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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메시아닉 쥬에 대하여

by 디클레어 2012. 3. 8.


메시아닉 쥬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그 편견을 깨기 위해 이 글을 작성합니다. 저는 일찍이 계시록2장과 3장의 일곱 교회가 계시록7장과 21장의 열 두 이스라엘지파로 상징화 되어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민족적인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있을 거라고 막연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初期(초기)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진 것은 사실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그에 대한 反證(반증)이 필요함을 느끼고 이제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땅에 모여 있는 유대인들을 모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일까요? 혹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세상 통치자에게 속고 계신 겁니다. 이것은 사실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그의 힘과 그 정체를 알지 못하면 깨닫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받아들이는 분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하나님께서 혈통적인 이스라엘을 모으신다는 것은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드리려고 하는 것이니 이번 기회에 분별해 보는 시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증명을 위해 먼저 예레미야30장입니다.


(1) 말씀이 주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2)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하노라.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들을 책에 기록하라.


예레미야서는 주전600년에서 580년 사이에 쓰여 진 말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 상황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 하나님말씀을 왕에게 전달한 예레미야의 전기까지 함께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왕에게 전하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했으나, 그들 중에 거짓선지자인 하나냐의 방해로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게 되고 결국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어 비참한 상태로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3) 보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사로잡힌 자들을 다시 데려올 날들이 오리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그들로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기 이 구절의 이스라엘과 유다의 사로잡힌 자들에 대한 말씀이 바로 민족적인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인가에 대한 분별이 서지 않아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럼 과연 그들(특히 세대주의자들을 포함해서)의 주장대로 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사로잡힌 자들이라고 칭한 이 사람들이 그들 혈통적인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오해만 풀 수 있다면 그들이 현재 이스라엘민족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 후에 말씀들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대한 것을 계속 살펴보며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 ○ 주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관하여 이르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5)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우리가 떨림과 두려움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화평의 목소리는 아니었느니라.

(6) 너희는 이제 물어 보라, 아이를 낳으려는 남자가 있는지 알아보라. 내가 보니 마치 진통하는 여인처럼 남자들이 각기 자기 손으로 허리를 짚고 모든 얼굴들이 창백하게 변하는 것은 어쩐 일이냐?


여기까지 보면 당시 이스라엘민족이 많은 고통을 겪는 것에 대한 묘사로 볼 수도 있고, 바빌론으로 포로 되어 잡혀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술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7) 슬프도다! 그 날이 크므로 어떤 때도 그와 같지 않나니, 그 날은 야곱의 고난의 때라. 그러나 그는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라.

(8)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의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리니, 타국인이 다시는 너로 하여금 그들을 섬기게 하지 아니할 것이며

(9) 오히려 그들로 주 그들의 하나님과 내가 그들에게 일으킨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게 하리라.


여기서 9절을 살펴보면 그들의 왕 다윗이라고 하는 이 왕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 만왕의 왕께서는 초림과 재림 두 번에 걸쳐 이 땅에 오실 것임도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다윗 왕이 初臨(초림)하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再臨(재림)하시는 때에 관련해서 말씀하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8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절을 보면 타국인이 다시는 너로 하여금 그들을 섬기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으로 보아, 이때는 초림 때가 아니고 재림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예수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는 때에 이스라엘은 로마를 섬기고 있었고 예수그리스도부활 승천이후에도 계속 그 나라의 지배하에 있었으므로 이 타국인을 섬기려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이때는 재림하신 이후에 벌어질 일임을 절로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천년 왕국 때에 이루어 질 일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7절의 야곱의 고난의 때라는 것은 어느 때를 말씀함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4장입니다.


