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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계시록풀이 연관 관련

계시록 6장 흰말을탄 분과, 붉은말을 탄자

by 디클레어 2010. 9. 8.

작가가 글을 써 나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방법으로 손꼽히는 것이 일단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줄거리를 작성해 두어서 글을 써가는 도중 길을 잃지 않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게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놉시스라 불리는 그 개요위에 살을 붙여가며 서술해나가는 것이 많은 작가들이 써먹는 방식이 아닐까 한다.


사람마다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전통적인 이 방법이 아마도 가장 안정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께서야 말로 인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러나 또 살풋 감추시기 위해 그러한 방법을 택하지는 않으셨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신다면 지금 계시된 것 보다도 훨씬 더 어렵게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어려우면 낭패다. 생각하셔서 알려주신 계시가 아무 쓸모없게 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도 사실 많은 학자들이 계시록을 연구해 왔다. 그 자료가 쌓이고 쌓여서 지금 우리 손에 들어온 주석들이 이제는 차고 넘친다. 그 주석들만 봐도 인생을 낭비할 수도 있을 정도다. 심했나? ^^;;  그렇게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옳은 계시록풀이를 본다 해도 본인의 마음에 이거다 하고 흡족한 것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서론이 긴가 하실 것이다. 바로 이 계시록 6장 때문이다.


6장을 상징으로 시작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분 자신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역사를 시작하신다.


(1) 또 그 어린 양이 그 봉인 가운데 하나를 여실 때 내가 보고, 내가 들으니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천둥 같은 소리로 말하기를 "와서 보라." 하기에

(2) 내가 보니, 보라, 흰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자가 활을 가졌더라. 그에게 한 면류관이 주어졌고 그는 나가서 정복하고 정복하려 하더라.


성경에 말이 나오는 부분이 그래도 좀 비슷하다고 하는 곳이 스가랴서 6장에 있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봐도 이 말 들 하고는 비슷한 구석이 없다. 그곳에 나오는 말들이 이 곳에 나오는 것과 비교해 색깔부터 다르고 나오는  순서도 틀려서 갖다 붙이기가 영 민망하다.  그렇다면 이 말은 이곳에만 단독으로 쓰인 것으로 보는 것이 옭겠다. 


그런데 혹시 궁금해 할까봐 스가랴 6장을 가져오겠다.

 

(1) 내가 돌이켜 내 눈을 들어 보니, 보라, 두 산 사이에서 네 병거가 나오며 산들은 놋의 산들이라.

(2) 첫 번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며, 두 번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요,

(3) 세 번째 병거는 흰 말들이며, 네 번째 병거는 회색빛 갈기의 적갈색 말들이더라.

(4) 그때 내가 내게 말하던 천사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 그 천사가 내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이들은 하늘들의 네 영들인데, 온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리에서 나가는 것들이라." 하더라.

(6) 거기에 있는 검은 말들은 북쪽 지방으로 나가고, 흰 말들이 그들을 뒤따르며 회색빛 갈기의 말들은 남쪽 지방으로 나가더라.

(7) 적갈색 말들은 나가서 가기를 구하였으니 땅을 두루 다니고자 함이더라. 그러므로 그가 말하기를 "너희는 여기서 나가 땅을 두루 다니라." 하니, 그들이 땅을 두루 다니더라.

(8) 그때 그가 내게 소리지르고 내게 고하여 말하기를 "보라, 북쪽 지방으로 간 것들이 북쪽 지방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


이러하다.

이 장에서 영감을 얻으신 분들도 계실 것이나  본인은  완전 와 닿지를 않는다.

해서 계시록 6장의 상징은 단독으로 쓰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흰 말탄자를 교회에서 적그리스도로 분별하는 분도 계시고, 예수그리스도로 분별하는 분도 계시다. 또 은사주의자들이나 이단, 삼단들 중에도 이 흰말탄자를 적그리스도로 분별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예수그리스도로 분별하시는 분도 계시다.

우리는 그런 것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혹시 이단 중에 누군가가 이 흰말탄자를 적그리스도로 분별했다고 해서 저놈은 이단이니 잘못 해석한거다, 그러니 이것은 예수그리스도다 라고 할 필요도 없고, 정통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어느 교단에서 이 흰 말탄자를 적그리스도라 분별한다 해도 꼭 맞으라는 법도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객관적일 필요가 있다. 누가 맞고 안 맞는지는 반반의 확률이다. 혹시 이 흰말탄자를 다른 무엇인가로 해석하는 분이 있다고 해도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을 믿고 받아 들일지 말지는 자신의 선택인 것이다.


자꾸 말이 길어진다.

솔직히 이 흰말탄자에 대해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찾아오는 주장들이 많이 빈약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많은 부분을 써 두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찾을 근거가 빈약할 수 밖에 없다.

보라 딱 한 줄이다.


(2) 내가 보니, 보라, 흰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자가 활을 가졌더라. 그에게 한 면류관이 주어졌고 그는 나가서 정복하고 정복하려 하더라.


아니..... 두 줄이다. ^^;;

 

주님께서 활을 가지셨다는 것이 성경어디에 있던가? 한 번 찾아보자.


