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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하나님의 눈물

by 디클레어 2012. 1. 13.


하나님의 눈물




(사16:9) ○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우는 것과 더불어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슬퍼하리라. 오 헤스본아, 엘르알레야, 내가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이는 네 여름 과일과 네 수확을 위한 외침이 떨어졌음이라.


(렘9: 1) 아, 내 머리가 물이고 내 눈이 눈물의 샘이라면 내가 내 백성의 딸의 살륙으로 인하여 밤낮 울리라!


(렘13:17)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것을 듣지 아니하면, 내 혼이 너희의 오만함으로 인하여 은밀한 곳들에서 울 것이며, 또 주의 양 무리가 사로잡혀 감으로 인하여 내 눈이 심히 울고 눈물을 흘릴 것이라.


(렘14:17) ○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 말을 고하라.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밤낮 그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내 백성의 처녀 딸이 심한 파괴와 아주 엄청난 타격으로 부서짐이라.


저는 민족적인 이스라엘이 현재로 치면 그리스도인들을 말하고 있음을 요한계시록강해에서 주장한 바 있습니다. 바로 계시록2장, 3장에서 말씀하신 일곱교회들이 계시록7장과 21장에 나오는 열 두 이스라엘지파로 상징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역사 가운데에서 한탄하시고 분노하시며 때로는 눈물로까지 호소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바로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임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개념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라 받아들이지 못하실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마는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고 사뭇 비슷하다는 것을 알면 이해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그 분께서 민족적인 이스라엘에 하셨던 말씀가운데에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이나 거짓증거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고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고 도적질하지말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도 있지만, 단순히 그것만 계시하신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들의 완악함을 꾸짖으실 때도 있고 공정한 잣대로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잘 다스리라는 말씀도 하셨으며, 너희는 속임수 한가운데에 살고 있으니 지혜롭고 현명해 지기를 권하고 또 바라기도 하시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스라엘민족들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에서 생활할 때, 엄청난 기적과 또 좋은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들이 애굽에서 생활했을 때의 만족과 비교했을 때 많이 부족했었음을 그들의 말이나 행동들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불평가운데에는 잠자리도 불편했겠지만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것들로 말미암은 불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잠깐 없어졌을 때, 애굽의 신인 금송아지를 세웠겠지요. 그 송아지를 세웠던 이유는 우리를 이끌고 있는 신은 우리에게 좋은 음식도 주지도 않고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며 마실 물도 제때 알아서 주지 않는데, 그들이 믿는 신은 대우만 해주면 항상 먹을 것을 주는것은 물론  마실 물, 금이나 은등 각종 보석들을 채워주는 것과,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또 달라고 하지 않은 것까지 스스로 알아서 해주는 위대한 신으로 비춰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민족들은 한 분 하나님뿐만이 아니고 그들이 믿는 신들도 있어서 각 족속과 방언들을 담당하고 있는 신들이 따로 따로 존재하는 줄 알았던 것이겠지요. 그러니 우상숭배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고 말입니다. 아무래도 그들 가운데는 애굽의 신이 자신들의 신이었으면 하고 내심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지배하시는 분이 한분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기독인들은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분이심은 잘 알고 있을뿐더러,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도 잘 인정합니다. 그러나 더불어 계시하신 그 분의 인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보셨다시피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는 백성들의 타락으로 인하여 눈물까지 흘리시는 분임을 증명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땅에 오셔서 자신의 하나님되심을 증명했으나 믿지 않는 자들로 인해 수난과 고초를 당하셨지요. 그 분은 자신께서 인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는데 굳이 人子(인자)라고 수없이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사람과 같은 성품을 지니고 계심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과 사람이 다른 딱 한가지는 그 분은 전능하시다는 것이고 사람은 전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 분은 人性(인성)을 가지신 것은 물론 더불어 神性(신성)도 가지고 계셔서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그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표현하시는데 있어 全能(전능)이라는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그 전능한 능력이 없으므로 사람과 하나님의 차이는 그 능력에 있는 것이고 나머지는 즉, 느끼는 감정과 인품이라고 볼 수 있는 성격, 선과 악을 분별하는 기준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증한 것을 가증히 보게 되는 눈, 뻔뻔한 것을 뻔뻔하게 느끼는 마음, 귀여운 것을 이뻐할 수 있는 마음이나 미운 것을 보기 싫어하는 심성, 슬픈 것에 눈물을 흘릴 수 있거나 웃기거나 재미있는 것을 보면 웃을 수 있는 감성등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원래 그 분안에 가지고 계셨던 것이고 그런 감정들을 사람에게 담아 주신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하나님의 신성과 인성을 分離(분리)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절대적인 주권은 인정하면서도 완전한 사람이라고 하신 그 분의 인성은 알게 모르게 부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앞선 글에서 큰 부자와 맏아들, 그리고 형제들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마도 모두들 그 부자나 맏아들의 부당함에 분노하면서도 그러나 결국은 그 부자가 하나님이시라면 옳다고, 그분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류의 주장을 할 때, 말씀보다 먼저 양심에 대고 생각을 해보라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양심은 저절로 진화되어 생겨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담아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인용하는 바울의 글에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시대에는 그들의 양심과 이성으로 그것에 맞게 살게 하셨다구요. 그 양심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어긋나는가요? 율법에는 부모를 공경하라 했는데 양심에는 부모를 학대하라고 하며,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양심에서는 도둑질 하라고 하며, 살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양심에서는 살인하라고 시키느냐는 얘깁니다. 저는 지금 일반적인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라고 주장하시는 분도 있던데 그렇습니다.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양심과 이성을 담아주셔서 결국은 그것으로 심판하실 하나님께서 앞서 말씀드렸던 그 부자 아버지나 맏아들의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심판을 하신다면 여러분들은 그런 하나님을 完全(완전)한 人性(인성)을 가진 하나님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그토록 큰 아들만 끔찍하게 편해하는 하나님께서 양심과 이성을 담아주시고, 스스로 인자라고 하신 그 하나님이냐고 생각이 되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법은 결코 사람의 양심이나 이성을 초월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의 생각은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시지만 적어도 사람에게 죄를 물으실 하나님은 인자라고 自稱(자칭)하신 그 분의 성품에 맞게 사람에게 주신 양심과 이성으로 각인에게 죄를 물으실 것이라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도 맞고 오직 그 분 아니고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 없음도 맞으며 그분이 좁은 길임도 맞고 천지간에 한 분 하나님이심도 맞습니다. 그리스도인들중에 누가 그것을 부정하겠습니까? 저의 글중에 그런 흔적이나 징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는 불못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다만 앞서 나열한 말씀들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 보시라는 말씀을 드렸고, 또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난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이미 앞선 글에 올려져 있으니 같은 말을 다시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아직도 이런 구절을 인용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질문을 받아 왔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세종대왕이나 이 순신장군등은 구원받을 수 있느냐?  일제시대때 나라를 위해 일제에 대항했던 열사들은 어떻게 되느냐? 우리 조상 중에 비록 예수를 알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생활가운데서도 가난한 많은 사람들을 돕다가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다, 어떻게 되느냐?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또 아프리카에서 굶어죽는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죽은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지옥갔느냐? 라는 질문들 말입니다. 그런 질문들에 대해 모두들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이렇게 대답하죠.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훌륭한 대답인 양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통용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답들이 듣는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을 얼마나 편협한 신이라고 생각하게 하는지 혹시 아십니까? 어쩔 수 없다구요? 왜? 그게 사실이니까요. 맞습니다. 사실입니다. 저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답은 하나님의 공의를 땅에 떨어뜨리고 앞서 말씀드린 그런 큰아들만 편애하는 부자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그런 불충분한 대답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대답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과 이성에 의해 심판받고 구원에 대한 여부가 갈릴 것이기는 하나 일부러 그들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끝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들도 本性(본성)을 거스른 흉악한 惡人(악인)이 아니라면 대부분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에 비해서 상급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분은 토기장이이시고 귀히 쓰실 그릇과 천히 쓰실 그릇을 고르실 권한을 가지신 만유의 주이시기 때문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제 정리를 하겠습니다.

