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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환란전 휴거 (4) - 에녹, 엘리야

by 디클레어 2010. 1. 13.

환란전 휴거 (4)- 에녹, 엘리야, 롯

 

1) 주장의 요지

 에녹이 대홍수의 심판으로부터 보호되어 휴거되었다는 것, 롯이 소돔성의 심판으로부터 보호되어 대피되었다는 것,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도 환란 이전에 휴거될 것이라는 것이 휴거론자들의 주장입니다.

 

2) 에녹 ( 하녹)

창세기 5장

21 하녹이 65년을 살았을 때 므투쉘라를 낳았으며, 22 므투쉘라를 낳은 후에 하녹이 하나님과 함께 삼백년을 동행하였으며,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고, 23 하녹의 모든 날들은 365년이었더라. 24 그리고 하녹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였고(LXX 기쁘시게하였고), 그가 있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음이라. 25 므투쉘라가 187년을 살았을 때 라멬을 낳았고, 26 라멬을 낳은 후에 므투쉘라가 782년을 살며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27 므투쉘라의 모든 날들은 969년이었으며, 그리고 그가 죽었더라. 28 라멬이 182년을 살았을 때 한 아들을 낳았으며, 29 그가 그의 이름을 노아라고 불렀으니, 말하기를 “이아이가 예호와께서 저주하신 토지에서 오는 우리의 일과 우리 손들의 수고로부터 우리를 위로할 것이라.”30 라멬이 노아를 낳은 후에 595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31 라멬의 모든 날들은 777년이었으며, 그리고 그가 죽었더라. 32 노아가 500년을 살았고, 그리고 노아가 쉠과 함과 야펱을 낳았더라.

(히브리서 11:5 관련됨)

 

에녹은 하녹의 그리스어 표기로 70인역에서 나온 명칭이며 여기서는 원문대로 하녹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다빋 혹은 다비드를 다윗이라 하고, 하와를 에와라고 부르던 70인역의 발음을 지양하고자하는 뜻에서 원음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다만 워낙 많이 알려졌고 통용되고 있는 그리스어 표기 방식의 이름들은 그냥 그리스어 표기를 따르겠습니다. 예를들면 있츠하크 대신 이삭입니다.

 

하녹은 아담의 나이 622세때에 출생하여 아담의 나이 687세때, 그의 나이 65세때 무투쉘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죽은 후 아담이 살았다면 987세였을 때에 휴거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아 시대 홍수 심판은 아담출생후 1656년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녹의 휴거와 노아 홍수 심판 사이에는 669년의 시차가 있습니다.

 

만일 하녹이 홍수심판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휴거되었다면, 환란전 전체 휴거론자들이 주장하기를 환란 전에 모든 성도들이 휴거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 한 예로 하녹을 들수 있다면, 하녹이후 669년 동안에 출생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태어날 수 없었고 태어났더라면 즉각 휴거되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녹의 휴거와 노아 홍수 심판을 연관짓고 그 심판으로부터 하녹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이 데려가셨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시대적 차이를 오늘날의 현대-중세 역사와 비교해보겠습니다. 예를들어 앞으로 있을 대환란이 2030년 경에 있을 것이라고 가정해봅시다. 하녹이 장차 있을 홍수 심판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669년 앞서 휴거되었다고 주장한다면, 2030년에 있을 대환란에 669년 앞서서 1361년 고려시대 공민왕 11년에 혹시 기독교인이 있었다면 휴거되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서양 교회사로 말하자면 1361년 알비파나 왈덴시안 그리스도인들이 적그리스도인 카톨릭의 박해를 받을 필요없이 그 당시에 휴거되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 창세기나 히브리서 어디에서도 하녹(에녹)의 휴거와 노아 홍수 심판으로부터의 보호를 연관짓는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휴거론자들은 걸핏하면 이 하녹(에녹)을 예로 들어 휴거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얼마나 거리가 먼 연관짓기 입니까?

