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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신앙관련

[스크랩] 원죄론 토론 정리

by 디클레어 2010. 2. 2.

제가 원죄론때문에 칼빈교리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원죄론을 한번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지기에 가능하면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원죄론을
끄집어 내시니 기본적으로 알미니우스 원죄론을 지지하는 저와 견해가 다른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제 견해와 입장을  다시 한번 정리하여 밝히겠습니다.
 
 제가 개혁주의 까페 양무리 마을에서 원죄론 논쟁을 끝까지 펴지 않은 이유는

친분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극단적인 대립까지는 원치 않았기 때문이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어느 극칼빈주의 회원 한 분의 격한 글을 명분 삼아 탈퇴한 것인데
티엘티에서  아이린님이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개혁주의 원죄론적
표현을 다시 하였고 (명분이 어떻든) 결국 한번쯤은 심각하게 토론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이차 원죄론 토론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장로교는 어거스틴 칼빈의 원죄론을 대부분 지지하여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믿을지는 몰라도 침례교는 목사님의 신학,각 개인의
신학에 따라서 그리 믿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 알미니우스의
원죄론을 지지하고  원죄아래서(죄가운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는

입장이라 알고 있습니다. 어거스틴 칼빈의 원죄론은 주로 유아세례를 시행하는
교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교리라 할 수 있지요

카톨릭도 어거스틴의 원죄론을 지지하고 있기에 유아세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지지하는 신학설에 따라서, 어떤 관점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원죄론에 대한 견해가 서로 달라지겠고 어거스틴의 원죄론의 영향을 받은

장로교 원죄론 교리가 가장 성경적인 교리라 믿는 분들, 칼빈 신학에

오류가 없다고 믿는 분들은 알미니우스 원죄론을 비성경적이라 할 것이고

알미니우스 원죄론의 관점에서 성경적 죄론을 보는 분들은 조직신학적

원죄론이 비성경적이라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전가받아 죄인으로 태어나느냐 죄성을 유전받아 

태어나 스스로 죄를 지어 죄인이 되느냐는 영유아 세례,거듭남, 영유아의 구원과

관련이 있지 죄를 범한 인간의 영혼구원,복음진리에 대한 견해차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님을 알수 있어야 하는데 .... 원죄로 인해 잉태 출생과 더불어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으로 보는 교리때문에 선택된 영유아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어도

회심이 없이도 특별한 은혜에 의해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가고 유기된

영유아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어도 선악간에 행한 죄악을 범한 적이 없다

해도 원죄때문에 죄인이니 그 아담의 죄로 영혼심판을 받는다 하는 개혁주의

목사님이 계시는 것이고 그것이 바른 신학이라  주장하는 것입니다.

 영유아의 구원에 대해서 조직신학은 그리 추측하여 해석하고 그것이

성경적이라 믿고 가르칠지라도 저는 선악을 알지 못하고 양심이 작용하는 연령대에

이르렀다 보기 어려운 영유아는 아직 믿음법이나 양심법이나 율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견해가 더 성경적이라 보고 있는 입장입니다. 

  
  
양무리 마을 분들 가운데에서는 순수하게  저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고 저와 다른 원죄론의 입장에 있는 분들은 저를 염려하시면서 때로
그 염려를 너무 극단적으로 표현하다보니 "이상하고 자의적인 성경해석의
수렁에 빠진 사람"으로 평하면서 성령의 조명이 임해서 다시 바른신학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저는 양무리 마을 분들 안부는 궁금하나 염려는
그다지 하지 않고 원죄론에 있어서는 칼빈에게 임한 성령의 조명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그냥  제게만 성령의 조명이 계속 더  임하였으면 합니다.
 

제가 알미니우스의 원죄론을 지지하게 된 것은 그의 원죄론이 다른 신학자의
원죄론보다 더  성경적이고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더 바르게 균형잡힌 이해에서
나온 견해라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태어날때부터 죄인이요 믿고 거듭났어도 여전히 죄인이요
흙으로 된 육신을 벗어버리지 않는 한 죄인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고
믿게 하는 것이 바로 인본적인 카톨릭 교리라 저는 보고 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것을 유도하고 태어날때부터 죽을때까지 죄의 종이라 믿는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께서 그런 견해를 바르다고 하실지 의문입니다.

