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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하나님의 천지 창조 목적에 대한 고찰(考察)

by 디클레어 2011. 10. 26.


하나님의 천지 창조 목적에 대한 고찰(考察)





태초에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 안에는 사랑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을 만드셨고 그들에게 사랑을 나눠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이 너무 커서 더욱 많이 그 사랑을 나눠주고 싶었던 그 분은 자신이 가진 그 사랑을 또 다른 피조물에게 나눠주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자신의 사랑을 나눠줄 사람들이 부유한 집의 아이들처럼 어려움도 모르고 버릇도 없으며 가난함도 모르고 아쉬움도 모르며 선도 모르고 악도 모르며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윗사람 공경할 줄도 모르는 망나니처럼 되는 것은 원하지 않으셨고 그 분께서 가진 뜻에 합당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자신의 백성들을 연단시키고 단련시키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그들을 연단시킬 물질적인 세상을 만들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지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적인 공간보다 먼저 지구를 만드셨습니다. 그 후에 궁창과 별들을 포함한 대우주를 만드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물질로 만들어져 있는 이 우주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생겨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물질에서 난 분이 아니시고 물질이 아닌 곳에서 나셔서 물질적인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에서 말하는 우주의 개념과는 정확히 반대임을 알아야 하며, 성도라면 이 개념을 정확히 분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외계인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UFO는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사랑을 나눠줄 대상인 남자를 창조하시고 그와 벗할 여자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감정들을 넣어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기쁨이나 슬픔, 화냄, 즐거움, 동질감, 이질감, 애착심, 열등감, 자부심, 자만, 반성, 책임감, 교만, 기대감, 증오, 명예욕, 욕심, 무시, 우애, 사랑, 애증, 분노, 멋쩍음, 무시당함, 수치, 우울함, 창피함, 황당함, 부끄러움, 안타까움, 자괴감, 성취감, 실패, 성공, 자랑, 과시욕, 겸손, 이해심, 동경심, 동정심, 소유욕, 자애, 아첨, 부탁, 배려심, 부러움, 질투, 아쉬움 등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런 감정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 그 분께서 스스로 人子(인자)라고 하신 것은 사람들과 똑같이 이런 감정들을 가지고 계시다는 말씀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 분께서 가지고 계셨던 모든 감정들을 인간에게도 담아 넣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만드시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께서는 동물들에게도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 본능이 있음을 보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성질들도 모두 그 분께서 그 안에 담아두지 않으셨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저절로 그런 본능들이 동물들안에서 自生(자생)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이었었으며 진화론에 중독되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난의 글을 받아 들이셨다면 이제 벗어 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를 두시고 그 동산 중앙에 선악를 맺게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규칙을 하나 그들에게 두셨습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그들은 고난이나 어려움을 당해 보지 않았기때문에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는 바른 생각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이것이 바로 죄가 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어도 괜찮다” 라고 하셨다면 그건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교훈으로 삼아 후대의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려고 이 모든 일들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곧 죄가 되며, 그 계명을 어기는 자들은 영원한 멸망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죄라고 규정하셨으니 그 죄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 된다는 겁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罪(죄)의 規定(규정)이라는 말을 놔두고 굳이 만드셨다고 하는 것은 그 말이 더 하나님의 絶對性(절대성)을 드러내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만드셨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신다면 규정하셨다, 라고 생각하셔도 큰 문제는 없기는 합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알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입니다. 이사야45장입니다.


(7) 나는 빛도 조성하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악도 창조하나니 나 주는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

(7) I form the light, and create darkness: I make peace, and create evil: I the LORD do all these [things].


하나님께서는 평안만을 만드실 수도 있고 또 전쟁만을 사람들에게 허락하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설령 그 분께서 이 세상 가운데 삶의 고통과 어려움, 그리고 피눈물나는 전쟁과 기아와 고통스런 역병들을 내리셨다고 해도 그 분을 정죄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말은 그 분의 절대성을 설명하고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백성들을 은처럼 정련시키고 금처럼 단련시키기만을 원하셨으므로 택하신 백성들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시련은 허락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지막목적은 그 분의 사랑을, 승리한 주의 백성들에게 마구잡이로 퍼부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생각으로 그 분을 판단하고 정죄하려 드는 것은 조례나 규칙 따위가, 법중에서는 최고법이라고 할 수 있는 憲法(헌법)에 대항하는 것과 같은 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最終(최종) 權威(권위)가 되십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도 또 사도바울도 너희가 아직 연약하여 받지 못하여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말할 것들이 많이 있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은 감당할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16장


(11) 멜키세덱에 관하여서는 우리가 할 말이 많아도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렵도다.

