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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의미.

by 디클레어 2011. 11. 10.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의미.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창세이전에 계셔서 하늘과 땅과 눈에 보이는 것들과 또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은 그 분을 성부하나님의 아들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그렇게 증거하니 저도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단지 그렇게만 생각하고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을 절반 정도밖에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께서는 성부하나님과 동등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6) 그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탈취라 생각지 아니하셨으나

(7)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느니라.-빌립보서2장


(6) Who, being in the form of God, thought it no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7) But made himself of no reputation, and took upon him the form of a servant, and was made in the likeness of men:


그리고 이사야는 한 술 더 떠 그 분을 영원한 아버지라고 하십니다.


(6) 이는 우리에게 한 아이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으니, 정부가 그의 어깨 위에 있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놀라운 분이라, 상담자라, 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원하신 아버지라, 화평의 통치자라 불리리라.


(6) For unto us a child is born, unto us a son is given: and the government shall be upon his shoulder: and his name sha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lor, The mighty God, The everlasting Father, The Prince of Peace.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어렵긴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시록18장입니다.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다른 음성이 나서 말하기를 "나의 백성들아, 그녀에게서 나오라. 그리하여 그녀의 죄들에 동참자가 되지 말고 그녀의 재앙들도 받지 말라.

(5) 이는 그녀의 죄들이 하늘에까지 닿았고 또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불의를 기억하셨기 때문이니라.


많은 해석가들은 이 구절에서 “나의 백성들아” 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이 누구인가를 설명하면서 5절에 “하나님께서는”이라는 단어가 나옴으로 인해 이 목소리를 천사의 목소리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떤 천사도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에게 나의 백성들아 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천사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백성들아”라고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음성은 성부하나님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성부하나님께서 자신을 호칭하시면서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 어색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으로 계심을 알고 있고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 라고 하는 요한1서5장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7)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


이 세분이 하나라고 하는 것은 결코 등급이 다르다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서열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은 한 분 하나님이라고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서열이 나누어지게 되면 그것은 한 분 하나님이 아니고 三神(삼신)이 되는 것입니다. 성부하나님이 가장 높은 직위요, 그 다음은 예수그리스도, 그 다음은 성령하나님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언급하면서 동등됨을 취할 것을 강도질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셨던 것이며, 성령님은 사도요한을 통해 그것을 확증해 주셨던 것입니다. 


또 이 “나의 백성들아”라고 하는 음성을 어린 양이신 예수그리스도로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백성들아 라고 하실 수 있는 성부하나님과 똑같은 권한과 권리를 가지고 계신 것을 보여주는 것임에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부하나님께서는 계시록19장에서 어린 양인 예수그리스도를 전능하신(omnipotent) 하나님이시라고 호칭하고 계십니다.


(6) 또 내가 들으니, 큰 무리의 음성 같고 많은 물 소리 같으며, 굉장한 천둥 소리 같은데 말하기를 "할렐루야,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도다.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분께 존귀를 돌리세. 이는 어린 양의 혼인식이 다가왔고 그의 아내도 자신을 예비하였음이라.


(6) And I heard as it were the voice of a great multitude, and as the voice of many waters, and as the voice of mighty thunderings, saying, Alleluia: for the Lord God omnipotent reigneth.

(7) Let us be glad and rejoice, and give honour to him: for the marriage of the Lamb is come, and his wife hath made herself ready.


이 큰 무리의 음성같고 많은 물소리같으며 굉장한 천둥소리같다는 것이 성부하나님의 목소리임은 계시록19장강해에서 증명한 바 있으니 여기서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제 이것으로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은 성부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에서 보혈를 흘리셔야만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따라서 그 분의 말씀한마디로 모든 죄인을 의인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바 그 모든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것일 겁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임했던 죄악이 깨끗함을 입어 그 피를 믿는 자들은 이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입니다. 아니라는 거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은 극히 일부의 진리임을 피력하려는 것이며, 단지 그것만 가지고서는 굳이 창조주께서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말씀 한마디면 모든 사람의 죄를 깨끗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또 지금처럼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 눈에 그 분의 능력을 보이셨다면 죄악의 그림자들은 발붙일 곳이 없었을 것이며 현재도 없으며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분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 분의 임재 한방이면 모든 것이 잠잠해지고 평온해 질 것을 어찌하여 이토록 어렵게 그 분을 계시하시는 것일까요?