 

 원죄론을 언급하려면 죄의 문제에 대해 민감하고 심각했던 어거스틴에 대해서
먼저 언급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주로 웹에서 얻은 자료에 근거한 것임)
그의 신학이 후대 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의 원죄론이 카톨릭적
영유아세례의 근거를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되며 칼빈의 원죄론과 개혁주의
연대설로도 이어지니까요
원죄론과 유아세례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어거스틴의 원죄론의
영향을 받은 학파나 교파는 대부분 유아세례 교리를 긍정하고 유아세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주로활동했던 시기는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끝나고 로마가 기독교를
인정하고 장려한 시기입니다. 로마 카톨릭 시대에 어거스틴이 카톨릭교회의
그릇된 세례관의 영향권 아래 있었음을 어거스틴의 참회록(고백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했던 경건한 어머니 모니카와 이교도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자란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바램과는 달리 어렸을때부터 악으로 기울어 거짓말,도둑질도
잘하고 명예욕,경쟁욕이 강한 소년이었고 청년이 되어서는 육적인 정욕에 사로잡혀
죄악된 삶을 살았으며 오랜세월을 폐르시아 마니교에 심취했었고 마니교에서 빠져
나온 뒤, 선과 악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는데 인간안에 악을 행하고 픈 의지는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하는 고민은 그의 관심을 성경으로 향하게 했고 여전히 말씀과
자신의 정욕의 갈등가운데에서 방황하다 어느날 롬 13:13-14절의 말씀으로 극적인
회심을 하고  33세에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죄에 억눌린 삶을 살다가 마침내 회심하고 죄사함의 세례를 받은 어거스틴은
죄악이 바로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진리로 믿고 그런 진리앞에  죄를 복되다
외쳤으며 넘치는 죄의 고백을 한 신학자이지요. ( 신학적으로 이해하자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죄악이 바로 구원에 이르게 한다 또는
죄를 복되다 한 표현은 좀 이상하기도 한 듯...) 

 

 어거스틴 참회록(고백록)중 제 1권 소년시절에 나오는 내용을 참조하면

 그 당시에 세례이후의 죄는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교회의 전통이었고
초대교회에서 논쟁이 일어나자 터툴리안은 두 번까지 용서해 주자고 했고,
계속 죄를 짓자 카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받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니카는 어거스틴이 죄를 저지를 것 같아서 세례를 받지 못하게
했다고 하구요.
 
그 당시 세례관을 보면

[1. 세례는 흐르는 물이 없으면, 다른 물로 주어도 상관없다(디케아 문서)
  2.유아세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받아준다는 것이다.
  3. 부모가 자녀를 대변해서 신앙고백하고 받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결단과 결심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하는가?
어린이가 결단하기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가 ?
세례는 하나님의 선행은총이다. 인간이 결단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은총을 베푸신다. 그것의 구체적인 표현이 세례이다] [ ]안의 내용은 퍼온 것

 이런 세례관의 영향을 받았던 사람이 어거스틴입니다.

그 당시 교회 전통 세례관이 회심(회개와 믿음)측면보다는 죄의 용서의 측면이
부각된 세례관이었고 어린아이도 죄가 있으니 일단 죄 사함을 받는 세례를
주어야 하고 그것이 원죄론과 결부되어 영유아세례로 확대되어진 것이라 저는
보고 있습니다. 영유아세례를 정당화하려면 태아 , 신생아 젓먹이 유아의
죄를 인정해야 하고 결국 원죄가 전가된 죄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구요
 로마 카톨릭이 이단이라 정죄하고 핍박과 살해를 허용한  부류에 이단이라
정죄받은 자들의 영유아들도 해당되는데  그 악행이 정당화 된 배경에 원죄론이
있습니다. 영유아들도 죄인이니 이단자들의 자녀들은 당연히 죽여도 된다라는
식으로요 .
 