시편 7편


(12) 그가 돌아키지 아니하면 그 분께서 자기의 칼을 가실 것이니, 그 분께서 활을 당기어 준비하셨도다.


또 시편 21편


(12)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돌아서게 하시리니, 주께서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시리이다.


그럼 이렇게 주님께서는 활을 가지셨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 그에게 한 면류관이 주어졌다고 한다. 면류관은 승리를 뜻한다. 또 정복하고 정복하려 한다는 것은 승리하고 또 승리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그의 이 땅에 남긴 복음은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 믿는 성도와 함께 할 것이다.


마태복음12장이다.


(17) 그것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니, 말씀하시기를

(18) "보라, 내가 택한 나의 종, 나의 사랑하는 자를, 그 안에서 내 혼이 기뻐하노라. 내가 내 영을 그에게 두리니 그가 이방인들에게 심판을 보이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고 울부짖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한 아무도 그의 음성을 길거리에서 들을 수 없으리라.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할 것이며, 연기나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리니, 그가 심판하여 승리할 때까지 하리

라.


(20) A bruised reed shall he not break, and smoking flax shall he not quench, till he send forth judgment unto victory.


승리할 때까지는 언제까지인가? 사탄을 굴복시키는 그 순간까지 계속 그 분의 역사를 계속해 나가시겠다는 것이다. 그 분의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는 것이다. 주님 오시는 그날이 승리의 날이 되기도 할 것이지만, 우리를 이 땅에서 통치하시고, 우리의 왕이 되어 열방을 그리고 모든 민족들을 그 분 발 앞에 복종하게 하실 때가 바로 승리가 완성될 때이다. 

그래서 이 흰 말탄 분은 예수그리스도시다.


그럼 두 번째는 어떤 말이 나오는가?


(3) 어린 양이 둘째 봉인을 여실 때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기를 "와서 보라." 하더라.

(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는데 그 위에 앉은 자에게 땅에서 평화를 제거하는 권세가 주어졌으니 그들이 서로 죽이더라. 또 그에게 큰 칼도 주어졌더라.


그럼 두 번째는 어떤 말이 나와야 하는가? 정복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은 무엇을 정복한다고 보는가? 땅을? 아니면 재물을? 아니면 명예를?    ............아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관심있는 것은 이 땅에 그런 속된 것들이 아니다. 바로 주님의 지체되는 우리다. 우리를 소유하고 싶어 하시는 거다. 더욱 더 많은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고 싶어 하시는 거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은 창조주되신 그분께서 강권적으로 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고계시는거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로 시작해서 이스라엘까지, 그리고 현재 이방 많은 민족들에 이르기까지 그 분은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의 사역은 이렇게도 힘이 드는 거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탄도 피조물이다. 그런데 그는 순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대적하는 자요, 교만한자요, 하나님자리를 넘보는 자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를 넘보니 당장 죽여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를 이용해 우리를 연단시키려고 계획하셨다.

그래서 그에게 권세를 허락하신 것이다. 그가 이 땅에서 우리를 미혹할 수 있는 것은 속여서 밖에 가능하지 않다. 어느 정도의 권능은 있지만 역시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미혹은 어설플 것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난 포스가 담겨있듯이 보일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더라라는 13장의 거짓 선지자의 기적을 보라,  근데 사실 그저 눈속임이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음이 19장에서 밝혀진다.


(20) 그러나 그 짐승이 잡히고, 짐승 앞에서 기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그와 함께 잡혔으니 그는 짐승과 더불어 그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의 형상에 경배한 자들을 속이던 자라. 이 둘이 유황으로 불타오르는 불못에 산채로 던져지더라.


혹시 용이라 불리는 사탄은 좀 나을라나 모르겠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계속 정복을 하려고 하는데 방해자가 출현한다. 이런.... 용이다. 붉은 용이다. 그가 붉은 말을 탄자다.

계시록 12장에 하늘에 붉은 용이 여자가 낳은 남자아이를 삼키려고 그 여자 앞에 웅크리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아이는 하나님과 하늘의 보좌앞으로 들려 올라간다. 꼭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격이다. 이런 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뭐를 계획해서 실행에 옮겨도 신경도 안 쓰시고 그 분 하실 일은 당연한 듯 하시는 분이신거다. 그러니까 하나님이시지 뭐 달리 하나님이시겠는가 마는.....


붉은 용이니까 붉은 말을 탄자가 사탄이라고 주장하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뭐, 그렇다고 말씀드리겠어요. 시기적으로 맞잖아요, 예수그리스도 복음과 교회, 이후 사탄의 등장-교회의 박해, 혹은 교리의 변개, 뭐 큰 그림으로 보더라도 이 해석이 맞아 보이시지는 않나요? 아니라고 하신다면 할 수 없구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피곤하네요,

 

다음 날,

피곤이 좀 풀려서 덧 붙이자면, ㅎㅎ

오해하실까봐 드리는 말씀인데 사탄의 본격적인 등장은  예수그리스도탄생전이라는 사실을 말씀안드렸네요, 태클들 거실까봐.... 남자아이를 낳기 전에 용이 먼저 웅크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럼 이장은 이걸로 마치고 다음은 세번째봉인의 검은말을 탄자에 대해서 올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