바로 그런 이유로 그 분의 창조목적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 그 분은 전능하신 분이라는 겁니다. 조금 다른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논리를 좋아하는 어떤 외국의 신학자들이나 국내의 학자들은 하나님께서도 못하시는 것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 이유는 그 분이 가지고 계신 또 다른 품성때문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지 않으시는 것과 못하시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 유치한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이미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또 그들의 주장가운데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全知(전지)하시다면 하나님 자신이 미리 할 행동을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 후에 그것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니 결국 全能(전능)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고 혹시 바뀐다면 전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전지와 전능은 서로 모순이 일어나서 전지전능하시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의 자만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논리를 주시고 그 논리로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신 분이 바로 그 분이십니다. 전지하시다는 것은 그 분의 능력안에서의 전지를 말씀하는 것이요, 또 전능은 그 분의 능력안에서의 전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께서 가지고 계신 능력은 어느 정도나 되실까요.  그 분의 능력은 어떠한 사람들의 상상도 超越(초월)하고 또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廣大(광대) 無限(무한)하십니다. 그 능력의 끝이 어디까지 일지는 사람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는 얘깁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 분의 말씀으로 단 하루만에 탄생한 이 대우주는 末世(말세)에 달했다고 하는 지금 이 시점까지도 그 끝을 확인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과 논리가 아무리 뛰어나 봐야 좌정관천(坐井觀天), 즉 우물 안 개구리라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피조물 된 신분으로써 감히 그 분의 전지와 전능성을 논하기 전에 자신의 피조물 된 위치부터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그 분은 전능하십니다. 그런데 그 끝을 알 수 없는 전능하신 분이 왜 기필코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느냐는 겁니다. 단지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서라고 하는 것이 그 분의 위대한 능력앞에 얼마나 작은 이유가 되는 것인지 이제 알게 되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분의 전능함의 능력은 인간의 죄를 말씀 한마디로도 없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말은 아주 중요한 얘기이니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분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불순종하는 것이고, 위 아래 몰라보고 날뛰는 교만함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분은 악을 미워하시고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그리므로 그 분 안에는 악이 없으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가져왔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죄를 범하였으며 사탄은 그 교만함으로 인해 하나님자리에 앉으려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정하신 악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 바로 악이며 죄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불순종의 반대인 순종을 직접 보여 주시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즉 順從(순종)과 같은 線上(선상)에 있는 善(선)이라는 것이 어떤 것임을 몸소 그리고 스스로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는 것이 죄이고, 또 하라고 하시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죄임을 보았을 때, 결국 불순종하는 것이 죄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에스겔9장에서 보듯 하나님께서 늙은이나 젊은이나 처녀나 어린 아이들이나 여자까지 모두 죽여 없애라고 했는데 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며, 그들을 불쌍히 보지 말라고 했는데 불쌍히 보는 것도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그들은 하나님앞에 가증한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린 것이다” 라고 하는데, 일견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합리화시켜 주기 위한 하나님을 위한 대변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천만에” 입니다. 그곳에 있던 어린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혹시 또 그 아이들이 죄를 지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죽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한마디로 funny한 얘깁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죄를 짓고 살며 고로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이유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을 그 분께서는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며 곧 그것을 악으로 규정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순종이 어떠한 것임을 보여주시기 위해 창세 이전에 이미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정하셨고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이 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14) 순종하는 자녀들로서, 이전에 무지하던 때의 정욕에 너희 자신을 맞추지 말고

(15) 오히려 너희를 부르신 그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하라.

(16) 이는 기록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시기 때문이니라.

....

(18) 이는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너희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이어받은 너희의 허망한 행실에서 은이나 금같은 썩어질 것들로 구속된 것이 아니라

(19)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니라.

(20) 그는 실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에 미리 정해지셨으나 너희를 위하여 이 마지막 때에 나타나셨으며

(21) 너희는 그를 통하여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고 그에게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니 이는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 안에 있게 하려는 것이라.-베드로전서1장


그리고 결말을 짓기 위해 계시록22장을 보겠습니다.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며, 처음과 마지막이라.-계시록22장


그 분께서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나중이라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을 알고 계시다라는 얘깁니다. 바로 그 분안의 전지와 전능으로 이런 일들을 계획하셨으며 그 분의 백성들을 하나님이신 그 분, 곧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게 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不順從(불순종)이라는 惡(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분이시니까요. 그러므로 그 분께서 순종하심을 몸소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 순종에 관한 것은 성경에 넘쳐나므로 지면관계상 다음에 인용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상을 살펴보았을 때 결론은 이렇게 내려집니다. 

그 분의 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죄가 사해졌다고 하는 것은 옳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자신을 알리려고 하신 계획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더 큰 목적은 그 분께 순종해야 함을 가르쳐주려고 하셨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 입문할 때 배우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성부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초등학문은 이제 알게 모르게 삼신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며, 그 보혈의 정확한 의미는 그 분 스스로 순종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해야 그 뜻하신 바가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 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서 자그마치 40년, 50년, 60년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초등학문에 머물러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지식은 성경을 어느 정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종교적인 지식에 불과합니다. 이제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 나가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라며 점점 더 깊이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해 나가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