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하나님의 公義(공의), 두 번째

by 디클레어 2011. 11. 25.


 

하나님의 公義(공의), 두 번째




 

여기서의 주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라는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모두 불못에 던져 넣으실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사실 얼마 전에 모카페에서 “그렇지 않다” 라는 주장을 했다가 이단이라는 둥, 종교다원주의자라는 둥,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이냐라는 둥 수 많은 공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기에 또 다시 이 주제에 대해 논한다는 것이 본인으로서도 심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공의가 땅에 떨어져 있는 이 시점에서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의 공의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계속 조롱당할수 밖에 없기에 다시 이 문제를 언급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또 믿고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나를 선택하신 것이고 따라서 구원하실 것이다, 라고 믿는 것은 믿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驕慢(교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이슬람권에 태어 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들이라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예배당을 개인사업체처럼 팔아버리고 교인들을 상품처럼 넘기는 목사들을 본 일이 있으신가 모르겠습니다. 사실 요사이에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므로 못 보신 분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은 그리 신실하지 못하다, 라는 증거가 됩니다. 또 과연 그렇게 행동한 그들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니 사람이 관여할 부분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의 물욕을 이기지 못해 지은 그들의 행동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죄보다 작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이 글과 반대로 생각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아니까 그 아는 믿음으로 인해 구원받았고, 이방인인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므로 불못에 갈 수 밖에 없다, 라고 강변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치졸하고 편협한 생각이며 하나님을 너무나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발언이 아니라 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선 글들에 이미 쓰여진 바 있으므로 다시 언급하지 않겠고 이번에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을 모두 물로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런 그들 가운데에는 어린아이도 있었을 것이며 앞 뒤 분간 못하는 어린 남자나 여자, 그리고 이십 세 이하의 청소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가엾이 보지 않으시고 모두 멸망시켜 버리셨습니다. 그들은 백보좌심판때도 불못에 들어가게 될까요? 과연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그 해답을 알기 위해 베드로전서3장을 보겠습니다.


 

(18)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하셨으니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을 때에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 몇 명뿐이니 곧 여덟 혼들이라.


 

이 구절을 풀이하려는 여러 해석들이 있습니다. 보겠습니다.


 

(1) 혹자는 '에녹의 영'이 음부에 있는 타락한 천사들에게 전파했다고 주장한다(Nestle, Harris, Moffatt, Goodspeed).

(2) 혹자는 그리스도가 죽으신 후 부활하기까지의 동안에 노아의 홍수 때 멸망하여 음부에 갇혀 있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전파했다고 주장한다(Bigg, Hunter).

(3) 혹자는 그리스도가 성육신 전에 성령으로 노아를 통해 당시의 패역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전도했다고 주장한다(Jerome,Augustine, Aquinas). 이 견해에 따르면 본절의 '옥'은 이 세상은 의미한다.

(4) 혹자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천사들에게 전도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Blum, Dalton,Kelly).


 

저는 이 해석들 중 두 번째 해석이 옳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公義(공의)의 하나님이시라면 그 당시에 무참히 죽었던 그들을 지옥의 끝인 백보좌심판때에도 불못에 계속 던져 넣으시지는 않으실 거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그들중에 구원받는 자들이 있다면 그 당시에 그들은 물에 멸망당하면서도 왜 죽어야 했는지 모르는 그런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결론은 그런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면 그들중에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땅속에 계신 마흔시간 정도의 시간에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보충해 주는 말씀은 뒷 장인 베드로전서4장에도 있습니다.

 

....

(5) 그들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시게 될 그 분께 설명하게 되리라.

(6) 이런 연유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과 일치하여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과 일치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죽은 자들이라 함은 앞서 본 노아때에 죽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후로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지옥에 온 모든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그들 모두가 백보좌심판때에도 불못에 들어가야만 한다면 그들처럼 억울한 영혼들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주 예수를 받아들인 그들은 세상에 있을 때 福音(복음)을 듣지 못해 良心(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制御(제어)하지 못하고 죄를 범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제 복음을 전해들은 그들은 지금도 그 고통가운데에서 회개하고 있으며 다시 그곳으로 들어오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양심을 거슬러 죄를 범하는 바람에 지옥에 오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

(24) 어떤 사람들의 죄들은 먼저 드러나서 먼저 심판으로 나아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뒤를 따르나니

(25) 이와 같이 어떤 사람들의 선행도 먼저 드러나고 그렇지 않은 자들도 숨길 수 없느니라. -디모데전서5장


 

여기서 먼저 심판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계시록6장 세 번째 봉인에 검을 말을 탄 천사의 저울에 달려 부족함을 보여 지옥에 먼저 들어가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증명은 이미 한 바 있지만 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잠깐 다시 언급하자면 다니엘5장입니다.


