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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숫자로푸는계시록

8. 계시록8장, 나팔재앙의 시작

by 디클레어 2011. 1. 2.

 

8. 계시록8장, 나팔재앙의 시작 

 

 

 

 

 

 

나팔재앙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해석을 의심하는 분들을 위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앞선 세 장의 해석에서 보았듯이 계시록의 기록이 예수그리스도의 초림이후에 일어난 일들과, 또 그 이후부터 일어날 일들을 기록한 역사적인 관점에서 본 黙示(묵시)형태라는 것을 강조한 이 해석이 과연 올바른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 계시록에 쓰여 진 것은,

 

(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시록1

 

에 전혀 벗어남이 없는 말씀에 기초를 둔 것이다. 따라서 요한이 AD96년경 이 글을 기록할 당시에 이미 그는 로마디도장군의 예루살렘성전붕괴사건이라든지, 또 네로에 의한 초대교인 학살사건이라든지 하는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모두 알고 겪었었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보고 계신 바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시간과 시대, 그리고 말씀에도 전혀 어긋남이 없다는 것을 피력하는 바이다.

 

(1) 어린 양이 일곱째 봉인을 여실 때 하늘에 약 반 시간쯤 정적이 있더라.

 

여러분께서는 앞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나 마흔 두 달, 사흘 반, 그리고 칠십 이레, 한 이레, 한 시간등 사용하신 시간들에 주체가 있고 그 주체에 맞는 시간적 의미가 구별되어 있음을 알아본 바가 있다. 그렇다면 이 반시간도 어떤 숨겨져 있는 뜻이 있지 않겠는가 싶었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아무 뜻 없이 이 반시간을 쓰시지는 않았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그 의미에 대해 묵상하던 중 열 왕에게 쓴 한시간이 7년이라면 반시간이면 삼년반을 뜻한다는 것을 떠올리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 반시간, 즉 삼년반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묵상한 끝에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알아보자.

 

 

### 반 시간의 의미 (일천이백육십일의 의미)

 

(1) 어린 양이 일곱째 봉인을 여실 때 하늘에 약 반 시간쯤 정적이 있더라. _한글킹제임스(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개역성경

(1) And when he had opened the seventh seal, there was silence in heaven about the space of half an hour. -KJB

 

계시록에서 일어나고 있거나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로 받아 들여야 할 때가 있고, 또 상징적으로 받아 들여야 할 때도 있다. 여러분이 앞에서 본 이 일은 실제적으로 하늘에서 일어난 일 일수도 있고, 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계시하는 것이므로, 환상을 통해 사도요한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 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잠깐 일곱 나팔이 주님 부활승천 이후, 초대교회부터 성도들이 박해를 받은 사실부터 기록했다는 것으로 분별한다고 얘기한 바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사실인가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고 검증을 해 보도록 하겠다. 일단 반 시간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열 왕에게 쓴 한 시간에 대해 알아보자.

 

(12) 또 네가 본 그 열 뿔은 열 왕이라. 아직 왕국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그 짐승과 더불어 한 시간 동안 왕들로서의 권세를 받으리라.-계시록 17

 

짐승(적그리스도)은 한이레(7)동안 권력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한 시간의 의미는 열 왕이 짐승과 더불어 한 시간 동안 권세를 받는다고 했으니, 같은 7년의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은 이제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81절에서는 반시간이라고 한다. 한 시간이 7년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럼 반시간이면 3년 반을 뜻하는 것이겠다. 생각을 해보자. 혹시 주님의 공생애기간이 얼마였는지 아시는가? 주님의 사역기간은 침례(세례)요한에게 세례(침례)를 받음으로 시작하셨다. 그리고 광야에 나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이후 두 제자를 만나시고 첫 유월절에 가나에서 포도주기적을 일으키심으로 그 분의 메시아 되심을 증명해 나가신다. 그리고 유월절을 두 번 지내시고, 여행하시며 전도사역을 하신 후에 마지막 주간 유월절이 끝나고 가룟유다에 팔려 십자가에 달리신다. 성경은 이렇게 증명한다.

