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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영혼수면설반박에 대한 반박 2nd

by 디클레어 2010. 12. 25.

영혼수면설반박에 대한 반박 2nd


1편에 이어서 계속 진행해 보도록 한다.

 

(14) 만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의 믿음 또한 헛것이라.

 

(15)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거짓 증인들로 밝혀지리니,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셨다고 증거하였기 때문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정녕 살아나지 아니한다면, 그 분께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들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일으켜지지 못하셨으리라.

 

(17) 만일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못하셨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는 것이라.

 

(18)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한 것이라.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오직 이생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셔서 잠들었던 자들의  첫 열매들이 되셨느니라.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

 

(23)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대로 되리니 그리스도가 첫  열매들이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 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24) 그 후에는 끝이  오리니, 주께서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폐하시고  그 왕국을 하나님, 곧 아버지께 바칠 때라.
...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52) 마지막 나팔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

 

(54)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또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되면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고린도전서15장

 

여기서 52,53,54절은 육체를 얘기하는 것이고, 문제는 51절이다. 썩을 몸은 썩어지고 그럼 영혼은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 때문에 영혼수면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 거다. 그것은 간단하다. 영혼들은 자고 있다. 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자는 것이다. 자고 있으면 깨어날 때까지는 자신이 어디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십자가상의 두 강도중에 오른쪽에 있었던 강도에게 주님이 말씀하셨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십자가에 달린 후 죽어 잠을 자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그는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그 때 말씀하신 네가 오늘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도 이 논리에 전혀 틀린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말씀하신 낙원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이 땅에 세우실 천년왕국을 지칭하시는 것이다.

 

 (13) 형제들아, 잠든 자들에 관해서는 너희가 모르게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가 소망이 없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14)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리고 나서 살아 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올라 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4장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은 잠들어 있는 것이라고 다시 증언하는 바울사도의 글을 보고 계신다. 더군다나 이것은 주님안에 잠들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 재림하시면서 살아난다고 하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증거이다. 왜 바울은 죽은 자들이 하나님과 천국에 함께 있었고, 그렇게 주님과 같이 있던 그들이 주님과 함께 온다고 하지 않고 주님오실 때, 잠자고 있는 자들이 먼저 일어나 주님께로 나아가고 그 후에 살아있는 자들이 끌어올려진다고 얘기하는가?  왜 이런 식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구절들로 영혼수면설을 증거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그건 죽으면 육체는 썩어지지만 영혼들은 자게 된다고 하는 것을 바울사도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4) 말하기를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 하니
-베드로후서3장

 

또 베드로사도도 영혼이 자고 있다고 하는 것을 그의 글에서 잠깐 보여주고 있다. 이 조상들은 누구를 말씀함이겠는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등울 말씀함이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영혼수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구절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거지 나사로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데 그 비유에 대한 주제가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보라. 그 비유의 주제는 결론부분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누가 어떻게 해도 사람의 의지대로 주님을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하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조차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이 비유는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 천국과 지옥에 관련된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성도에 관한 것이 주제라는 것이다. 그것을 천국과 지옥에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 나온 아브라함이나 부자나 나사로는 사실 있는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씀하신 것이라기 보다는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어떠한 자이며, 또 부자로서 가난하고 핍박받고 고통받는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를 피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에 예수님과 같이 달렸던 두 강도에 대한 것은 앞서 잠깐 얘기했지만 주님께서 오른쪽에 있는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같이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말씀그대로만 받아 들인다면 앞서 말했던 진리의 말씀들에 모두 거치게되는 결론을 낳게 된다. 따라서 그 강도는 주님오실 때 일어나 주님께 속할 것임을 알 수 있고, 이것은 그가 비록 살아있을 때는 십자가형별을 받을 만큼, 극악무도한 죄를 짓긴 했지만 주님의 죄를 사하는 권세로 인해 구원받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 뿐이다.

 

이제 한가지 더 반론을 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계시록6장이다.

 

(9)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을 여실  때 내가 보니, 제단 아래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 때문에 죽임 당한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10) 그들이 큰 음성으로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여,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을 심판하시어 우리의 피를 갚아 주실 날이 얼마나 남았나이까?" 하더라.

 

(11) 그러자 그들 각자에게  긴 흰 옷을 주시면서, 그들의 동료 종과 형제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가득 채워질 때까지 잠시만 더 쉬라고 말씀하시더라.

 

이 상황은 숫자로 푸는 계시록에도 설명을 한 바 있지만 그것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언급하도록 하겠다.

후삼년반의 대환란에는 그 기간 처음에 순교성도들이 발생을 하게 된다. 그 숫자는 이억이라고 이미 말씀드린바 있다. 그리고 이 순교성도들은 이후 계속 발생을 하게 된다. 이것은 계시록 11장에서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있다. 9절이다.

 

 (9) 또 백성들과 족속들과 언어들과 민족들 중에서 온 사람들이 그들의 죽은 몸들을 사흘 반 동안 구경하며 그 죽은 몸들을 무덤에 장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리라.

 

사흘반은 삼년반이고, 그들의 죽은 몸들을 사흘반동안 구경을 한다는 것은 성도인 그들이 계속 순교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첫 순교성도들뿐만이 아니고 후삼년반의 대환란기간에는 지속적으로 순교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시놉시스라고 할 수 있는 계시록6장의 봉인재앙에서 먼저 죽은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는 순교성도들은 사실 있는 그대로를 기술했다기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계기록11장에서 이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기술하고 있고, 또 계시록14장에서는 이들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예리한 낫으로 들어 올리시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삼년반동안 죽어 있었다라고 하는 더 확실한 증거는 역시 11장이다.
그들의 죽은 몸들을 사흘반동안 구경하려면 마흔두달 첫시작에 죽어야 사흘반이라는 말씀이 성립을 하게 되기 떄문이다. 그 후에 죽게 되는 성도들에 대해서는 주님이 말씀하시듯 계시록6장 11절을 정독하면 알 수 있다.

 

(11) 그러자 그들 각자에게  긴 흰 옷을 주시면서, 그들의 동료 종과 형제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가득 채워질 때까지 잠시만 더 쉬라고 말씀하시더라.

 

이 숫자는 하나님께서 채워야 할 예정하신 숫자가 이미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예정설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 글과 다른 문제이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어쨌든 이 구절들이 영혼수면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되지 못함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사람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실족시킬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일들은 사람이 생각하듯 단순하지 않다. 너무도 복잡오묘한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이 예비하신 일들을 모두 알기가 쉽지 않다. 계시록을 어느정도는 풀게 해주셨다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으로써, 그러나 그 밖에, 또 계시록안에서도  알지 못하는 일들이 훨씬 더 많음을 체감하고 있고 말씀앞에 지금도 작아지고 낮아지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 글은 소망없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소망을 천국에 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성급히 판단하지 말고 주님앞에 말씀으로 온전히 서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칠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