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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해석의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는 기준, 여덟 번째.

by 디클레어 2011. 12. 22.


계시록해석의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는 기준, 여덟 번째.



유프라테스 전쟁



계시록9장

....

(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에 있는 금제단의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는데

(14) 나팔을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프라테스에 결박하여 놓은 네 천사를 풀어 주라."고 하니

(15) 그 네 천사가 풀려나더라. 그들은 사람들 삼분의 일을 죽이려고 그 연, 월, 일, 시를 위하여 예비해 둔 자들이라.

(16) 기병대의 수는 이억이니 내가 그들의 숫자를 들었노라.


계시록을 해석한다는 많은 학자들이나 해석가들은 계시록9장 여섯 번째 나팔이 불리고 나서 일어나는 이 유프라테스전쟁을 전세계인구의 삼분의 일이 죽는 전쟁이라고 대부분 해석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9장이나 요한계시록 강해노트 네 번째와 아홉 번째에서 이미 언급을 한 바 있지만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하여 그 부분만 따로 드러내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일단의 성경학자들이 이 유프라테스전쟁과 그 때 죽는다는 삼분의 일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혹자는 이 유프라테스전쟁을 제 3차 세계대전으로 이해하며 전 인류의 삼분의 일이 죽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2) 혹자는 이 유프라테스전쟁에 동원되는 이억의 군대가운데 그 중 삼분의 일이 죽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3) 혹자는 이 전쟁이 아마겟돈 전쟁으로써 중국의 이억군사가 현대무기로 무장하여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4) 혹자는 유프라테스지역 근처에 있는 나라들의 삼분의 일이 죽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5) 혹자는 이억의 말 탄 마귀들이 네 천사의 명을 받아 단지 두 번째 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6) 혹자는 이억의 숫자만큼 상징적인 군대의 거대한 무리를 통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일어날 일반적인 전쟁을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7) 혹자는 유브라데지역에서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나라들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징벌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8) 혹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귀의 무리들이 침공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주장합니다.

9) 혹자는 단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거짓교리)로 인하여 사람들이 죽는다고 주장합니다.


먼저 이 유프라테스전쟁이 세계 제3차대전이고 핵전쟁이나 그 이상 가혹한 전쟁이 일어나 전 인류의 삼분의 일이 죽는다고 하는 해석가들의 변을 보면 그들의 해석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만일에 이 유브라테스전쟁이 세계 제3차대전이어야 한다면 그보다 앞선 1차와 2차 세계대전은 왜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것이냐, 는 것에 대해 설명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혹시라도 그들의 대답이 세계 제3차대전은 핵전쟁이 될 것이므로 앞선 전쟁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그것은 그야말로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혹시라도 3차 세계대전이 핵억지력을 발휘해 핵을 쓰지 않고 끝나게 된다면 또 다시 세계 제4차대전을 기대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해석이 되므로 하나님의 경륜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물질적인 인간들의 전쟁을 복을 허락하려고 주신 이 계시록에 기록해 놓으실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주장들 중에 중국의 이억의 군사가 일으키는 전쟁이라고 하거나, 유브라데지역에 있는 나라들, 그리고 민족적인 이스라엘에만 일어난다고 하는 해석들은 주님 말씀중에 이 환란은 세상 모든 성도들이 당하는 고통이 될 것이라는 구절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기에 모두 옳은 해석이 아님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후삼년반, 즉 마흔 두달의 적그리스도의 철권통치는 세계 방방곡곡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이스라엘에만 어려움이 있을 거라거나 국소적인 지역이다, 라고 하는 해석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열방에서 성도들의 고통이 있을 것이라는 증거는 계시록13장입니다.


(7) 그가 성도들과 싸워 그들을 이기는 권세를 받았으며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더라.


보시다시피 적그리스도가 받는 권세는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는 것이기에 이 환란은 민족적인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임하는 환란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환란을 이스라엘에만 임한다고 하는 해석들이나 중동국가쪽에만 일어난다고 하는 해석들은 다른 말씀들은 더 찾아볼 필요도 없이 이 단 한 구절에 의해서도 그 근거를 잃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 몇 가지 해석들은 고려해 볼 만한 근거가 있기에 전통적인 해석을 본 이후에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위에 적어 놓은 것들보다 기록하지 않은 주장들이 훨씬 많은데, 이렇듯 서로의 주장들과 해석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구절이 바로 이 유프라테스전쟁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전통적이기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수긍이 갈만하다고 인정받고 있는 주석을 보겠습니다.