 

그 보다 먼저 많은 분들이 예수님 사역기간을 삼년정도라고 알고 계시는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계산해 본 바에 의하면 만 삼년은 가볍게 넘는다. 침례를 받으시는 때를 공생애의 시작으로 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는 바로 광야로 나가셔서 사십일 금식기도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침례를 언제 받으셨겠는가가 문제인데, 아무리 주님이실지라도 보는 눈이 있으니 한 겨울에 날씨가 춥고 물이 찬 상태에서는 침례를 받으실 수는 없으실 것이고, 많이 추워지기 전인 시월이나 늦어도 십일월정도에 받으셨다고 가정한다 해도 가나에서 포도주기적을 일으키시고 닛산 월인 삼월경에 유월절을 지내시러 예루살렘에 가셨으니, 이 때까지 만도 벌써 약 오, 육 개월의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이것이 사실인가를 성경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그 시작부터 찾아보자.

 

마가복음1

 

…….

(9) 그 무렵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오셔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더라.

(10) 곧 물속에서 올라오시자, 하늘들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자기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시더라.

(11) 그때 하늘에서 한 음성이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네 안에서 내가 매우 기뻐하노라."고 하시니라.

(12) 그리고 즉시 성령께서 주를 광야로 내보내시니라.

 

이 침례를 받으신 때를 공생애의 시작으로 본다. 그러고 나서 40일 금식기도가 끝난 후에 길을 걸으시다가 침례요한의 말로 인해 그의 제자 둘이 예수님을 좇게 된다.

 

요한복음1

 

…….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나에서 첫 이적인 포도주사건을 일으키신다.

 

(1) 셋째 날에 갈릴리 카나에서 혼인식이 있었는데 예수의 모친도 거기에 있더라.

(2)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그 혼인식에 초대되었는데…….-요한복음2

 

이렇게 요한에게 침례(개역성경은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해서 약 삼년반에 이르는 것으로 연구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가나의 혼인 잔치 때까지가 약 오, 육 개월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이고 그 이후부터 시작되는 삼년간의 공생애기간, 1년차 첫 유월절부터 돌아보자.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워지니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14) 그런데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요한복음2

 

주님의 공생애기간을 파악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유월절이다. 이곳에서 어느 정도의 단서를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1년 동안의 일들은 이렇다. 니고데모와의 대화, 초기 유대인전도(침례주심), 요한의 증거와 감금, 요한의 소식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갈릴리로 가심, 사마리아 여인 전도사건, 갈릴리전도 (이 때부터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복음 선포), 다시 가나로 가시고 (신하의 아들 구제사건), 그리고 이후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시고, 가버나움에서 가르치시고 베드로가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 사건이후 네 제자를 부르시고(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귀신을 쫓아내시며 베드로의 장모와 병자들을 고치시고, 두 번째 갈릴리전도여행을 가시고 이후 문둥병자, 중풍병자를 고치신 후에 다시 제자 마태를 부르시고 두 번째 유월절 상경을 하시게 된다.

 

또 이후 베데스다못가의 병자를 고치시고 안식일의 주인말씀과, 손 마른 자를 고치시고. 바리새인들의 반대에 부딪히시고 나서,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제자들 중에 특별히 12제자를 임명하시게 된다. 그리고 그 유명한 산상설교(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것 임이요…….) 를 하시고,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시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며, 침례요한의 메시아이신가? 질문을 받으시고 회개치 않은 도성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시고, 예수님께 첫 번째 향유를 붓는 여인사건이 일어나고 그러면서 두 명의 빛 진자 비유를 말씀하시고, 세 번째 갈릴리 전도 여행을 가셨을 때, 이때 예수님의 기적의 능력을 바알세불의 힘을 빈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망발이 터져 나오게 됨으로 그들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신다. 이후 성령님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고, 표적을 구하는 자에게 요나의 비유로 말씀하시고,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적관계에 대한 말씀, 바리새인을 책망하시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시고. 이 후 너희는 머리카락까지도 세신 바 되었다며 제자들을 격려하시고, 혼인잔치비유, 지혜로운 청지기비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비유, 씨 뿌리는 비유, 알곡과 가라지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감추인 보화비유, 값진 진주 비유, 그물비유등 천국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가다라(거사라)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떠나신다. 이후 제자들과 배타고 가는 중에 폭풍을 잔잔케 하시고, 무덤에 거하는 군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고, 혈우병 여인을 고치시며,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두 소경을 고치시며, 귀신 들려 벙어리된 자를 고치신후에,

(이 때까지를 이년 차 공생애로 보고 있다)

