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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베드로, 그 반석위에 세운 교회에 대하여

by 디클레어 2011. 11. 20.


베드로, 그 반석위에 세운 교회에 대하여





반석위의 교회를, 반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베드로위에 세웠느냐 혹은 그리스도위에 세웠느냐라는 것으로 인해 혼란이 있는 것 같아 이 글을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사실 이 부분에 대해 묵상해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인데 먼저 이에 대한 의문점을 던져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는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더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너에게 나타낸 것은 혈과 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니라.

(18) 나도 너에게 말하노니, 너는 베드로라. 그리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먼저 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내가 너에게 이르노니 -이를 직역 하면 '또한 나도 네게 이르노니'이다. 이는 성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는 그리스도요...'라고 바른 신앙 고백을 하거나 하신 것처럼 나도 베드로 너에게 한 가지 진리를 말하겠노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McNel). 너는 베드로라 - '베드로'란 헬라어로 '페트로스'로서 '돌' 또는'반석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돌멩이, 돌덩이' 등을 의미한다. 이는 아람어 '게바'(요1:42;고전 15:5;갈 1:18)에 해당하며, 이 '게바'는 예수 당시에 널리 통용되던 이름이다(4:18). 예수께서는 일전에 그를 향해 이 같은 이름을 주실 것이라 예언하셨는데(요1:42), 이제 그것을 실현하시고 계신 것이다. 내가 이 반석(盤石) 위에 - 앞에 제시된 '페트로스'가 남성형 고유 명사인데 비해 여기의 '반석'은 여성형 일반명사로서 '바위 덩어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언어적 차이 때문에 베드로와, 예수께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는 반석을 동일시하려는 것을 전면 부정하는 주장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한편 본문의 '반석'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여러 견해들을 살펴보면,


(1) 베드로는 단순히 '돌'이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고 베드로 자신이 중언한 바처럼 예수께서 친히 '반석'이 되신다는(벧전2:5-8)견해이다(Augustine, Gander, Lenski, Luther). 이는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는 자도 되는 동시에 교회의 기초도 된다는 논리적 모순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2)로마 천주교회의 주장처럼 이 말이 교황의 수장권(收藏權)의 기초를 마련한다는 견해이다(H.M. Riggle, J. Gibbons). 즉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직접 천국 열쇠를 부여받은 교회의 기초석으로서 베드로의 후계자가 곧 모든 교회와 천국의 전권을 위임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유한하고 유흠(有欠)한(23절) 자가 영원한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와(고전 3:11) 모든 신앙 고백자의 기초 위에 세워진다(갈 2:9;엡 2:29;벧전 2:5).

(3) 계시된 진리, 곧 베드로가 증거하는 신앙고백을 뜻한다(Allen, Calvin, Jerome, Clarke, Robinson).

(4) 로마 카톨릭의 극단적인 해석에 반대하는 개신교의 반발이 아니라면 베드로 그 자체로 보는 것도 좋다는 견해이다(Bruce, Plummer). 이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초기 헬라어에서 '페트로스'와 '페라'가 각각의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주로 시어(詩語)에 국한되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 헬라어의 기초가 되는 아람어는 두 경우 모두 '게바'로 사용되고 있다. 즉'너는 게바라, 내가 이 게바 위에...'로 표현된다. 그 이유는 이 단어가 이름으로도, 또한 반석이라는 의미로도 쓰였기 때문이다. 또한 아람어와 같은 어원인 시리아어로 기록된 '페쉬타 사본'(Peshhitta)에는 이 두 단어가 두 구절 속에서 구분없이 사용되고 있다.


