모든 사람들은, 특히 믿는다 하는 성도들도 죽음을 두려워하긴 마찬가지인데 그 이유는 전통적으로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는 식의 많은 속담과 격언들이 있고, 아쉽게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도 들어보면 주님께서도 기도하시기를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라고 했으며, 더군다나 십자가상에서 너무나 고통스럽게 돌아가셨기 때문에 죽음은 아무래도 이승보다는 좋지 않은 것이다라는 관념이 팽배해 있다고 얘기를 한다. 교회에 열심히, 그야말로 多年間(다년간)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는데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과연 무엇을 믿고 있는지 되묻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성도들이 바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정확히 아는 자들이며 그 분의 신실한 약속을 믿고 있는 자들이고, 더 좋은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글을 보는 성도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로 바뀌기를 바라고 있다. 그 기간 중, 그러니까 후 삼년반, 마흔두달의 적그리스도의 대환란기간에는 실로 말로 하지 못할 엄청난 고통의 날들이 계속될 것이다. 그 날들은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는 견딜만 할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을 믿는다하는 성도들은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날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를 경배하지 않으면 목숨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어떤 고통이 있을지, 어떤 환란의 날들이 지속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마태복음10장에서 언급하셨던 일들과 전쟁과 병마, 기근에 시달리는 날들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니 성도들이 그 기간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의 한 가지는 이런 것이다. 바로 앞서 보았던 천년왕국을 기대하는 것. 잠시 잠깐 동안의 그 고통을 참아내면 부활할 그들이 받을 복은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이 누렸던 왕의 권세와 부귀영화를 능가할테니 말이다. 또 그들은 받지 못했던 영원한 생명까지 더불어 받게 되니 어찌 그 복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순교하는 그 성도의 수가 작지도 않다. 자그마치 4억이다. 나 말고도 그 기간에 순교하여 승리한 주의 백성들이 모두 4억명이나 된다는 얘기다. 그러니 혹시 자신만 고통받는 것은 아닌가 두려워 하지 말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알고 그 분께서 주신 시험에 기꺼이 동참하여 이겨낸 숫자가 무려 4억명이라는 얘기이니 모두 같은 마음으로 참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창조주되신 그 분께서도 십자가에서 죽음을 맛보셨다. 그러니 그 분의 백성들도 그 죽음을 맛본다 한들 어떤가, 주님께서 왕으로 계신 천년왕국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하늘의 천사와 같이 되어 영원히 왕노릇하며 산다면 사람으로써 그 보다 큰 복이 있겠는가 말이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세상에 이름 석 자를 남기기 위해 지금도 不撤晝夜(불철주야) 노력하는 인생들을 본다. 이렇듯 성도들중에 착각하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인데 뭔가를 해서 세상에 이름을 남겨야 하는거 아닌가 한다는 것이고, 또 좋은 일 좀 하다고 죽어서 하나님앞에 서야 그 분께서 칭찬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단한 착각이다. 교회란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것과는 상관없이 오히려 세상과 구별되게 사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은 그들과 구별되게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속으로 들어가 더불어 살려고 하는 것이니 교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교회(ecclesia-에클레시아)의 뜻은 세상밖으로 불려낸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지만 성도라면 그런 것 쯤은 초연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부유하게 살고 싶어하지만 성도라면 주신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명예와 영광을 구하지만 성도라면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구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땅을 구하지만 성도라면 그 분의 나라를 구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성도라면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더 좋은 세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자들은 차가운 땅속에 묻혀서 귀신이 되어 자식들이 간간이 차려주는 제사상을 받아야겠지만 믿는 자들은 자고 있다가 주님 오시는 날에 일어나 그 분의 영광에 참여하면 된다. 그래서 그 분의 백성으로써 왕같은 삶을 영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과는 태생과 신분이 다름을 명심하고 이겨낼 것은 이겨내고 그 분께서 주신다는 것은 받으면 되는 것이다.


(32) 적은 무리야,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그 왕국을 주시는 것이 너희 아버지의 참된 기쁨이니라.-누가복음12장


이렇듯 아버지께서 그 분의 참된 기쁨으로 주시는 그 나라에 참여하는 복 받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이상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