 

삼년 차 시작에 고향 나사렛에서 다시 배척(이 사람은 목수가 아니냐, 라며 의심받는 사건)을 받으시게 된다. 그리고 열두제자를 파송하시고, 다시 갈릴리여행을 가시며, 세례요한의 죽음을 들으시고, 파송에서 돌아온 열두제자의 보고와, 휴식할 여유가 없으심의 말씀, 오병이어사건, 바다 위 도보사건, 게네사렛에서 병을 고치시고, 생명의 떡에 관한 말씀을 하신 이 후, 이 때 말씀이 어렵다며 많은 제자들이 떠나가게 된다, 다시 장로들의 유전에 관한 논쟁, 두로와 시돈지방에 거하시며, 가나안여인( 개들도 자기 주인의 상 밑에 앉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사건 이후에 거하시던 시돈을 나와 데가볼리 통과 갈릴리호수에 이르셔서 에바다사건, 그리고 많은 이적을 일으키시고, 이후 칠병이어사건, 표적 구하는 자를 책망하시고, 벳새다 소경사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베드로 신앙고백,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고, 변화산에서의 변모, 간질병 아이의 치료, 수난을 예고하시고, 납세 문제 언급, 천국에서 큰 자와 작은 자 비유, 잃은 양의 비유, 무자비한 종의 비유, 갈릴리에서 베레아로 가시고, 70인 제자 파송, 다시 예루살렘으로 떠나시고 제자 야고보와 요한의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멸하리이까, 사건이 있고,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기라는 말씀을 하시고, 초막절교훈, 간음한 여인 (너희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마리아와 마르다방문, 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 파송 나갔던 70인이 돌아오고. 나면서 소경된 자를 고치시고, 선한 목자 비유, 수전절, 요단강 건너편(요한이 처음 침례를 주던 곳)에 가시게 된다.

 

자 한숨을 돌리자. 여기까지가 삼년차사역의 마지막이고,

 

이제 마지막 주간까지만이 남아 있다. 이 후 나사로를 살리시고, 에브라임으로 가셨다가, 18년간 불구가 된 여인을 치료하시고, 구원에 이르는 좁은 문 비유, 고창병자, 큰잔치 비유, 제자가 되는 어려움, 이후 어린 아이 축복, 주님의 재림에 관한비유, 부자청년, 포도원 품꾼비유, 나사로, 마르다의 동생인 마리아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이후 천국에 관한 여러 비유를 하시고 마지막 유월절에 식사를 하시고 가룟인 유다에 팔려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너무 많아서 다 기록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주님의 공생애기간은 의견은 분분하겠지만 약 3년 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계시록 81절은 그것에 맞춰 약 반시간이란 표현으로 주님의 공생애기간을 복음의 시작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것에 대한 상징적인 비유는 없으셨을까?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비유를 찾아보자, 예수님의 공생애기간은 바로 그 분께서 뿌린 천국복음이 이 땅에 뿌려지는 시기이고, 이 의미는 곧 천국도래를 위해 심겨진 겨자씨기간이며, 또 여자가 서말 가루속에 넣은 누룩비유의 시점이다. 이 겨자씨 비유는 주님께서 겨자씨가 되어 싹을 틔움으로 결국 천국을 이 땅에 이루시겠다는 것이며, 여자가 넣은 서 말(세상열방)에 넣은 누룩 (천국을 이루기 위한 뜸씨, 효소(酵素).) 의 역할을 감당하셨다, 라는 것이다. 이렇듯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신 역할이 바로 그 분께서 하신 역할이라는 것이다.

 

(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

 

이 반 시간(겨자씨, 누룩, 한 알의 밀알)이 가지는 의미가 바로 그런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후에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겠는가, 이 반 시간이 씨가 되어 잎이 나고 줄기가 나는 표현을 어떻게 하셨을까. 콩 심은데 콩 줄기가 나고, 팥 심은데 팥 줄기가 나듯 반 시간을 심었으면, 이 반시간에 걸 맞는 줄기에 해당하는 날짜가 나와야 한다. 즉 삼년반이 주님의 공생애라면, 그럼 이 공생애 기간의 상징인 반 시간이 가장 크게 확대된 시간, 곧 일천이백육십일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의미를 가진 비유인 누룩비유도 그런 의미가 있다. 가루 사이사이에 스며들어가 부풀게 만드는 효과 말이다. 바로 그것이다. 가장 작은 시간인 반시간이 커지고 커져서 일천 이백 육십일, 즉 은혜시대를 이루고, 이제 열매인 성도를 수확하고 더욱 거대해져서 주님의 나라를 이룬다는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이 바로 이 계시록 8장에 (씨앗, 줄기) 9(가지) 10(열매, 주님재림 ) 에 담겨 있는 내용인 것이다.