내 교회 - 이는 헬라어로 '무 텐 에클레시아', the church of me)로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교회를 말한다. 이것은 마치 하와가 아담에게 나와서 다시 아담에게 돌아가 둘이 한 몸이 되었듯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산출되어서 다시 몸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예속될 것을 시사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창 2:20-25;엡 5:22-32). 한편 여기에서 '교회'란 '에크'와 '칼레오'의 합성어로서 교회가 세상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구성되었음을 암시한다(요 1:16,19). 한편 70인역(LXX)의 '에클레시아'는 '집회', '회의', '모임' 등의 뜻인 히브리어 '카할'을 번역한 것으로, 이 히브리어 명사는 본래 여러 종류의 집회들과 관련되어 사용되었으나(Munchen), 점차 하나님의 백성, 곧 여호와의 성별된 무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졌다. 그런데 이 히브리어 '카할'은 매우 광의적(廣義的)으로 사용되어서 반드시 '에클레시아'로만 번역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가끔 '회당', '군중'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한편 70인역에서 일반적으로 '회당'에 한정되어 번역되는 용어로는 '에다'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70인역에서 '에클레시아'로 번역된 적이 없다. 따라서 본문에 '에클레시아'가 사용된 것은 매우 적절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제도, 조직, 예배 형태 및 회당에 대한 강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본문의 '에클레시아'는 구약의 '카할'과 같이 넓은 의미로 쓰여 진 것이다. 사실 뒤에 이어지는 '세운다'는 개념조차도 구약에 연유된 것이다(룻 4:11;삼하 7:13;시 28:5;118:22;렘 1:10;암 9:11). 이와 관련해서 래드(G. E. Ladd)는 자기의 에클레시아를 세우겠다는 예수의 선언은 예수에 의해 확립된 공동 단체가 구약의 이스라엘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관계임을 시사해준다. 바로 이 공동 단체가 장차 새 계시와 연관을 맺게 되는 '믿음의 눈을 지닌 신실한 남은 자로 간주된다'고 주장했다. 예수는 이제 자신이 메시야로 인정되자, 자기의 에클레시아, 자기의 백성, 곧 자기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한편 본문의 구절은 예수께서 당신의 메시야직을 은연(隱然) 중에 드러내고 있다는데 그 중요점이 있다. 실로 여호와의 백성은 이제 이 땅에 오시고, 신앙 고백되어진 메시야의 백성이 된다. 비록 당시 쿰란 공동체가 스스로를 언약 백성으로 생각했지만, 예수는 오직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자기의 백성, 곧 자기의 에클레시아라 말씀하신다, 정녕 예수를 믿고 그의 피로써 확립된 새 언약의 백성만이 그의 에클레시아라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26:28). 이와 더불어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교회'와 그의 '나라'가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Hill). 이 두 단어는 서로 상이한 개념, 즉 전자는'백성', 후자는 '지배', '통치'의 의미를 더 강하게 지닌다(13:28-30, 36-43). 그렇다고 해서 이 양자를 완전히 구별된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Walvoord). 왜냐하면 메시야의 통치는 메시야의 백성을 불러내어 구분하기 때문이다. 메시야의 나라는 메시야에 의해 세워지고, 그 백성은 바로 그곳에 모이게 된다. 또한 예수의 에클레시아는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최종의 신앙 공동체를 지향하는 역사에 나타난 전초 기지이다. 실로 그 나라가 최종 완성될 때 메시야의 백성은 그 나라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풍성한 축복을 얻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세력도 메시야가 친히 세우신 교회를 제거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이 완성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서세우리니 - 헬라어 원문에서는 '내가 세울 것이다'라는 미래형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예수께서 베드로가 행한 신앙 고백의 실체위에 장차 교회를 세우실 것을 암시한다. 사실 교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의 기원을 가진다.


(1) 근원적인 기원.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안에는 이미 창세전부터 하나님 자신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하여 교회 조직이 이루어졌다(엡 1:3-6).

(2) 역사적 기원. 그리스도의 예언(8절)대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신약 교회가 성립되었다(행2:2-4;4:32). 