(12) 그 때로 보면 너희가 마땅히 선생들이 되었어야 할 터인데 이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원리들이 무엇인지를 누군가가 너희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니, 젖이 필요한 사람들이지 단단한 음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되지 못하는도다.

....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사람들의 것이니, 그들은 그 말씀을 사용함으로 감각들을 단련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들이라. -히브리서5장


미리 말씀드리는데 저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적도 없고 또 임재를 느낀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의 선생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마도 영적인 방법으로 가르쳐 주셨다고 생각하는 이런 가르침들을 여러분과 거리낌없이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제위께서 받아 들이시든 받지 못하시든 간에 말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 라는 식이죠. 그러므로 이제 한 가지 더 묵상해 보고 이번 주제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계심을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앞에서 일부러 보여 주셨습니다.


(24)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들을 용서하는 권세를 가진 것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신 후 (그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네 집으로 가라."고 하시더라. -누가복음5장


또 그 분은 그토록 많은 죄를 짓고 십자가처형을 당할 만큼의 극한 죄인도 말씀한마디로 그의 죄를 없이 하시고 낙원으로 초대 하셨습니다.


(42) 예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하니

(4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시니라. -누가복음23장


그 분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 또 그 말씀 한마디로 사람들의 죄를 없이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그 분의 말씀 한마디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성경에 나와 있는 답은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나 선택한 자들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의 말씀 한마디면 죄를 없이 하시고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으시다, 라고 하는게 더 그 분의 속성에 합당합니다. 그러니 단지 그것만을 위해 십자가의 치욕을 감당하셨다라고 하는 것은 전능하시다고 하셨던 그 분의 능력을 그 분 스스로 감소시키고 축소시키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또 말 한마디로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없으시다면 전능한 하나님이시라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자신을 지칭하신 그 명칭이 무색해져 버리게 됩니다. 여기서 어떤 외국 신학자들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스스로의 또 다른 정하신 품성 때문에 못하시는 것도 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는 커녕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께서는 징책하기로 마음에 정하셨다 하시더라도 그 마음의 고뇌와 그 고통을 당하는 백성들의 아픔때문에 스스로 돌이키시는 일도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 분은 完璧(완벽)한 神(신)이기도 하시며 더불어 완벽한 人子(인자)이기도 하시다는 뜻입니다.


그 분께서는 오해를 받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사랑하는 백성들이 자신들을 장난감취급하시는 것 아닙니까? 라고 생각할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자신을 희생양으로, 그저 장난이 아니며 나는 너희를 그런 취급하지 않는다, 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신 겁니다. 내가 비록 너희를 시험하고 단련시키기는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그냥 稚氣(치기)로 시작한 일이 아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셨다 라는 얘깁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 분은 창세이전에 십자가를 기꺼이 지기로 작정하셨고 그 치욕을 감당하심으로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인간을 위해 그 모욕을 감당하셨으니 이제 그 분께서 하시고자 하셨으며 이루고자 하셨던 일은 더욱 當爲性(당위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가랴13장입니다. 이 절은 천년왕국이 끝날 무렵에 일어나는 곡과 마곡전쟁때의 상황입니다.


(9)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로 통과하게 해서 은을 정련하듯이 그들을 정련할 것이며, 금을 단련하는 것처럼 그들을 단련하리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그들을 들으리라.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할 것이라.


보시는 바와 같이 그 분께서는 천년왕국이 끝날 무렵에조차도 그 분께서 택한 백성들을 정련하고 단련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첫째 부활에 참여한 일곱교회의 성도들은 그런 단련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철저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양같은 자들이며 이미 승리한 주의 백성들이니까요. 그렇게 택한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어떻게 창조주께서 한낱 피조물인 사람에게 친구라는 호칭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까? 더구나 너희는 신 같은 존재들이라고 까지 하십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아주 말문이 막히는 기가 막힌 말씀을 또 하셨습니다.


(25) 제자가 자기의 선생같이 되고 종이 그 주인같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니라. 그들이 그 집 주인을 비엘세불이라 불렀다면 그 집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마태복음10장.


여기 언급하신 제자나 종은 주의 백성들을 가리킴이며, 선생이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되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백성들이 선생이고 주인처럼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 아직도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저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할테니까요. 그러니 이 모든 것들에서 그 분의 크신 사랑을 인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분께서 그 분의 백성을 연단시키고자 하시는데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그 분께 순종하지 않는 백성이므로 결국 그 분의 십자가의 피흘림을 헛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됩니다. 또 그런 자라면 하나님께서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은 그 분의 택한 백성들을 그리스도의 품성에 이르게 하고 또 자라도록 하여 영원한 안식으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풍파나 핍박, 어려움이 오더라도 그 분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