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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계시록강해노트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강해 열 두 번째 시간

by 디클레어 2011. 7. 31.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강해 열 두 번째 시간 2021*10/03

 

 

 

 

 

계시록12장

 

 

 

앞선 11장 1절과 2절 강해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그리고 마흔 두 달의 기간인 적그리스도가 받는 한이레의 기간을 보내고 나서, 3절에서는 다시 시간을 되돌려 처음 교회의 탄생으로 돌아갔다라고 하며 그 날짜인 1,260일을 언급하며 설명을 한 바 있습니다. 그 해석이 맞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이 바로 이 12장이며, 그 해석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해 주신 장이 또 이 12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12장에도 1,260일이 등장을 하며 그 1,260일은 교회가 현시대까지 살아온 初代(초대)교회부터 現代(현대)교회까지의 기간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니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는 이제 이 계시록이 단지 7년 동안의 기록만은 아님을 아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계시록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 초대교회부터의 기록이라고 믿는 것이 세계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은 물론이며, 이 계시록이 쓰여 진 진정한 목적의 하나라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앞서 말씀드린 강해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면 6장에 흰말 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정복사역이 시작되고 사탄의 出現(출현), 그럼으로써 생기게 되는 복음의 變質(변질), 배교의 橫行(횡행), 變改(변개)된 聖經(성경), 잘못된 敎理(교리)의 生成(생성), 거짓 선지자들이 판치는 그런 混亂(혼란)속에서도 주님께서 택한 성도들에 대한 구원사역이, 검은 말을 탄 천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주님의 복음사역이 처음부터 기록된 장은 계시록8장의 첫 번째 나팔부터 네 번째 나팔까지의 기간임을 알게 되었고 그와 같은 분류의 장이 계시록11장임도 알게 되셨습니다. 이제 그런 식으로 초대교회에서부터 서술된 장이 또 하나가 있음을 알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이 계시록12장입니다. 이 12장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승천이 있으며 그 시기부터 기록된 장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12장의 이 여인이 진정한 믿음의 영적유대인을 뜻한다는 것도 알게 되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간구합니다. 이제부터 주님께서 반석위에 세우신 교회가, 어떻게 그 때로부터 적그리스도의 마흔 두 달, 즉 후 삼년 반까지 진행될 것인가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1) 하늘에 큰 이적이 나타났으니 한 여인이 해로 옷 입었고, 달은 그녀의 발 밑에 있으며, 머리에는 열두 별이 있는 면류관을 썼는데

 

이 여인이 해로 옷 입었다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가 비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복적 복음의 사역을 의미하는 것임을 파악해 왔고 해로 옷 입었다는 것의 해는 바로 그 빛을 내는 원천인 하나님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발 밑에 달이 있다는 것은 시편72편에 나와 있는 대로 달의 영존하는 속성으로 보아 하나님의 변함없는 여인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고, 머리에 열 두별이 있는 면류관을 썼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열 두 족속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열 두 별이 의미하는 열 두 족속은 민족적이고 혈통적인 이스라엘민족을 의미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계시록7장에서 알아본 바 있듯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영원한 천국백성을 의미하고 있음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 해나 달이라는 것이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께서 폐하시기 전 까지는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시오, 시작과 끝이신 그 분의 영원성을 생각한다면, 이 열 두 별이라는 것도 그 분께서 창세로부터 택정해 놓은 信實(신실)한 유대인, 즉 빌라델비아교회이며 십 사만 사천 급의 믿음을 가진 교회성도들로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오해가 있을까봐 말씀드리는데 이 빌라델비아교회급의 믿음을 가진 교회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흘러내려오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을 신실하게 지켜 오신 것을 보았을 때, 너무도 당연할 것입니다. 이렇듯 영원한 속성을 가진 해와 달임을 증명하는 시편72편입니다.

 

 

(5) 해와 달이 있는 한 그들이 모든 세대에 걸쳐 주를 두려워하리이다.

(6) 그가 벤 풀 위에 내리는 비같이, 땅을 적시는 소나기같이 내려오리니

(7) 그의 날들에는 의인이 번성할 것이며 달이 있는 한 화평의 풍성함이 계속되리이다.

 

 

이와 같이 해와 달은 이 땅이 존재하는 한 계속되는 속성을 상징한다고 하겠으며 영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 분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아이를 밴 그 여인이 산고로 울부짖으며 출산하려 함으로 아파하더라.

