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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관련/신앙관련

죄의 유전에 관한 에스겔서

by 디클레어 2010. 2. 5.

(5) 에스겔서 18장 4절 20절

 

에스겔서 18장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을 다루는 장이 아닙니다. 그 장에서 심판과 보응을 말하는 것은 자범죄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며, 아담의 범죄로 죄가 이미 세상에 들어온 이후에, 각각 개인들이 저지르는 자범죄에 대하여 각자가 자기 책임하에 죄값을 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 장 어디에도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하지 않고 있으며 그 장에서 다루는 죄들은 모두 자범죄들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죄를 말씀하시고 싶으셨다면 그장에서 말씀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이 하나도 없으신것은 원죄는 생각하지도 않으신다는 반증인것입니다

 

(6) 왜 의는 유전되지 않는가?

 

죄가 유전된다면 ( 자범죄가 유전되는 것은 아니지만)왜 의는 유전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죄의 유전에 대한 반론중의

하나였습니다.

저는 이 반문에 접하는 순간 이 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과연 구원을 얻었는가? 하는 의문에 봉착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거듭나서 구원을 얻고 의인이 되더라도 죄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십니까?

거듭나면 인간의 모든 죄가 없어집니까? 로마서 7장은 바울이 거듭나고 수많은 전도여행을 마치고 막 로마를 향해 마지막 여정을 떠나기 전에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그가 7장에서 내 속에 거하는 죄(7:17)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사망의 몸이라 말합니다. 왜 의인 안에 죄가 동거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다시 20절에서 자기가 원치 않는 바를 행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자기 속에 거하는 죄라고 변명합니다!

 

정당한 반론을 구원받는 문제에까지 연결을 시키시다니... 지기님은 얼마나 구원과 거듭남에 확신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없어지지 않고 우리가 의롭다 인정함만 받을 뿐입니다. 사람이 성장을 하게 되어 일을 하고자 할 때 많은 난관이나 유혹에 시달리게 됨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보면 타인과 의견충돌이 생길 수도 있고, 다툴수도 있으며 갈라설 수도 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생각에 역시 나는 완전하지 못하고 또 다퉜구나 라던가 아 내가 조금만 참을걸 하며 후회하는 마음으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그 변명이 하나님보시기에 합당하실까요? 역시 바울의 고백은 자신의 죄악됨을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며 분별이 되겠습니다.

 

노아는 당대의 의인으로 완벽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창 6:9) 그러한 그도 죄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번제 희생을 드렸던 것입니다(창 8:20) 그는 구원의 방주, 썩지 않을 몸의 상징,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인 전나무로 만든 방주안에 들어갔으며 그 방주는 역청(코페르-대속)으로 역청칠(카파르-대속하다 동사)하였습니다.

 

그가 번제희생을 드린것은 죄때문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한 것입니다 모든 번제와 희생물이 죄악을 털어내기 위해서 드려졌다는 생각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지는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역청을 칠한것은 물이 새는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지 어떤 영적인 의미가 있는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그런식으로 해석하면 성경 못 보겠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물론 그 방주를 예수님으로 영적인 해석을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원죄를 얘기하는데 끌어오는것은 넌센스입니다.

 

대속이란, 모든 죄들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덮어두는 것이요, 가리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를 바라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님을 좇아 생활하는 삶이 바로 의인의 삶입니다.

나중에 세상 끝에 부활하면 새로운 몸을 입을 것이며 ( 고전 15:43-44, 54, 48-52), 사망도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계 20:14) 그때는 죄라는 것이 온전히 없어질 것입니다. 그동안에는 의인안에도 죄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한 새 생명이 날마다 자라갑니다. 이 생명은 말씀을 먹고 자랍니다. 이것이 바로 겉사람과 속사람의 차이입니다.(고후 4:16)

의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그것이 죄를 없애주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죄는 덮이는 것이며 그 덮인 상태가 전이되지 않는 이유는 그 의자체가 믿음으로만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따라서 의인이라도 죄가(원죄) 그대로 있기에 그 원죄가 다음세대로 전이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 것입니다.

 

의인은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죄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어날때부터 원죄를 뒤집어쓰고 태어났다는것에는 반대합니다. 자라면서 사람이 연약하기에 범죄할 수 있다는것에만 공감하고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