 

결론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렇다.

 

이 반시간, 즉 약 삼년반의 의미는 주님께서 복음을 뿌리는 공생애기간이며, 이 복음의 씨앗을 기초로 그 확대된 기간인 1,260일간의 은혜시대(교회시대)가 피어나가고 이제 7년환란에 이르러 주님께서 뿌리셨던 열매(성도)를 수확하시고 이 땅에 재림하시는 것으로 이 계시록의 목적은 달성된다는 것이다.

 

이제 이렇듯 반시간에 대한 의미를 파악했으므로 그 이후 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2) 그때 내가 보니, 일곱 천사가 하나님 앞에 섰고

(3) 다른 천사가 나와서 금향로를 가지고 제단에 서서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함께 그것을 보좌 앞에 있는 금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더라.

(4) 그 향의 연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그 천사의 손에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더라.

(5) 그 천사가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 불을 담아서 땅에 쏟으니 거기에서 음성들과 천둥들과 번개들과 지진이 일어나더라.

(6) 그때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준비하더라.

 

이상은 일곱 나팔을 준비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인데 숨은 의미가 많음을 알 수 있다. 4절의 향이란 것은 성도들의 순교를 의미하며 그 뒤를 이어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보이고, 5절의 음성들과 천둥들과 번개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라는 것이며 지진은 그분께서 하시는 일들 중에 기적적인 사역들을 표현하신 것이다.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가 섞인 우박과 불이 따르더라. 그것들이 땅에 쏟아지니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모든 푸른 풀도 타버리더라.

 

이 나무와 푸른 풀의 의미는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9장에 있다. 찾아보자.

 

(4) 그들에게 명령이 내려지기를 땅의 풀이나 또 어떤 푸른 것이나 어떤 나무도 해치지 말고 다만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장으로 표시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치라고 하더라.

 

이 풀과 푸른 것이나 나무는 이 말이 쓰이는 상황으로 보아 이마에 인 받은 자들을 의미한다 하겠다. 풀은 성도이며 나무는 장로급의 인사라고 볼 수 있다. 나무에 대한 근거를 댄다면, 같은 의미는 아니겠지만 다니엘서4장에서 느부갓네살이 나무로 비유된 적이 있던 것으로 보아 역시 그 본 의미는 高官大爵(고관대작)쯤을 의미함이 아닌가 보고 있다. 믿는 자들 중에서 그러한 자 라고 하면 長老(장로)급의 신앙을 가진 자들을 의미할 수 있고, 혹은 기름부음 받은 자, 즉 감람(올리브)나무로 온 땅의 주 곁에 선 증인된 종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따라서 풀과 나무는 주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이다. 초대교회 당시에 푸른 풀에 속한 성도들은 갖은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전파사역을 위해 장로급에 속한 자들의 생명, 곧 삼분의 이를 보호하시고 그들로 말미암아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셨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푸른 풀도 다 사위고 모든 나무도 다 타버린다면 주님의 복음사역은 그것으로 끝이 났을 것이나,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중에 삼분의 일만 타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거대한 산이 불에 타서 바다로 던져지는 것 같더니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더라.

 

이 불탄 산에 대한 의미는 예레미야 51장에 있다.

 

(1)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멸망시키는 바람을 일으켜 바빌론과 나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그들 가운데 거하는 그들을 칠 것이며

(2) 키질하는 자를 바빌론에 보내어 그녀를 키질하여 그 땅을 비우게 하리니, 이는 고난의 날에 그들이 주위에서 그녀를 칠 것임이라.…….

(25) 주가 말하노라. 온 땅을 멸하는, 오 파괴시키는 산아,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내가 네게 내 손을 펴서 너를 바위들로부터 굴러 내리고 너를 불탄 산이 되게 하리라.