[어거스틴의 견해 : 어린이를 관찰해보니, 나누기를 싫어하고 질투하는 것을 보라.
저것이 원죄의 외적인 증거이다. 모든 어린이들은 유아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죄가 씻겨진다. 그것으로 죄가 도말해지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죄성이나 죄에 대해서는 성경구절로도 증명됩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from childhood)
 악함이라 ...창 8:21> 문제는 이것을 가지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난다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태아나 갓 태어난 아이에게도 죄성이 잠재되어 있으나 아직 자범죄는 없다고
추측해 볼 수 있는 구절중 하나가
<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
롬 9:11>


어거스틴의 원죄론의 영향을 받은 칼빈은 전적타락설을 교리로 세워
어거스틴의 원죄론을 발전,심화시켰습니다.
 
저는 이 전적타락설을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악를 범했을 때
그 죄와 허물로  인해서 영혼(심령)이 전적으로 타락, 부패하게 되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고 이제 창조주 하나님의 속죄를 통한 구원을
기다려야 하는 존재가 된다는 설로 이해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죄범한 자의 영혼의 자신이 범한 죄로 인한 전적타락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아담의 원죄로 인해서 자범죄가 아닌 원죄로 이미
영혼이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소리여서 기겁했지요.

세상법에 범죄의 구성요건이라는 말이 있듯이 성경의 범죄에도 일정한
요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소원(죄성) + 죄의 유혹(시험) = 범죄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 14>

 죄의 소원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이 있다면 죄의 유혹은 마귀의
활동과 관련이 있지요.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시고 죄가 없으신 분이라고 성경에
나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고
세상에 오셨어도 죄의 소원(죄성)조차 없었을 것이라 단정합니다.
 만약 그 단정이 맞다면 죄의 소원(죄성:sinful nature)이 없는 사람에게 죄의
유혹은 더 이상 시험이 될 수가 없으니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도
특별히 대단한 의미가 될 수 없으며 죄의 소원이 있는 연약한 인간에게는 본이
될 수도 없는 것 아닐까요. 
 
십자가 수난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명하시고 예수님 자신도 땀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이 될만큼 간절히
기도하셨던  예수님,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연약한
인간적인 모습과 함께 끝내 시험을 모두 이기시고 승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성만 가진 인간이 시험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신성인 성령의 능력을 힘 입는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저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고 세상에 오신 인자 예수님에게도 육신을
따라 죄성 ,죄의 소원이 잠재되어 있었으나 성령으로 죄의 소원을 온전히
다스리고 죄의 유혹(시험)을 물리쳤다고 생각합니다. 죄성이 잉태된 적이
없을 뿐이라 보고 있고  저는 육신안에 잠재된 죄성을 죄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육체를 따라 소유욕, 성욕은 잠재되어 있으나
그 욕구 자체가 악하게 잉태되지 않는 한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탐욕이란 자신에게 정당하게 주어진 것 이상을 탐하는 것이고
성욕을 정당하게 아내로 맞은 아내에게 품는 것은 죄가 아니라
타인에게 품는 것은 죄이듯....

 원죄가운데에서 육체를 따라 죄성을 유전받아 태어나는 것이지 죄를
전가 받아 영혼(심령)이 부패한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죄성이 잠재되어 있는 상태를 두고  죄가 있다 , 영혼이 부패하고 타락했다
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단으로 정죄받은 펠라기우스의 견해를 수용한다고
그 신학자의 모든 견해를 다 수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혁주의 분도 칼빈의
모든 견해가 전적으로 옳다고 인정하지는 않는다고 하신 것처럼 교회사에서
이단으로 배격당했다고 해서 그 신학자의  주장이 모두 비성경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며  성경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느껴지거나 고려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하는 견해는  저는 남 눈치보지 않고 수용하고자 하는 편입니다.