9:14 '유브라데 강'은 하나님의 언약의 땅인 가나안의 동쪽 경계선이었다(창15:18). 유브라데 경계 건너편에 앗시리아등 이방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구약성경에서 이 강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의 대적들로 상징되었다(사 8:7; 렘 46:10). 그래서 이방들이 침략하는 것이 유브라데강이 흘러넘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사8:7).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재앙이 선포되기까지 유브라데에 결박되어 있던 '네 천사'가 풀린다는 것은 마치 유브라데강이 넘치는 것처럼 심판의 재앙이 임함을 암시한다(Ladd, Mounce, Kraft, Morris). 한편 '네 천사'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7:1-3에 나오는 천사들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Wordsworth).

(2) 혹자는 악한천사라고 주장한다(Lange).


계시록9:15절의 '그 년 월 일 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호란 카이 헤메란카이 메나 카이 에니아우톤' 은 시간을 나타내는 네 개의 단어가 하나의 관사 '텐'에 연결되어 하나님께서 정하신 특별한 때를 시사한다. 이것은 재앙을 수행할 악한 천사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으며, 모든 종말적 사건들의 전개는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Ladd, Mounce). 한편 '삼분의 일'이란 표현은 여섯 번째 나팔 재앙이 처음 네 가지 나팔 재앙들과 연결되어 일어나는 재앙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비록 이 재앙에서 인류의 삼분의 일이 살상되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아 있게 됨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 재앙은 하나님의 의의 심판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Kraft, Ladd).


9:16 마병대의 수 '이만만'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여섯째 나팔의 재앙 때 실제로 2억의 군대가 동원되어 중동 지역에서 전쟁일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Walvoord).

(2) 혹자는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인간을 멸상시키기로 목적하는 사단의 세력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5:11;단 7;10, Plummer).


실제로 2억의 군대가 동원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우며 구약성경에서 '천천'이나 '만만'은 문자적인 특정한 수를 의미하기보다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수를 가리키기 때문이다(시 68:17, Mounce, Ladd).


이 주석을 포함해서 앞선 해석들 중 수긍이 갈만한 주장들을 함께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유프라테스강은 페르시아 만으로 흐르는 동양 최대의 강입니다. 그 위치는 이스라엘북쪽에 놓여 있어서 모두 알고 계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이곳에서 발현하여 이스라엘을 침략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프라테스(개역-유브라데)전쟁은 위에서 물밀듯이 밀고 내려오는 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증명은 열왕기하23장의 역사적배경과 예레미야1장입니다.


(29) 요시야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하여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개역성경


23:29  애굽 왕 바로느고 - 역사상 '바로느고'(Pharaoh Neco)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니느웨(Nineveh)가 멸망한 후3년째 되던 해인 B.C. 609년에 애굽의 왕이 되었다. 왕이 된 그는 당시 앗수르를 장악하고 있던 바벨론왕 나보폴라살(Nabopolassar)과 격전을 벌였으나 승부를 내지 못하고 유다 땅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B.C. 605년 경에 다시 나보폴라살을 공격했는데 이때에 나보폴라살의 아들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이 갈그미스 전쟁에서(대하 35 : 20) 애굽을 격파했다. 이것으로 애굽의 세력 확장은 중단되었다.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올라가므로 - 느고가 왕위에 오른 때(B.C. 609)는 이미 앗수르가 바벨론의 수중에 떨어진 때(B.C. 610)이다. 따라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러 유브라데 강가로 올라갔다는 말은 역사적 정황과 맞지 않는다. 따라서 본절은 느고가 바벨론왕을 치러 갔거나 아니면 바벨론과 싸우는 앗수르 잔류군을 돕기 위해 갔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요시야 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 평행 구절인 대하 35 : 20- 27은 요시야와 애굽왕 바로느고와의 전투 기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 전투의 원인 :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앗수르가 멸망하고(B.C. 610년) 바벨론 제국이 세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옛 앗수르 영토에는 아직도 앗수르 잔류군이 남아 있었고 바벨론도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때야 말로 애굽으로서는 팔레스틴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고 옛 앗수르의 영토를 회복하는 데 더 할 나위 없는 호기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요시야는 팔레스틴에 대한 애굽의 지배권이 부활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함으로써 '므깃도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2 경과 : 애굽 군대는 가사와 아스글론을 점령하고 점차 북상(北上)하여 므깃도에 이르렀다. 요시야의 군대도 갈멜 산맥을 통과하여 므깃도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에서 양군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하 35 : 21)을 거부하고 전쟁을 수행하던 요시야는 전사하고 유다군은 패퇴하였다. 이에 느고의 군대는 계속 북진하여 하란 공성(攻成)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애굽은 팔레스틴과 수리아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여 수년간 통치하였다.