 

그들의 주장대로 환란이 있기 669년전에 성도들이 보호받기 위해 휴거되었다면, 1415년 순교한 쟌 후스는 죽기 전에 휴거되었어야 하며, 종교개혁 이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즉각 휴거되었어야 합니다. 웨슬레나 형제모임이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휴거되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녹(에녹)의 휴거가 노아 홍수 심판과 상관이 없는 것임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녹의 휴거는 어떻게 일어났을까요?

하녹은 하나님과 함께 300년을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하녹의 자녀들도 그가 믿음의 삶을 사는 동안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자녀들이 믿음의 자녀들이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해줍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자신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자녀들이 믿음을 가졌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무리한 상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녹은 하나님이 데려가셨지만 그의 자녀들은 데려갔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므투쉘라가 300세 될때까지 그는 라멕을 낳았으며 라멕의 나이 113세 때인, 하녹의 나이 365세때에 하녹(에녹)은 휴거되었습니다.

 

라멕은 아직 노아를 낳지 않았으며 노아는 하녹(에녹)의 휴거후 69년이 지난 다음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라멕의 놀라운 신앙간증을 보게 됩니다.

 

이 아이가 예호와께서 저주하신 토지에서 오는 우리의 일과 우리 손들의 수고로부터 우리를 위로할 것이라.(창 5:29)

 

그는 하나님이 예호와이시며, 인간의 모든 고난이 바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데서 비롯된 것과 그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는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가는데 있으며 인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가 필요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위로를 바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녹(에녹)이 휴거될 때에 113세였지만 휴거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뿐만 아니라, 매우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녹의 자녀들이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믿을 수 있습니다. 하녹의 자손들은 하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생산된 자녀들이었으며 그들은 하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안 양육받았습니다. 하녹이 휴거될 당시에 하녹만이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리라는 것을 암시해주는 어떤 성경 구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거된 사람으로는 하녹만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전체 휴거가 아님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또한 라멕이 휴거되지 않은 것은 하녹의 휴거가 노아 홍수의 심판으로부터 혹은 대환란으로부터 모든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이 모든 성도들을 휴거시킨다는 주장이 그릇된 연관짓기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녹의 휴거 요인이었을까요?

하녹이 휴거된 것은 임박한 진노의 심판에 앞서 모든 성도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그들을 휴거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녹의 매우 특별한 믿음, 초특급의 신앙을 가진 하녹의 믿음 때문에 이 세상이 더 이상 그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녹의 믿음을 하녹급 믿음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하녹은 엘리야처럼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을 가졌고 그는 휴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이나 라멕등의 손자 손녀들은 그런 신앙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녹의 가문은 분명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매우 깊은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엘리야후(엘리야)

 열왕기 하 2장

1        여호와께서 엘리야후를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리시게 되었더니 엘리야후가 엘리샤와 함께 길갈로부터 갔더라.

11 그들이 그 길을 가게 되었더니, 그리고 이야기 하더니, 보라, 불의 병거와 불의 말들이 나타나 그 둘 사이를 가르고 엘리야후가 회오리 바람에 의해 하늘로 올라가더라.

 

이 장의 2절부터 10절까지에서 우리는 엘리사가 얼마나 엘리야후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려 애썼는지 잘 알수 있습니다. 엘리사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엘리야와 함께 휴거승천되지 못했습니다.

 

엘리야에게는 많은 환란과 적들이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취해져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명도, 엘리사도 휴거되지 않았고 오직 엘리야만 휴거되었던 것입니다.

 

7천명은 휴거되지 않았을까요? 휴거란 아무나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며 주어지는 특권이 아닙니다!

열왕기 상 19장 14절은 엘리야가 어떤 사람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질투심으로 질투하였나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당신의 언약을 버렸으며 당신의 희생단을 무너뜨렸으며, 당신의 선지자들을 칼로 죽였으며, 저, 저혼자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추적하며, 그것을 취하려 하나이다.

 

이러한 믿음은 아무나 갖었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역시 여기서 엘리야급의 믿음이 바로 엘리야가 휴거승천할 수 있었던 믿음의 성공요인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엘리야의 승천은 임박한 진노의 심판이나 환란의 문제와는 별개였음이, 당시의 다른 많은 선지자들은 칼로 살해되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납니다. 임박한 심판이나 환란에서 모든 성도들을 건져내신다는 주장은 이 사례에서도 근거없음이 드러납니다.