(21) 이는 그 때에 대환란이 있으리니, 그와 같은 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으며, 또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


이 마태복음24장은 다니엘과 계시록에 관련되어 있는 적그리스도의 한이레에 관련된 장임을 알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세대주의자들이나 거기에 물든 사람들은 이 마태복음을 유대인들만을 위한 복음서라고 주장을 하고 있고, 특히나 이 24장은 이스라엘에 있는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16절에 있는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하라.” 에 두고 있기도 한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계시록해석에서 이 유대인들은 時期(시기)를 통해 분석을 해 보았을 때 이스라엘 땅에 있는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고, 계시록3장의 빌라델비아교회이며 계시록7장과 14장에 등장하는 14만4천이고 계시록12장14절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광야로 도망하는 여인, 즉 영적인 유대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해 드린 바 있습니다. 시작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혈통적인 이스라엘민족이었을지 모르지만 예수그리스도 이후에는 민족적이고 혈통적인 이스라엘이 아닌 상징적인 이스라엘 즉 교회로 이어지는 영적인 혈통으로 바뀌어 졌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계시록의 해석은 물 건너 가버리게 되니 아무쪼록 올바로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마태복음 24장을 유대인들만을 위해 기록한 것이라고 하는 그들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10) ○ 그러므로, 오 내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 말라. 주가 말하노라. 오,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보라, 내가 너를 먼 곳으로부터 구원하고, 네 씨를 그들의 사로잡힌 땅으로부터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편히 쉬고 평안할 것이요, 아무도 그를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그리고 이제 이 10절을 보십시오. 앞선 해석을 보았으면서도 아직 이 야곱과 이스라엘이 민족적인 이스라엘로 보이시는 분들은 조금 더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돌아와서 편히 쉬고 평안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편히 쉬고 평안할 때가 분명 지금 현재는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땅은 전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이스라엘과 야곱은 절대적으로 주님오신 이후 천년왕국 때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에 대한 것은 계시록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이때에 말씀하신 이스라엘과 야곱도 계시록7장의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 관련된 것으로 봐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해야만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나중이신 그 분의 경륜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다시 그 이후의 말씀들을 보면서 이 해석이 옳은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1) 주가 말하노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요 내가 너를 흩어 버렸던 모든 민족들의 결말은 있게 할지라도, 내가 너의 결말은 있게 하지 않겠노라. 그러나 내가 너를 공의로 바로잡으리니, 처벌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지는 아니하리라.

(12)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상함은 치유될 수 없으며 네 상처는 심하도다.

(13) 네 소송을 변호할 자가 아무도 없나니, 너를 싸매 줄 자도 없을 것이요 너를 치유해 줄 약도 없으리라.

(14) 너의 사랑하는 자들 모두가 너를 잊어버리고 너를 찾지 아니하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음으로 인하여 네 죄들이 증가하였기에, 내가 원수의 상처로, 잔인한 자의 징계로 너를 상하게 하였음이라.

(15) 어찌하여 너는 네 고통으로 인하여 부르짖느냐? 네 슬픔은 네 죄악이 많음으로 인하여 치유될 수 없나니, 이는 네 죄들이 증가했기에 내가 이 일들을 네게 행하였음이라.


이 11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들은 민족적인 이스라엘에 하신 말씀이기도 하면서 말세에 주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에 하시는 말씀이기도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11절에서 말씀하시는 내가 너를 공의로 바로 잡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숭배했던 이스라엘민족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또 말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하지 못하고 사탄에 속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구절들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에도 부합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분의 백성인 성도들을 연단시키고 단련시키셔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게 하시려는 그 분의 천지창조 목적 말입니다.


(16) 그러므로 너를 삼키는 자들 모두가 삼켜지게 될 것이요, 네 모든 대적들은 각자 사로잡혀갈 것이며, 너를 노획하는 자는 노획을 당하게 될 것이요, 너를 약탈하는 모든 자들을 내가 너에게 약탈 물로 주리라.


그리고 이제 이 16절은 마지막 때 일어날 일을 계시하신 계시록 13장10절을 충족시킵니다.


포로로 삼는 자는 그도 포로가 될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그도 칼에 죽게 될 것이라.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느니라.


이 10절 말씀과 예레미야30장16절 말씀의 흡사함을 아시면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음을 아실 것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증해 주시듯 승리한 주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축복이 이어집니다.


(17) 주가 말하노라. 내가 너에게 건강을 회복시켜 주고 내가 너를 네 상처들에서 치유시켜 주리니, 이는 그들이 너를 '쫓겨난 자'라고 부르며, 말하기를 "이것이 아무도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하였기 때문이라.


여기 시온은 예루살렘, 즉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하절들에서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18) ○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들의 사로잡힌 자들을 다시 데려와서 그의 거처에 자비를 베풀 것이요, 그 성읍은 무너진 더미 위에 세워질 것이며 그 궁은 그곳의 방식을 따라 남으리라.