 

 

이 아이를 해석한 학자들의 견해를 존중하여 그들의 해석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 아이가 예수그리스도만을 의미한다고 보는 Mounce와 , Ladd.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된 교회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Plummer와, Charles, 그리고 White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여인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5절을 보면, 이 아이는 명백히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며 저도 이 주장에 동의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창세기 3장15절의 내가 너와 여자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고 예언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 이 아이와 이 아이를 낳는 여자로 인해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알파와 오메가이며,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나중이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나타났으니, 보라, 커다란 붉은 용 한 마리가 있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고 그 머리들 위에는 일곱 왕관이 있더라.

 

 

이 붉은 용은 뒤에 있는 9절을 보면 옛 뱀, 마귀, 사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일곱 머리라 함은 창세로부터 그가 세우고 지배해 왔다고 보는 왕조를 얘기하며, 열 뿔이 있다는 것은 말세에 드러날 열 왕과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마지막 왕국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이 나는 대로 계시록13장과 17장에 걸쳐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곱 머리를 역사적으로 이어져 왔던 왕조라고 해석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그 일곱 머리 모두에 왕관이 있다는 것 때문이며, 결국 그는 그 왕조들을 지배해온 세상의 왕이라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4) 그런데 그의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또 그 용이 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삼키려고 출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서 있더라.

 

 

그의 꼬리는 사탄의 꼬리라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비유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므로, 이 꼬리는 그를 따르고 있었던 하늘의 천사들을 의미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삼분의 일에 주목해 보자면 여러분들은 이미 앞서 9장의 여섯 번째 나팔의 해석 가운데서 사탄을 따르는 천사의 수가 무려 2억이 된다는 것을 들으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삼분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이억의 숫자중에 삼분의 일이라는 것일까요, 저는 지금까지 정수(整數)로 계시하신 하나님께서 여기서만 소숫점이 들어가는 숫자의 삼분의 일을 계시하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석하는 가운데 저는 이 사탄을 따르는 천사의 수가 모두 삼억정도가 될 것이다, 라고 判斷(판단)을 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계시록6장 넷째 봉인에서 알아본 바가 있듯이 적그리스도가 왜 땅의 사분의 일인 일 억명만 죽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천사인 이억의 군사가 주의 성도 이 억명을 죽였다면 적그리스도도 그의 통치기간에 그 남은 이억 명을 죽여야 하는 것이 당연할텐데 말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봤을 때, 계시록9장에서 처음 16절의 이억의 군사는 이 억명의 성도를 죽이는 것이고 17,18절의 환상속에서 본 또 다른 기병대들이 일 억명을 죽이는 것이며, 그러므로 사분의 일인 나머지 일 억은 적그리스도와 짐승들이 죽이게 되는 것은 아니겠는가, 하고 추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정리하자면 총 사억의 순교 성도중에 삼억은 천사들의 힘을 빌어 죽이는 것이고, 나머지 일억은 적그리스도와  열왕과 거짓선지자가 벌이는 일들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에서 이미 설명한 바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한 가지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첨부하자면 이 천사들의 外形(외형)은 사람들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판단을 합니다. 주님께서 초림하셔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마귀들린 자들을 많이 고치시고 심지어 군대귀신이 들어간 정신병자를 고치신 일이 있음을 기억한다면, 타락하여 흉악한 모습을 한 영적인 천사들이 이 세상에서 돌아다닐 것이라고 생각되어 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 타락한 천사들의 활동은 사람들의 모습을 빌어 행해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다음 5절,

 

(5) 그녀가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모든 민족들을 철장으로 다스릴 자라. 그녀의 아이가 하나님과 그의 보좌 앞으로 들려올라 가더라.

 

이 아이는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경 상에 기록된 철장으로 다스린다는 표현은 통틀어 모두 예수그리스도께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린다고 하는 것을 칭하는데 쓰여졌기 때문이며, 하나님과 그의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가더라, 의 하나님이란 명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의 보좌가 의미하는 것은 명백히 하나님의 우편보좌를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를 11장에 나온 사흘 반 동안 죽은 뒤에 하늘로 올라오라는 소리를 듣고 승천하는 두증인으로 해석하거나, 때로는 십 사만 사천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것은 시기에 대한 槪念(개념)이 전혀 잡히지 않은 가운데서 해석을 하다 보니 그런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런 식의 해석은 세대주의자들과 그들에게 넘어간 일부 개혁주의자들도 하는 주장이므로 그들이 퍼뜨린 누룩들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6) 그 여인은 광야로 도망하였는데 그 곳에는 그들이 그녀를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부양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곳이 있더라.

