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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고린도후서12장, 사도바울의 자랑

by 디클레어 2010. 12. 27.

고린도후서12장, 사도바울의 자랑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이것은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에 쓴 서신이고 여러 분야의 글들을 쓰는 중에 자신의 사도됨을 믿지 않는 자들을 회유시키기 위해 부득불 자신의 사도됨을 증명하려 하여 그 서신중의 일부분을 할애해서 쓴 구절이다.

 

 

이 부분을 가져온 것은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의 의미에 대해서 나누고 싶어서이다. 필자의 계시록은 여러 해석자들과 다르다. 아니 틀리다고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며, 기존의 해석위에서 세워진 것이기에 알고 나면 기실 새로운 것도 없고, 신기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다. 기존의 해석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이 계시록은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발견한 것은 한때와 두때와 반때가 전삼년반이며, 마흔두달이 후삼년반이고, 또 계시록을 이루고 있는 주체들에 사용하신 그 기간에 대한 숫자들이 따로 따로 쓰여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 뿐이다. 그런데 마치 어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이 계시록이 해석된 것 처럼 보이는 것은 결론이 너무 판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필자가 너무 하나님의 동행을 강조하다보니 많은 분들의 공분을 사게 된 것도 사실이다. 왜 하나님께서 너와만 같이 하느냐라는 시기어린 질책들 말이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그럼 그렇다고 내 지혜로 이것을 풀었다고 해야 한단 말이오, 하나님께서 전혀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똑똑한 내 머리를 이용해서 이 계시록을 풀었다고 한다면 그건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지금도 주위에는 영어번역을 하면서 또 영어 동영상을 한글자막으로 만들면서 마치 영어권에만 진리가 있는 양, 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들에게만 계시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영어권을 선생모시듯 섬기는 사람들이 나름 자신들만의 지혜로움을 뽐내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는 또 나름 자신들대로 어떤 룰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최고로 치며 자고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필자의 성격을 말하자면, 불과 일년쯤 전일 것이다. 계시록을 해석해 놓으신 어느 분의 글을 읽으며 그 분이 한국분임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는지 모른다. 필자의 생각에 아 역시 하나님께서는 한국을 사랑하시는구나, 역시 우리민족은 선택된 민족이야, 라며 내심 쾌재를 부르며 얼마나 즐거워 했었는지 ... 그래서 그 분께 그런 감격을 전한 적도 있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구요. 사실 그 분의 도움과 그 카페의 도움이 컸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이런 해석의 결론을 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 카페에서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직도 여전하다. 물론 아직 검토중에 있다면 할 말은 없지만...

 

(25) ○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이런 일들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그러하옵니다. 아버지여,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선함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또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를 계시하고자 하는 사람들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없나이다.

-마태복음12장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만일 너희 가운데 누구라도 이 세상에서 현명하다고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러면 현명한 자가 되리라.

 

 

(19) 이는 이 세상 지혜가 하나님께는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라. 기록되기를 "주께서는 현명한 자들을 자신들의 꾀에 빠지게 하신다." 하였느니라.

 

 

(20) 또 다시 기록되기를 "께서는 현명한 자들의 생각을 아시는데, 그들의 생각은 헛된 것이라." 하였느니라.

-고린도전서3장

 

 

뭐 꼭 이런 말씀들이 그 분들에게 들어 맞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누고 싶은 얘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싶다면 자신을 내려 놓는것과 기존의 생각 특히, 그노무 아집을 버리는게 중요하다, 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지요. ^^

 

사실 이 발견은 아무도 몰라서 그렇지, 아주 놀라운 발견이다. 그 의미를 아직 우리나라 성도들이 깨우치질 못해서 그렇지, 알고 난다면 모두 환호할 것이다. 계시록에 대한 해석은 세상 모든 국가의 석학들이 지금도 연구하며 그것을 풀기위해 애쓰는 난제중의 난제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 해석을 필자와 같이 완성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어쨌거나 이 계시록이 옳다면 정말 하나님이 주신 바, 그대로의 해석이라면, 이건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 얼마전 터키와 중국사람들의 노아의 방주발견에 비견할만한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승리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확인도 해보지 않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성도들을 볼 때에 참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잠시 얘기를 다른 데로 돌려,

여기서 모두가 진실로 알고 있지만 필자의 생각은 약간 다른 의견을 하나 피력하고 싶다. 하나님께서는 세대를 구분하셨는가 하는 것과,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과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을 따로 구분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일례를 들어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이요, 나머지는 유대인들을 포함한 모든 이방 백성들을 위한 복음이라는 둥, 뭐 그런 류의 민족 분류 복음신학말이다. 얼마전에는 사실 필자도 거기에 대한 지식이나 분별력이 없었고, 그게 그런갑다 해서 별 생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생각했단 말이다.