(26) 그리하면 사람들이 네게서 모퉁이 돌이나 기초를 놓을 돌을 취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는 영원히 황폐하게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25절에 산이란 문맥상 바빌론을 의미하고 있다. 이 바빌론이 현 세상으로 치면 누구이겠는가? 아마도 이 바빌론집단이란 것은 세상의 주인인 음녀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그러한 곳으로 분별이 된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성공했고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가장 인정받는 곳이 어디인가를 살펴보면 이 바빌론의 정체를 알아내기가 쉬울 것 이다. 알아보는 중에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항상 사탄은 주님부활 이전이나 이후부터 선택된 성도들을 박해해 왔고, 넘어뜨리기 위해 수많은 기만전술을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바빌론에 대한 것은 요한계시록 쉽게 읽기에 어느 정도 정체를 밝혀놨지만 이 곳에서는 그 단편적인 예로 카톨릭에 대해 설명해 보기로 하겠다.

 

콘스탄티누스황제의 명으로 기독교가 국가공인종교가 된 로마에선 그 해로부터, 313년 에, 각 가정에 모여 숨어서 예배를 드리던 교회(敎會 - ecclesia), 그리고 지하교회인 카타콤을 당시 존재하고 있던 거대한 건물들을 예배당으로 변모시켜 그들을 끌어내어 그 안으로 밀어 넣는데 성공했다. 이후 기독교는 종교의 자유 위에서 신앙의 꽃을 피우는 듯 했으나, 역시 사탄적인 바빌론종교가 교회 안으로 스며들게 된다.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아는 듯 모르는 듯, 하는 듯 안하는 듯, 敎理(교리)變改(변개)가 일어나게 되고, 서서히 그들의 손아귀에 넘어간 성경은 보지 못하게 가리어지기 시작한다. 그와 더불어 그들의 거짓된 교리들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복음의 근간을 정확히 알지 못하게 되는 신앙의 변질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 바빌론종교에 관해서는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나 앞으로 조금씩 알아가도록 하기로 하고, 직접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바빌론종교는 세상 모든 가증한 종교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 대표격인 카톨릭만을 논하기로 한다.

 

기독교를 표방하는 듯 보이는 카톨릭은 普遍的(보편적)인 교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말만 보편적이라고 할 뿐, 전혀 보편적이 아니다. 그들은 니골라당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고, 이세벨의 교훈을 가진 교회이기도 하며, 발람의 교리를 교회에 끌고 들어온 음녀의 본색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첫째로 니골라당이라 함은 계시록26절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어떤 파당이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 보도록 하자. 에베소교회에 하시는 말씀이다.

 

계시록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니골라당'에 관해서는 본서 이외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이것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된다. 첫 번째는 역사적으로 이는 사도행전에 언급된(6:5)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니골라가 타락하여 만든 이단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언어적으로 '니골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콜라이톤''백성'을 뜻하는 '라오스''없애다'혹은 '정복하다'를 의미하는 '니카오'의 합성어로 구약성경에 기록된(22:12) '발람'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발람의 행위와 동일시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는 거짓 무리들로 추측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와 같이 니골라당은 발람의 교훈을 따른 자들로 이해된다(14,15). -註釋(주석)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런 해석을 가진다.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있다. 니골라당에는 또 이런 뜻이 내포되어 있다. 교회안에서 그들은 지배계급을 만들어 평신도를 지배한다. 정복한다는 의미는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들은 백성을 지배하기 위해 어떤 계급체제를 만들었는지를 보도록 하자.

 

ː(Pope, Holy Father)(敎皇)가톨릭교의 최고 지도자인 성직자. 로마 교황.

추기(cardinal)(樞機卿) 교황 다음가는 고위 성직자. 추기경 회의를 구성하며 교황의 고문으로서 그를 보좌함. 교황 선거권을 가짐. 홍의(紅衣) 주교.

ː―주교 (archbishop.)(大主敎) 관구(管區)를 주관하는 최고 성직, 또는 그 직에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

주교 (bishop)(主敎) 교구를 관할하는 교직. 또는 그 직에 있는 사람. 대주교의 아래, 사제의 위임.

신부 (Catholic priest; Father.)(神父) 사제(司祭) 서품을 받은 성직자. 주교 다음가는 위치로, 성사를 집행하고 미사를 드리며 강론을 함.