소위 정통교리에도 성경에서 벗어난 주장이 들어 있고 이단이 아닌 자들도
이단으로 몰려 핍박받은 교회사가 있으니 이단으로 판정받은
신학자의 주장 가운데에도 성경적인 주장이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담의 후손에게 미치는 원죄의 결과나 죄성을 부인하는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라 보나 제가 그의 주장에서 고려하는 부분은

  선악을 분변 못하고 벌거벗은 것에 대한 자각이 없고 아직 악을 행했다
볼 수 없는 갓 태어난 아이의 영혼의 상태는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아담의
영혼상태와 같이 깨끗하다고 보는 부분이며 이런 견해를 이단적이라 하는
이유는 어거스틴의 교리를 지지하는 조직신학이 아담은 하나님의 의가
부여된 깨끗한 상태로 창조되었으나 아담의 후손은 아담의 죄를 전가받아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즉 갓 태어난 아이의 영혼도 전적으로 부패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학적 모순이 되는 것은 어거스틴은 죄의 근원을 자만으로 보았고 바로 그 자만이
죄의 시작이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결과라고 하는데 영유아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자만이 있다고 보는 것도 그렇고
성경은 어린아이의 속성을 교만의 반대인 겸손으로 특성지우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원죄론을 따르는 조직신학은 원죄란 인간이 날때부터 가지고 있는 죄이고
 원죄는 자손대대로 유전되며 자범죄(본죄)가 없는 영유아 상태로 죽어도 원죄로

인해서 멸망 즉 영혼심판을 받고 유기된 영유아는 지옥에 가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자범죄가 없어도 원죄가 있으니 영유아도 죄사함을 받는 세례를 받아야 죄
씻김을 받고 구원받는다는 식이 어거스틴의 주장이고 카톨릭이 이를 적극 수용했으며
조직신학은 사람이 베푸는 세례와 구원을 바로 연결짓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알기에
영유아가 세례로 구원 받는게 아니라  선택받은 영유아는 신앙고백이 없어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에 의해 거듭나서 천국에 가게 된다고 하는 것이구요.
 ( 웹 사이트에 실려진 글들과 개혁주의 분들과의 토론가운데 나온 사항임)  
 

 하나님의 주권만 강조할 뿐 공의성과 예례미아 에스겔의 나타나는 하나님의
죄론 구절은 무시하고  각 사람이 선악간에 행한 행위대로 심판받는다는 그 많은
구절들은 철저히 무시된 어거스틴의 자의적인 주장이지 않은지...
 

하나님께서 갓 태어난 아이의 영혼을 원죄로 인해서 칼빈처럼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볼지 펠라기우스처럼 아직 죄로 물들지 않은 영혼이라고 볼지
그 누가 100% 확신할 수 있는지요.  죄성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아담에게도
잠재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하고 그 죄성을 일깨워 죄로 잉태하게 한 것이
바로 마귀이지 않는지요.  마귀가 본격적으로 미혹하기 전에 하와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여 전한
상태였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들(천사와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지었는데 천사들은 개별적으로  죄에 대해 정죄하고
아담의 자손들은 아담의 죄를 전가시켜 죄인으로 심판하면 선택받지
못하고 자범죄를 짓기도 전에 죽은 영유아들은 타락천사들에 비해서도
훨씬 억울하지 않을런지 .... 원죄로 심판받고 지옥불 가운데 고통받을
 영유아들의 영혼을 어거스틴은 상상할 수 있어도 저는 그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네요. 영유아들이 어떤 모습으로 부활할지는 모르겠으나
....
 
 칼빈의 원죄론이나 개혁주의 연대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죄의 귀책을
마귀와  죄의 소원을 가지고 죄를 범하는 각 사람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아담과 아담의 후손들을 원죄가운데 태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에게
 근원적으로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아담의 죄를 후손에게 전가시켜 아담의
후손들을 모두 자동죄인으로 태어나게 하셨다는 신학설, 
인간의 측면에서는 수동적으로 태어나지는 것이나 하나님의 측면에서는
태어나게 하시는 것이기에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소리는 곧 죄인으로
태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이 됩니다.
(여기에서도 신분과 상태로 나누야 하나 고민..)

 하나님의 공의로운 죄론은 예례미야와 에스겔에 언급되어 있고
그 적용되는 실례는 민수기 14장에 나오기에 서로를 연결시켜
살펴보고 원죄론에 대한 여러 신학설들을 비교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죄 있는 육신(죄성)의 형성은 잉태(수정)된 순간부터 시작되고 태아과정을
거쳐 아담과 같은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납니다.
죄 있는 육신을 유전받아 세상에 나왔다고 죄성(sinful nature)
죄의 소원이 잠재된 상태를 즉시로 죄가 있다 보고 죄인으로 간주한다면
족보상으로 혈통적으로 아담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도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문제점을 낳습니다.