 

그런데 웬걸 , 바로 그 학설이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일명 신학을 했다는 자들의 몹쓸 누룩이 계시록해석에서도 쓰여 지는 것을 보고 방관할 수 만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특히 7년환란전 휴거를 주장하는 목회자의 지나친 유대인강조는 또 다른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신학은 신학교를 나온 사람들만 해야 한다고 하는 몹쓸 이단 연구가 목사의 얘기도 비위를 상하게 하기도 했다. 그런 바보같은 말이 어디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누구나 보고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지, 무슨 하나님앞에 자격증따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IHOP이나 신사도운동이 잘못됐으면 그 잘못된 것을 끄집어내면 되지, 뭔 애꿎은 신학이 어떻고, 신학교가 어떻고 하는 얘기는 왜 들먹이느냐 하는 거다. 프랑스의 칼빈선생이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지만 자칭 하나님의 사자라는 그들에게 면죄부를 씌워주듯 이런 저런 권한을 강화한 것은 하나님께 책망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서이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그럼 묻겠다. 성경, 어디에 그런 글이 있는가? 자랑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마태복음을 몇 번 읽었는지 모르겠다. 근데 그 복음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복음인줄은 몰랐다. 모든 복음서는 모든 민족들을 위한 것이지 어느 특별한 부류의 민족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구약의 역사서는 이스라엘민족의 역사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시편, 잠언, 전도서나 그리고 선지서들, 특히 이사야나, 에스겔, 스가랴, 요엘, 호세아, 말라기등 이방민족들을 위한 선지서들도 아주 많다. 그리고 모든 신약의 복음서들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복음서이지 결코 어느 한 민족만을 위한 복음서는 아니라는 거다.

 

그럼 여기서 구약에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그리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겠다는 것은 이미 증거한 바 있지만 말이 나온 김에 엑기스만 뽑아오겠다. 그것은 이런 말씀들에서 드러난다.

 

(10) ○ 오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보라, 내가 왔고 내가 네 가운데 거할 것이기 때문이라. 주가 말하노라.

 

(11) 그 날에는 많은 민족들이 주께 합류하여 내 백성이 되리라. 그러면 내가 네 가운데 거하리니, 너는 만군의 주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것을 알리라.

 

(12) 주께서는 거룩한 땅에서 유다에게 그의 몫을 유업으로 주실 것이며 예루살렘을 다시 택하시리라.

-스가랴서2장

 

여기서 유다는 지금의 이스라엘땅에 있는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고 표면적인 유대인이며, 진실한 내면적 유대인들은 바로 노아시기때 들림받을 빌라델비아교회, 즉 십사만사천의 시온산에 있는 자들인 것이다.

 

(9) 보라,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아니요, 오히려 거짓말하는 자들을 내가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로 만들었으니, 보라, 내가 그들을 오게 하여 너의 발 앞에 경배하게 하여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리라.

-계시록3장

 

여기서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는 지금의 이스라엘에 있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말함이요,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한다의 너는 바로 내면적 유대인인 온 열방에서 선택받았으며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나의 말을 지켰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칭찬했던 그 믿음의 정수들인 빌라델비아교회인 십사만사천인인 것이다. 이런 해석은 신학교에서 하지를 않으니, 아니 할 수가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분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또 이것을 알아야 비로소 신학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여야 가능하다라는 얘기말이다.

 

평신도사역, 평신도목회등등 평신도를 강조하면 자신들은 결국 니골라당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 밖에 더 되겠는가? 제발 자신의 얼굴에 침뱉는 말들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하면 좋겠다. 슬픈 일이다. 사실 젊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참 칭찬해주고 붇돋아 주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 신학이란것이 사람을 망치니 그게 문제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며 뛰어든 신학계에 그것을 배움으로써 생기는 것은 자신은 목자요, 평신도들은 자신이 이끌어갈 양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착각하지 마시라, 진정한 목자는 예수그리스도요, 나머지는 모두 양들임을 성경은 증명하고 증거한다. 그것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불림을 받지 말라. 이는 너희 선생은 한 분, 곧 그리스도시요, 너희는 모두 형제이기 때문이라.

 

(9) 또 땅에 있는 사람을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이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기 때문이라.

 

(10) 또 너희는 선생들이라고도 불리지 말라. 이는 너희 선생님은 한 분, 곧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라.

 

(11)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23장

 

이 말씀은 무리와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혹시 지금 신학교를 다니고 신학을 한다는 양반중에서 이 글을 해석해 줄 분이 계신가 하고 묻고 싶다. 그런데 그런 양반들은 이런 글을 아주 싫어한다. 이런 구절보다는 이런 구절을 가지고 오고 싶어 한다.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개역성경

(11) 그가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주셨으니-한킹

(11) And he gave some, apostles; and some, prophets; and some, evangelists; and some, pastors and teachers; -KJB

 

개역성경의 목사라는 것도 목사라는 직책을 만들려고 목자로 번역해야 할 것을 목사로 번역해 놓고는 자신들끼리 누구누구목사라는 둥 서로 대접해가며 니골라당의 교리를 굳건히 세워나가고 있으니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임무나 하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다. 왜냐하면 그 직책은 주님이 싫어 하시는 그런 직책임에도 불구하고 옳은 가르침을 시전하는 자들에게는 칭찬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바울 사도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자라야 할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서는 자고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어느 신학교 출신이네, 신학을 몇 년했네, 어느 교단 소속이네등등, 믿음에 도움이 안되는 것들에는 초연해야 하고, 그런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 사람들보다 행실이나 믿음에 출중한 모범을 보여야 하며, 겅거망동해서는 안되고, 주님 말씀의 해석을 혹시 잘못했을 때 지체없이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는 용기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앉아 대우 받을려고 하지 말고 말이다. 그렇게 하면 혹시 모르겠다. 주님이 봐 주실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