 

 

여기에 이 여인이 광야로 도망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도망한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보살피시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앞서 계시록7장 강해에서 마태복음24장16절을 인용하면서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하라, 의 이 유대인들은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 있는 민족적인 유대인이 아니고, 말세에 있을 빌라델비아교회이며 14만4천을 의미한다고 하는, 아직까지는 저의 주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해석을 들으신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도망하라는 산은 계시록14장1절의 어린 양께서 서 계신 시온산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들으셨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여기서 이 도망간다는 것이 꼭 들림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주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겠는가 하는 것에 대해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 후 초대교회의 환란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되며, 또 계시록8장 해석 중에서도 아셨고, 그 때 모든 풀은 타고 나무의 삼분의 일도 탔으니, 그 남은 삼분의 이에 속한 나무들 중, 그 환란에서 벗어나 주님의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推論(추론)해 낼 수 있다면, 이 광야로 도망하는 여자가 그 남은 나무, 삼분의 이일 것이며, 결국 주님의 신실한 일꾼들임을 분별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천이백육십일은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되는 기간임을 11장의 두증인의 사역기간과 비교해, 다시 한번 확인하시는 결과가 됩니다. 그리고 이 6절의 일천 이백 육십일 뒤에 11장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전 삼년 반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14절에 등장함을 보신다면 이 일천 이백 육십 일은 결국 전 삼년 반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앞서 있는 시기이니 교회시대임을 상징한 기간임을 이제는 확실히 아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곳이라는 광야는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어떤 물리적인 장소를 얘기하는 것이 아님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말세에 존재한다고하는 도피처라는 곳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7) 또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을 대항하여 싸우고 용과 그의 천사들도 싸우나

 

 

이 여인이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장소인 광야로 도망가고 난 후에 이 하늘에서의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때로 어떤 해석가들이 이 일천 이백 육십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같은 시기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을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이 일천이백육십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사이에는 하늘의 전쟁이 있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 앞에서 교회기간 내내 성도들을 놓고 벌이는 영적전쟁으로 볼 수도 있고, 14절의 한 때와 두 때와 반때가 시작되기 얼마 전에 시작되는 전쟁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이 되던 간에, 이 일천 이백 육십 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사이에는 여인이 도망하는 광야생활이 있고 하늘의 전쟁이 있으므로 이 기간을 같은 때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시기에 대한 분별을 명확히 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이 12장과 앞으로 볼 13장은 그것에 대한 분별을 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이고, 여러분들은 그것을 곧 아시게 될 겁니다.

 

 

(8) 그들이 이기지 못하여 하늘에서 더 이상 있을 곳을 찾지 못하더라.

 

 

(9) 그리하여 그 큰 용이 쫓겨나니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세상을 미혹하던 자라. 그가 땅으로 쫓겨나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나더라.

 

 

드디어 이 붉은 용이 하늘에서 쫒겨 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쫒겨 날 때를 보십시오, 그 혼자 쫒겨 난 것이 아니고 그의 천사들도 같이 쫒겨 납니다. 4절에서 이 붉은 용은 자신을 따르는 天使(천사),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땅으로 던졌었는데,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를 따르는 천사들이 하늘에 남아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렇듯 이 9절까지 사탄의 천사들은 모두 세 번에 걸쳐 나타나게 되는데 , 그 첫 번째는 창세기 6장2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는 타락한 천사들, 그리고 지금 보시고 계시는 계시록12장 4절의 하늘의 별 삼분의 일로 기술된 땅으로 던져진 천사들, 그리고 이 9절에 다시 미가엘과의 전쟁에서 쫒겨나게 되는 천사들입니다. 그 수를 합쳐 모두 3억 정도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분별했던 것인데,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이들이 사분의 삼의 주의 성도들을 죽이는데 이 삼억 명의 범죄한 천사들이 주의 성도 삼억 명을 각 한 명씩 죽여야만, 더 이상 변명하지 못할 죄로, 불못에 던져지는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몸으로 창조되었던 그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던 천사들의 처벌은 결국 그 아들들을 심판하셔야 하는 아버지 된 하나님으로써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알아 볼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말씀을 보고 연구, 분석해 본 가정에 불과하긴 하지만, 자주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던 예수그리스도, 그분의 말씀을 생각해 볼 때에 그 마음을 짐작해 본다는 것이 지나친 억측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볼 때 그 말씀을 하신 분의 심정도 같이 짚어 봐야 한다는 얘기도 드렸던 것입니다.