 어거스틴 칼빈의 원죄론이 내포하고 있는 그런 문제점을 없이 하려고
원죄는 정자를 통해서만  또는  성관계를 통해서(인공수정때문에
 이 주장은 설득력 상실) 전가될것이라는 설이 제기되는 것이고 어거스틴의
원죄론을 수용하는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이 성모이신(카톨릭적 표현) 마리아의
피와 살을 통한 유전자를 받았다고 주장하니 죄 없는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을 위해서 결국 마리아도 죄가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을 잉태,출산해야
한다는 교리적 필요성을 느끼고 마리아 무염시태 ,무원죄설을 주장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성령잉태를 정자 ,난자 분석할 필요없이 성령잉태로만 보고 인간은 원죄가
전가된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원죄의 결과 아래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하고 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여 자신이 지은 죄로
죄인이 된다고 하면 그런 저런 문제점들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롬 5장이 어거스틴 칼빈의 원죄론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나
롬 5장을 더 묵상하고 분석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                              의         

1. 근원: 첫째 아담               둘째 아담(예수 그리스도)

2. 대상 : 모든 사람                  모든 사람

3. 원인 : 불순종,범법             순종 ,은혜
 
4. 결과 :  정죄,사망, 심판        칭의, 생명,구원


 아담으로 인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사망이 왕노릇 하게 되었으며
 예수님으로 인해서 의가 세상에 들어왔고 은혜가 왕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죄가 사망안에서  왕 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롬 5:21>

롬 5:12 -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여기서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이르렀다는 것에 포인트를 두어야지 "모든 사람"에
포인트를 두면 롬 5장은 바르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일관되게 모든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많은 사람이 구별없이 나오고 영어와도 좀 다르니까요.
 모든 사람에 포인트를 두어 이해하니 결국 영유아도 자범죄를 지었거나
원죄를 전가받아 원죄를 지었다 라고 확대시켜 이해하는 식이 되고 이런 구절들이
칼빈의 원죄론을 지지하는 구절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이해는 다음 두 구절에서 모순이 생깁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all men)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all men)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the many)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the many)이 의인이 되리라
롬 5:18-19>
 

 정리하자면  죄와 사망(영적 사망)  의와 생명(영적 생명)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나 그 실질적 적용은 개별적이라는 것입니다.
 속죄자체는 무한속죄이나 속죄의 효력은  믿는자에게 제한적으로 나타나듯..
아담의 죄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원죄를 전가받아 자동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의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칭의를 받아  자동의인으로 거듭나는
것도 아닙니다.  

 죄를 범한 자가 정죄받아 죄인이 되고 믿는 자가 죄사함,칭의를 받아
의인이 되는 은혜를 누리는  것이 성경적 진리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지은 죄로 죄인이 되고 아담의 후손들은 지은 죄 없이도
아담의 죄로 인해 죄인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일까요.

 죄를 범한 영혼이 정죄받아 죽는 것이고 믿는 영혼이 칭의받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핑계치 못하고 하고 의에 대해서는 자랑치 못하게
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심을 인식한다면 오랜세월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신학적인 여러 원죄설 중에 어느 원죄설이 더 성경적인지 알수 있다고
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는 말씀은 아담에게 물려받은 이 썩어
없어질,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저주를 받은 죄 있는 육신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죄와 허물로 인해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리스도로 인해  살려진 영은 신령한 육신을 입고 생명의 부활로 나와
영생하게 됨과 연결되는 말씀이지요

 어거스틴 칼빈의 원죄론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나머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을 간과한 원죄론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아담의 죄를 전가시켜 모든 사람들을 죄가 있는 영혼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심판하실 주권이 있는 창조주이시나 그리 하시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성경이 그런 하나님을 증거한다고 믿지도 않구요 .