 

3) 롯

여기서 롯에 대하여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롯을 근거로 휴거될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더 롯에 관해 말씀하시면 그때 더 설명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롯은 휴거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그가 가진 모든 재산과 가정을 풍비박산으로 날려버리고 달랑 구원얻은 사람이었으며, 그는 땅에서 땅으로 옮기웠을 뿐입니다. 롯을 근거로 전체 휴거를 주장하는 분들은 휴거의 큰 의미를 잘모르고 하시는 말씀들입니다. 휴거는 땅에서 땅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하늘로 옮기우는 것입니다.

 

라합은 또한 예리호 성이 함락될 당시에 구원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수많은 역경으로부터 보호하심을 날마다 받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매일 일어나고 있으며 성도들은 항상 보호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휴거는 매우 특출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만 있었던 현상이었습니다.

 

4) 노아

 

노아는 대홍수로부터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그는 대홍수를 피하도록 휴거되지 않고 대홍수를 관통하여, 정면돌파하여, 통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홍수를 이겨내고 구원얻었습니다. 대홍수 과정 내내 그는 하나님의 사람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세대들 중 완벽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창 6: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홍수를 경험하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노아가 바로 환란을 당하지 않고 휴거되는 사람의 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혀 엉뚱한 시각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는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신약시대, 대환란시대의 성도들은 이 세상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그 환란중에도 돌보심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환란을 이겨내고(계 7:9-14, 15:2) 환란을 통과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위와같이 구약시대의 몇 몇 사례들은 환란전 전체 휴거를 뒷받침하기 보다는 오히려 환란통과를 증명하거나, 특출한 믿음의 사람들만 휴거된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휴거된 사람들은 오직 하녹급, 엘리야급의 휴거급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외에 무수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고, 하나님을 위하여 참혹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휴거되지 못했습니다. 모쉐는 심지어 그가 희망했던 카나안 땅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휴거는 부활과도 다릅니다. 부활은 엘리야에 의해서도(왕상 17장)엘리샤에 의해서도 (왕하 4장32-37) 일어났지만 부활한 그들은 휴거되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엘리사마저도 휴거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휴거되지 않은 사람들의 신앙이 휴거된 사람들의 것만 반드시 못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판단하실 문제입니다. 톱에 썰려서 죽었다고 전해지는 이사야의 믿음이나 도끼에 찍혀 죽은 사도바울의 믿음이 그들의 것보다 반드시 모자라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35 여자들은 자기들의 죽은 자들을 부활에 의해 받았느니라. 그러나 다른 이들은 고문당하였으나, 구조를 거절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보다 나은 부활에 이르기 위함이었더라. 36 한편 다른 이들은 조롱들과 채찍질들과, 게다가 결박과 투옥까지의 시험을 받았느니라. 37 어떤 이들은 돌로 침을 당하였고, 톱으로 자름을 당하였으며, 시험을 당하였으며, 칼의 살해로 죽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양가죽이나, 염소가죽을 입고 유랑하였으며, 궁핍하였으며, 고난을 당하였으며, 악형을 당하였고, 38 저희를 세상이 감당할 수 없었으니, 저희가 광야들과 산들과 동굴들과 땅의 굴들에서 방랑하였느니라.

 

분명 부활에는 나은 부활이 있고 그만 못한 부활이 있습니다. 주를 위하여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분명 더 나은 부활이 주어질 것입니다. 위의 환란이 두려우십니까?

 

주님은 몸은 죽이고 더 이상 아무것도 행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룩 12:4)

 

이제 우리 모두는 에녹만큼의 믿음, 엘리야 만큼의 믿음을 갖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만, 죽음이나, 환란이나, 헐벗음이나, 고난이나 어떤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제 저 하늘의 예루살렘이 밝히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그리스도인들 되라고 이 세상에 살게 하셨습니다. 세상이나 환란이나 모든 것들 우리들의 밥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위대하신 대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할 것입니다!

출처 : Shekinah Korea
글쓴이 : 하토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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