 

 

(10) 또 내가 들으니, 한 큰 음성이 하늘에서 말하기를 "이제 구원과 능력과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권세가 임하는도다. 이는 우리 형제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고소하던 그 고소자가 쫓겨났기 때문이니라.

 

 

(11) 그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거한 말로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그들이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성도들이 그의 참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를 이겨왔다는 것을 말하며, 따라서 이 기간은 일천 이백 육십일의 전 교회기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 쫓겨나기 전에는 그가 하나님앞에서 고소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족장시대의 욥도 이 사탄의 덫에 걸려 고통 받았음을 봤을 때, 그의 행위는 거의 창세로부터 이 쫓겨나는 시기까지 계속되어 왔다고 봐야 하며, 그러므로 이제 그가 쫓겨나는 이 시기는 한 이레전임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너희 하늘들과 그 안에 거하는 너희는 즐거워하라. 땅과 바다에 사는 자들에게는 화 있으리라! 이는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크게 분노하며 너희에게로 내려갔음이라."고 하더라.

 

 

이 용이 땅으로 쫒겨 내려간 시기는 계시록9장에서 알아본 바가 있듯이, 한이레 시작 바로 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가 한이레 시작 때부터 그의 마성을 나타내고 싶을 것이긴 하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환란인 마흔두달이 시작되기 한달전까지 그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것입니다.

 

(13) 그 용이 자기가 땅으로 쫓겨난 것을 알고서 사내 아이를 출산한 그 여인을 박해하더라.

 

그 용이 땅으로 쫒겨난 것을 알았다는 것은 이제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가 알았다는 것을 뜻하고, 그러므로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최후의 發惡(발악)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일을 뒤집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그렇게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을 자신에게 끌어가려고 할 것이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역시 차라리 죽이겠다는 그런 마음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을 낳았던 곧, 영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유다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로 불리는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를 잇고 있는 믿음에 있어 신실한, 영적 유대인인 빌라델비아교회, 곧 14만4천명을 죽이려고 追擊(추격)하는 것입니다. 이 박해하더라는 말은 추격한다는 뜻을 가진 헬라어 에디와센이라고 풀이했던 것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 여인의 정체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이후의 신실한 교회이며, 그 뿌리를 캐자면 이스라엘 왕 다윗을 거쳐 야곱과 이삭, 그리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더 위로 가면 셈, 노아, 에녹, 셋, 아담, 그리고 창조주하나님에게까지 이르는 그 분의 신실한 믿음의 자녀들임을 알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용이 여인을 미워하고 죽이려 그를 추격했던 것입니다.

 

 

(14) 그때 그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는데, 이는 그녀가 광야에 있는 자기 처소로 날아가서 그 곳에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부양받으려 함이더라.

 

 

