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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계시록풀이 연관 관련

계시록 9장 1절이후 전 삼년반 계속...

by 디클레어 2010. 9. 7.

계시록 9장 1절이후 계속...

 

(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내가 보니, 하늘에서 별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데 그가 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를 받더라.

 

하늘의 별은 천사라고 해석하는것이 가장 오류가 적은 것 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 환란을 허락하셨다고 하셨으면 그가 사탄이든, 또 천사든 어느 누구여도 관계없기 때문이다. 중요하지 않은것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2) 그가 끝없이 깊은 구렁을 여니, 큰 용광로의 연기 같은 연기가 구렁에서 올라오는데 해와 공기가 그 구렁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더라.

 

해와 공기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없어서는 안될 필 수 요소이다. 크리스챤들에게 필수적인 것이라면 해와 공기로 표현된 이것은 어떠한 것이겠는가? 그건 복음이다. 계시록은 불신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믿는자들을 위한 기록이다.

 

(3) 또 그 연기에서 메뚜기들이 땅 위로 나왔는데 땅의 전갈들이 지닌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더라.

 

이들이 누구인지는 잠시 뒤에 알아보기로 하자.

 

(4) 그들에게 명령이 내려지기를 땅의 풀이나 또 어떤 푸른 것이나 어떤 나무도 해치지 말고 다만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장으로 표시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치라고 하더라.

 

하나님의 인장으로 표시한다는 말씀은 계시록외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인장으로 표시를 하고 따라쟁이인 사단은 666으로 표시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7년간의 환란 중에 전 삼년 반은 고통을 당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들이 해칠 수 있는 건 하나님의 인장으로 표시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에 나는 택함 받았으며, 나는 주의 백성이며, 믿음으로 구원받은 주의 성도이니 나를 해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상황은 십 사만 사천에게만 해당되는 듯 보인다. 인을 치는 상황은 7장에 144,000이외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리는 결국 거의 대부분의 모든 성도들은 후 삼년반의 환란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이 메뚜기(황충)들은 사람을 죽이지는 못한다. 다만 다섯 달 동안 괴롭게 할 뿐이다. 전 삼년 반 어느 시기에 인 맞은 십 사만 사천이 존재하고 있음으로 이 상황은 이들이 휴거되기 전, 그러니까 시온산에서 그들 만이 배울 수 있는 노래를 배우고 있기 전이라는 거다. 그래서 이 상황을 전 삼년 반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또 이 메뚜기들이 십 사만 사천을 설사 건드리고 싶어 하더라도 역시 죽이지는 못한다.

 

(5) 또 그들에게 명령이 내려지기를 그 사람들을 죽이지는 말고 오직 다섯 달 동안 고통만 주라고 하는데, 그 고통은 마치 전갈이 사람을 쏠 때의 고통과 같은 것이라.

(6) 그 날들에는 사람들이 죽음을 구하여도 찾지 못할 것이요 또 죽으려고 애를 써도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라.

 

6장의 이절이 고민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걸 문자그대로 해석해야 할까?

그건 아닐거다 싶었다.

사람이 죽음을 구하는 것은 평안을 얻기 위해서다. 죽으면 다 잊게 되니 고민할 일도 없으니 죽으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날엔 평안을 구할 수 없다고 봐야 옳은 해석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기적도 일으키시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리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행하지 않으신 것은 성경 곳곳에 드러나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손에서 아벨을 구해 낼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칼을 빼어들어 죽이려 했을 때도 죽인 이후에도 충분히 살려 내실 수 있음에도 그리하지 않으시고 중간에 막으셨다.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는가? 그러므로 환란 중에 그러한 일을 행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메뚜기들은 어떤 자들일까?

 

(7) 또 그 메뚜기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는 금면류관 같은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들의 얼굴과 같고

(8) 그들의 머리카락은 여인들의 머리카락 같았으며, 그 이빨은 사자들의 이빨 같더라.

(9) 또 그들의 흉배는 철흉배 같았으며, 날개 소리는 전쟁터로 달려가는 많은 말들이 끄는 병거 소리 같더라.

(10) 그들에게는 전갈과 같은 꼬리가 있고 그들의 꼬리에는 쏘는 침이 있으며 다섯 달 동안이나 사람들을 해치게 하는 권세가 있더라.

 

일단 이 메뚜기들은 금면류관 같은 것을 썼다고 한다. 면류관이면 면류관이지 금같은 면류관은 또 무엇인가?

그 의미는 이들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완전한 승리가 아닌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 이들이 누구이겠는가?

아무래도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의 무리일 가능성이 높다. 거짓사도요, 배도한 목사들이요, 가증한 선지자들일 것이다. 물론 배도는 다섯째 나팔이전부터도 시작되어 왔다. 복음의 변질은 항상 사탄이 시도하는 것이고, 그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다만 이 때쯤에 이들의 배도가 극에 달해 있을 것이다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인을 맞지 않는 자들이란 성화의 과정(거듭남)이 없는 자들이므로 그 과정을 위해 연단을 받는 성도일 수도 있다.

 

디도서 1장

.....

(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바울사도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나 행위가 따르지 않는 자의 믿음을 아예 믿음이라는 단어의 표현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건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 것이 어찌 믿음이란 말이냐, 고 항변하는 듯이 느껴진다. 바울사도의 말에 의하면 그건 믿음이 아니고 그냥 하나님을 아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자들은 이 때 전갈이 쏘는 듯한 고통을 맛보며 평안을 찿으나 찿지 못하고 그런 상태에서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그 후에 그들 중에  환란의 시기에 순교하는 거듭나는 성도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필자는 행위 구원론자는 물론 아니다. 행위로 구원받을 자신도 없다. 하지만 구원받았다고 믿는 자들이 행위로 보여주는 성화되어가는 과정이 없다면, 그건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반론을 봐왔다. 그러니 시시비비는 가리고 싶은 생각이 없다. 반대한다면 댓글로써 족하다.

 

그들은 양심이 먹통이 된 사람들이고(가슴은 철흉갑이요,) 아무리 상식적으로 얘기를 해도 통하지 않을 사람들인 것이다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말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

 

한마디로 안하무인, 안중무인, 독불장군같은 아집과 고집으로 똘똘뭉쳐진 그런 자들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을 다른 누구라고 생각해도 관계없다. 환란안에서 만날 자들이니 조금 기다려 보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