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6장, 불의한 청지기비유
그동안 많은 분들이 계시록해석에 대해 돈을 건다는 것에 대해 불경스러운 짓이 아닌가 하는 말씀들을 많이 하셨고, 저는 성경에 근거가 있는 것이다라며 누가복음16장1절이하를 보고 그 의미를 묵상해보면 상금을 건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것 이라고 말씀드려 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깨닫기 어려운 말씀임은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의 해석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계시록을 알지 못하면 제가 이 비유를 설명드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망설여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불의한 청지기비유는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절대로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계시록을 해석한 후 이 비유를 보는 순간, 그 의미의 이해가 저절로 됨을 느꼈고, 그래서 계시록을 깨닫지 않고는 이 간직한 뜻을 알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에 해석을 올리는 것을 망설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해하시던, 그렇지 못하시던 더 많은 오해가 쌓이기 전에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받아 들이지 못하실 것 까지 각오하고 그 해석에 대해 설명을 할까 합니다. 최대한 이해하시기 편하게 기술해 볼까 하는데, 근데 저는 그런 능력은 없는 것 같습니다. ^^;;
일단 8절까지 보겠습니다.
(1) 또 주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떤 부자가 한 청지기를 두었는데 그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비난이 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말하기를 '내가 너에 대하여 이런 소문을 들었는데 어찌된 일이냐? 네가 청지기를 더이상 못하리니 네 청지기직을 청산하라.'고 하더라.
(3) 그러자 그 청지기가 속으로 말하기를 '주인이 내게서 청지기직을 박탈하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일굴 수도 없고 구걸을 하자니 부끄럽도다.
(4) 내가 무엇을 해야 될는지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내가 청지기직에서 해고된 후에도 사람들은 나를 자기들의 집으로 맞아 주리라.'고 하고
(5) 자기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모두 불러 첫 번째 온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 주인에게 빚진 것이 얼마나 되느냐?'고 하자
(6) 그가 말하기를 '기름 일백 말이라.'고 하니, 빚진 자에게 말하기를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서 오십이라 쓰라.'고 하니라.
(7) 또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너는 빚진 것이 얼마나 되느냐?'고 하자, 그가 말하기를 '밀 일백 말이라.'고 하니 그에게 말하기를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고 하니라.
(8) 이에 그 주인이 그 불의한 청지기가 현명하게 처리하므로 칭찬하였으니 이는 이 세상의 자녀들이 그들 세대에 있어서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현명하기 때문이라.
세상의 어떤 주인이 자신의 재산을 낭비하는 청지기를 칭찬할 수 있습니까? 세상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인은 자신의 재산을 낭비한 청지기를 오히려 칭찬을 합니다. 또 발칙하게도 이 청지기는 자신의 재산도 아니면서 마치 자신의 재산인 양,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자기 임의대로 그들의 빚을 탕감해주며 선심을 씁니다. 이건 주인의 재산을 더 낭비하는 짓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건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고 더 꾸지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세상이치이고 도리입니다. 누구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비유를 처음 읽었을 때, 혹시 누가 변개시킨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앞뒤가 맞지 않는 괴상한 논리여서 별로 생각도 하지 않았었고, 주석을 보고 나서도 말도 안 되는 해석이라는 생각에 무심코 넘겨 버렸었습니다.
어떤 해석이었는지 여기서 주석을 한 번 보겠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채무자들이 직접 자필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일은 청지기가 임대차 계약이나 채무자들과의 계약을 전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청지기는 채무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여 각각 절반에서 1/5정도로 부체를 탕감(蕩減)해 주었다. 미루어 짐작컨대 다른 채무자들에게도 이러한 수준에서 빚을 탕감해 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빚을 탕감해 준 데에는 그 채무자들이 청지기가 쫓겨난 후 그에게 받은 은혜로 인하여 그의 생계(livelihood)를 책임져 줄 것이라는 저의가 숨어 있다.