그 때 그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은 때는 분명 13절에 용이 자기가 땅으로 쫒겨난 것을 알아버린 시점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때는 여인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부양받기 전이므로 전 삼년 반이 시작되기 바로 전 임을 알 수 있고, 이것은 곧 계시록9장1절에 하늘에서 별이 떨어져 무저갱을 연다던 그 별이 이 붉은 용임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하며, 결국 다섯째 나팔이 전 삼년 반임을 알려주는 또 다른 증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계시록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섥혀 있어서 어느 한 구절 시기에 관해 잘못해석하면, 전체적인 해석이 틀어져 버리게끔 계시되어 있다는 것을 제위께서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방법으로 오류를 발견해 낼 수 있게끔 되어 있어서, 계시록해석의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규칙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의 계시록해석을 보며 틀린 곳을 지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14만4천이므로 그 받은 면류관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것임은 물론, 그 시기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들림을 받아 시온산으로 가게 됩니다. 그 증명은 16절에서 다시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기에 대해 첨언하자면 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중심으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앞인 6절에는 일천이백육십일이 있었고, 그리고 비록 13장이긴 하지만 13장 5절에 마흔 두 달이란 기간이 있습니다. 12장과 13장은 시간상으로 정확히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12장과 13장을 비교분석하면 일천 이백 육십 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그리고 마흔 두 달이 순차적으로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천이백육십일은 전 삼년 반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앞쪽에 놓인 교회기간임을 알 수 있고 마흔 두 달은 13장에서 보시다시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가 주류가 되어 세상을 통치하는 후 삼년 반의 대 환란기간임을 알 수 있으니 이 세 기간은 절대로 같은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기는 앞으로 보게 될 12장 17절과 계시록13장 1절을 연결해서 해석할 때, 꼭 순차적으로만 기록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15) 그 뱀이 여인 뒤에다 자기 입에서 물을 홍수같이 쏟아 그 여인을 홍수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이 홍수는 여인을 죽이려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7천명의 메뚜기들로 분별한 전 삼년 반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배도자들을 이용해서  온갖 기이한 雜說(잡설)들을 이용한 詭辯(궤변)들로 성도들을 해칠 것이라는 계시록9장 4절의 말씀이 행해지는 때가 지나고나서, 결국 그들을 확인하고 죽이려 하는 것이다, 라는 것까지 예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전 삼년 반이니 이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은 때가 바로 이 때임을 여러분들도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6) 그 땅이 그 여인을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이 그 입에서 쏟은 홍수를 삼켜 버리더라.

 

 

그 땅이 그 입을 벌린다고 쓰여 있지만, 간단하게 지진이라고 볼 수 있는 이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여인을 도우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빌라델비아교회에 하셨던 말씀중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지키리니)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라고 하신 이 시험의 기간이 적그리스도의 마흔 두 달임을 아셨다면, 또 그 시험이 임하기 전에 지켜 주시거나 면하게 해 주신다고 하신 것을 보셨으니, 계시록13장5절에서 적그리스도가 마흔두달의 지속적인 권세를 받기 전에 그 기간을 지켜주거나 면하게 해 주셔야 함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그 땅이 그 여인을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이 그 입에서 쏟은 홍수를 삼켜 버리더라. 라는 말씀은 결국 하나님께서 어떤 기적적인 일을 행하셨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들림이라는 것은 제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이제 개인적인 역량에 맡겨드려야 할 것 같고, 앞서 계시록7장의 해석중에 이 14만4천이 들림받았다는 말씀이 8장, 9장, 10장, 11장등에서 본 바와 같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4장1절에서 어린 양과 함께 시온산에 있었다는 해석을 들으셨는데 바로 이 땅이 입을 벌린다는 표현, 곧 이 지진이 14만4천이 들림받았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구절이라는 것을 이제 말씀드립니다. 그럼 그것이 사실인가에 대한 증명을 계속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스가랴14장입니다. 이것은 사실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에서 이미 수없이 했던 터라 또 하는 것이 껄끄럽긴 하지만, 동영상을 제작하려고 다시 살펴보는 중에 새로운 증명을 적잖이 발견하고 있는 터라 저도 놀라고 있고 그래서 다시 한다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만은 않습니다. 1절로 5절까지 보겠습니다.

 

 

(1) 보라, 주의 날이 오나니, 네 약탈물이 네 가운데서 나뉘리라.

 

 

이 주의 날은 주님 재림하시는 날이 가까워 온다는 때를 말합니다. 곧 적그리스도의 한 이레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중에서도 마흔 두 달 대 환란기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내가 모든 민족들을 모아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싸우게 하리라. 성읍은 함락되고 집들은 강탈당하며 여자들이 욕을 당하고, 성읍의 절반이 사로잡혀 갈 것이나 백성의 나머지는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2절을 보십시오, 이 때는 계시록11장7절에 두 증인이, 또 그들이 자기들의 증거를 끝마칠 즈음에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온 짐승이 그들과 전쟁을 하여 그들을 이기고 또 죽이리라. 는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바로 계시록7장의 四方(사방)바람과 계시록9장 14절의 네 천사가 유프라테스강에서 풀려나 벌이는 마흔 두 달의 환란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3절은,

 

 

(3) 그 때에 주께서 나가 그 민족들을 대적하여 싸우시리니, 전쟁의 날에 싸우셨을 때처럼 하시리라.