 

이렇게 계급을 만들어 성도들 위에 군림하며 자신들을 신부(神父) 즉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고 있다. 역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다시 한마디 달자면 이 바빌론이란 것은 비단 카톨릭에만 국한시킨 것은 아니고 예를 든 것임을 잊지 말자. 따라서 이 바빌론은 세상에 존재하는 基督敎(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宗敎(종교)를 포함한다. 그런데 이렇게 聖職者(성직자)계급에 대해 말하면 군림하는 것이 아니고,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봉사하고 섬긴다면 명칭을 종이라고 하던지, 하인이라고 하면 되지 꼭 아버지라고 해야 하겠는가, 그렇다면 이번에는 교회안에서 보자, 같은 맥락에서 봤을 때, 성경에 보면 성직자로서 대우 받고 싶어 하는 사람중에 항상 끌어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 이름이 디오드레베다. 어떤 사람인가 보자. 요한 3서다.

 

(9) 내가 그 교회에 편지를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트레페가 우리를 영접하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가 행하는 일들을 기억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헐뜯고,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형제들도 영접하지 아니하며, 그렇게 하고자 하는 자들을 방해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 도다.

 

디오드레베가 사도들의 후계자요 지역 교회의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장로, 감독의 위치에 대해 야심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디오드레베가 '으뜸이 되기를 좋아한다'는 진술은 요한이 계속적으로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디오드레베가 불만을 품고 거부하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으뜸되기를 좋아하는'의 헬라어 '필로프로튜온')은 디오드레베의 독립 성향이 그 직임에 있어 우려 이상으로 현실화되어 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그의 행위의 동기가 진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명성과 자기 야심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디오드레베의 성향은 도덕적인 문제 이상으로 상황을 악화시켜서 정치적인 다툼을 야기시키고 분열과 붕괴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 결과 여행하는 형제들을 접대하고 교회에서 지원해 주기를 요청했던 요한의 권면과 요구를 거절하게 되었다. '접대하지 아니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에피데케타이')는 신약성경에서 본문과 10절에서만 발견되는 단어로'...의 권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사도적 권위로 제안한 요한의 권면을 무시하고 디오드레베가 요한의 믿음안에 형제들을 영접하기를 거절했음을 뜻한다. 이러한 디오드레베에게서 나타나는 개인적인 야망과 세력 다툼은 초대 교회의 사역에 실패를 초래하는 위험 요소들이었다 -註釋(주석)

 

이 당시에도 이런 일이 있었으니 이렇게 디오드레베같이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하는 자들의 행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행태의 수위를 더해간다. 일곱 교회에서 보면 에베소교회의 니골라당의 행위는 후에 버가모교회에서 교리(교훈)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것을 암시하시는 것이 버가모교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나타난다. 계시록2장이다.

 

(15) 그리고 네게 역시 니콜라파의 敎理(교리)(敎訓(교훈)-개역성경)를 지키는 자들도 있도다.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

 

이렇듯 이들의 교리로 말미암아 교회안에 계급이 생성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고,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는데도 이들은 그것을 애써 무시한다. 마태복음 23장이다.

 

(5)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것으로, 가죽 성구함을 크게 만들어 지니고 옷단을 넓혀 입느니라.

(6) 또 잔치에서는 최상의 자리를, 회당에서는 가장 좋은 좌석을 좋아하며

(7) 또 시장에서 인사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여, 랍비여.'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불림을 받지 말라. 이는 너희 선생은 한 분, 곧 그리스도시요, 너희는 모두 형제이기 때문이라.

(9) 또 땅에 있는 사람을 너희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이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기 때문이라.

(10) 또 너희는 선생들이라고도 불리지 말라. 이는 너희 선생님은 한 분, 곧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라.

(11)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그리고,

 

(15)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마음을 아시느니라. 이는 사람들 가운데서 크게 높임을 받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스러움이니라."고 하시더라. -누기복음16

 

이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분명하지만 바로 교회 안에서 받아야 할 말은 아니겠는가, 혹시라도 한 번 되돌아 봐야 할 때이다. 이제 9절로 넘어가자.

 

(9) 또 바다에 있는 생명을 가진 피조물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더라.