 

(27) 테켈은 왕을 저울에 달았더니 부족함이 나타났다 함이요,

(자세한 설명은 계시록6장 강해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세상법이라도 정확히 잘 몰랐던 사람에게는 情狀參酌(정상참작)을 하여 법을 적용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重刑(중형)이랄 수 있는 死刑(사형)을 적용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하물며 세상법의 토대인 하나님의 법이리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심판은 공의의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 논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중에는 아마도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라고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이처럼 바른 견해를 듣고 나서 수긍을 했다가도 반대하는 그런 말을 듣고 나면 “그런가?” 하고 또 넘어가는 갈대같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런 류의 사람들은 어찌 그리 줏대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라면 아마도 그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거나 하나님과 성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일 것입니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서 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노아시대때에 모두 멸망당했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러 가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단지 이슬람권에서 혹은 힌두권에서 혹은 부다권에서 혹은 공자나 맹자권에서 혹은 또 어떤 이름없는 신을 모시는 구역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들 모두를 불못에 던지실 거다, 라는 생각은 이제 버리시란 얘깁니다. 그런 생각은 절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합니다.


 

(12)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고 하더라. -사도행전4장


 

다른 신에게 구원이 없는 것은 옳습니다. 그 분께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모두 불못에 던져넣으실 거라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서부터 我執(아집)과 驕慢(교만)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라는 말도 아니고 또 그들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실 수 있는 분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그 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까지 모두 지옥불에 던져 넣으실 분은 아니십니다. 자신은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자신의 입으로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은 지옥불에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고 그 반대의 하나님을 전파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분께서는 최종적으로 주신 계시록, 그 중에서도 마지막장인 22장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11)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함에 있게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러움에 있게 하라. 반면에 의로운 자도 그대로 의로움에 있게 하고 거룩한 자도 그대로 거룩함에 있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요한계시록22장 강해노트 참조)


 

믿음에 따라 상을 주는 것이 아니고 행위에 따라 상을 준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백보좌심판에서 심판받는 자들에 대해서 이렇게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13) 바다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그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니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계시록20장


 

노아시대에 멸망받았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심판을 받고,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해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서도 죄를 지었던 모든 사람들도 일어나 심판을 받으며, 그리고 복음이 전달되지 못해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살았던 사람들도 모두 일어나 심판을 받고, 피어보지도 못하고 졌던 많은 영혼들도 일어나 이 때 자신의 행위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공의의 하나님이 되실 수 없습니다. 물론 그 분께서는 창조주이시고 절대주권자이시므로 그들 모두를 지옥불에 던져 넣으실 수 있는 분이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을 상고하고 그 분에 성품에 대해 발견하고 알아낸 바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며 악을 미워하시고 억울한 영혼들의 억울함을 못본 체 하시고 눈감아 버리시는 그런 분이 아니심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분께서 설령 악한 하나님이라고 해도 따라가야 할 판인데, 오히려 善(선)하시고 그 仁慈(인자)함이 끝이 없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실찐대 어찌 그 분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그 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어찌 그 분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죽음앞에 초연한 성도들은 하나님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분 앞에 인생들의 죽음은, 그리고 그들의 비참한 삶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그들을 아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복과 사랑을 안겨주실 분이 바로 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혹은 팔레스타인의 소년, 소녀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그들에게 이런 고통과 아픔을 주는가? 라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각 사람의 증거를 받으실 필요가 없이 모두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은 그 분께서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바라고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계시다, 라는 얘깁니다. 이 세상에서의 피폐한 삶쯤은 그 분의 왕국에서는 전혀 생각나지 않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그 분의 백성을 위한 연단과 단련, 수련을 위한 시험장으로 이 천지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모든 일들을 허락하고 계시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이여, 이제 전도나 선교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하나님을 알려고 하고 이해하려하는 것에 더욱 힘을 쓰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더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마르다보다는 마리아를 더 높게 평가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아무쪼록 여러분께서도 이번 기회에 하나님의 공의를 더욱 깊이 묵상해 보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이번 주제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