혹시 이 해석을 인정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마는 저는 그리 탐탁ㅎ지 않아서 받아 들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
이 비유의 숨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깐 주체를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주체를 제위께서 이해하듯이 주인이나 청지기로 보는 것이 아니고 바로 빚진 자들로 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빚진 자라 함은 누구를 거론함인지 아실 것입니다. 바로 성도들입니다. 그 성도들에게 초점을 맟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이 청지기의 정체는 하나님의 종이기도 하겠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맡은, 그리고 좀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은 종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종이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받은 자로써 성도를 일깨우고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이곳에서의 표현은 재산상 빚을 탕감해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마는 성도입장에서 보면 결국은 그는 그들을 돕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좀 더 섬세하게 들어가면 빚진 자들의 고통을 탕감해 주는 역할을 했듯이 이들의 구원을 위해 힘썼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관심있는 것은 재물이 아닙니다. 바로 성도이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지옥에 가지 않고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는 것이 그 분의 바램입니다. 그러니 그 분께서 그 하찮은(불의한) 재산인 재물을 가지고 성도들을 구하고자하는 역할을 했던 청지기를 칭찬한 것은 당연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기 전, 이 불의한 청지기는 하나님의 재물을 많이 맡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을 돕기는 커녕, 자신만의 안녕을 위해 살았던 것이고, 그래서 주인에게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실상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하고 있는 재물은 결국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물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재물을 가지고 성도를 구하는 역할을 해 낸다면 그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 마땅한 종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을 위해서가 아니고 바로 저를 위해서 상금을 걸었던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재물을 가지고 많은 분들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저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겠지요.^^
또 그 상금을 거는 것에 혹시라도 관심을 가지고 많은 분들이 연구를 하며 오류를 발견하는 일을 하다 보면 이 해석이 옳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거짓해석이 난무하는 이 계시록해석의 세계에서 절대 흔들리지 않는 믿음까지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 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자가 하나님말씀을 가지고, 그것도 누구도 확신을 가지고 해석하지 못한 계시록을 가지고 상금을 걸 수 있겠습니까? 누구라도 그런 자신감은 가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못할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계시록해석들이 있고, 그러다 보니 자신의 해석에 그만큼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만큼 확신을 하고 있다는 얘기이니 그것을 확인하시는 여러분께서는 실망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이 것에 대해서는 잠깐 이것으로 마치고 8절에 있는
이 세상의 자녀들이 그들 세대에 있어서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현명하기 때문이라.
이 구절의 숨은 뜻을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해석은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을 읽어보시지 않으신 분들이나 이해를 못하신 분들에게는 조금 난해한 해석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쓰여 있습니다만 이 부분은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주님의 언급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세상의 자녀들은 오늘날 모든 주님의 자녀들을 얘기하심이요, 여기서 빛의 자녀들이라 하심은 범죄한 하나님의 천사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고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지혜롭고 현명한 일인지는 잘 알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 분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불못의 고통이 있을 뿐이라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인 그들은 불멸의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신상에 대해 그리 크게 염려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들인 것만 알고 있었지, 하나님께 불순종을 하면 불못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것은 몰랐거나 혹은 개의치 않았던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형벌을 받는것을 봤던 적이, 그들이 사는 동안 없었을 수도 있고, 자신들이 그 고통에 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혹은 알았다 하더라도 여자들에 대한 유혹이 너무 강해서 이겨내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아마도 인간들인 남자와 여자가 새로운 생명을 그들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보다 오히려 늦게 창조된 남자와 여자, 둘이서 하나님의 어떤 도움없이도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을 것입니다. 그 유혹이 너무 강해서 그들 스스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신들의 처소를 떠나게 됨으로 하나님께 범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그런 그들은 자신들의 범죄로 인하여 지금 깊은 흑암에 갇혀있고, 마지막심판 때까지 억류되어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자들을 주님께서 오늘날 이 세상의 자녀들과 대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 이 세대의 자녀들은 어떻기에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이 시대의 자녀들은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것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것이 그리 큰 선물이 아닐 수도 있으나, 짧은 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들에게는 그건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선물입니다. 게다가 평안하고 안락하며 끝없이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영원한 천국까지 보장받는다면 세상에 어떤 것이 그것과 비교 될 수 있을까요. 바로 이렇듯 이 세대의 아들들은 자신에게 어떤 것이 가장 소중한지 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모르고 있는 빛의 아들들보다 그것을 아는 이 세대의 아들들이 그들 자신을 생각하는 데에는 오히려 현명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렇듯 온 세상을 얻으려 힘을 쓰는 것 보다, 하나님을 알아 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주의 자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그 분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과 지혜와 재물과 명예와 영광들이 모두 쓰레기임을 알게 되면, 바라는 것은 천국이요, 그 분의 긍휼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고하지 마시고 오직 그분의 긍휼을 구해야 할 것을 권유 드립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머지 구절들을 읽어 보시면 이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해석의 감을 잡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러면 너희가 죽을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들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일에 신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신실하며, 또 지극히 작은 일에 부정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부정하니라.
(11) 그러므로 너희가 불의한 재물로도 신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참된 재물을 너희 신용에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에 신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 자신의 몫을 주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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