3 의의 : 이 전쟁은 유다의 멸망에 대한 전조(前兆)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의 패배로 인해 유다는 앗수르대신 애굽의 속박을 받아 사실상 국권(國權)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다 왕 여호아하스는 바로느고에 의해 리블라(Riblah)로 호출되어 폐위당했으며, 엘리아김 같은 왕은 애굽 왕에게 충성을 표하기 위해 여호야김으로 개명(改名)을 해야만 했다(32-35절). 그러나 유다를 지속적으로 지배하던 바로느고도 결국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 군대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해 애굽으로 퇴각함으로써(24 : 7 ; 렘 46 : 2)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였다. 므깃도 - 이곳은 오늘날의 '텔 엘 뭇셀린'(Tell el Mutsellin)에 해당되는 곳으로 이스르엘 평야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의 성읍이다(슥 12 : 11). 이곳은 애굽에서 메소포타미아로 통하는 주요 간선 도로상에 위치하였는바. 그런데 요시야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이렇게 멀리까지 올라온 것은 전투 중 행여 유다 성읍에 어떠한 위험이라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Rawlinson).


그리고 이와 함께 북쪽에서부터 재앙이 임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신 예레미야1장입니다.


(13) 또 주의 말씀이 내게 두 번째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기에, 내가 말씀드리기를 "내가 끓는 솥을 보나이다. 그 표면이 북쪽을 향해 있나이다." 하였더니

(14)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니라. 북쪽으로부터 재앙이 땅의 모든 거민들 위에 임하리라.


이처럼 북쪽은 위쪽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그 위쪽으로부터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렇다면 유프라테스강은 바빌론의 근거지라고 볼 수 있고 이스라엘위 북쪽에 있는 거대한 강이므로 이 유프라테스가 가지는 계시록에서의 의미는 온 세상에 닥치는 환란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상징이므로 문자적인 해석은 지양해야 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모든 기록들을 바탕으로 해석해야 할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주신 비유이고 신비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열왕기나 역대기의 유브라테스강이 가지고 있는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 그것이 가진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해석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이 해석을 증명해 줄 이사야8장입니다.


(6)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라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7)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하셨느니라 -개역성경


8:7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 눈에 보이는 것 만으로 위로를 삼는 백성들에게 앗수르군대의 힘과 위용이야말로 거세게 넘실대는 유브라데 강물처럼 마음 든든한 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범람하는 그 강물이 마침내 수리아와 사마리아를 넘어 유다에까지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을 의지하는 이는 다 이와 같을 것이다.-주석.


이 말씀도 앗시리아의 유브라테스강이 흘러넘치고 그것이 유다에게 곧 재앙이 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46장도 보겠습니다.


(10) 그날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원수 갚는 보수일이라 칼이 배부르게 삼키며 그들의 피를 가득히 마시리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북편 유브라데 하숫가에서 희생을 내실 것임이로다


46:10 이는 애굽이 막강한 병력과 전술에도 불구하고 바벨론과의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하게 될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즉 애굽 군대는 승리를 의심치 않을 만큼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 날을 교만한 애굽 군대를 궤멸시키는 복수의 날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이 복수는 바로느고가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한 경건한 왕인 유다의 요시야 왕을 므깃도에서 죽인데(왕하23:29) 대한 보복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애굽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다. -주석


이와같이 유프라테스강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주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덮치는 재앙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렇다면 결국 말세에 유프라테스강이 가지는 의미라면 온 세상교회에 몰아 닥치는 적그리스도의 대환란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을 문자적으로만 보는 세대주의자들이나 거기에 물들은 일부 해석가들은 이 큰 강 유프라테스의 의미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계시록6장에 나오는 땅의 사분의 일이 죽는다는 것이나 계시록9장의 삼분의 일이 죽는다는 이 구절을 보고 모두 합쳐 전세계 인류의 절반이 죽는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세계 인류의 반이 죽어야 한다면, 또 그런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머지 사람들도 결코 정상적으로 살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 세계인구가 70억이라고 하는데 그 중 35억이 죽어야 한다면 그 전쟁을 사람들이 모를리가 없고,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그 때나 되어서야 계시록이 풀린다는 얘기도 되는데, 복을 주시마고 기록한 이 계시록이 그 때 풀린다면 복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이 허공을 때리는 것이 되며, 또 만일 그렇게 되면 도둑같이 오신다는 주님의 재림때가 너무 눈에 드러나 버리기에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들과 비교했을 때 타당하지 않은 결론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유프라테스전쟁이 핵전쟁이라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고통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도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 되기에 사탄과의 영적전쟁을 치루어야 한다는 말씀들과도 상호 충돌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그런 해석은 옳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전쟁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이후에도 계속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세상적인 전쟁은 말세에 성도에게 복을 주시마고 내려주신 이 계시록에 기록되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이 유프라테스전쟁은 상징임을 알아야 하며, 그 의미는 결국 온세상교회에 닥칠 환란을 의미하고 있음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프라테스에서 놓이는 네명의 천사에 대해서는 이미 올려 드렸었지만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허락된다면 그 기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께서는 계시록9장의 유프라테스강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많은 해석가들의 주장과 저의 주장까지 들으셨습니다. 어떤 해석이 옳을 것인지는 이제 여러분 스스로도 시간을 두고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