구약에 이미 '교회'라 불리우는 광야의 이스라엘 무리가 있었지만(행7:38) 이는 장차 주님께서 세우실 교회의 예표(豫表)였고, 실제는 주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성도들 위에 임하신 오순절 때이다. 하나님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근거하여 새 생명으로 거듭난 성도들 위에 임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로 연합하여 주님의 몸, 즉 교회가 되게 하셨다(행2:1-4;4:32;고전 12:13).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여기에서 '음부'란 헬라어로 '하데스')로서 '지하 세계, '죽은 자의 거처'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히브리어로 선인과 악인이 구분없이 들어가는 '죽은 자의 영역'이란 뜻의 '스올'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히브리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이곳은 어둡고 소외된 장소로서 매우 높고 단단한 성벽과 문으로 둘러처져 있기 때문에 인간을 한 번 받아들이면 다시는 내어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권세'란 문자적으로 '대문'이란 뜻이다. '음부의 권세'란 '음부의 문'(gate of Hades)이라는 의미로서, 음부로 들어가는 문에는 항상 죽음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음부의 권세' 및 이와 유사한 표현들은 정경(욥 17:16;38:17;시 9:13;107:18;사 38:10)이나, 유대인의 외경, 또는 이방 문서에서도 자주 나타나는데, 쓰일 때마다 이 말은 사망과 임종을 의미한다. 따라서 RSV는 본문의 구절을 '사망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the powers of death shall not prevail)고 번역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이기지 못하리라'를 나타내는 '카티스퀴수')은 '대항하여 힘을 겨루다'는 뜻의 '카티스퀴오')의 직설법 미래 3인칭 형태로서 결국 죽음의 세력이 교회의 한 부분도 이길 수 없거나, 비록 잠시 이긴다 하더라도 곧 패망하여 영원히 굴복할 것이라는 강한 암시(暗示)를 제공하고 있다. 실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설립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육체적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문'을 깨뜨리시고 죽음의 정복자로서(롬 6:9;계 1:18) 군림하시기 때문이다(Alford). 죽음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생존하셔서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保證)이 되실 뿐 아니라 교회의 영속성의 영원한 지지자(支持者)가 되신다(고전 15:50-58).


그럼 여기서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그 분의 교회를 베드로위에 세우셨든 바울위에 세우셨든 요한위에 세우셨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것도 아니며 바울의 것도 아니며 요한의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즉 사람위나 반석위에 세우신다라고 하신 말보다는 그 분의 교회라는 말씀이 더욱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18절에서의 가장 중요한 맥은 베드로나 반석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신 주님의 선언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19절도 학자들의 주장들을 올려드리니 각자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19) 그리고 내가 천국의 열쇠들을 너에게 주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일 것이요, 또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니라." 하시니라.


16:19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 본문은 사 22:22에서 유래한 내용으로서 그곳에는 다욋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절대 주권을 예언하고 있다(계 3:7). 한편 여기 '열쇠'는 청지기로 임명된 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서 창고관리에 대한 전권(全權)을 위임하는 표식, 문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위를 상징한다. 그리고 '천국'은 지금까지 이야기 되고있는 교회, 곧 광의적인 의미에서의 그리스도 교회를 가리킨다. 실로 예수께서는 바른신앙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장차 세워질 교회에서 어떤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의 대상에 대해서 몇 가지 대별(大別)되는 견해가 있다.


(1) 로마 카톨릭교회의 주장으로서 베드로 한 사람에게 그 약속이 주어졌고, 역사적으로 그의 후계자인 교황에게 그 권한이 계속 부여되고 있다는 견해이다.

(2)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하여 천년 왕국 기간 동안 이 세상을 통치할 성도들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A.J. McClain).

(3) 특히 그 중에서도 베드로에게 더욱 많은 권한이 주어졌다는 견해이다(Plummer).

(4) 12사도를 대표하는 베드로와 12사도,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 교회 전체를 가리킨다는 견해이다(Wycliffe, Hendriksen). 