 

바다의 피조물이나 배의 삼분의 일이라는 것은 땅에서의 풀과 나무와 거의 같은 의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바빌론의 박해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는 성도들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교회인 풀과 나무가 보이지 않는 듯 느껴지는 것은 세상 안에 종교가 포함되어 있어서인데, 그럼으로 말미암아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겠는가도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이때는 헬라어를 모르면 성경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성경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사서 볼 수 있는 성도들이 많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시기에는 헬라어를 공부한 위대한 설교가들의 힘을 빌려 어찌 어찌 믿음을 지켜나갔다고 볼 수 밖에 없겠다. 하나님의 진노는 공의로워야 한다. 이 때 믿음을 지키며 순교했던 주의 백성들도 주님 재림시에 일으킴을 받을 것이다. 목숨을 지켜 믿음을 수호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의 심판과 상급은 달라야하고 또 다를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평한 의의 심판인 것이다. 또 하나님은 하나님자신을 위해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칠천 명을 보호하셨듯이 이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중에도 주님의 보호를 받는 교회는 지속되어 오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등불처럼 타는 큰 별이 떨어졌는데 그것이 강들의 삼분의 일과 물들의 원천에 떨어지더라.

(11) 그 별의 이름은 쑥이라 하고 물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니 그 물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그 물로 죽더라.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했으니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한 것일 테고, 어떤 재앙이냐 하는 것이 주어진 과제라 하겠다. 해석 중에 항상 유념하고 있어야 할 것은 계시록의 모든 것을 世上史(세상사)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하는 해석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상징의 의미는 복음이나, 사탄의 변개, 믿는 성도, 그리고 믿지 않는 자들에 의한 핍박, 이런 측면에서 말씀과 계시록을 詳考(상고)해야 함을 피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쑥이 강에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는가? 사람은 물의 근원인 강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믿는 성도에게 물이라 함은, 또 그것에 대한 渴症(갈증)이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볼 수 없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을 때의 갈증일 것이다. 바로 그 갈증을 느끼는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일 것이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런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런 생명의 물인 말씀과 깨달음이 없으면 크리스천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살아 있으나 산 것이 아니요, 이미 죽은 것이다. 몸은 살아 있으나 영이 죽었으니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았을 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영을 구하는 것이 바로 福音(복음)이요, 그 복음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그 분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그 약속을 믿는 것이 바로 복음이며 구원인 것이다. 또한 그 말씀으로 인해 믿는 자의 삶과 행위에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그럼으로써 계명도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생명의 말씀 안에서 믿음과 행위가 일치해야 함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 복음에 쓰디 쓴 쑥이 떨어졌다는 것의 의미는 복음이 變質(변질)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에베소교회의 첫사랑을 잃어버리게 한 것이나, 서머나 교회에 떨어진 박해에 목숨으로 믿음을 지키지 못했던 신자들이나, 버가모교회의 우상에 절하는 일이나, 두아디라교회의 우상섬기는 음란한 교리들이나, 깨어있지 못하고 사탄의 기만에 속아 결국 사탄의 종이 되어버린 사데교회의 온전하지 못한 자들의 행위처럼 하나님앞에 믿음으로 굳게 서지 못한 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설명하신 것이다. 같은 측면으로 카톨릭에서 마리아를 예수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했다가 결국은 하늘의 여신으로 神格化(신격화)시킨 일이나. 또 그 안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敎理(교리)들의 변질은 그 안에 속해 있는 信者(신자)들을 무수히도 많이 우상숭배사상으로 이끌고 들어갔다. 이렇듯 사탄은 교리를 변질시킴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기만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소중한 생명들을 끌어가려는 것이다. 일견 이것은 그의 승리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국 그 가운데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公義(공의)는 그들 중에 온전한 자들이 있었다면 천년왕국 후에 ()보좌審判(심판) 앞에서 자신의 行爲(행위)로 심판받을 때 그 행위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면 될 것이다. 증거구절인 계시록20장이다.

 

(12)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계시록20

 

이렇듯 붉은 용(사탄)은 교리의 변개, 혹은 변질이라는 속임수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소유하지 않은 자들을 자신의 종으로 끌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 또한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도 문제요 (말씀을 상고하지 않았으므로…….)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 삼분의 일이 강타를 당하여 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이 그 삼분의 일 동안 비치지 못하고 또 밤도 마찬가지더라.

(13) 내가 보고 들으니,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한 천사가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있으리라, 화 있으리라, 화 있으리라. 이는 세 천사가 이제 불려고 하는 다른 나팔 소리들 때문이라."고 하더라.