 

 사람의 영혼은 다른 사람의 죄로 더럽혀지고 죽는 것이 아니며
 또 조상 아담의 죄로 인해  부패한 상태, 타락되어진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과 생각이 악으로 기울어 죄를 범한 결과로 타락 부패해
지는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죄의 삯인 영적사망은 범죄한 자에게
임하고 그리스도의 의로 인한 영적생명은 믿는 자에게 임하는 것이니까요.
(자기 의로 인한 것이 아니니 구원은 선물이요  이로 인해 성도는 믿음과
구원을 자기로부터 나온 것처럼 자랑치 못하는 것이구요)

 

 아담의 후손은 아담이 범한 원죄의 결과 아래서 태어나기 때문에 언약의
대표자인 아담의 원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리신 저주의 적용을 받습니다.
 그 저주에 "너의 후손들이 네 죄로 인해서 죄인으로 태어날 것이다" 하는
영혼에 대한 저주규정은 없습니다. 잉태와 출산과 수고의 고통,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육신적 저주가 있을 뿐이지요.
 아담의 원죄로 인해 온 인류에게 정죄와 사망, 심판이 임하게 되었어도 
각 사람은 저마다의 악으로 죽고 범죄한 영혼이 죽고 모든 사람은 선악간에
행한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것이 성경진리입니다.
 
그리고  율법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어도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다는
롬 5:14 말씀은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양심법에 적용을 받듯 아담으로부터 모세 율법
이전의 사람들도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게된 아담의 후손이기에
아직 죄와 사망의 법으로 작용하는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기에
( 롬 2:14) 선악과를 따먹은 죄를 범하지 않은 자들 위에도( those who did not sin
by breaking a command)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롬 5장의 "모든사람"이라는 단어때문에 대부분의 주석들이 칼빈 어거스틴의
원죄론에 근거하여 해석하고 있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담의 죄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 (자범죄 없이도) 되었다면 결국은 예수님의 의로 인해서
모든 사람에게 의인이 (믿음이 없이도) 의인이 된다고 해석하는 경우를 낳고
맙니다.   

 태어난 아이가 자라면서 잠재된 죄성이 발현되고 양심이 작용하고
지,정,의를 통해 선악을 인식, 분변하는 과정에서 죄의 유혹을 받게 되어
 결국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지요.  롬마서 5장의 죄인(의인)이 되었다에서
became sinners( righteous) 로 하지 않고 아담의 불순종(죄)와 예수님의
순종(의)이 모든 사람 (많은 사람)을 made sinners( righteous)로
나옵니다.

 
 죄악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영혼은 거듭나서 않는 한 새롭게 될 수도 없고
사람의 거듭남은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어지는
것이고 회심없이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여기에 영유아를  원죄로 인한 죄인으로 보느냐  영유아는 어떻게
거듭나게 되느냐 구원받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어린아이가 천국의 주인이라고 한 칼빈이 과연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 전적타락설을 주장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개혁주의
분들이 그렇게 해석한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어쨌든 저는 칼빈의 원죄로 인한 전적타락설이나 제한속죄설은  알미니우스의
원죄론이나 무한속죄설과 상보되어야  더 성경적일 수 있다고 보는 바입니다.
칼빈 메소디즘이라는 말이 있는데  칼빈 알미니즘은 어떨지...


 * 다음은  원죄론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언급할 필요가 있어서
 
* 저는 영,혼,육의 삼분설을 취하고 있고  육이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 보고
있습니다.  영이나 육과 달리 혼을 어떻게 분석하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는 것 같고 정신(mind) 마음(heart)이 혼에 속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으나
일단    

영 = sprit
혼 = soul,
(good conscience:양심 + sinful nature with its passions and desires:정욕)
육= body

성경에서 육신은 육체(flesh)를 따라 나오는 죄성,정욕을 가리키는 것 같구요

속사람(inner being,inwardly)은 성도의 영과 양심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고
겉사람(outwardly)은 정욕과 육을 두고 한 말이라 생각하며 성도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고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구요( 고후 4:16)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혔느니라
갈 5:24> 
죄인은 정욕을 따라 행한 죄와 허물로 인해 영이 죽고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지 못한 상태에 있는 자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고 보구요.

출처 : 기독교 원죄론
글쓴이 : ago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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