이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 보인다. 왜냐하면 천국(교회)은 궁극적으로 유대인들(행 2:14)과 이방인들(행 10:1-11;15:7, 14)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28:18-20). 그렇다면 '천국의 열쇠'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 그것은 베드로로 대표되는 교회가 계시에 의해 점차 깨달아지는 천국 복음을 선포함으로써(4:23) 상당수의 사람들에게는 천국을 열어 주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에게는 천국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는 이러한 사실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행2:14-39;3:11-26;4:11, 12:8:20-23) 바로 이런 방법으로 주께서는 교회에 구원받은 자들을 더하게 하시고(행 2:45), 자기 교회를 강건하게 세우시는 것이다(18절). 이와 더불어 '천국의 열쇠'가 매고 풀 수 있는 통제권이 따르는 것으로 보아 공개적이고도 심각한 범죄를 범한 자에게 교회를 통한 천국의 축복을 금할 수 있는 치리 및 입법 통제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행 8:21;고전 5:1-13). 실로 이 땅의 교회에서 치리(18:17;딛 3:10)는 천국의 통제권과 긴밀한 연관을 지닌다(8:12). 이로써 원소유자이신 예수께서 인간에게 위탁하신 '천국의 열쇠'는 사도들을 위시한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인정과 함께 자신들의 사역을 수행하고 그 권위를 세우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땅에서...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 이처럼 대치되는 전통적인 랍비들의 용어사용법에 의하면 '매다'란 '금지하다' 또는 '금지하여 불법임을 선포하다'라는 뜻을, '풀다'란 '허락하다' 또는 '허락하여 합법임을 선포하다'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한다. 즉 그들은 이 용어를 어떤 행동의 규율을 부가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대치되는 두 용어를 응용해 유대인들은, 인도적이고 자유스러운 힐렐(Hillel) 학파의 랍비들과 엄격하고도 보수적인 샴마이(Schammai)학파의 랍비들의 '묶은'것들을 '푼다'는 말을 통해 두 학파간의 차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여하튼 본문의 '풀고', '맨다'는 말은 여러 방법으로 해석되고 있다.


(1)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를 베드로의 수장권(首長權)과 절대적 권한을 가리킨다고 한다. 

(2) 특별히 죄를 면제하는 권한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

(3) 단순히 교회에서 행동의 규범, 곧 허락과 금지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4)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교회 치리권과 그의 권위의 탁월함을 근거로 해서 그가 제정하는 규칙과 그의 사도적 권위에 합당하게 권면하고 실행한 내용들이 하늘에서도 인정되고 비준(比準)될 것이라는 견해이다(Josephus). 


물론 이 견해는 베드로의 권세를 이을 후계자가 없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 그리고 베드로는 교회의 기초요, 처음으로 놓인 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정될 수 있는 견해이다. 결국 베드로는 '구원사적 수위직'(salvation historical primacy)을 차지하게 된 것이며, 그를 기반으로 다른 사람들이 놓여지고 또한 매고, 푸는 권한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계급 제도나 사제주의 및 성직자의 독재 개념은 본문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한편 메시야의 종말론적 백성인 교회가 천국의 열쇠, 곧 매고 푸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면, 그 일의 하나는 앞에 언급된 대로 진리 선포와 사도적권위에 의한 권위와 권면 이외에 신앙 고백으로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권징(權懲) 일 것이다. 사실 초대 교회사를 추적해 보면 분명 권징은 사도들, 장로들, 나아가서 온 교회의 특수한 임무임을 알 수 있다(고전 5:1-13;고후 13:10;딛 2:15;3:10 ,11). 더욱이 권징은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신앙 고백을 근거하였을 뿐 아니라 도래할 메시야 왕국을 대망하는 무리들로 구성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수행하고, 스스로의 거룩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사실 교회가 담당한 진리의 참된 선포는 이 권징을 전제한 것이며 또한 이를 수반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주장들중에 어떠한 것을 받아 들이느냐 하는 것은 각자가 받은 영적능력에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누가 강요하지도 못하고 강요한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단지 잊지 말아야 할 오직 하나는 이런 문제들로 인해 연구를 시작했다면 그 연구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려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하나님의 공의를 떨어뜨리지 않는 해석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시고 그 영혼을 받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같은 성도로써 해석이나 생각하는 바가 조금 다를 수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틀렸다며 몰아세우거나 멀리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