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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영혼수면설반박에 대한 반박

by 디클레어 2010. 12. 25.

  영혼수면설반박에 대한 반박

 

영혼수면설을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영혼수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을 이단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잘 모르니까 그럴 수 있을거다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또 영혼수면설을 주장한다는게 영혼소멸설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가끔 반박하는 사람들이 쓴 글을 보면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어서 미리 짚고 넘어간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영혼수면설을 주장하는 것도 나름 이유와 성경에 근거를 두고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을 받아 들이느냐 하는 것을 사람마다의 판단에 근거하라는 여지를 주기 위해서이다. 기필코 영혼수면설을 이단이라고 주장하려는 사람들의 공세의 예봉을 꺾는 의미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어느 것을 받아 들이느냐 하는것 자체를, 이 글을 읽는 성도들의 판단에 맡겼으면 하는 것이다.

 

혹시 이 글에 대한 반박의 글을 쓰실 분들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들먹거리지 말고 본인이 성경을 찾아서 그에 합당한 구절들을 찾아 올리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은 천편일률적이 아니다,라는 말로 이 글을 시작한다.

먼저 마태복음이다.

 

(50) ○ 예수께서 다시 큰 음성으로 소리지르신 후 숨을 거두시더라.

 

(51)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갈라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으며

 

(53)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더라.

-마태복음27장

 

뭐 그리 설명이 필요없는 구절들이다,

그리고,

 

(38) 주께서 회당장의 집에 오시어 사람들이 울고 크게 통곡하는 소란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그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느니라."고 하시니

 

(40) 그들이 주를 비웃더라. 주께서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신 후 그 소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기와 동행한 사람들만을 데리고 그 소녀가 누워 있는 곳으로 들어가시어

 

(41) 그 소녀의 손을 잡으시고 "탈리다쿠미"라고 말씀하시니, 이를 해석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심이라.

 

(42) 그 소녀가 즉시 일어나 걸으니 이는 그 소녀가 열두 살임이더라. 그러자 사람들이 매우 놀라더라.

 

이 소녀가 죽어서 하나님의 품에 있었다면 아마도 다시 살아나게 하신 예수님을 원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 품에 소녀가 있었다면 이 소녀는 살아나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녀가 천국에 있거나 낙원에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곳은 말 그대로 낙원일테니 무엇 때문에 다시 이 땅에 살아나는 것을 기뻐하겠는가? 말이다. 이 논리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였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에도 적용될 수 있다.

 

11) 주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그를 잠에서 깨우러 가노라."고 하시니

 

(12) 그의 제자들이 말씀드리기를 "주여, 그가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라고 하더라.

 

(13) 예수께서는 그의 죽음을 말씀하였으나 그들은 주께서 잠들어 쉬는 것을 말씀하신 줄로 생각하더라.

 

(14)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나사로가 죽었도다.

 

(15) 너희를 위하여 내가 그 곳에 있지 아니하였음을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고 하시더라.

 

(16) 그때 디두모라고 하는 도마가 동료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하더라.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그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더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약 십오 스타디온쯤 떨어졌으니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들의 오라비의 일로 그들을 위로하려고 왔더라.

 

(20) 그때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나가서 주를 맞았으나 마리아는 여전히 집에 앉아 있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만일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나의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주님께 주실 줄 아나이다."라고 하니

 

(23)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시더라.

 

(24) 마르다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마지막 날에 부활로 그가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하니

 

마르다의 이 말에 예수님은 부인하지 않으시고, 다음 말씀을 이어가심을 주목하라.

 

(25)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하시니

 

(27) 그녀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예, 주여, 나는 주께서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

 

(28) 그녀가 이런 말을 한 후에 가서 자기 동생 마리아를 은밀히 불러 말하기를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고 하니

 

(29) 그녀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주께로 오더라.

 

(30) 예수께서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하던 그 곳에 계시더라.

 

(31) 그러므로 집에서 마리아를 위로하며 그녀와 함께 있던 유대인들은 그녀가 급히 일어나서 나가는 것을 보고 따라 나가며 말하기를 "무덤에 가서 울려고 그리로 간다."고 하더라.

 

(32) 마리아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와서 주를 보고 그의 발 앞에 엎드리어 말씀드리기를 "주여, 만일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나의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하니

 

(33) 그때 예수께서 그녀가 울고 있는 것과 그녀와 함께 온 유대인들도 우는 것을 보시고 영으로 신음하시며 괴로워하시다가

(34) 말씀하시기를 "그를 어디다 두었느냐?"고 하시자 그들이 "주여, 와서 보소서."라고 말씀드리니

 

(35) 예수께서 우시더라.

 

(36) 그때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보라, 주님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라고 하더라.

 

(37) 그러나 그들 중 몇 사람이 말하기를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고 하니

 

(38)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신음하시며 무덤에 오시니라. 그 곳은 굴인데 돌이 그 위에 놓여 있더라.

 

(39)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돌을 치우라."고 하시니, 죽은 자의 누이인 마르다가 주께 말하기를 "주여, 죽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기에 지금은 악취가 나나이다."라고 하니

 

(40)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시더라.