(19) 감사와 즐거워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그들 가운데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그들은 적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또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그들은 하찮게 되지 아니하리라.

(20) 그들의 자녀들도 이전과 같을 것이며 그들의 회중도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니, 내가 그들을 압제하는 모든 자들을 벌하리라.

(21) 그들의 귀족들은 자기들 안에서 나올 것이요 그들의 통치자도 그들 가운데서 나오리라. 또 내가 그로 내게 가까이 오게 할 것이며 그러면 그가 내게로 다가오리라. 내게 다가오려고 그의 마음에 서약하는 자가 누구겠느냐? 주가 말하노라.

(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23) 보라, 주의 회오리바람이, 계속적인 회오리바람이 진노와 함께 나가니, 그것은 고통과 함께 악인의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이라.

(24) 그가 그것을 이루고 자기 마음의 의도를 이루고 나서야 주의 분노가 돌이켜지리라. 훗날들에 너희가 그것을 숙고하게 되리라.


위 구절들은 말씀을 상고하시면 알 수 있으므로 불필요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상 메시아닉 쥬(메시아를 믿는 민족적 유대인)의 虛想(허상)에 대한 첫 번째로 예레미야30장에 쓰여 있는 말씀을 가지고 반론을 제기해 보았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실 수 있다면 예레미야31장에 쓰여 있는 말씀들도 민족적인 이스라엘과 유다에 관련한 것이 아님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 특히 오해할 수 있는 31장9절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자면 에브라임은 나의 첫 태생이라는 말씀은 민족적인 에브라임이면서, 동시에 주님에 속한 자들로 승리한 모든 백성들, 즉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택하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라는 것이지요.

이번에는 이사야서를 몇 부분에 걸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장입니다.


(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말씀이라.

(2) 마지막 날들에 주의 전의 산이 산들의 정상에 세워질 것이요, 작은 산들 위에 높아지리니, 모든 민족들이 그 곳으로 몰려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우리가 주의 산에,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자. 그리하면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며 우리는 그의 길에서 행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의 말씀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임이라." 하리라.


이 2장은 읽어보시면 천년왕국 때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사람들이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자고 합니다. 그러므로 말세를 계시하신 계시록을 살펴보았을 때, 이 때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임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 14장입니다.


(1) 이는 주가 야곱에게 자비를 베풀고 이스라엘을 여전히 택하여 그들을 그들의 본토에 둘 것이요, 타국인들은 그들에게 연합하게 되어 야곱의 집에 붙어 있게 될 것임이라.

(2) 백성이 그들을 데리고 가서 그들의 본토로 데려올 것이요, 이스라엘 집은 주의 땅에서 그들을 종과 계집종으로 차지할 것이요, 또 그들은 자기들을 사로잡았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들을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

(3) 그 날에 주가 네가 섬기게 되었던 곳에서 네 슬픔과 네 두려움과 네 고역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리니


이때도 천년왕국 때인데 여기 기술된 야곱이 민족적인 이스라엘이 아님은 네가 섬기게 되었던 곳에서 안식을 얻게 된다는 것으로 2절 이하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토로 데려온다는 것은 천년 왕국때 모인 승리한 일곱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지 결코 민족적인 이스라엘이 그들의 땅으로 모이게 된다는 예언이 아님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65장입니다.


(9) 내가 야곱에게서 씨를 내고 유다에게서 내 산들의 상속자를 내리니, 나의 택한 자가 그것을 유업으로 받고 내 종이 거기에 거하리라.

(10) 샤론이 양떼의 우리가 되겠고 아콜 골짜기는 소떼가 눕는 자리가 되며, 나를 찾는 내 백성을 위한 자리가 되리라.


이때도 천년왕국과 관련된 글로써 야곱과 유다가 일곱 교회의 집합체임을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렇듯 계시록과 연관해서 해석해야만 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메시아닉 쥬에 대한 관심은 버리시고 이제 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똑같은 교회임을 알고 하나님의 공의를 발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면 관계상 첫 번째는 이것으로 마치고 “메시아닉 쥬에 대하여” 두 번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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