 

13절의 화 있으리라, 화 있으리라, 화 있으리라, 는 앞으로 불릴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을 순서대로 의미하는 것이고, 여기서 문제는 12절이다. 해와 달과 별은 무슨 의미인가?

 

일단 해를 보자, 계시록 1장이다.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해는 모든 빛의 근원이다. 달은 계시록12장 해석 중에 알아보았듯 영원성을 상징한다. 우리의 빛의 근원은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그 분의 말씀이 빛을 잃고 있는 것이다. 해가 빛을 잃으면 해의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이고 곧바로 따뜻함을 잃음으로 해의 존재감을 상실하게 되어 버린다는 것을 표현하신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해가 힘 있게 비취듯 교리가 바로 서있고, 그 교리를 바탕으로 말씀이 살아나고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분량이 자라나서,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행위가 당연히 뒤따름으로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증명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성도들의 믿음은 어떤가, 혹시 라오디게아교회에 주셨던 말씀처럼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렇듯 이 세대가 하나님 앞에 뜨겁지 못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풍족한 삶이 원인이 되어 그렇게 된 것일 거라고 보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부자들은 하나님의 필요성을 그리 크게 느끼지 않는다. 그분께 기도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별 아쉬움이 없는데 왜 구태여 목을 매어 그 분에게 매달리겠는가, 아마도 딴에는 나까지 기도하면 하나님을 귀찮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접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으리라. 너희는 부자되기에 힘쓰지 말라고 하셨고, 그저 가진 것에 만족하라고도 하셨다.

 

잠언 23

 

…….

(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딤전 6

 

...........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뜨겁지 아니하면 구원은 요원해 지는 것이다. 이 땅에서 명예를 구하는 자나 영광을 구하는 자, 재물을 구하는 자는 모두 사탄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될 것이다. 오히려 섬기는 자가 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고 그 분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또 그렇게 自高(자고)하지 않는 것이 주님께 칭찬받는 종의 모습일 것이며 그 분의 나라에서 상급을 획득할 수 있는 秘訣(비결)도 될 것이다. 어렵겠지만 그렇게 해야 주님의 誡命(계명)을 지켰다고 주님 앞에 가서 뭐라도 한마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성도들은 주님께서 먼저 보시고, 내 백성이니 내가 안다고 하시며 위로해 주실 테지만 말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찾아보자면 소위 믿는 자들의 타락한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말씀을 가지고 가르치는 자들 중에서도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 있으니 빛을 잃고 있는 것이며, 한 성경을 가지고 수많은 교리들이 판을 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신자들의 분별이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카톨릭을 중심으로 세계의 종교는 하나라며 에큐메니칼운동을 하면서 음녀의 가증한 짓을 계속하고 있는 기독인들까지 있으니, 이 어찌 통탄하지 아니할 수 있으며 하나님앞에 책망 받을 세대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세태가 이러니 성경 한번 읽어보지 않은 교인들은 어떻게 올바른 말씀을 알 수 있으며, 무슨 수로 옳고 그름의 분별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소위 성직자란 사람들에게 맡겨버리고, 자신을 한낱 세상에서 돈버는 일꾼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들, 그 스스로에게 위안이란, 십일조를 내고 있으니 나는 구원 받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신자들로 우리 주위는 꽉 차있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주님은 그런 자를 환란에 던져 넣으실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신앙인들을 입에서 내 뱉겠다고 한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렇게 安逸(안일)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분의 嚴威(엄위)하심과 심판의 두려움을 알기에 조금 더 그 분을 알기 위해 힘쓰는 것이다. 또 바로 그러한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라고 부르시며 위로해 주실 것이다.

 

이제 넷째나팔까지 마쳤다. 현재시대는 이 넷째 나팔 시대일 수도 있고 다섯째 나팔시대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다섯째 나팔인 전 삼년반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성도들이 쉽게 분별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등장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앞으로 그것에 대한 증명을 해 나가겠지만 제위께서도 더욱 집중하시기 바란다. 이제 이후 9장에서는 다섯째 나팔인 한이레중의 전 삼년반과 여섯째 나팔인 후 삼년반의 시대가 펼쳐진다. 너무나도 명확한 그것을 앞으로 증명해 나갈 것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도 말씀위에 제대로 서 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점검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 글을 보시면서 그러한 시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