 

(41) 사람들이 죽은 자가 놓여 있는 곳에서 돌을 치우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시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아버지께서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 내가 알았나이다. 이제 내가 말한 것은 여기 둘러 서 있는 무리 때문이니, 그들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하시더라.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음성으로 외치시기를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하시니

 

(44) 죽었던 자가 손발이 수의로 동여지고 얼굴이 수건으로 가려진 채 나오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를 풀어 주어 다니게 하라."고 하시니라.

 

(45) 그때에 마리아에게 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본 많은 유대인이 주를 믿었으나

 

(46) 그 중 몇 사람은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을 말하더라.

-요한복음11장

 

역시 소녀에게와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나사로는 소녀보다 나이도 훨씬 많다. 그런 그가 천국에 있었다면 그것에 대해 당시 주위사람들에게 전파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사실 우리는 그것까지 알 수는 없다. ^^;;

 

만에 하나 나사로가 죽은 후에 낙원이나 천국에 있었다면 그곳이 이 곳보다 훨씬 좋으니 오히려 예수님은 그를 다시 살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곳보다 더 좋은곳에 있으니 안심하라” 라는 말씀으로 슬퍼하는 자들, 특히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셨을 거라는 것이 논리적인 관점에서 더 타당하지 않겠는가, 혹시 필자가 죽어 낙원이나 천국에 있었다면 다시 이 땅에 살아나는 것을 썩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스데반에 대한 누가의 증언이다.

 

(54) ○ 그들이 이런 말을 듣고 격분하여 그를 향해 이를 갈더라.

 

(55) 그러나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늘을 주시하더니,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기를 "보라, 하늘들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오른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하니

 

(57) 그때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자기들의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읍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치고,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고 하는 한 젊은이의 발 앞에 놓더라.

 

(59) 그들이 스테판을 돌로 치니, 그가 하나님을 부르며 말하기를 "주 예수여, 나의 영을 받아 주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부르짖기를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이 말을 하고 잠드니라.

-사도행전7장

 

하고 많은 표현들 중에 하필 잠자니라,는 왜일까? 예수님에 대한 환상을 보았으니 그의 영혼이 그의 품으로 가니라,라는 앞 뒤구절에 맞는 좋은 글귀들을 버려두고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그의 죽음을 지켜본 우리들의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 증언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34)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사 다시는 썩어질 것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셨나니,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윗의 확실한 자비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시편 다른 곳에서도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주의 거룩한 이로 썩어짐을 보지 않게 하시리이다.'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그의 당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의 조상 곁에 묻혀 썩어짐을 보았으나

 

(37)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그는 썩어짐을 보지 않았느니라.

-사도행전13장

 

바울사도가 뭐라 말씀하는가,

다윗이 낙원이나 천국에 있다라고 하거나 , 혹은 하나님 곁에서 섬기고 있다고 하면 훨씬 나을텐데 아쉽게도 잠들어 있다고 한다. 게다가 다윗은 썩어짐을 당했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썩어짐을 당하지 아니하시고 승천하셨다고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구절들에서 우리는 주님안에 자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겠다.

 

그러나 아직도 증거는 끝나지 않았다. 계속 바울사도의 증언이다. 이번에는 성찬식에 대한 주의사항을 말하면서 잠자는 자들에 대한 것을 기록한다.

 

(28) 사람이 자신을 살펴보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하리니

 

(29) 이는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의 저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라.

 

(30) 이 때문에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약하고 병들었으며 상당수가 잠들었느니라.

-고린도전서11장

 

글을 정독하시길 권해드린다. 합당하게 먹고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약해지고, 병들었고, 잠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잠들었다는 것이 죽은 것을 의미하는 것임은 앞뒤문맥을 보아 알 수 있을 것이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이제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았고 그 안에 선 것이라.

 

(2) 만일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4)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5)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는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셨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도 살아 있으나 더러는 잠들었느니라.

-고린도전서15장

 

이 말씀은 초대교회박해때 일어난 일들을 바울사도가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많은 자들에게 보이셨는데 주님을 본 자들 중에 살아 있는 자들도 있고 또 죽은 자들도 있다는 것을 기술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잠깐, 잠들었다고 표현한 것을 문학적인 표현이라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좋은 얘기다. 그럼 한 번쯤 사실 그대로 낙원이나 천국에 있느니라, 라고 하는 표현을 바울이 사용하였다면 오해가 덜 했을 텐데 그는 초지일관해서 자고 있다,라고 하는 문학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가 문학적이었다면 오히려 하나님품에 있느니라, 라고 하는 표현이 더 합당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과거에 어떤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이 무엇을 주장했다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누가 무엇을 주장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이단이 주장하고, 그들이 영혼수면설을 주장하니 그들의 교리는 다 이단이다라고 하는 것도 얼마나 어이없는 주장인지 알자고 하는 것이다. 이단이란 말은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거나 끝이 다른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단도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흡사한 주장을 해야 더욱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그래서 이단인 것이다. 그들이 다른 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다 틀리고 아닌 주장만을 말한다면 이단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다른 종교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