 

 

주님께서 싸우시는 이때는 바로 주님의 재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하면서 아마겟돈에 모인 적의 무리를 섬멸시키시는 것을 간단히 묘사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4) ○ 그의 발이 그 날에 예루살렘 앞 동편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서시리니, 올리브 산은 그 중간이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생길 것이며, 산의 절반은 북쪽으로, 산의 절반은 남쪽으로 옮겨지리라.

 

 

지진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일어나는 일들 중에 계시록16장의 대지진을 언급하며 설명한 적이 있었지만, 이 지진은 그 대지진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올리브산이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진다고 하는 의미는, 동양과 서양에 걸친 전 세계를 말하는 것이며, 5절의 너희는 그 산들의 골짜기로 도망할 것이라는 것은, 마태복음24장16절의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하라,를 보셨던 것과 똑같이, 바로 주님 재림시 휴거되는 주의 백성들을 들어 올리시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지진이나 도망하라, 라는 말이 바로 주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그 분이 계신 곳으로 끌어 올리신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라는 얘깁니다. 그 감추어진 의미를 생각하시면서 말씀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5) 너희는 산들의 골짜기로 도망하리니, 이는 산들의 골짜기가 아살까지 미칠 것임이라. 정녕 너희가 도망하리니, 마치 유다의 웃시아왕의 시대에 너희가 지진 앞에서 도망했던 것과 같으리라. 주 나의 하나님께서 오시리니 모든 성도들이 주와 함께하리라.

 

유다 왕 웃시아시대에 분명 지진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진의 의미를 쉽게 분별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물쇠이고, 여기서 정녕 너희가 도망한다 라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시면 그런 단순한 의미의 말은 아님을 導出(도출)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것은 무조건 도망해야만 하는 사태가 발발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정녕이란 단어를 보아 꼭 그렇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은 견해일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는데 왜 주의 백성들이 도망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더구나 주의 재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있을 거라고 하셨음에도 말입니다. 따라서 이 지진과 도망하라 라는 표현은 주님의 기적인 휴거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으니 여러분들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17) 그러자 그 용이 여인에게 분노하여 여인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 즉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우려고 나가더라.

 

 

그 용이 여인을 죽이지 못함으로 분노하여 여인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과 전쟁을 하려고 나간다는 이 시기는 여인이 전 삼년반 끝에 들림받고 난 이후이니, 적그리스도의 마흔 두 달, 곧 후 삼년 반이 시작되는 때일 것이며, 이것은 곧 계시록 11장 7절에 두 증인을 죽인다고 하는 그 때와 연결되는 것임은 이제 시기를 판단할 줄 아는 분은 분별하실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후 삼년 반이라 주장했던 여섯 번째 나팔과 연결되는 것도 이해하실 것이구요. 이렇듯 계시록은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 아님을 이제 自覺(자각)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 계시록 해석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은 여러분들이 그 동안 복음서를 들으면서 알고 계시던 하나님과, 이 계시록해석을 보면서 알아나가는 하나님과는 좀 다르게 느껴져서일 것입니다. 그 차이에 관한 것은 연구해 나가시며 차츰 알게 될 일이라 생각하고, 이사야 45장 4절이하에서 하나님께서 그 분 자신을 계시하신 것을 보면,

 

(5) ○ 나는 주요 아무도 다른 이가 없나니, 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느니라. 네가 나를 모를지라도 내가 너를 띠로 동였노라.

(6) 사람들이 해가 뜨는 곳과 서쪽에서부터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는 것을 알게 되리라. 나는 주요 아무도 다른 이가 없느니라.

(7) 나는 빛도 조성하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악도 창조하나니 나 주는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빛이나 어두움이나 선이나 악이나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이심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성도들은 그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이며, 또 그런 견지에서 말씀을 상고해야 하며, 그야말로 절대적인 존재임을 알고 그 분을 경외(敬畏)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구절들에서 보듯 그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이나 이성, 그리고 생각안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 계시록의 해석은 여러분께 새로운 의미로 다가서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아시던 하나님과 이 계시록을 해석하시는 중에 알게 된 하나님이 다르게 느껴진다면, 이 계시록을 공부해보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그 분께 다가서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니, 시간을 들여 연구에 매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