신성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셔서 저는 인성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하나님의 눈물이라는 말로 제목을 삼았습니다. 이 제목의 의미는 하나님께서도 우리들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신 분이시다, 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분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양심과 이성을 넘어 심판하시는 부당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공정한 판결을 좋아하시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말씀은 그렇게 하시고 앞서 보신 부자아버지처럼 행동하신다면 그건 그 분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위선자라는 얘기가 됩니다. 바로 표리부동한 자들이나 하는 짓을 우리 하나님께서 하시겠느냐는 얘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분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분께서는 말씀과 행동이 전혀 다른 하나님이시라는 얘긴데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로써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이성과 양심이 그것을 담아주신 사람보다 못하다는게 말이 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말씀 한  구절 보겠습니다.


(6) 네 처소는 속임수 한가운데 있으며 속임수로 인하여 그들이 나를 알기를 거부하는 도다. 주가 말하노라. -예레미야9장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전파하긴 했으나, 하나님을 잘못 전하는 통에 제대로 된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 알기를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저도 그랬었으니 제가 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미 일은 저질러졌고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그저 사탄에게 속았던 우리의 미련함을 탓해야지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시대의 사명으로 삼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 비그리스도인들이 던지는 조소와 경멸을 되갚아주어야 할 때라고도 생각합니다. 바로 이렇게 말입니다.


“ 우리 하나님은 너희를 창조하셨고 또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 비꼬고 있는 너희들도 모두 구원에 이르게 하실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믿지는 않더라도 이것만은 지켜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 죄 없다 하지 않으셨으니 입조심들 하고 특히 양심에 맞게 살아라, 그렇게 하지 않은 자들은 전혀 불쌍히 여기시지 않고 불못에 던져 넣으실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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